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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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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꿈
작품등록일 :
2016.04.26 23:43
최근연재일 :
2017.07.3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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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2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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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이안.

DUMMY

한 청년이 거대한 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끝이 약간 날카로운 눈매 때문인지 청년의 첫인상은 차분해 보이기도 하고 조금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던 청년의 귓가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안님 로딩이 끝나면 문이 열릴 겁니다. 그냥 평소대로 마음 가시는데로 플레이 해주시면 됩니다. 영상은 저희가 멋지게 편집할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해주시면 됩니다. 부담 가지시지 마시고 그냥 자연···.

"그게 더 부담스러워요."

-······.


이안은 현재 클리어 보상 겸 홍보영상 촬영으로 캐릭터 생성을 하기 위해 리얼리티에 접속한 상태였다. 리얼리티 홍보 팀장의 귀찮은 귓말을 무찌른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대한 문을 보고 있었다.


'역시 시작은 세계의 문이네.'


캐릭터 생성의 시작은 튜토리얼 때에 지겹게 봤던 세계의 문이었다. 우주라는 열매를 맺는 세계수와 연결된 미지의 문, 감회가 제법 새로울 법하지만 튜토리얼로 뒤통수를 크게 맞아 본 탓인지 이안의 반응은 삭막했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라는 알림을 처음 받았을 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사람은 방송을 지켜보던 유저들도 아니고 몇 년 동안 리얼리티만 해온 골수 유저들도 아닌 바로 클리어 당사자인 이안이었기 때문이다.


-동기화 작업이 끝났어요. 이제 곧 문이 열릴 거에요.


목소리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안이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리얼리티의 개발자라고 들었지만 개발자치고는 너무 젋어서 말단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궁금하시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안이 말했다.


"그럼 질문 하나만 해도 되나요? 이건 정말 궁금했던 건데."

-그럼요. 이안님이시라면 어떠한 질문도 상관없습니다. 게임 내적인 질문만 제외하고요.


흔쾌한 대답에 이안은 튜토리얼을 클리어할 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약간 원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이다.


"솔직히 말해봐요. 튜토리얼이니 리셋시스템이니 그런 거 만들어 놓고 포기했었죠?

-예?


크로니클에서도 튜토리얼이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이안은 확신하고 있었다.


"분명 다 포기하고 리얼리티2를 만들고 있었을 거야. AI-메이커들에게 캐릭터-AI도 미리 주문해야 하고 아무리 그런 시스템이 있어도 한 달 만에 게임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렇죠?"

-그게······.


개발자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세계의 문이 열렸다. 이안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의 문 안으로 들어선 이안은 새하얀 세상과 마주했다. 한번 뒤돌아보니 문은 이미 닫혔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답은 하나였다. 앞으로 걸어간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의 눈 앞으로 수 많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길, 요정의 길, 난쟁이의 길, 수인의 길, 망자의 길······.


종족을 선택하는 길인 듯 했지만 인간의 길을 제외한 나머지 길들은 막혀 있었다.


'퀘스트를 통해서 얻는 건가.'


이안은 망설임 없이 인간의 길로 걸어갔다. 인간의 길을 걸어갈수록 반투명했던 그의 육체가 점점 뚜렷해져 갔다.

길이 끝나고 다시 문이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어두운 공간이었다.


'포션?'


어두운 공간에는 각양각색의 유리병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별빛으로 가득한 우주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이안은 주변을 관찰하며 천천히 걸었다. 유리병 안에는 탄산음료 같은 액체부터 돌 조각이나 과자 부스러기, 뿌연 연기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했다.


'왜 알림이 없지?'


길을 선택하는 곳에서도 그 흔한 알림창이나 알림음이 하나도 없었다. 귓말이 없는 것을 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의문을 느낀 이안은 곧바로 포션으로 짐작되는 유리병 하나를 집어 보았다. 여전히 AI-인터페이스의 무뚝뚝한 알림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유리병에 붙어 있는 꼬리표를 볼 수 있었다.


[마시면 커져!]

"······."


도대체 어디가 커지는지 정확히 쓰여 있지 않았다. 이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유리병을 등뒤로 던졌다. 유리병이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허공을 유영하고 있던 다른 유리병들과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는 다른 유리병들도 확인해 봤다. 하나는 머리카락이 담겨 있는 가발 모양의 유리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붉은 색 액체가 담긴 평범한 유리병이었다.


[이런 헤어 스타일은 어때?]

[레드 와인! 그냥 먹으면 효과가 없을 거야.]


신체 모양의 유리병은 해당 신체에 영향을 주고 특정 색깔을 지닌 유리병은 염색약인 듯 했다. 그 외 물약은 기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말이다. 심지어 흑룡 모양의 검은 액체가 담긴 특수한 유리병도 있었다.


