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후루룩짭짭의 서재요.

컵라면의 3분 소설

웹소설 > 작가연재 > 중·단편

컵라면.
작품등록일 :
2022.02.07 15:44
최근연재일 :
2023.11.20 05:54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7,976
추천수 :
750
글자수 :
142,058

작성
23.11.03 01:22
조회
418
추천
21
글자
16쪽

적세인 외전. 8화

DUMMY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적세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오경문과 눈을 마주쳤다. 그 옆 포정연의 묘한 미소가 진해졌다.


“···”


갑자기 결투장이 조용해졌다. 무회 참가자들은 무기를 뽑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흑검파 무인들은 오경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오경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으로 적세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이한 침묵이 이어지길 잠시. 닫혀있던 연무장 대문이 갑자기 와락 열렸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그리고 그 소음의 당사자를 확인한 오경문의 얼굴은 희미한 공포에 질렸다.


소음의 주인공은 흑천검괴였다.


“뭣들 하는 게야?”

“···”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오경문은 입을 다물고만 있었고, 그가 나서질 않으니 다른 흑검파 제자들도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흑천검괴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뱀의 눈동자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어젯밤에 어르신의 제자가 자객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 중 그 자객이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지요.”


검괴의 눈이 목소리를 따라갔다. 말을 꺼낸 것은 류청진이었다.


“내 제자가 살해당해?”

“···효량이 죽었다던데, 설마 모르고 계셨소?”

“아, 물론.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결투가 멈췄지?”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지금 저게 무슨 말이야?


“그··· 다시 말씀드리지만 범인을 잡겠다고···”

“그 덜떨어진 놈이 죽은 것은 죽은 것이고, 무회는 계속해야지. 안 그러냐?”

“···”


결투장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싸움이나 의혹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떤 섬뜩함 때문에, 인의를 벗어난 존재의 등장 때문에 내려앉은 침묵이었다.


검괴의 시선이 오경문을 향했다.


“무회를 진행해라.”

“···사부님, 효량의 문제를-”


그 순간 검괴의 몸이 훅 사라졌다. 그리고 오경문의 정면에 다시 나타났다. 코앞에서 노려보는 검괴의 시선에 오경문의 고개는 절로 바닥을 향했다.

검괴가 말했다.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무회를, 진행, 진행하겠습니다···”


힘겹게 대답하는 오경문의 모습에 검괴는 못마땅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그의 시선은 오경문에 이어서 그 뒤에 있는 포정연과 결투장을 둘러싼 다른 흑검파 무인들을 향했다. 모두 함부로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뭣들 하는 게야? 다들 그렇게 멀뚱거리며 서 있기만 할 게야?”

“아닙니다!”


검괴의 말 한마디에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결투장을 포위하던 무인들은 우르르 흩어졌고 흑천검괴는 상석에 앉아 양산과 부채질을 받았다. 오경문이 바닥을 바라보여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어제와 같은 결투장이 준비되었다.


그때 포정연이 슬쩍 오경문을 건드렸다.


“사형.”

“···그래.”


정신을 차린 오경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그럼 이제부터 어제의 결투를 이어가겠소! 호명하는 자는 올라와서 서로의 무공을 겨루시오! 다음 결투에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오늘의 승리자뿐이오!”


그는 결투장 한켠에 세워진 대전표를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탈명혈조 왕상훈! 그리고 흠결자!”


이름이 불린 자들이 어슬렁어슬렁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흑검파와 싸우니 마니 하던 차에 급작스레 결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결투자들은 모두 치뜬 눈으로 흑검파 무인들을 흘끔흘끔 살피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위로 올라선 인물은, 첫날 첫 결투를 승리로 가져갔던 권법가와 조금 전 제일 먼저 도끼를 꺼내 들었던 거구의 원주민 전사였다.


“흠결자···?”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적세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슬쩍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는데, 우리가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니 적당히 부르라며 알려준 이름이라오. 원래는 뭐, 고야틀레? 고야툴레이? 그런 거였는데. 요즘 원주민들은 다들 중원식 이름 하나씩 가지고 있다니 그런 거겠지.”


류청진이었다. 적세인은 흠칫 놀랐다가 슬쩍 다른 흑검파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대화를 피해야 한다지 않았소?”

“어제까지 그렇게 붙어 다니다가 갑자기 모른 척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소. 모두의 시선이 저기 모인 와중에는 괜찮을 거요.”

“그럼 설명 좀 해보시오.”

“뭘?”

