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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나눠요


[☆을 나눠요] 비독님의 「마르티에」를 읽고

※ 비평이란?

▷ 예술작품에 관해 의식적으로 평가하고 감상하는 일을 일컫는다. -Shipley

▶ 문학비평은 작품에 나타난 인생 및 표현의 해석이다. -M. Arnold

▷ 비평은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 원인을 찾아 그것을 설명하는 것, 또 미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있다. -Ricardo

 

감평을 쓰는 것은 상당히 오래간만이다. 다술배 단편제를 접은 이후 고이 책장 꼭대기에 박아두었던 비평 개론집들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재독을 했다. 개론의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역시 전문서적은 읽기 힘들다.

여러 전문서적을 참고하여 〈마르티에〉라는 작품을 평하는 기준을 선정할까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 문서는 감평이다. 허니 관점도 〈마르티에〉에서 드러난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질의 그리고 본문 감상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 감평은 〈마르티에〉를 십여 번도 더 읽어본 상태에서 쓰는 것이며 그렇기에 〈마르티에〉에 등장한 사건 외의 전체 사건을 다루지는 않겠다. 제3장까지 연재되어 있지만 작중 인물인 마르티에는 아직까진 수동적이고 혼란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마르티에〉는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의문을 자아내는 전개다. 평자에게 있어 〈마르티에〉의 한 편 한 편은 피스를 맞추는 것과 같다. 작가 비상하는 독수리가 퍼즐을 완성해주기만을 지켜보아야 하는 소설이다.

본 감평의 서술은 편의상 낮춤말을 쓰겠다.

덧으로 감평의 질과는 별개로 양은 작가에 대한 평자의 신뢰와 호감으로 해석해도 된다.

 

〈마르티에〉 Prologue

① Judgement of competence

 

세상은 나에게 타락을 안겨주고

나 또한 그 타락을 받아들였지만,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처절하고 참혹하다.

 

폭풍 속을 떠도는 외로운 조각배처럼

육체는 '악마'라는 가죽을 뒤집어쓴 채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힘겹게 뛰어오르는 심장,

역겨운 피를 토해내는 심장,

퇴폐적 쾌락에 취해버린 심장!

 

코르크 마개는 튀어 오르고,

가슴 속에 피어있는 심장은

눈보라처럼 움츠러들고 쓰라려온다.

 

-〈마르티에〉 프롤로그에서 발췌

 

프롤로그의 첫 시작은 시 한 편으로부터 시작한다. 1절과 2절은 시적 화자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3절과 4절은 그에 대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 한 편을 프롤로그로 내세웠어도 손색이 없다. 시가 프롤로그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를 집약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 2절에서 나온 [타락]과 [악마]라는 것을 통해 시적 화자가 어떠한 죄를 지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사냥꾼]이란 존재에게 추격 받고 있는 입장이란 걸 알 수 있다. [타락]을 한 대가가 [죽음]이라고 서술하는 것을 보면 시적 화자는 인간으로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을 것이다.

3절에서 시적 화자는 심장에 대해 탐미적인 묘사를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시적 화자는 본인의 입장에 대해서 매우 만족스러운 것일까? 일반적으로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흥분했을 때와 불안해졌을 때일 것이다. 4절의 마지막 구절이 '움츠러들고 쓰라려온다'는 것으로 보아 시적 화자는 스스로의 입장을 겁내 움츠러들고 아파서 쓰라린 것일 테다.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에너지가 넘쳐나 역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음울하고 처질 수밖에 없는 느낌을 주는 시였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지문의 첫 시작은 1797년이라는 연도 표기로 시작된다. 작품 설명에서도 18세기 유럽이라고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평자는 유럽은커녕 모국의 역사도 잘 모른다. (자랑이 아니며 능력 부족이라는 점을 밝힌다) 해서 1797년이란 명제가 가져다준 이미지는 낡고 후졌을 시대에 불과했다.

배경은 허름한 술집으로 홀로 와인을 마시는 마르티에란 인물에게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의 앞 문장만 보아도 마르티에란 인물이 특수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의 독자가 읽기에 와인이란 상류층이 즐기는 호사품 같은 인상이 깊다. 헌데 허름한 술집에서 싸구려라 할지라도 와인을 즐기는 인물이라니,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마르티에라는 이 캐릭터는 남의 눈을 피해야 할 사정인 탓에 허름한 술집에 들어간 것일 테고 남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어 혼자인 것이며 하지만 취향만은 고급인지라 와인을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러 번 읽은 평자의 해석이며 일독을 시작하는 독자에게서는 바라기 힘든 감상이다)

이어서 본문에서는 그가 약 2년 전부터 악마사냥꾼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해왔다고 말한다. 악마사냥꾼. 단순히 범죄자를 사냥하는 이들이었다면 현상금사냥꾼이라 부를 테지 악마사냥꾼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악마를 사냥하기에 악마사냥꾼이란 이름이 붙었을 그들, 그렇다면 그들을 피해 도망하고 있는 이 마르티에란 사내는 악마라는 뜻인가?

