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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루 님의 서재입니다.

혈통이 광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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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루]
작품등록일 :
2023.05.15 10:19
최근연재일 :
2023.06.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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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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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1. 호의? 호위 (4)

DUMMY

교당에 도착한 클리프가 긴박하게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에스판, 던컨! 방 수색해! 트록스! 이 새끼 입 틀어막고 지하실에 가둬놔! 파울로, 브랜든! 입구 단단히 막고! 체이스, 빌리! 창문 전부 막아!”


지시가 떨어지자 단원들이 빠릿빠릿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경건해야 할 교당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부대장. 정말 괜찮은 겁니까? 바드 대장 혼자 저들을 막아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다 같이 나가서 칼춤 좀 출까요? 어떻습니까. 행수께서 나가신다면 선두를 양보해 드리죠.”


토른은 클리프의 날이 선 낯선 반응에 당황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노련한 클리프도 동요를 감출 수는 없었다.


‘지랄. 나답지 않게 흥분했네.’


자신이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토른이 더 불안해할 게 뻔하다. 클리프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행수. 우리가 여기 들어온 건 아펜젤을 점령한 용병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자세한 건 상황이 마무리되면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안심하고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아펜젤에서 이곳이 가장 안전한 건 확실합니다.”

“···예. 부대장님을 믿겠습니다.”


토른은 클리프의 단호한 목소리에 수긍했다. 적어도 그가 자신을 구출해 안전을 책임지는 중인 건 확실했으니까.


“부대장.”


막 이야기를 마쳤을 때 트록스가 지하실에서 올라왔다. 젊은 신관이 동행했다. 바드와 비슷하거나 더 어릴 것 같았다.


“지하실에 구금되어 계셨더라고요.”


신관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클리프와 단원들을 살폈다. 마을을 공격했던 용병들이 아님을 확인하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 영주께서 보내셨습니까? 그 새끼들은···. 그 악마 같은 싯팔 새끼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성령이 깃든 거룩한 욕지거리였다. 클리프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뻔했다.


‘그래. 신관도 사람은 사람이지.’


클리프는 잠시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에둘러 말했다.


“교전 중입니다. 밖은 위험하오니 저희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오오!”


신관은 광명이라도 본 듯 눈시울을 붉히며 두 손을 모았다.


“자애로운 노보시여.”


클리프가 기도하려는 신관의 손을 잡아챘다.


“그만두시죠. 밖에 있는 전사가 모시는 신은 노보가 아닙니다. 괜히 부정 탈 짓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신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사내가 노보께 기도하는 것을 부정 탈 일이라고 폄하했기 때문이다.


불경한 언행을 한 사내를 당장 교당 밖으로 내치리라. 신관이 잔뜩 붉어진 얼굴로 클리프에게 쏘아붙이려던 순간.


“크워어어어!!”


마을에서 뿜어져 나온 괴성이 교당에 닿았다. 소리만으로도 온몸에 털이 곤두설 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전해졌다.


‘지랄. 이번에도 끊어졌군.’


클리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토른과 신관은 잔뜩 긴장한 클리프와 단원들을 보았다. 생과 사의 경계를 업의 무대로 삼는 저들이 경직될 만한 무언가가 밖에 있다.


두 사람은 덩달아 몸을 움츠리며 침묵했다.


클리프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살고 싶으시다면 제 말 명심하십시오.”


토른과 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클리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쪽만 남은 클리프의 눈에 사나운 이채가 서렸다.


“지금부터 입만 뻥끗해도 제 손에 죽는 겁니다. 아시겠죠?”




* * *




소름 돋는 괴성에 캐니스의 의식이 돌아왔다.


“윽!”


지끈거리는 통증이 온몸을 강타했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고 등은 쪼개질 듯 아팠다. 게다가 어깨는 탈골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캐니스는 고통을 참아가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보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벽에 부딪혔던 등에서 뼈를 깎는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캐니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오른팔을 지지대 삼아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정면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벽 너머로 보이는 마을의 광경은 처참했다. 온전한 형태가 아닌 부하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캐니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절규에 가까운 신음과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짐작한 캐니스가 무기를 찾았다. 손에 닿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자신의 무기가 떨어져 있었다.


한쪽 팔로 몸을 끌며 이동하려는 찰라.


“으아아아! 가, 같이 가!”

“놔! 미친 새끼야!”


부하 여럿이 소리를 지르며 무너진 벽 앞을 가로질렀다. 서로 밀치고 잡으며 달아나던 중 한 명이 바닥에 뒹굴었다.


그 순간.

검은 인영이 넘어진 부하를 지나쳐 앞서 달리던 부하들을 따라갔다.


“뭐···?!”


캐니스는 순식간에 지나간 검은 인영을 보고 말을 잊지 못했다. 형체를 인식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건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쩌걱-!


“끄아아아!”

“커헉!”


곧이어 검은 인영이 향하던 방향에서 끔찍한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부하들의 단말마가 이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넘어져 있는 부하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동료들이 달려간 방향을 응시하던 부하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고 있는 부하는 미친 사람처럼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지독한 공포 뒤에 오늘 절망.

절망의 끝의 다가오는 부정과 체념.


캐니스는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흑견 용병단이 진정한 공포에 굴복했던 그때를.


숱한 악행으로 디매트 왕국에서 더 이상 영지전에 참여할 수 없게 된 흑견 용병단은, 전장을 찾아 텔로스 왕국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소문은 언제나 발보다 빠른 법.


이미 텔로스 왕국에는 그들의 악행이 퍼져있었기에 어느 곳에서도 의뢰를 맡기지 않았다. 되려 그들이 자신의 영지에 들어왔다는 것을 불안해한 영주가 다른 용병을 고용하여 토벌대를 꾸렸다.


