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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노~난 실로~

이세계도 두번째면 지랄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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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뇨
작품등록일 :
2022.10.27 05:50
최근연재일 :
2022.12.20 23:55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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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6
추천수 :
649
글자수 :
121,355

작성
22.11.0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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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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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로운 삶(6)

DUMMY

“그래. 기사 서임을 받고 싶다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는 중년의 사내, 이더의 물음에 발터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가주님.”


“영지를 떠날 생각이니?”


“가주님껜 죄송하지만, 네.”


“음···하긴, 가문을 물려받지 못한 귀족가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진로가 방랑 기사이니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아깝지 않겠니?”


“···네?”


거절하거나 승낙할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발터가 숙였던 고개를 치켜들어 이더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더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요새 시찰을 가면서 주변 마을들을 둘러본 것은 알고 있지?”


“예.”


“그래. 그러면서 영지민들에게 내 자식들의 평판에 대해 물어보았단다. 결과가 어땠을 것 같니?”


이더의 물음에 발터는 잠시 자신의 이복형제들을 떠 올려보았다. 하나같이 제 잘난 맛에 사는 녀석들이라 딱히 평판이 좋을 만한 이는 떠 오르지 않았다. 하여 발터가 선뜻 답하지 못하자 이더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평판은 단연 네가 최고더구나. 제법 놀랐어. 네가 종종 사냥을 나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오기에 단순히 숨돌릴 공간이 필요해서 외출이 잦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사냥감을 주변 마을에 나눠준 탓에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란 걸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발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영지에서야 사냥이란 귀족들의 유흥거리에 불과했으나, 이곳 발타자르 영지에선 생존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매번 사냥감을 잡아 오면 부인들의 이목을 잡아끌 것이 분명했기에 주변 영지민들에게 나누어 준 것인데 그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홀로 숲의 짐승들을 사냥하는 힘과 영지민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그들에게 베푼 선행은 실로 귀족의 모범이라 볼 수 있으니 자격은 충분히 증명한 듯하고.”


이더의 말이 이어질수록 발터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마치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기 직전의 상황처럼 말이다.


“영지민들과 일부 행정관들의 지지 또한 받고 있으니 기사 서임을 받아 영지를 떠나는 것보다는 가주의 자리를 노려보는 것은 어떻겠니?”


불안감이 현실이 되자 발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거나 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영지민과 행정관들이 발터를 지지해 준다고 한들 대세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가주의 자리는 후방의 영지들을 뒷배로 둔, 부인들 소생의 이복형제들 중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을 이더가 모를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주의 자리를 노리길 권유하며 발터를 지지해 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는···


‘후계자 선정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스스로가 자처한 상황이긴 하지만 현재 이더가 처한 입장상 후방 영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는 일임에도 선뜻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직접 개입할 경우이지 대리인을 내세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간접적으로나마 후계자 선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만약 이를 가지고 후방 영주들이 문제를 삼을 경우 꼬리를 자르고 모른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대리인을 내세우는 일은 위험부담은 적으면서도 목적한 바를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었고 이에 부합하는 인물 중엔···


‘내가 제일 만만하다 이거지.’


물론 평소 가주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벌이는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단순하게, 얘가 평판이 좋다니 한번 밀어줘 볼까? 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발터를 지지해 주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란 말이지.’


만약 운이 좋아 발터가 덜컥 가주가 된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후방 영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당장에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와 발터의 목을 매달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계자를 영주로 만들려 들 것이 뻔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안락한 노후지 교수대에 목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고.’


발터는 어떻게 하면 이더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한데, 그 모습을 오해한 것인지 이더가 발터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구나. 생각해 보면 네게 제대로 아비 노릇 한번 해준 적이 없는 것 같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비 노릇을 해 보려고 하는데 허락해 주겠니?”


평소 부인들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게 해 준 것만으로도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던 그가 이제 와서 아비 노릇을 운운하니 발터는 이 인간이 왜 이러지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자신을 쓰고 버릴 패로 선택했다는 가설에 확신을 굳혔다.


‘이거 잘못 대답하면 큰일 난다!’


이더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발터가 자신의 제안을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한데 여기서 제안을 거절한다면 지금 보이는 가식이 분노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까지 머리를 굴리고 굴린 발터는 자신이 살길은 하나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가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상황을 봐서 내가 널 지지한다는 뜻을 내보인다면 쉽지는 않더라도 한번 해 볼 만 할 거다.”