마르티에는 그를 추격하는 악마사냥꾼에 대해 생각을 잇는다. 묘한 것은 악마로 추정되는 마르티에가 묘사하는 악마사냥꾼 모르킨 도건이다.

일급 사냥꾼들 가운데서도 가장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소문났다는 모르킨 도건. 상대의 몸을 무참히 짓밟고 싶어 하는, 철저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어 하는,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존재라는 묘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라는 것에 가깝다. 단순히 쫓기는 자의 울분으로 마르티에는 모르킨 도건의 악담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렇게 와인으로 얼어붙은 심장을 달랜 마르티에는 또 다시 도망하기 위해 술집을 나온다. 도망자의 주 활동시간이 으레 밤이고 또 도주로가 개방 된 대로가 아니듯 음습한 골목길로 빠져든 마르티에에게 새로운 인물들이 접근한다.

그 야심한 시각, 스무 명 정도 되는 무리가 결코 좋은 의도로 마르티에 앞에 나타난 것은 아닐 테였다. 그들의 초록빛 광채를 뿜어내는 눈동자를 보고 마르티에는 그들이 악마화인간이라 단정 짓는다.

〈마르티에〉에서 악마화인간이란 악마사냥꾼이 사냥하는 먹잇감이며 악마의 피를 마시거나 악마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 악마의 능력이 생긴 존재이다. 외견은 인간과 다를 바 없으나 도덕성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본문의 묘사로 보아 초자연적인 능력을 쓰며 지성이 존재하나 양심이 없는 것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마르티에에게 접근한 이유는 마르티에를 한 패거리로 넣기 위해서였다. 마르티에란 사내의 외관은 남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것인지 악마화인간 사내는 마르티에에게 반했다면서 동행을 청한다. 또한 악마화인간끼리는 육체적 관계로 서로의 능력을 전수할 수 있었다.

정황을 정리해보자. 악마화인간 무리는 마르티에의 외관에 매혹되었고 또 능력을 넘겨받으려면 육체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스무 명의 무리는 마르티에를 덮치기 위해 습격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위기의 마르티에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르티에.

같은 동성에게서 한 침대 쓰자는 말을 들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마르티에는 영역 침해를 받은 짐승마냥 으르렁거리며 경고한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안 그러면 진짜로……. 죽여 버릴 테니까."

 

경고라는 것은 대화로 타협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이 어겨질 경우를 다짐하는 것이다. 죽인다는 발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마르티에는 가장 쉬운 수단으로 살인을 내세운 것일까 아니면 도망치거나 악마화인간을 무력화시키기에 역부족이기에 자기보호를 위해 살인을 결심한 것일까.

악마화인간 무리는 그런 마르티에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접근한다. 결국 마르티에의 눈동자가 와인빛으로 물들고 사투는 시작된다. 앞서 악마화인간 무리의 눈동자도 초록빛 광채를 뿜어냈다는 것으로 보아 악마화인간의 눈은 보통 인간과 달리 자체 발광함을 알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드러난 마르티에라는 인물의 성격은 뚜렷하지 않다. 다만 그가 처한 입장과 그로 인해 얼마나 그가 피로해하고 있는지만 보여줄 뿐이다. 마르티에가 필요하다면 살인도 할 수 있는 결단력과 수적 열세에도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강함을 가졌다는 것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를 더하자면 그를 인간 이하로 보는 모르킨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마르티에는 우울해했다. 상처 입은 마음이란 묘사는 그가 앞서 묘사 된 도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타 악마화인간들과 달리 섬세한 존재라고 어필하는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악마화인간으로의 변이 방법이다. 본문에 제시 된 그 방법은 [악마의 피를 마시거나, 그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악마화인간이 아닌 악마라 적힌 것은 순수한 악마와 만들어진 악마화인간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르티에가 그토록 무기력하게 밤의 주점, 골목길 등을 돌아다니는 것은, 프롤로그의 첫 시구인 [세상은 나에게 타락을 안겨주고]였기 때문이 아닐까.

 

쓸데없는 족집게

붉은 눈의 악마라는 마르티에의 별명은 혼자 떠돌던 레미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마르티에보다 늦게 악마화인간이 되었을 로베르토도 알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마르티에를 습격한 악마화인간들은 와인빛 눈동자를 보고도 그 붉은 눈의 악마를 떠올리지 못한 것인가? 알면서도 수적 우세를 믿고 덤벼든 것인가? 붉은 눈의 악마를 몰랐던 것인가?

작품 후반에 가면 붉은 눈이 되었을 때 마르티에의 능력은 여타 악마화인간과는 달리 매우 우월하게 표현된다. 헌데 카르엘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능력을 봉인당하기 전인 지금의 마르티에는 후반에서 폭주로 드러내는 능력보다 약해 보인다. 그것은 방심해서인가? 술에 취해서인가? 며칠 전에 만났다던 모르킨 덕분에 피곤해서인가? 역시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인가? 전력을 다할 수 없는 망설임이 있기 때문이었는가?