[문신 : 흑염룡 좋아해?]


이곳은 연금술로 자신의 외모를 꾸밀 수 있는 곳이었다. 각양각색의 포션을 어떻게 조합하냐에 따라 자신의 외모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식으로 캐릭터 생성을 하는 건 처음인데.'


NPC나 AI의 도움이 없었다. 종족의 장단점을 알 수 없었고 신체의 조절, 염색에 대한 패널티 설명도 없었다. 난이도가 올라간 것은 클리어 당시의 알림으로 알고 있었지만 설마 캐릭터 생성부터 적용될 줄은 몰랐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이거지?'


할 말은 튜토리얼에서 전부 했다. 이안은 그렇게 해석했다. 수 많은 유리병을 지나쳐 가자 또 다시 문이 나타났다. 그는 다음에 뭐가 나올지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지도라···.'


마치 나무 안에 있는 것처럼 사방이 온통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래된 보물 지도처럼 알아볼 수 없는 이름과 상징이 그려진 커다란 벽화였다.


지도 같은 벽화에는 세 개의 대륙이 그려져 있었다. 각각 동쪽 대륙과 서쪽 대륙 그리고 두 대륙을 합친 것 보다 커다란 중앙대륙이었다.

각 대륙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도 곳곳에 성과 도시, 산과 숲, 강과 호수 등이 크게 그려져 있었고 용과 거인 같은 괴물들도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대략의 정보는 파악할 수 있었다.


'아마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겠지.'


그중에 딱 하나 특이한 지역이 있었다. 마치 위성으로 찍은 것처럼 생생한 숲이 그려져 있었고 유일하게 이름이 지워져 있지 않았다.


끝과 시작의 숲.


그리고 방금 전 유리병의 꼬리표와 똑같은 필체의 글이 제법 길게 적혀 있었다.


[위대한 마법사가 너희들을 위해 나무를 되살리고 길을 만들었어. 새로운 길은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야 할 거야. 자, 이제 주문을 외워 보자고 위대한 마법사가 너희들을 위해 남긴 주문을······.]


기이한 소리와 함께 벽화 전체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빛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이내 이안의 귓가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고···.]


튜토리얼의 마지막을 장식한 잊을 수 없는 내용의 주문이었다. 이안은 주문을 따라 외우기 시작했다.


'뭐야 이번에도 뒤통수를 때리겠다는 암시인가? 기분 탓이겠지?'


마음 속으로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 * *



맵시 있는 청바지와 따뜻함이 느껴지는 니트를 입은 여인이 커피점에 들어서자 한쪽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 이수!"


이태원의 유명 카페에 도착한 한이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한숨을 내쉬며 일행이 자리한 창가로 걸어갔다. 한순간 카페 내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상현실에서 만나면 될 것을 굳이 여기서 만나야 해요?"


시작부터 그녀가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녀를 부른 김현석은 그런 태도가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무시하면서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놈의 리얼리티 때문에 다시 팀을 만들었다. 다들 해봐서 잘 알잖지? 3D 파티. "

"예?"

"다 같이 특종 찾아 삼만리, 잘 알잖아?"

"······."


그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속칭 3D 파티.

아무리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해도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게임이라고 해도 가상현실이기 때문에 죽는 것은 나름 끔찍한 경험이었다.


"문젠 여기 있는 다섯 명의 조합인데···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서 가장 무난한 조합으로 가자고."

"팀장님 농담이시죠?"


그녀의 말에 김현석 팀장이 웃었다.


"저거 또 현실 부정이네. 내가 마공형 원딜, 이수가 탱커, 철이는 물리형 근딜, 희연이는 힐러로 간다. 아차. 이 녀석은 낙하산 최민호."

"하하, 하."


낙하산이라는 김 팀장의 말에 최민호라는 청년이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낙하산은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해. 참고로 리얼리티 랭커다. 정확히 말하면 튜토리얼 랭킹 173위."


그가 랭커라고 좋아하는 이들은 없었다. 유저로써 프로는 아니지만 그만한 지식은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팀장이 그의 게임 닉네임을 말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


"게임 닉네임은 아슈타르. 서로 잘해 보자고."

"최민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슈타르? 라스트 월드의 그 아슈타르? 특종이 눈 앞에 있는데 3D 파티를 왜 해요?!"

"와, 네임드 유저랑 파티를 다 해보네. 저희도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해요."


일행의 반응은 좋았지만 한이수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3D 파티에서 가장 힘든 역할이 바로 탱커이기 때문이다.


'추가 수당만 아니면 확 그냥!'


