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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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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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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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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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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3화

DUMMY

사회라는 건 참으로 놀랍고 대단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치 기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제도와 그 제도를 지탱하는 각종 직업이 맞물려 버튼 하나만 삑 누르면 그 뒤로 수천, 수만 가지의 일이 동작하기 시작했다.

하물며 고도의 기술력으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돼있는 현대사회에서 그 규모는 더욱 거대했다.

내가 피운 작은 불씨는 번지고 번져 이젠 전 세계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아이고, 피 말라. 어쩌다 이런 일이 이렇게 됐을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새벽 일찍부터 기상한 나는 피로를 호소하며 몸단장을 깨끗이 했다.


“아는 게 힘이라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그러게, 차라리 몰랐으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시간인데.”


형은 내가 한참을 망치던 가르마를 손에 슥슥 침을 발라 한 번에 잡아주며 말했다.


“그럼 애들 잘 부탁해.”

“다들 한 가닥씩 하는데 내가 할 게 있을까?”


나는 형에게 길드를 맡겨놓고 소파에 반쯤 누워 졸고 있는 아린이를 깨웠다.


“슬슬 가자. 차에서 자.”

“음⋯? 응⋯.”


S급 헌터도 졸음 앞에서는 꼼짝 못 했다.

우린 며칠 내내 꼭두새벽부터 꼭두새벽까지, 계속 이어지는 회의 릴레이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온다!”


눈을 감은 채 내 어깨에 의지해 비틀비틀 걷는 아린이와 길드 밖으로 나서자 수십 명의 기자가 우릴 둘러싸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처음에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땐 막 심장이 벌렁이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박준호 헌터님! 현재 어떤 대응책이 논의 중인지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결정된 사안이 없습니다.”

“군과의 협력이 논의 중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헌터관리국에 의해 불법길드로 지정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범죄자 집단이 우기는 소리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단답으로 휙휙 넘기며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윤아린 헌터님과의 열애설에 대해선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예?”


그러던 중 들려온 요상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돌려 어디서 나온 기자인지 확인했다.

데일리헌터라는 헌터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였는데 세상이 이 지경인 와중에도 저런 질문이나 하는 기자가 있다니.

언론의 수준이 낮은 건지 저런 기사에 열광하는 대중의 수준이 낮은 건지,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몰매 맞기 딱 좋은 말이기에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며 휙 지나쳤다.


“후우~ 나이 먹으면 왜 시골 내려가는지 알겠다.”


기자들을 뚫고 차에 올라타 문을 닫는 순간 시끌시끌하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저 멀리 날아가며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S급 던전 때도 그랬는데 요즘 하도 시끌벅적하고 정신 사나운 곳에만 있어서 그런지 다시금 고요함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있었다.


“벨트 맸지?”

“응⋯.”

“안 맸잖아.”

“이런 거 안 매도 되는데⋯.”

“걸리면 벌금 나와.”


나는 다시 꿈나라로 떠난 아린이를 대신해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오늘의 일정을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




“정지.”


소은 길드의 근처로 접근하자 무장한 헌터가 차를 막아섰다.


“안녕하세요.”

“엇, 오셨군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에 나는 창문을 내려 헌터에게 인사를 건넸고 나와 아린이의 얼굴을 알아본 그는 별다른 절차 없이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분위기 살벌하네요.”

“상황이 상황이니까.”


우리가 소은 길드를 찾은 건 당연히 소은 누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소은 길드는 하나의 군사기지처럼 무장한 길드의 헌터들이 길드 주변과 내부 여기저기에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헌터관리국이라도 감히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요원들은 잘 있나요?”

“잘 모시고 있지. 절대 누구도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얼마 전, 내가 던전 안에서 잡아 온 요원들은 소은 길드에 가둬 조사하고 있었다.

원래는 헌터관리국에서 해야 할 일이지만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가 스스로를 체포해 스스로를 조사하고 처벌한다는 건 난센스니 일이 그렇게 됐다.