 

〈마르티에〉 제1장 어둠의 추격자

① Judgement of competence

(시 해석은 제외한다)

춥고 외로우며 위스키 한 잔이 절절하게 간절할 겨울로부터 제1장은 시작한다. 악마화인간 무리와의 사투 끝에 승리를 거며 쥐었음에도 부상을 입은 마르티에에게는 승리자의 포상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돌바닥 위에 쓰러져 저가 죽어가는 상황임에도 마르티에가 떠올리는 것은 살인에 대한 비관뿐이다. 그가 해치운 목숨과 또 스러져가는 그의 목숨. 마르티에는 죽음에 이어 지옥을 떠올린다. 살인이란 죄를 지었기에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사고관은 그가 기독교의 교리를 믿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종교에 대해서는 깊게 얘기하지 않겠다. 평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나 무교다. 살인을 했다 한들 개인이 개인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피해를 준 것은 맞지만 초월자가 지켜만 보다가 가해자의 행실이 나쁘다고 체크하고 지옥행을 결정하는 것은 코웃음만 나온다. 약육강식이 현실의 정의기에 현시창이란 말이 생긴 걸 거다. 고로 종교관이 나오면 이해는 하되 공감은 못하며 읽는다.

〈마르티에〉에서도 기독교적인 요소를 전체적인 소재로 삼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굳이 신적 존재를 들지 않아도 인간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프고 죄스러운 걸 본능적으로 안다. (성선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는 병에 걸린 것 혹은 위험한 장애인이므로 예외로 친다)

마르티에는 성년이 되기까지 정립 된 인간사회 관념에 따라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유황불로 이미지를 대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라 본다. (죄책감=고통=유황불=두려움) 지옥이 두려워서 살인이 죄스러운 건 아니잖는가.

결국 의식을 잃은 마르티에는 꿈속에서 모르킨과 만난다.

악마화인간이기에 재고할 가치도 없이 악이라 단정 짓고 처단하려는 모르킨.

죽이려 들지 않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마르티에.

평자의 입장에서는 모르킨이란 캐릭터가 우스우며 추잡하고 어리석게 여겨졌다. 그야 말로 모르킨은 인간의 표준상을 보여준다. 인간은 잘잘못을 가리는 걸 좋아한다.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고 선이 되어서 악이 멸망하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내재화 되어있는 폭력성을 보기 좋게 포장한다. 골치 아픈 진실보다는 겉멋 든 거짓을 좋아한다. 고래로 인간은 선악의 정의에 대해 고심해 왔다. 완전한 악은 분명 처단되어야 대부분이 살아가는데 편할 것이다. 평자는 철학에 대한 견문도 낮으므로 실용적인 악에 대해서만 논하겠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불필요하고 방해되는 것이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악이다.

〈마르티에〉라는 세계관에서 악마화인간이 앞서 마르티에를 습격했던 무리처럼 폭력적이고 속물적(자기 이익)인 게 대부분이라면 저 시대의 인간들은 악마화인간을 악이라고 정의 내렸을 수밖에 없다. 그 태생이 같은 씨앗에서 시작하고 그 습성이 인간과 똑같다 한들 보통 인간은 제아무리 흥분해도 단 한 명을 죽이기 힘든데 반해 악마화인간은 강화 된 육체로 성인 남자 하나 따위 손쉽게 찢어발겼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악마화인간을 놓고 악이라 단정 짓는 모르킨 외 악마사냥꾼의 태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마르티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제 입장만 고수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에 아랑곳하지 않는 성직자와 같냐면 그건 아니다. 본문에서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오직 사냥꾼이라는, 먹잇감을 쫓는 강자의 입장에서 제 잇속을 차리기 위해 진흙탕 속을 허우적대는 것뿐이다. 해서 평자는 이 악마사냥꾼들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르티에는 악마사냥꾼이라고 해도 보면 도망치려고 하지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 악마사냥꾼은 마르티에를 보면 사냥하려고 들다가 되려 된통 당해서 이를 갈고 더 덤벼든다. 이것을 놓고 봤을 때 마르티에가 선이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실용적인 악의 정의에 반대되는 개념이 실용적인 선일 텐데.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 선이다.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의 기준은 먹이사슬=생존으로 두겠다, 필요도 하면서 의존도를 떨쳐버려야 할 것은 악으로 본다, 선악과 좋고 싫음은 다른 문제다)

마르티에라는 인물은 작중 인간세계에서 전혀 필요하지도 않고 도움 되는 인물도 아니다. 단 한 명의 인간도 그가 살아있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살아 돌아다님으로써 본의 아니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니 실용적인 악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마르티에〉는 악과 중립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르티에〉는 선악을 구별하는 작품이 아니기에 악이란 건 중요하진 않다. 마르티에가 피해자로서 가해자가 된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작품을 보는 것일 거다. 얘기가 너무 작품 외적으로 나왔으니 다시 내적으로 돌아가자.