돈 때문에 내가 참는다. 한이수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요란한 컬러링 소리가 울렸다. 이런 카페에서 진동이나 무음 처리를 하지 않은 매너 없는 인물은 불 보듯 뻔했다. 분명 김 팀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김현석 팀장이 전화를 받으며 자리에 일어났다.


"웬일입니까?"


빌어먹을 상사의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 화상과 파티를 해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스트레스가 쌓였다.


"예, 예. 애들아 나 먼저 간다. 방금 리얼리티 홍보영상이 떴다는데 기사 쓸 놈은 그거 보고 알아서 써. 그리고 민호도 같은 팀이니까 잘 챙기고. 민호 너도 알지?"


짐을 챙기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김 팀장의 말에 그들은 일단 팀장이 말한 홍보영상을 찾아 보았다. 홍보영상은 한 청년이 세계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홍보영상은 생각 보다 빠르게 끝났다. 최민호가 말한 것은 그때였다.


"···사실 이 자리는 제가 부탁했어요. 앞으로 게임을 함께 할 여러분의 실력이 너무 부족하거든요."


그의 말에 한이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영철과 고희연은 정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표정을 본 최민호는 재빨리 양손을 저었다.


"다른 유저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저를 포함해서 리얼리티의 몇몇 골수 유저들은 리얼리티가 튜토리얼이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그들이랑 똑같은···."

"잠깐만요!"

"···예?"

"방금 전 그 말은 리얼리티가 튜토리얼이란 것을 오래 전에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갑작스러운 기삿거리에 한이수를 포함한 기자들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자신의 말실수로 인한 오해를 풀었다고 생각한 최민호는 작게 안도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선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먼저인 듯했다.


"예. 농담 삼아 튜토리얼이라고 이야기하는 유저들은 많았지만 우리들은 아니었죠. 튜토리얼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었으니까요. 이안은 클리어 순간까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그는 다시 홍보영상을 보며 말했다. 펜과 수첩을 꺼낸 한이수가 그의 말을 빠르게 메모하기 시작했고 오영철과 고희연은 질문을 했다.


[딱히 상관없을 겁니다. 이안은 이미 배워야 할 것을 다 배웠거든요.]

[사실 게임의 튜토리얼이란 것이 게임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개인 지도' 같은 그런 의미잖아요. 리얼리티는 그 의미를 확대했죠.]

[우리는 NPC들에게 많은 것을 지도 받았습니다.]

[무슨 지도를 받냐고요? 당연히 현실에는 없고 리얼리티에만 있는 것에 대해서죠.]


마치 인터뷰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이번엔 한이수가 질문을 했다.


"리얼리티에만 있는 것이라면 아이템이나 스킬 같은 건가요?"

"그런 것은 유저 개인이 습득하고 터득할 수 있으니까 지도를 받는다고 보기 힘들죠. 이안의 경우를 들면 그는 용사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사요?"


이안의 프로필까지 작성해 본 한이수는 이안의 클래스가 용사였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 자신의 클래스와 관련된···."

"예, 리얼리티의 골수 유저들 대부분이 튜토리얼에서 자신의 클래스와 관련된 지도를 받았습니다. 일부 랭커들과 네임드 유저들도 그런 지도를 받았던 유저들이고요."


기자들은 프로들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을 받았다.


"마법사들은 마법 지도를 받고 검사들은 검술 지도를 받는 식이었죠. 직업 스킬을 배우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적성에 맞는 운용이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과 비슷했으니까요."

"그럼 용사에 대한 지도는 뭡니까?"


검사나 마법사는 대충 어떤 것을 지도 받는지 감이 잡혔지만 용사 만큼은 아니었다. 용사에 대한 상징적인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추측하는 것을 포기한 오영철이 질문을 하자 최민호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용사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용사는 뭐죠?"

"음··· 주인공 보정의 끝판왕?"

"당연히 활약상이죠. 그러니까 하드 캐리 같은 거요!"


오영철과 고희연이 각자 신중하게 대답하자 한이수가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어떻게든 이기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게 용사물인데 뭘 그렇게···."


한이수의 말을 들은 최민호가 박수를 쳤다. 그녀의 말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맞아요. 바로 그겁니다. 용사라고 하면 전투력과 무관하게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고 어떻게든 적을 무찌르죠. 적어도 튜토리얼에선 용사였던 이안이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 지도를 받았다는 말인가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레벨의 차이가 무의미해지고 어떠한 퀘스트도 클리어할 수 있게 되죠. 다른 의미로 보면 게임의 스토리를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도록 지도 받은 겁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요."


한마디로 메인 퀘스트를 어떻게든 진행할 수 있는 게 바로 용사였고 유저로 따지면 이안은 게임의 공략법을 지도 받았다고 비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최민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레벨의 차이는 아이템이나 컨트롤이 좋으면 무의미해지고 퀘스트는 시간만 있으면 언젠가는 클리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안은 어떤 NPC에게 지도를 받은 거죠? 분명 리얼리티에는 용사 NPC가 없었는데···."