발터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하니 이더는 기뻐하며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발터는 그의 말투가 바뀐 것을 놓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기사 서임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발터의 요청에 이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혹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가문을 떠날 생각이더냐?”


기분 나빠 보이는 티를 풀풀 풍기는 이더의 모습에 발터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주님도 아시겠지만 가문에서 제가 가진 것이라곤 가주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외엔 없습니다.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다는 뜻이지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큰 복이며, 가주님께서 상황을 보아 절 지지해 주신다고 하셨지만, 가주님의 인정만 바라고만 있어서야 입만 벌리고 어미가 먹이를 주길 기다리는 아기 새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발터가 진심으로 가주의 자리에 도전하려는 듯한 모습을 내비치자 이더의 표정이 풀리며 흡족함으로 물들었다.


“그래서 기사 서임이 필요하다?”


“네. 가주님의 아들 중 하나라는 신분보다는 가주님의 아들임과 동시에 기사인 신분을 내세우는 것이 좀 더 믿음직해 보일 테니까요.”


“그래.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구나. 하지만 아무런 공적이나 이유 없이 덥썩 기사 서임을 내리자니 말들이 많이 나올 텐데···흠···”


이더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짝- 하고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래. 이렇게 하자꾸나. 그렇잖아도 이번에 바이칸들과 친선 대결을 개최하기로 하였으니 거기에 참석하거라. 거기서 네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기사 서임을 받을 명분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부인들의 입김 덕분이긴 하지만 다른 이복형제들은 아무런 공적도 없음에도 기사 서임을 휙휙 내려 주었으면서 자신에겐 쉽게 주려 하지 않는 이더의 행태에 발터는 기가 찼다. 심지어 버림패로 쓸 생각이면서도 말이다.


“가주님의 관대한 제안은 저, 개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으나 아무래도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우지 못한 탓에 가문에 폐가 될까 심히 우려됩니다.”


발터가 부드럽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자 이더가 걱정말라는 듯이 발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하. 그런 것이라면 걱정 말거라. 내 네게 월터 경을 붙여 줄 테니. 경험이 풍부한 그라면 널 금새 어엿한 기사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다.”


월터 경은 이더가 외부에서 초빙한 용병 출신 기사로 출신이 출신인 만큼 이더의 말대로 경험은 풍부하겠지만 가문의 검술은 커녕 가문과 관련된 검술조차 익히지 못한 기사였다. 그런 월터 경에게 검술을 배우란 말은 애당초 이더는 발터를 지지할 생각이 없음을 의미했다.


‘어차피 그건 예상한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며칠 만에 검술을 배우라니.’


마음 같아선 헛소리도 작작 하라며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래서야 지금껏 해 왔던 노력들을 수포로 돌리는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가주님과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발터가 감격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이더가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 보였다.




※※※※




“휴. 비위 한번 맞춰주기 힘드네···”


이더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발터는 그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와의 대화 내용이 부인들의 귀에 들어갈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인들이 독을 넣지는 않았을지 걱정하며, 밤마다 암살자들이 찾아오는 일상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아직 최악은 아니야.”


이더의 음흉한 속내야 불편하긴 해도 어차피 정말로 가주의 자리를 노릴 것도 아니니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다.


“문제는 친선 대결인데···”


비록 바이칸들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무성하다곤 하나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란 것을 직접 확인한 이상 그들이 두렵다거나,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생에서 용병으로 구른 경험과 발터가 가진 초인적인 힘.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어지간한 상대는 손쉽게 요리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다만 걱정되는 것은 친선 대결에 참가할 경우 부인들과 이복형제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 뻔하다는 점과 바이칸들을 상대로 승리할 경우 그들의 경계심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니 이것들이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난 가문을 떠날 생각이고, 가문을 떠나면 영주나 부인들이 신경이나 쓰겠어? 자기들끼리 견제하고 싸워대기 바쁜 상황에서?”


생각해 보면 상황이 조금 복잡해진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결론은 같았으니 쓸데없이 뭘 해 보려 하지 말고 처음 계획대로만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괜히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며 투덜거린 발터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 그놈의 기사 서임이 뭐라고.”


솔직히 기사 서임이고 뭐고 마음 같아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사 서임은 반드시 받아야만 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귀족에겐 한없이 관대하지만, 평민에겐 한없이 가혹한 세계였으니까.


“조금만 더 참자. 지금까지도 잘만 참아 왔잖아.”


기사 서임을 받는 그 날. 이 거지 같은 동네를 떠나자. 그렇게 발터는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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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로운 삶(1) +14 22.11.01 1,583 5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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