모르킨의 환영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 나타나 마르티에를 감싸 안으며 입맞춤을 한다. 그러며 마르티에의 죽음을 바라는 의사를 밝힌다. 이 여인의 등장 의의는 작품 후반에서 밝혀지겠지만 초반부만 봤을 때는 마르티에가 얼마나 죄 많은 남자인가를 알 수 있다. 악마사냥꾼이야 일방적으로 살해하려 든 거라 쳐도 눈 먼 여인이 꿈속에서까지 나타나 죽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마르티에의 내면에 드러내지 못한 죄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보통 양쪽 다 잘못이 있어서다.

그 직후 잠에서 깬 마르티에는 그를 구해준 카르엘과 대면하게 된다. 이름을 물어보는 카르엘에게 마르티에는 고민하다 가명 프리베르를 알려준다. 그 와중에 마르티에가 2년 전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다는 정보가 주어지는데, 그렇다면 마르티에의 불안정한 생활도 2년 정도 유지되어 왔단 소리다.

어디 하나 마음 두고 정착할 데 없이 떠돌이 생활한다는 게 쉽게 볼 일은 아니다. 더욱이 쫓기고 있는 입장이라면 잡히면 죽는 것 외에 답이 없다면 긴박감과 증오와 울분과 분노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고로 마르티에가 상식적인 정신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지금 그의 상태는 무기력증과 우울증과 울화가 번갈아 나타날 것이라 본다.

 

감상을 받은 곳은 아니었지만 감평인 관계로 하나를 얘기하고 넘어가자. 카르엘과 마르티에의 대화에서 영혼과 육체에 관련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복선이다.

초반에 읽었을 때 카르엘 '신부'에 대한 평자의 감상은 수상쩍긴 해도 영적인 신념(=믿음)을 가진 존재(=신부)였다. 수차례 읽은 지금은 음흉하고 영악하며 간교한 놈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서 "이제부터 내가 네게 해코지를 할 거야."라고 돌려 말하는 재주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희생자 앞에서 희생자가 알아듣지 못할 표현으로 괴롭힐 거라고 말하고 희생자가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다니, 앞서 육체적 관계 좀 맺자고 덤벼든 악마화인간이나 돈 좀 벌고 명성도 날려보고 원한도 풀자고 덤벼드는 악마사냥꾼보다 더 악마 같다.

 

그믐달이라도 떴는지 어둠이 그윽한 밤, 카르엘은 충동적으로 잠 든 마르티에를 깨워 바닷가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카르엘이 했던 몇몇 말이 인상 깊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자네가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뿐이지."

"내 말 뜻을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네."

 

처음 〈마르티에〉를 보았을 때는 이 대사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같다. (거의 2년 전 일이다) 지금에 와서 이 문장이 눈에 틘 것은 평자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그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좋다, 특별한 추억 쌓기를 안 하더라도 한 장소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 의의가 있다. 또한 그 사이에 무슨 얘기를 나누던 중요하겠는가. 물론 인생에 대해 깊이 논하는 것도 재미있고 서로의 관점 차를 깨닫고 상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도 즐겁지만 서로 이해 못할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그저 솔직한 심정을 그에게만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 꽤나 행복해진다. 상대가 알건 모르건 본인이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해서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겠지만 카르엘은 마르티에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한 사람으로서인지 장난감으로서인지는 애매모호하지만 말이다.

이후 카르엘은 마르티에에게 살인 경험을 묻는다. 답하지 아니한 마르티에에게 카르엘은 저의 살인 경험을 고해한다. 저가 받지 못한 사랑을 동생이 받는 것을 보고 어느 날 충동적으로 동생의 얼굴에 베개를 들이댔다는 그. 그럼에도 죄책감은 없었다고 카르엘은 무덤덤히 고백한다.

이 장면을 처음 읽었을 때 평자는 카르엘을 사이코패스 정도로 여겼다. 그리고 마르티에의 불운에 한탄했다. 어찌 니 놈은 만나는 놈마다 이러느냐, 지난번에는 무뢰배인 악마화인간이더니 이번엔 사이코패스 신부더냐, 하고 혀를 찼다. 지금의 감상은 〈데스노트〉의 주인공 라이토의 명대사 "계획대로(썩소)"가 생각난다. 모든 것은 카르엘, 이 캐릭터의 계획대로였을 뿐이다.

이어서 카르엘은 마르티에에게 호감을 표한다. 이것 또한 처음 읽었을 때와 지금 읽었을 때의 감상이 다르다. 처음에는 카르엘이 마르티에에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외톨이 느낌에 동질감을 느껴서 살인 고백도 하고 붙어 다니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人이라는 글자가 두 사람이 기대어 있는 것이라 하듯 카르엘 역시 사람냄새가 그리워 마르티에와 함께 하길 바란 것이라 느낀 것이다. 지금은 카르엘이 마르티에와 통성명을 하기 이전부터 쭉 마르티에를 주시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르엘은 마르티에를 강렬한 분위기가 있으며 매우 정렬적이고 주변에 오해를 받아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관섭 받는 것도 싫어하며 혼자 있는 것을 추구한다고 표현한다. 너무나 매력적이면서도 너무나 냉소적이며 상당히 퇴폐적이기까지 하다고 말이다.