한이수가 알기로는 리얼리티의 튜토리얼에서 용사 NPC는 없었다. 그럼 이안은 어떻게 용사에 대한 지도를 받고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었을까?


"아뇨. 용사 NPC는 있었습니다. 예전에 리얼리티에서 초보 마을의 '촌장 NPC'가 루나틱 때문에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 촌장 NPC가 바로 전대 용사였죠."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에게 메인 퀘스트를 주는 촌장 NPC가 유저들에 의해 사망한 사건은 게임계에서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리얼리티의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인기가 식어 갔기 때문이다.


'현실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촌장NPC를 바로 복구하지 않고 급조한 캐릭터-AI로 새로운 촌장 NPC를 추가했었지.'


설마 그 촌장 NPC가 메인 퀘스트의 핵심인 전대 용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만 해도 용사로 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사에 대해 지도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전대 용사 NPC의 라이벌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죠. 바로 전대 대악당 NPC가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메모하던 한이수가 갑자기 펜을 멈추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설마. 그 대악당 NPC가 이안에게 용사에 대해 지도해 줬다고요? 그래서 이안이 용사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었고?!"

"제가 말했잖아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요. 이걸 나쁘게 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악당 같죠."



* * *



[그것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고···.]


빌딩만큼 거대한 나무와 성인 여성의 키만한 들꽃들 하지만 드넓은 숲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숲 전체를 뒤덮은 듯한 끝이 안 보이는 그늘의 주인이었다.


'저 나무. 분명 뭔가 있어.'


숲의 사분지 일은 차지하는 듯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목. 그 장엄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홍보 영상이 끝나는 순간 화면을 가리는 하얀 손이 나타났다.


"회의에 집중 좀 해. 내일이면 오픈이니까."


레이첼이 눈을 부라리자 몰래 딴짓을 하던 다비앙이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보았다. 절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녀의 손길이 얼마나 매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만큼은 선발대를 정예 멤버들로 구성했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 길드의 지원은 없고 솔로 플레이를 하던 파티 플레이를 하던 상관하지 않겠어. 그리고 유용한 정보는 역시 공유하는 게 좋겠지? 공유할 정보의 범위는 우선 시스템······."


그들이 속한 길드는 퓨리 얼라이언스. 유명 중소 길드들의 동맹으로 탄생한 게임 길드로 현재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초대형 길드였다.

퓨리 얼라이언스의 설립 목적은 단순했다. 바로 최고가 되는 것,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본 것을 이루기 위해 연합을 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게임을 해도 길드원들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미묘하게 달랐다.


모험, 사냥, 대전, 업적, 명성등 게임 내적인 목표 뿐만 아니라 게임 외적인 목표인 공략, 정보, 영상물, 수익등 참으로 다양했다.


그중에서 다비앙과 레이첼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대전인 PVP였다.


"루나틱 녀석들도 분명 리얼리티로 넘어올텐데."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녀가 투덜거렸다. 게임 속 악역을 도맡고 있는 미친놈들, 루나틱 길드에 대한 평가는 안 좋은 쪽으로 최고라고 말할 수 있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PK 악명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그놈들이 누구 때문에 칼을 벼리고 있는데. 넌 걱정도 없어?"

"그놈들 적은 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건 그렇고 내일 몇시에 접속할 거야?"

"당연히 오픈하자마자 접속해야지."

"귓말이 안되면 나와서 전화··· 전화는 내가 할께."

"너 정말로 그런 편의 시스템이 없을거라고 생각해?"


홍보영상으로 리얼리티는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면서 더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게임 좀 한다는 유저들이 홍보 영상에서 AI-인터페이스의 도움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게임에서 가장 기초 중의 기초인 캐릭터 생성에 AI-인터페이스의 도움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그런 시스템적인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리얼리티는 수 많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만큼 가상현실이란 이름에 걸맞은 게임이라는 호평과 기대를 받기도 했다.


"튜토리얼 클리어 때 추측했던 것이 홍보 영상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해. 우리들끼리 시스템 요소를 파헤치는 것은 무리이고 특수 클래스나 시스템도 기대하기 힘들 거야. 아마도 우리가 가장 자신 있는 직업을 해야하겠지? 난 마검사 그리고 넌 무투가."

"흠···."

"지금까지 있었던 pvp나 pk의 유형도 많이 달라질 거야."

"알았어. 일단 내일 접속 해 보고 결정해 보자고."


그렇게 10월 3일이 다가오고 무수한 추측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리얼리티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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