“조금 전 있었던 사태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결국 적세인이 묻는 것은 효량의 죽음에 관해서였다. 더 정확히는, 당신들이 그를 죽였냐는 것.


“···짐작 가는 바가 있소. 하지만 우린 아니야.”

“그럼 그가 했겠군.”

“그?”


결투장을 바라보던 적세인의 시선이 상석에 늘어져 있는 흑천검괴를 향했다. 류청진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


“갑자기 어떻게 그런 결론이?”

“그의 무공. 그리고 오경문의 태도.”


그녀의 시선이 다시 결투장으로 돌아왔다. 류청진의 눈도 그녀를 따라 오경문을 향했다.


“···조금 더 설명해주겠소?”

“오경문이 두려워하고 있소. 왜? 예전에 도망쳤다는 두 사형, 갑자기 탕약을 원하던 ‘그’, 어젯밤 죽은 효량, 단순히 엄한 사부를 대한다고는 믿기 힘든 오경문의 태도, 결정적으로 당신들이 받았다는 제보까지.”


류청진과 고장원, 그러니까 무림맹이 받았던 제보. 흑천검괴의 마공 혐의점. 적세인의 표정은 차분했다. 그러나 그 차분함 아래 여기저기 파편화되어 있던 정보들이 하나로 엮여 중요한 결론을 만들어냈다.


“오경문은 효량의 죽음을 어젯밤 도둑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그 흔적을 깔끔하게 지우려 했소. 원래는 어쩔 계획이었는지 몰라도 괜찮은 임기응변이었지. 다른 두 사형처럼 수련이 힘들어 도망쳤다느니 어쩌니 하는 무림인답지 않은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에게 효량은 이미 죽고 더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는 것이오. 그래서 조금 전 같은 상황이 나온 것이오. ‘그’가 효량의 죽음에 신경 쓰지 않는 이유? 간단하지. 본인이 했으니까.”


흑천검괴. 그가 잡아먹었으니까. 마공의 성취를 위해서. 도망쳤다는 두 사형과 어젯밤 효량까지. 참가자들 사이에 자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의 관심사는 이어질 결투뿐이었다.


새 먹잇감을 찾아야 할 테니까.


뒷말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류청진은 입을 벌린 채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듣기라도 한 것은 아닐지.


“···적 무사. 혹시 우리랑 일해볼 생각 없으시오?”

“이미 하고 있는데?”

“아니, 정식으로.”


적세인의 눈이 류청진을 향했다.


“박봉을 받으며 윗사람들에게 시달리는 직업을?”

“···그렇소.”


그녀는 살짝 웃었다.


“싫소.”


동시에 결투장에 서 있던 왕상훈의 정수리를 흠결자의 손도끼가 반으로 쪼개며 쩍-!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


흠결자는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함성을 지르며 양팔을 들어 올렸다. 마치 고대의 전사가 상대를 짓이기고 포효하는 듯했다. 흑천무회 참가자들은 조금 전까지 이 자리를 불편해하던 것도 잊고 그처럼 양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피가 그들을 흥분시킨 것이다.


“승자는 흠결자! 시체를 치우고 바로 다음 결투를 시작하겠소!”


사람들의 환호성이 무색하게 오경문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무회를 진행해 나갔다. 어제의 승자들이 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서로의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적세인은 차례가 꽤 뒤로 밀려 있던 덕분에 이번엔 류청진과 고장원의 싸움을 볼 수 있었다.


“···승자! 류청진!”


류청진의 검술은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빨랐고, 정확할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보다 빠르고 정확했기에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어진 고장원의 싸움에서 그는 다시 한번 그 벼락인지 천둥인지 모를 불장난을 터뜨렸다. 상대는 이미 그의 불장난이 충분한 유효타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처음부터 정면으로 치달렸다. 그러나 이번엔 불장난이 아니었다.


“으아아아! 으아! 아아아! 아아···”


묵직한 고장원의 철죽에서 용이 불을 토하듯 거세게 불꽃이 쏟아져 나왔다. 그 불꽃은 정면에서 달려오던 상대를 그대로 덮쳤고, 불길에 휩싸인 사파인은 결투장 한가운데서 혼자 버둥거리다가 풀썩 쓰러져 죽었다.


“···”


오경문은 그것을 무공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그저 기물의 활용으로 봐야 할지 헷갈린다는 듯 상석의 검괴를 바라보았다. 검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콜록, 콜록. 크흠, 승자, 크허험. 고장원!”


고장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 결투장을 벗어났다. 그러나 적세인은 그 무표정이 고통을 감추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안색이 미묘하게 창백했던 것이다.