여태까지 작품의 전개 상 마르티에에게서 평자는 다쳐서 병상 중인 A 정도의 존재감밖에 느끼지 못했다. 인상 깊은 캐릭터(=성격)보다는 쫓길 수밖에 없는 그의 입장에 대해서만 알 수 있었다. 허나 카르엘이 그동안 드러나지 못했던 마르티에란 캐릭터를 깨끗하게 정리해준다. 납득은 할 수 없어도 마르티에란 캐릭터의 기반공사라고 읽었다. 조금 신기했던 건 그 광대한 칭찬에 마르티에가 긍정했다는 거다. 미묘한 부분에서 마르티에의 캐릭터를 보았다. 어쩌면 마르티에는 그렇다고 대답하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면서 또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닌 카르엘의 평가에 마르티에는 완전 부인하지 못해 긍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좀 귀엽기도 한 것 같고 진짜 본인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 뒤 카르엘은 마르티에에게 동행할 것을 청한다. 마르티에만 좋다면 쭉 같이 지내도 좋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르티에는 그가 악마화인간이라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추격 받을지 모를 몸인 그는 스스로의 안위와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떠나야했다. 해서 마르티에는 몸이 낫는 대로 떠날 거라고 말하고 카르엘은 "그렇다면 할 수 없군."이라고 포기한 듯이 답하며 다음 계획을 진행한다.

처음에만 해도 저 대사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라고 생각했건만 이제 보니 이때가 마르티에의 갈림길이었지 않나 싶다. 만약 마르티에가 카르엘과의 동거를 허락했다면 곤충 표본처럼 박제 꼴을 당하지도 악기로 농락당하지도 않았을까 한다. 잠깐의 동행 동안 악마사냥꾼의 추적에서 마르티에를 도와주었듯 카르엘은 본심을 감추고 호의적인 신부 역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뭐, 니가 내 제안을 거절했으니 나도 널 멋대로 하겠어─라는 느낌의 그의 행동은 어린 동생을 베개로 짓눌러 죽였다는 그때 시절에서부터 하나도 크지 않은 것 같긴 하다. 난 니가 거절할 줄 알았어, 그러니 다음 계획을 진행시켜볼까─라는 심리였다면 사악하기 짝이 없는 거고.

카르엘이란 캐릭터의 소유욕이나 독점욕이 살짝 엿보였던 것은 "하지만 그 누구도 자네를 위로해주거나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을 거야."라는 대사에서였다. 이것은 마르티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설명할 때 끼어 있던 대사인데, 미묘하게 저 성질이 마르티에의 것인 것 마냥 말하고 있다. 마르티에의 성격을 빌미 삼아 카르엘 그의 본심이 진실인 것처럼 말하는 교묘한 화법이다. 카르엘의 말처럼 마르티에는 제3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 해도 살아가는데 있어 연이라는 것을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거야]라는 그 말은 저주와 같다. 그렇게 실현시키고 말겠다는 카르엘의 광기 어린 집착이 살짝 얼굴을 들어낸 게 아닐까.

마르티에에게서 동거를 거부 받은 카르엘은 그를 데리고 어느 수도원으로 향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마르티에는 악마화인간인 걸 감추고 있어 제대로 화도 낼 수 없고 이가 갈릴 뿐이다. 그는 한없이 과민해진 상태에서도 카르엘이 같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지금 와서 보니 참 엄마 마음 갖게 만드는 마르티에다. 카르엘이 어떤 꿍꿍이인지도 모르고 그런단 말인가. 물론 작중에서 카르엘은 꼬리를 드러내지 않은 채 행동했으므로 속임 대상이었던 마르티에로서는 별 다른 이상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평자는 수도원에서 어떻게든 마르티에의 정체가 들통 나 그와 카르엘이 곤혹을 겪겠구나 하고 예상했던 배경이동이기도 했다.

밤잠을 설치던 마르티에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한 미중년을 보았던 시간대에 포박되어 구타당하고 쓰러졌다. 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것은 아니나 다를까 수도원의 수도사들이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범인으로 마르티에가 지목당한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이 마르티에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며 증언한 탓에 쇠사슬에 묶인 마르티에게 변명할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인권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 쏟아지는 폭력과 폭언들.

 

악마…….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버린 그 한 가지의 개념 앞에서 마르티에는 억울함보다는 심한 자괴감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앞서 프롤로그에서 평자는 본문에 명시 된 악마화인간과 마르티에가 똑같은 종자인가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 문장 하나에서 마르티에는 비록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을지라도 악마화'인간'이라고 여겼다. 살인을 하고 인육을 먹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으로 인간과 짐승이 구별되는 법이다.

갖은 고문 속에서 카르엘이 마르티에와의 면담을 요청한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어버린 것을 원망하는 마르티에와 아무것도 도와줄 수도 없고 그가 악마가 아닐 거라 믿을 수도 없다고 담담히 정황을 읊어주는 카르엘.