물론 헌터관리국 측에선 그것을 불법행위로 권한도 없이 요원들을 체포하고 감금한 실버나이츠 길드와 소은 길드를 불법 길드로 지정하고 길드 마스터를 체포하니마니 떠들고 있지만 던전 안에서 촬영한 동영상 덕분에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편에 서 이 행위에 대한 정당성과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그야말로 정부와 헌터관리국이 한판 제대로 맞붙은 것이다.


“그보다 이것들 진짜 잘못한 게 많긴 한가 봐,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지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가만히 있는 거 보면.”

“저쪽도 끝장 볼 준비를 하는 거겠죠,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돌이킬 수가 없으니까.”

“하여튼 사고 한번 거하게 쳤어, 박준호.”


고작 며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모든 일은 내가 찍어온 동영상 하나에서부터였다.


처음엔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냥 그럴듯한 증거가 있으니 원칙상 확인이나 해보겠습니다~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 확인을 하면 할수록 뭐가 줄줄이 엮여 나오고 헌터관리국은 그것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자기들 마음대로 수사를 거부하고 요원들을 동원해 헌터관리국을 폐쇄해버리기까지 했다.


당연히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고 그런 한국의 모습을 본 세계 각국도 이때다 싶었는지 갑자기 헌터관리국에 시비를 걸어 이것저것 털기 시작했다.

그러자 외국의 헌터관리국에서도 뭐가 막 나왔는지 불이 점점 번져 지금은 아주 전 세계가 활활 타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 한 번 읽어봐, 오늘 토의할 계획서야.”


소은 누나는 피곤한 눈을 비비며 꽤 두툼한 서류뭉치를 건네주었다.


“이, 이걸 하룻밤 만에 작성하신 거예요?”


기본적으로 프린터로 인쇄된 문서지만 소은 누나가 이곳저곳을 자필로 수정하거나 부연 설명을 적어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급하게 만든 서류라는 말이었다.


“하룻밤이면 나라 이름도 바뀔 수 있는 시간이란다.”


그렇게 말한 소은 누나는 내가 서류를 읽어보는 동안 쪽잠을 청했다.




***




시간에 맞춰 나와 아린이와 소은 누나, 그리고 석혁 형님과 재현이까지.

이 나라의 S급 헌터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소는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었다.


“무기는 이쪽으로 빼주십시오.”


대통령실에 들어가기 이전, 경호원의 지시에 따라 우린 별생각 없이 무장을 해제했다.

다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만나는데 무기를 차고 만나는 건 상식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별 불만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지시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무기는 그대로 착용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다른 경호원이 급히 달려와 우리를 말렸다.

그의 말에 우린 풀어놓았던 무기를 도로 착용하고 안쪽으로 향했다.


“티, 팀장님? 어째서⋯.”

“괜히 헌터님들 기분 거슬리게 하지 말라는 지시야. 그리고 무엇보다⋯ 저분들에게 무기가 있던 없던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우리가 가진 권총이나 기관단총 같은 무기로 뭐 어떡할 건데? 그거 맞는다고 따가워하기나 하겠어?”

“그건 그렇죠⋯.”


우리가 지나가자 두 경호원이 뒤에서 그런 대화를 나눴다.

들리지 않도록 한다고 나름 신경 써서 속닥이긴 했지만 나한테도 들릴 정도면 귀 밝은 다른 셋이 들었을 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오셨습니까.”


회의실에 도착하자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총리, 장관, 위원장, 장군 등 이 나라를 구성하는 최고위 관료들이 우릴 맞이했다.


“대통령이 먼저 하는 인사도 받고 박준호 거물 다 됐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요.”


그러자 소은 누나가 옆에서 그렇게 속닥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동네 식당에서 제육이나 볶고 있던 내가 이젠 국가권력의 핵에 접근해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시죠.”