“···적세인!”


이름이 불렸다. 고장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적세인은 퍼득 정신을 차리고 결투장으로 올라섰다. 반대편 상대방이 보였다.


“얄궂군. 이번 대회의 유이한 여성 참가자가 이렇게 맞붙게 되었다니.”

“···한 사람 더 있을 텐데.”


발목, 종아리, 허벅지, 허리, 어깨, 팔뚝에 단검을 매달고 있는 여인은 적세인의 대답에 싱긋 웃었다.


“포정연? 그 여자는 이미 검옹의 제자잖아. 죽이지도 못할 것은 빼자고.”


적세인은 금방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검괴의 제자이니, 결투장 위에서 죽는 걸 그가 두고 보지 않으리라는 말이었다.


양이선이라는 이름의 여인은 어딘가 자격지심을 가진 듯했다. 적세인은 검괴가 자기 제자들을 아마 텃밭의 영약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대신, 그저 검을 잡았다.


“인사치레는 이만하면 됐다 이거지? 좋아.”


그녀의 손이 재빠르게 허리의 단검 두 자루를 뽑아 역수로 들었다. 그와 동시에 결투장 한켠의 징이 쨍-하고 울렸다.


양이선의 양손이 흐릿해졌다. 적세인은 곧바로 검을 뽑아 앞으로 휘둘렀다. 날아오던 단검 두 자루가 채챙-하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직후 단검 뒤에 따라오던 양이선이 허벅지의 단검 쌍수를 뽑아 적세인의 목을 노렸다. 그러자 이번엔 적세인의 검이 흐릿해졌다.


대신 푸른 연기처럼 보이는 검광이 양이선을 덮쳤다.


“읏!”


양이선은 나아가던 것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물러나며 단검 쌍수를 휘둘렀다. 쨍-하는 소음과 함께 쌍단검이 깨져나갔다. 그녀는 미련 없이 부러진 단검을 버리고 새 단검을 뽑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적세인은 곧바로 따라 들어가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단검을 살폈다. 왜 그렇게 단검을 주렁주렁 달고 있나 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양이선의 단검은 너무 예리했다. 검신 역시 아주 얇았다.


사실 제대로 된 무기로는 글러 먹은 단검이었다. 날이 너무 얇아 한두 번 쓰고 부러져 버릴 테니까. 양이선처럼 쓰는 건 돈지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식이면 몇 번 못 휘두르겠군.”

“내 단검이 다 부러지는 게 빠를까, 네 목에 칼 들어가는 게 빠를까?”


양이선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단검 하나를 던졌다. 적세인의 발목을 노린 투척. 적세인은 검을 내려 막는 대신에 뒤로 한 발 물러나 투척을 피했다. 그러자 검이 내려가 상체가 열리기를 기대하며 바짝 다가오던 양이선이 또다시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러고는 통통 제자리에서 튀면서 다시 양손에 단검을 들었다.


이어진 투척. 이번엔 머리와 발목을 노린 시간차였다. 그러나 번뜩 움직인 적세인의 검광에 두 자루 모두 튕겨 나갔다. 곧바로 따라 들어오던 양이선은 불쑥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찌르기에 화들짝 놀라 뒤로 제비를 돌며 도망쳤다.


그렇게 다시 거리를 벌리고선 다시 양손에 단검. 적세인은 처음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양이선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발이 무겁네?”

“그쪽이 너무 가벼운-”


말하는 틈을 노리겠다는 듯 다시 날아드는 단검. 정직하게 미간을 노리는 칼날에 적세인은 검을 들어 튕겨냈다. 이후 따라 들어올 양이선을 찾았다. 과연 그녀는 빠르게 적세인의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적세인은 살짝 실망했다. 양이선은 빠르지도 않았고, 투척도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어제 싸움에서는 어찌 이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제의 점쟁이와는 다르게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 여겨 어깨에 칼자국 하나만 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양이선이 갑자기 빈손을 뒤로 확 당겼다. 마치 허공의 무언가를 잡고 당기는 모양새였다.


그와 동시에 어떤 섬뜩함이 적세인의 시야 사각에서 날아들었다. 적세인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튕겨 나갔던 칼날이 되돌아오고 있음을 날았다. 그제서야 양이선의 손과 연결된 반투명한 실이 보였다. 그녀의 투척은 지금 이 한 수를 위한 밑밥이었던 것이다.