처음엔 평자는 카르엘의 입장을 이해했었다. 평자라도 우연히 구했던 방랑자가 악마로 낙인 찍혀 고문실로 끌려갔다면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악마면 무자비한 구타 끝에 화형당하는 것이 자명한 시대관 속에서 어찌 몸 사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해서 무덤덤하게 말하는 카르엘이 조금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자기보호 본능에 씁쓸해졌을 뿐이다.

수도원이란 걸 알면서도 무사하기를 바란 마르티에의 안일한 마음을 제 무덤 자초한 것이라 여겼다. 지금도 마르티에에 대한 그런 시선은 바뀌지 않았지만 카르엘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썩소).

수갑과 족쇄에 묶여서 처절히 살려달라고 외치는 마르티에. 구걸도 해보고 거짓시인도 해보고 이내 살인을 해서라도 살기를 갈구한다. 그의 처지에서는 살아있어도 좋을 것이 없건만 그렇게 쉽게 삶을 놓지 않는 것은 생존권을 타의에 의해 박탈당한 피해자의 보상심리라 본다. 또한 그렇게 죽으라 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보복심리일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이겠지만 감상이라 한 글자 더 적자면 젊은 수도사가 마르티에의 은밀한 부위를 매만지면서 거기부터 베겠다고 할 때는 이 자가 수도사가 맞기는 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저 시대에 수도사들이 악에 대한 폭력은 관용이 없다 치더라도 하필 성적 수치심이 들 만한 부위부터 얘기를 꺼내든 것은 자신보다 약한 것을 짓밟고 싶어 하는 인간의 더러운 본성이 잘 드러난 것이라 본다. 또한 이 장면을 통해서 마르티에가 참 주변 남자들이 짓밟고 싶어 하는 외모인가 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마르티에는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나서야 악마의 힘을 발휘하고자 했다. 헌데 어찌 된 일인지 그를 이 개 같은 운명으로 밀어 넣은 악마의 능력은 눈 뜨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무력하게 눈, 코, 귀, 거기 등을 베여질 처지에 놓였다. 그런 마르티에를 구한 것은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카르엘 '신부'였다.

악마화인간이 되어서 힘들어요~라는 것밖에 안 보이는 마르티에와 달리 카르엘이란 캐릭터는 심리면으로나 성격면으로나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무관심한 부모가 유독 동생에게 애정을 베풀었을 때 그 동생을 없애버리고 싶은 충동심리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있었던 일이다. 카르엘은 그 충동심리에 따라 결국 살인해낸 쪽에 들뿐이었다. 그런 과거와 가정을 가지고 자란 그가 얼마나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났을까. 무덤덤한 그의 감정 표현, 대사 등은 그가 사이코패스 마냥 타인에게 공감하는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해서 카르엘이 증언자를 죽이고 수도사들을 고문실에 가두어 불을 질러 모두 태워 죽였을 때도 그러려니 하면서 한편으론 그의 악행에 평자의 내면에도 내재된 폭력성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르티에는 그런 카르엘을 보고 오히려 분노한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고. 그것은 살해당한 수도사들이 가여웠기보다는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반발심이었을 것이다. 여러 모로 현재까지 보인 마르티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죽기는 싫어서 죽여야 하고 죽이기 싫어서 피해 도망 다니고. 쫓겨야 하는 이유가 악마화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인데 그렇게 만든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런 존재가 되어서 살인하고 다니는 본인의 천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본문에서 마르티에는 아직 본인의 입장에 대해 명확히 선 것조차 없다. 이 혼돈기를 그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가 앞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도주 중의 여관에서 머물며 카르엘이 "믿고 의지해왔던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기분을."하고 말했던 것 역시 예고였다. 다시 읽으니 카르엘이 참 친절했고 일러주지 않으면 못 뵈기는 성격이라 느꼈다. 카르엘의 묘사 곳곳에는 '충동적으로'가 참 많이 쓰인다. 담백한 어조에 비해 그 근원은 충동에 의해서라니 아이러니하다.

 

여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악마사냥꾼이 쳐들어왔다. 앞서 과거회상 속에서만 나왔던 모르킨 도건. 〈마르티에〉를 보면 정말 마르티에를 찬양하는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심지어 이 냉혹잔인사악하다는 악마사냥꾼도 마르티에를 보며 "그 순수한 얼굴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켜왔던 거냐"와 "이렇게 아름다운 육체 속에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악마가 들어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할 테니까"라는 대사를 던져준다. 또 다시 이 문장을 읽어봐도 아이러니하다. 예쁜 게 죄인가. 모르킨이 주장하는 것은 악마화인간이니까 죄라는 것이겠지만. 모르킨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크거나 사디즘이 큰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모르킨만 이상 성욕적인 성향을 가졌다기에는 〈마르티에〉에 나오는 조연 캐릭터들이 거의 다 그렇다. 성격과 사연은 다 다양각색한데 결론은 마르티에, 널 소유하고 싶어로 끝나니 결국 아름다움이 죄인가 보다.