용병단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든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약탈뿐이었다.


흑견 용병단이 텔로스 왕국의 변방을 떠돌며 약탈을 하던 어느 날, 늪지에서 거대한 몬스터와 마주쳤다.


성인 남성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육중한 덩치. 땅바닥에 닿을 듯이 늘어뜨린 길고 두꺼운 팔과 울퉁불퉁한 돌기가 나 있는 녹색 피부.


늪지 트롤 이었다.


그날, 단 세 마리의 늪지 트롤에게 절반이 넘는 단원을 잃었다.


캐니스는 킥킥대는 부하의 표정에서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몬스터? 아펜젤에 몬스터가?’


그그극.


그때. 무언가를 바닥에 끌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캐니스의 시야에 바드가 나타났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바드의 눈빛에는 붉은빛이 이글거렸고, 몸에서는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벽에 부딪히며 끊긴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게 더 말이 되는 상황 같았다.


바드는 웃음소리에 이끌리듯 천천히 부하에게 다가섰다.


부하의 웃음소리가 어느새 비명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하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 광경에 캐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기함했다.


‘헉!’소리와 함께 바드의 시선이 캐니스를 향했다.


전신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붉게 타오르는 안광.

볼트를 몇 발이나 맞았음에도 태연하게 움직이는 생명력과 부하를 난도질할 때 보여줬던 끔찍한 괴력.


‘저, 저건 사람이 아니야.’


캐니스는 숨이 턱 막혔다. 창백해진 입술의 떨림이 어느새 온몸으로 번졌다.


헌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바드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바드와 캐니스 사이에 긴장감이 가득한 정적이 흘렀다.


-달그락.


때마침 들리는 소리에 바드가 고개를 돌렸다. 캐니스에겐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바드가 소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캐니스는 바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막힌 숨을 내쉬었다.


‘왜 공격하지 않았지? 설마 소리에 반응하는 건가?’


순간 팽팽하던 긴장이 풀렸는지 상체를 지탱하고 있던 오른팔에 힘이 빠지며 몸이 뒤로 무너졌다.


-털썩.


제법 둔탁한 소리가 촌장의 집에 울렸다.

놀란 캐니스가 다시 숨을 멈추고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그극. ···벅. 저벅.


그그그극. 저벅. 저벅.


‘되, 되돌아오고 있다!’


캐니스는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자 침음을 삼켰다. 바닥에 누워있었기에 바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눈동자가 하염없이 천장만을 바라봤다.


그그극. 저벅.


적막한 촌장의 집에 서늘한 발소리가 퍼졌다. 그리고 천장을 향하던 캐니스의 시선에 바드의 얼굴이 비쳤다.


이글거리는 붉은 안광이 캐니스를 응시했다.


“히···히익!”


끔찍한 공포감에 캐니스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온 소리에 캐니스의 낯빛이 퍼렇게 질렸다.


바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고 쥐고 있던 대검을 느릿하게 머리 위로 올렸다.


“끄아···아. 끼아아아!!”


보잘것없는 캐니스의 유언이 이어졌다.




* * *




마을에서 들리는 비명과 괴성, 겁먹은 가축들의 울부짖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교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숨죽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정적과 비명이 몇 번인가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때.


쾅! 쾅! 쾅!

누군가 교당의 입구를 세차게 두드렸다.


“문 열어!”

“씨발. 뭐해? 빨리 열어!”

“개새끼들아! 문 안 열어?!”


캐니스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이 문을 두드리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닥치고 좀 꺼져라! 나가서 멱을 따버릴 수도 없고!’


클리프가 난처한 상황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 어! 오, 온다!”


덜컹! 덜컹! 덜컹!


“열어줘! 들여보내 달라고!”

“사, 살려줘! 제발 문 좀 열어줘!”

“제발! 제바알!!”


돌연 부하들의 입에서 욕이 아닌 부탁이 쏟아져 나왔다. 덜컹거리는 소리에 그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클리프가 고개를 돌려 토른과 신관을 쳐다보았다. 한껏 굳은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교당의 거대한 문이 세차게 흔들렸다.


“아아아악!”

“꺼져! 이 괴물···!”

“도망쳐!!”

“가, 같이 가!”

“잡지 마! 놔 이 개새끼야!”


혼비백산한 용병들의 비명과 절규. 이어서 들려온 찢고 베고 부러뜨리는 그 불쾌한 소리가 고요한 교당에 메아리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린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교당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교당의 문 밑으로 검붉은 피가 흘러들어왔다. 진득한 피가 교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신관이 습관처럼 깍지를 꼈다.


“노보···.”


텁!


신관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클리프의 억센 손이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당황한 신관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다. 어찌나 세게 잡혔던지 턱뼈가 빠지는 것 같았다.


클리프의 한쪽뿐인 눈이 신관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교당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머금어 한층 서슬 퍼런 광채를 띠었다.


비단 클리프만이 아니었다. 단원들의 사나운 시선이 모두 신관에게 향하고 있었다.


신관이 스르륵 깍지를 떼어냈다. 갈 곳 잃은 두 손에 떨림이 가득했다. 곁에 있던 토른이 자신의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클리프와 단원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워 교당의 입구를 주시했다.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자박. 자박.


메마른 풀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숨죽이며 소리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가 교당을 몇 바퀴 돌며 주변을 배회하더니 우뚝 멈춰섰다. 발소리가 멈추자 클리프와 단원들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침을 삼켜서도 안 될 것 같은 정적이 교당에 가득 찼다.


-파학!


돌연,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멀어지더니 곧이어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비명은 또 다른 누군가의 비명으로 이어졌다.


다시 시작된 비명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동이 터 오를 즈음.


아펜젤에는 스산한 바람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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