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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짭짭의 서재요.

헛소리


[헛소리] 후후기.



발리안은 악을 지르는 캐릭터였다. 자신을 향해 몰아치는 악의와 우연의 불합리함에 그 불합리함만큼이나 무식한 힘으로 부딪치는, 있는 힘껏 발버둥 치는 남자.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과 분노, 억울함을 연료 삼아 용암 같은 함성을 토해내는 전사. 적어도 나는 그를 쓸 때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즈음의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발버둥 치고, 벽을 부수고 싶었다. 발리안처럼 내 안의 들끓는 감정을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다 부수고 찢어버리고 싶었다. 난 힘센 야만인이 되고 싶었다.

말하자면 그 야만인은 나의 분신이었다. 물론, 이야기를 쓰는 사람 중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화시켜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장건은 조금 다른 캐릭터다. 그는 발리안처럼 싸움에 들어가며 함성을 내지르지도 않고, 적을 상대함에도 강렬한 흥분보다는 고요한 차분함을 무기로 삼는다. 무자비한 투척 도끼 대신에 부드러운 태극권을 쓴다.

당연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무림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을 지킨다. 그래서 굳이 보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상은 그의 안에서 이미 지불되었으니까.

사실 발리안과 장건은 분명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발리안이 내면에 조금 찌질한 배불뚝이 아저씨를 품고 있는 것처럼, 장건도 그 안에 오래된 무협광을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협광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협을 읽어오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힘센 야만인이 되고 싶었던 나는 발리안이 되었고, 무협을 그리던 나는 장건이 되었다.

 

*

 

어쩌다 그 무림인을 서부극 위에 던져놓게 되었나 모르겠다. 무림서부의 시작은 예전에 선호작 쪽지를 쓸 때도 적어보았던 것처럼 정말 무림이라는 세계가 실재하려면 어떤 장애가 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무공이라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무법자들. 그들이 뭉쳐 문파를 이루고 무림맹을 이룬다. 그리고 그 무력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끼어들어 부를 쌓는다. 관은 그걸 관무불가침이라는 이유로 참견하지 않는다. 때때로 높은 경지에 이른 무림인이 저 드높은 황궁의 벽을 넘어 황제의 침실까지 찾아가 검을 들이밀고 협박을 한다.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어느 권력자가 그걸 그저 잠자코 받아들일까? 그리고 무공을 익힌 자 중에선 평범한 사람들을 발아래 두고 왕이 되고 싶은 사람이 없었을까? 애초에 무공이라는 게 있다면, 왕조의 기초에 당연히 그 무공이 포함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망상과 망상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 머릿속 중원은 천하제일고수 황제를 우두머리로 한 황군이 수백 년 동안 철권통치해 온 천년 제국의 영토가 되어버렸다. 도저히 무림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즈음 내 머릿속을 번쩍이게 한 것이 바로 한창 열심히 찾아보던 서부극이었다. 드넓은 땅, 개척 마을, 떠돌며 법을 집행하는 이동 판사와 마을의 질서를 지키는 보안관,

그리고 무법자들. 법이나 정부보다는 그저 개인의 은원에 따라 움직이는 그 무법자들. 때론 마차와 열차를 털어대는 강도이면서, 때론 오랫동안 마을을 억압해 온 악인과 그의 일당들을 한순간에 쏴버리는 그들. 그렇게 돌고 도는 은원

내 눈에 그들은 무림인으로 보였다.

 

*

 

개인적으로 무림서부의 앞부분은 조금 더 서부극에 가까웠고, 후반부는 무협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능력이 부족해 그 둘을 완전히 섞지는 못했다. 그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 차라리 어느 한쪽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랬다면 이렇게 즐겁게 쓰지는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소설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조금은 무난한 판타지 방랑물이나, 아니면 판타지와 현대가 적당히 섞인 도시 활극. 아마 무림서부 중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것이 있어서 도시 활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언제나 계획한 대로만 글이 써진 적은 없으니, 또 모르겠다. 갑자기 우주 방랑극 같은 거 쓰겠다고 혼자 굴러다닐지도. 아니면 게이트 헌터물이라든가.


뭐가 되었든 써보고 싶은 건 많다.


댓글 15

  • 001. Lv.29 큰새우

    21.10.16 15:41

    사랑합니다 작가님!! 차기작까지 너무 오래쉬면 안돼요~~

  • 002. Personacon 컵라면.

    21.10.23 17:19

    중간중간에 짧은 단편들을 조금 써볼 생각입니다. 당장 외전도 준비하고 있고요. 금방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도... 사랑... 합니다.

  • 003. Lv.43 신시우

    21.10.16 16:51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때까지 푹 쉬시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작가님의 소설을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 004. Personacon 컵라면.

    21.10.23 17:20

    저도 작가님 글을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최근 가끔 연재를 쉬어가시던데, 힘내셨으면 합니다.

  • 005. Lv.49 구오(句汚)

    21.10.17 00:03

    무림서부를 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라면, 킹라면 작가님!

  • 006. Personacon 컵라면.

    21.10.23 17:22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작가님. 저도 이제 그동안 미뤄놓았던 인간백정을 봐야겠네요. ^^

  • 007. Lv.45 녹색자쿠

    21.10.19 14:29

    자까님의 무협 세계관도 좋으니 부디 후속작을!

  • 008. Personacon 컵라면.

    21.10.23 17:23

    외전작에서 이번 무림서부 세계관을 조금 더 쓰게 될 듯합니다. 후속작은... 아마 조금 다른 세계관일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009. Lv.13 소설수집가

    21.10.19 14:32

    '게임 속 전사가 되었다'부터 '무림서부'까지 작가님의 방대한 상상력에 감동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만약 따로 웹소설 강의를 하시게 된다면 1열에서 듣고 싶네요!! 항상 건강 챙기세요:)

  • 010. Personacon 컵라면.

    21.10.23 17:25

    이제 고작 글줄 두 편을 썼을 뿐이라서요... 누구에게 강의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울 것 같네요. 날이 추워집니다. 소설수집가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 011. Lv.68 폐인18호

    21.11.09 16:10

    신라면 당신은 컵이야!!
    다음작 오매불망 목이빠져라 기다리고있습니다.
    건강히 오래오래 많이많이 써주세요.

  • 012. Lv.94 행인09

    22.01.17 21:44

    도시활극 좋은데요!

  • 013. Lv.64 마루이든

    22.01.19 02:54

    그동안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014. Lv.46 류하므

    22.02.06 20:10

    기다리고 있습니다!

  • 015. Lv.38 코라멜.

    22.02.15 17:15

    두 작품 모두 몇 번씩 읽어가며 많이 웃고, 전율을 느끼고, 한숨을 쉬고, 공상에 빠져들고, 지나가는 한 구절이 눈에 밟혀 몇 번이나 다시 보다가 펜으로 끄적여보고, 굵직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잔잔하게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무림서부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다가, 침대에서 갑자기 혼자 낄낄대는 바람에 룸메의 눈치가 보였던 때가 기억나는군요.
    살아 숨쉬는 세계를 만들어주시고, 그 안을 여행할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작품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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