모르킨은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붙잡힌 마르티에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그런 마르티에를 구한 것은 역시나 이번에도 카르엘이었다. 무려 불붙은 술병 투척. 슬슬 그가 신부를 하기 이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수도원 때야 급박했기 때문에 살인방화를 저질렀더라도 악마사냥꾼들에게까지 정밀한 투척 실력을 보여주는 저 냉정한 판단력과 굳건한 실행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마르티에를 데리고 피신한 카르엘이 숨어든 곳은 높다란 탑 속이었다. 여기서 마르티에와 카르엘은 또 한 차례 실랑이를 벌인다. 혼자서 움직이겠다는 마르티에와 같이 가겠다는 카르엘. 그 와중 마르티에는 고통을 호소하며 허리를 수그리기까지 한다. 그것을 본 카르엘은 혼자서 움직이긴 무리일 거라며 또 다시 간접적인 동행을 청한다. 허나 부상에 넋이 팔린 마르티에는 끝까지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않았다.

악마사냥꾼들이 바로 뒤에서 추격하고 있다는 사실과 전에 입은 상처가 아직도 났지 않았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운 마르티에 앞에 또 다시 열댓 명의 그림자가 늘어선다. 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초록빛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심장이 철렁한 마르티에는 과거를 회상한다. 옷이 모두 벗겨지고 온 몸에 저들의 혀가 닿던 날. 적나라한 묘사에 처음 평자는 저들이 누구인지 몰랐는데 세 번째 읽었을 때야 프롤로그에 나왔던 악마화인간무리라는 걸 알았다. 그때 그들이 스무 명 정도였던 걸 떠올리면 마르티에의 반격으로 무리의 반을 잃었나 보다. 프롤로그에선 마르티에가 무저항에 가까울 정도로 사로잡혀 농락당했다는 얘기가 없었기에 떠올리지 못하고 읽었던 것이라 본다.

앞에는 악마화인간, 뒤에는 악마사냥꾼.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르티에는 카르엘에게 피하라고 먼저 말한다. 〈마르티에〉에서는 마르티에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본문의 사건보다는 그가 가끔 하는 말에 집중해야 한다. 사건에는 마르티에가 휘둘리고만 있고 그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도 아니기에 제대로 된 성격이 다 드러났다고 할 수 없다. 무력보다는 언어가 먼저인 마르티에. 위급 시에는 동행자부터 떨치려는 마르티에. 그의 근본은 그리 惡한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게 보이는 부분이다.

여태까지 카르엘이 마르티에의 기사 역을 맡아오긴 했지만 그 운도 여기까지였던 건지 결국 카르엘은 악마화인간에 의해 탑 밖으로 떠밀려지고 만다. 혼자 남은 마르티에를 또 다시 샌드위치하고는 악마화인간들이 게걸스럽게 떠든다. 그네들이 승리자라도 된 마냥 품에 잡힌 마르티에를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 하는 광기에 떨었다. 전번에도 그랬다고 큰 코 다친 것으로 아는데 한 번 겪은 것만으로는 부족한 무뇌아들인가 보다. 악마화인간이 어떤 기준으로 선발되는 건지는 몰라도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적 능력을 가지게 됨에도 저런 떠돌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멍청한 작자들이란 캐릭터가 결정되었지만 말이다.

한 번 깔렸던 상대들에게 또 다시 깔려버린 마르티에. 이번에도 붉은 눈의 능력을 발휘할 것인가 기대해보지만 부상이 심한 것인지 맥없이 당한다. 그런 그를 위기에서 구한 것은 역시나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티에를 추격하던 악마사냥꾼들이었다. 악마사냥꾼에게 있어서 악마화인간은 전부 다 사냥해야 할 사나운 들짐승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행한다. 총 소리가 잇달아 울려 퍼지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혼비백산한 악마화인간들은 여전히 제 먹잇감인 마르티에를 놓지 않으려다가 대신 총받이해주며 장렬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악마화인간들의 도움을 받으며 필사적으로 난전 속을 빠져나온 마르티에 앞에 또 다시 선 이는 탑에서 떨어져 죽은 줄 알았던 카르엘이었다. 놀란 마르티에의 물음에 카르엘은 그의 전매특허 혹은 18번인 "글쎄"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뭉뚱그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그의 입에서 그가 가졌던 목적이 밝혀졌다. 카르엘이 본명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호소할 때 평자는 그를 살짝 칭찬해주었다. 카르엘이란 캐릭터 상 참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브를 꼬셔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과 같이 탐욕스럽고 영악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다.

카르엘은 낫지 않는 부상과 수도원에서의 누명, 악마사냥꾼과의 마주침이 모두 제가 꾸민 것이라고 밝힌다. 또한 그 이유가 오직 마르티에를 갖기 위함이었으며 보다 마르티에가 자신의 이상에 적합한 존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더란다.