정면의 양이선 역시 반대편 손에 단검을 들고 있었다. 아주 얇고 예리한 단검. 살갗을 파고 들어가 그대로 부러져 버릴, 오히려 그래서 살상력은 굉장할 단검. 그것이 적세인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적세인의 내공이 폭발하듯 혈도를 내달렸다.


다시 한번 그녀의 검이 뿌옇게 흩어졌다. 푸른 청광이 적세인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번엔 너무나 분명했다. 푸른 구름이었다.


“···!”


심드렁하게 늘어져 있던 흑천검괴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에 푸른 구름과 그 구름이 양이선의 단검과 사각의 단검을 모두 튕겨내고 그녀의 목에 꽂히는 광경이 담겼다.


“···그르륵.”


푸른 구름은 한순간 신기루였던 것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적세인과 목에 검이 꽂힌 여인뿐. 그녀의 마지막 숨결이 피거품을 흘렸다. 마주친 두 눈동자에서 생의 마지막이 명멸했다.


“···”


시체는 쓰러졌다. 자연스럽게 적세인의 검이 뽑히며 결투장 바닥에 피가 흘렀다. 적세인은 굳게 입을 다문 채 피거품에 잠긴 양이선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승자! 적세인!”


오경문의 선언이 이어졌다. 곧 흑검파인이 양이선의 시체를 질질 끌고 갔다. 어제와 달리 구경꾼들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양이선은 벌거벗겨진 채 흙바닥을 굴렀을 테니까.


적세인은 휙 검을 털어내고는 납검한 후 결투장을 내려갔다. 류청진이 다가오는 듯했지만, 무시하고 그냥 결투장을 떠났다. 어쨌든 승리자는 그녀였다.


그런 적세인의 뒷모습을 오경문의 눈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



적세인은 목욕을 한 후 창가에 걸터앉아 달도 없는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달은 없으나 별바다는 어제와 같이 고고히 흐르고 있었다. 그 별들이 지상의 모든 치욕을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듯했다.


사부님과 사형제들은 저 별의 바다 위에서 평온할까? 아니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복수를 부르짖고 있을까.


“···”


적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일, 어쩌면 류청진이나 고장원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참가자들은 죽어 나갔고, 남은 사람들끼리 싸워야만 했다. 그 숫자가 줄었으니 그들과 맞붙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그때, 그녀는 검을 뽑을 수 있을까? 고작 며칠 전에 만나 대화 몇 마디 나눠본 사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세인은 오늘 싸움 중에 한두 마디 나눈 게 전부였던 양이선의 죽음에도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방문 앞에 인기척이 있었다.


“···류청진?”


적세인은 걸터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문으로 다가갔다.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올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류청진은 떠나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와 고장원은 검괴의 마공 수련 증거를 찾으려 온 것이지, 진짜 흑천무회에서 우승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당연히 내일 결투 상대가 류청진과 고장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소속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느니 야밤에 도주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남의 방 앞에서 계속 그렇게 기웃거리면 검으로 찔러버릴 수도-”


방문을 열었던 적세인의 표정이 싹 굳었다. 방문 너머의 인물은 류청진이 아니었다.


창백한 인상의 남자. 오경문이었다.


작가의말

쥐가 기분 좋을 때 하는 말은? 

                                       기모찍!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컵라면의 3분 소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형사 다니엘 외전. 2화 +7 23.11.20 436 22 21쪽
16 형사 다니엘 외전. 1화 +4 23.11.20 534 17 13쪽
15 적세인 외전. 12화 +6 23.11.20 501 22 40쪽
14 적세인 외전. 11화 +1 23.11.20 302 19 16쪽
13 적세인 외전. 10화 +6 23.11.15 394 20 16쪽
12 적세인 외전. 9화 +2 23.11.08 370 23 15쪽
» 적세인 외전. 8화 +5 23.11.03 419 21 16쪽
10 적세인 외전. 7화 +6 23.10.31 399 21 12쪽
9 적세인 외전. 6화 +2 23.10.27 444 22 13쪽
8 적세인 외전. 5화 +3 23.10.25 500 30 13쪽
7 적세인 외전. 4화 +5 23.10.24 536 36 14쪽
6 적세인 외전. 3화 +2 23.10.23 558 33 13쪽
5 적세인 외전. 2화. +3 23.10.21 650 39 13쪽
4 적세인 외전. 1화. +15 23.10.20 1,712 58 23쪽
3 이충선일기 3부 +36 22.02.12 2,861 167 35쪽
2 이충선일기 2부 +4 22.02.12 2,063 90 18쪽
1 이충선일기 1부 +12 22.02.12 5,298 11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