사안이 시급하고 할 일이 산더미인 관계로 불필요한 의전과 인사치레 등은 모조리 생략하고 신속히 회의가 시작됐다.



“현재 헌터관리국은 엄청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끼리 무언가 일을 계속 진행하며 정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수사나 대화에도 전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숨길 생각도, 필요도 없다는 거겠죠.”


회의를 시작하자는 대통령의 말에 소은 누나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은 누나가 말을 시작하자 특히 군 관련 인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경청했다.


“더군다나 지금 입법부는 이미 날아간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예⋯ 맞습니다.”


소은 누나의 질문에 국회의장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긴급히 조사한 결과 요원의 말대로 의결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의 많은 국회의원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정말 헌터관리국 쪽에 붙어 있었다.

나는 법이니 정치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굳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합법적인 방법만으로도 나라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설명이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헌터관리국 쪽에 붙은 사람이 아무리 많다곤 해도 당연히 국가의 모든 인사를 매수할 순 없기에 이곳에 모인 인사들은 소은 누나의 검증을 거친 헌터관리국과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군 쪽도 통제를 벗어난 부대가 많으시고요?”

“예⋯.”


이어지는 질문에 목깃에 별을 몇 개씩 단 장성들도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계급상으론 이곳에 모인 장군들이 더 높지만 헌터관리국은 실질적인 부대 지휘권이 있는 장성 및 영관급 장교를 위주로 포섭해 군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럼 답은 나왔네요. 이제 남은 건 진흙탕 싸움뿐입니다. 다들 앞에 놓인 서류를 봐주세요.”


소은 누나는 모두에게 준비해온 서류를 읽게 했다.

내가 아까 새벽에 읽은 그 서류였다.


“헌터관리국 주요 간부 체포 및 조직 무력화를 위한 작전계획서입니다.”


소은 누나가 작성한 서류는 헌터관리국이라는 조직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작전계획서였다.

작전계획서에는 헌터관리국을 공중분해 시킬 방법부터 사후 처리를 위한 계획까지가 아주 상세히 적혀있었다.


“이, 이건⋯.”


소은 누나의 작전계획서를 읽어본 정부 인사들은 크게 그 대담함에 크게 놀랐다.


“이, 이 정도면 거의 내전을 치르자는 수준인데⋯.”

“맞아요, 내전.”

“이건 너무 과격한 방법이 아닐 런지⋯ 좀 더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이⋯.”

“이미 총칼 다 빼 들고 싸우려고 작정한 적을 상대로 어떤 원만한 방법 말씀이시죠?”

“그건⋯.”

“아직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있는 걸 보면 아직 뭔가 준비가 덜 된 게 분명해요. 이럴 때 먼저 쳐서 초기에 진압해야지 준비 다 끝낸 헌터관리국 요원들이 탱크 끌고 와서 광화문 광장 점령하고 대통령님 하야하라고 소리치면 그때 부랴부랴 싸울 준비를 하실 건가요? 아니면 설마 싸우기 무서워서 그냥 항복할 생각 하고 계신 건 아니죠?”


소은 누나의 말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그런 방법도 아예 생각에 없진 않은가보다.


“⋯이소은 헌터님 말씀이 맞습니다.”

“!!! 대통령님!”

“물론 아직 헌터관리국이 일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모의와 준비를 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이미 내란죄가 충분히 적용될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면 그게 최선이었겠죠. 일이 이렇게까지 되는 동안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큰 잘못입니다. 하지만 알았다면 최소한 일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용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헌터관리국이 무력을 동원한 쿠데타를 준비했고 곧 그것을 확실하게 실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진실이라는 상자를 살짝 들춰보니 그 안에 든 게 너무 무서워 누구도 활짝 열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1시간 뒤 표결하겠습니다. 그전까지 다들 이소은 헌터님의 계획서를 꼼꼼히 읽어주시고 실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에 이것보다 체계적인 다른 계획을 세우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군요.”


결단을 내린 대통령의 통보에 회의실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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