감상면에서 보자면 평자는 슬펐다. 무덤덤한 카르엘 '신부'를 좋아했다. 살인을 해도 그것이 죄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를 동정했다. 그가 마르티에를 만나 아직 적응 못해 혼란스러운 마르티에가 안정화 될 때까지 지켜주면서 카르엘 또한 마르티에가 간직하고 있는 인간성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길 바랐다. 허나 스토리는 카르엘이 흑막이었다로 밝혀져 버렸고 그 이후 카르엘을 보는 평자의 시선은 악마사냥꾼 일행과 다를 바 없어졌다. 개인적인 평이겠지만 악마와 가까운 카르엘보다는 카르엘 신부였을 때의 캐릭터가 더 동정이 가고 살아있는 인물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 카르엘은 마르티에에게 미끼도 제시한다. 마르티에를 악마화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존재에 대한 단서를 주겠다고, 단 육체를 내놓는다는 조건 하에. 그것이 궁금하다 손치더라도 굳이 육체를 포기할 마르티에가 아니다. 그는 육체뿐만이 아니라 인생이 농락당하는 와중에도 제 목숨만은 놓지 않는다. 강인한 생존본능? 아니다. 처절한 자아의 외침이라 본다.

눈앞에서 카르엘이 사라지는 대신 악마사냥꾼들이 나타나 마르티에를 짓뭉개고 타격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런치에 마르티에는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해버린다.

마르티에를 상대할 때 악마사냥꾼들은, 특히 모르킨은 상당히 자극적인 대사를 내뱉는다. 같은 인간이 인간에게 내뱉었다면 상당히 모욕적일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마르티에가 어느 정도 도덕성을 가진 존재인 걸 보면 다른 악마화인간도 도덕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집단 심리에 휘말려서 악행을 벌일 뿐이고 머리가 없어서 현명하게 행복해지는 법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것 같다. 악마화인간이 결국 덩치만 큰 어린애와 같다는 것을 사냥하는 악마사냥꾼들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갱생시키기보다는 목숨 값을 챙겼다는 것에는 비난할 수 없다. 다 먹고 살고자 하는 짓인데 그것을 나쁘다 할 순 없다. 다만 소를 잡을 때도 백정들은 신성히 예를 올리고 고통스럽지 않게 단번에 죽여준다고 한다. 그들의 피와 살이 될 소를 모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악마사냥꾼들에게서 그러한 면모가 보이지 않는 것이 참 씁쓸하고 그들 캐릭터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핀에게 짓밟혀 마르티에는 그 와중에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그는 그 삶의 의의를 복수에 초점 둔 듯 그를 악마화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존재에 대해 맹렬한 분노를 새삼 느낀다. 그것이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그의 눈동자를 붉게 물들였다.

그때부터 전열은 순식간에 반전이 되었다. 그토록 감추었던 혹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던 붉은 눈의 능력은 모르핀과 키아라, 그리핀 같은 악마사냥꾼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살고 싶다고 염원하고 외치는 자가 뒤바뀌었다. 쫓고 쫓기는 입장이 뒤집어졌다. 사냥꾼과 먹잇감의 역할은 글쎄, 마르티에는 어떤 이익이 있어 사냥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본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방어행동뿐. 마르티에가 공격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사냥꾼까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마르티에는 결국 그를 해하려던 무리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그곳을 떠나간다. 이번의 제1장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건 마르티에가 무엇 때문에 이 진탕 속을 살아가기로 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프롤로그부터 제1장의 막바지까지 마르티에는 쫓기는 입장에 대해 수동적으로 굴었지만 막바지에서 쫓기며 살더라도 뭔가를 하겠다는 결심을 내보인다.

 

쓸데없는 족집게

카르엘이 나중에 스스로를 신부라 말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제1장 1편의 말미에서 [자신을 카르엘 신부라고 소개한 남자는]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자신을 카르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이라고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마르티에〉 Epilogue

〈마르티에〉의 연재 분은 아직 제2장과 제3장이 남아 있다. 특히 제2장에는 애정했던 꼬꼬마 레미가 나오는데 비상하는 독수리님의 시간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제1장밖에 감평을 적을 수가 없다.

감평이라고는 했지만 비상하는 독수리님이 평보다는 감상을 더 원하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줄거리 요약 같기는 해도 한 문장 한 문장 한 편 한 편 읽고 또 읽어서 느끼는 감상이 첨가되어 있다.

중간에 번외를 쓰고 싶은 마음에 딴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간 내에 제2장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티에〉는 좋아하는 독자는 무척이나 호평하는 글이다. 그에 비해 작가에게 흑심이 있어 이 글을 읽은 평자는 고개가 갸우뚱. 분명 수차례 읽어본 봐 구성이 허술하게 짜인 소설은 아니란 걸 안다. 심리면도 탄탄히 깔려가고 있음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몰입할 수 있는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그것을 마지막에 꼭꼭 감쳐두었다고 했다. 얼마나 거대한 것이기에 제3장에서도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일까 싶다. 그것이 주는 감수성이 뭔지 궁금해서 완결을 기다리는 소설이라는 건 거짓 없는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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