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홍삼더덕의 서재

상남자특)지옥에서 무쌍찍음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완결

홍삼더덕
작품등록일 :
2019.10.02 22:17
최근연재일 :
2020.02.04 19:15
연재수 :
120 회
조회수 :
182,794
추천수 :
7,794
글자수 :
677,479

작성
20.01.31 11:31
조회
859
추천
44
글자
13쪽

115. 바텐더, 잔을 채워주세요.

DUMMY

카야파스와 아스트리드는 종종 함께 목욕하러 들어가곤 했다.


“나진이랑 가끔 이렇게 목욕하지 않았어? 나 그때마다 꽤 부러웠는데.”


“그래서 그때 당한 것의 복수를 위해서 염장 지르려고 이러는 거야?”


“기분 탓이야. 우린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라고. 부러우면 너도 들어올래? 아스트리드와 합의를 본 결과 너에겐 우리와 목욕을 허락해 주기로 결정했어. 강아지 샤워시키듯이 할게. 응?”


그녀는 별 생각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나를 걱정하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나진이 아닌 다른 여인과는 맨몸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날 걱정해주는 것이라면 고맙지만 지금은 괜찮아. 난 여자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사람이 아니야.”


그들은 충분히 아름답고 멋졌다. 만약 나진이 없었다면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난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나진이 승천해서 이젠 독점이 풀리나 했더니만.”


“난 공공재가 아니거든? 네 제안은 구미가 당기지만 난 나진과의 추억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 그 뿐이야.”


“이게 비극이란 말이지. 네가 매력적인 이유는 네가 나진에게 충실하기 때문이야. 정말 해바라기나 강아지 때 주워온 개만큼이나 충성심 있지. 그런데 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네 순정남으로서의 매력이 반감되어버린단 말이야. 가지고 싶지만 가지는 순간 가치가 폭락한다니. 난 이걸 연해주의 모순이라고 말하고 싶어.”


“뭐라는 거야?”


“가질 수 없는 너라고. 멍청아.”


둘은 목욕탕을 쓰다가 침실로 들어갔고 성소는 이제 꽤 조용해졌다. 옛날에 왁자지껄하게 일곱 명씩 다니면서 밤마다 술잔을 들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내 친구들은 전부 천국으로 가버렸고 지금 난 혼자다.


“라파엘. 한 잔 채워주세요. 오늘은 좀 취하고 싶네요.”


“내일도 가야 하잖아요? 잠을 더 자는 것은 어떻습니까.”


“내일은 썰매 타는 날입니다. 하루쯤은 고삐 풀린 것처럼 먹어도 되잖아요? 어차피 괜찮을 텐데. 제게 해코지 할 수 있을 놈들도 없고. 전 지금 지옥 최강자 중 한 명이잖아요? 어쩌면 진짜 최강일지도 모르고.”


그는 커다란 잔에 술을 잔뜩 부었다. 바텀 업. 난 술잔을 모조리 비웠다. 라파엘은 기계적으로 잔을 채웠다.


“많이 씁쓸해 보입니다마는.”


“해야 할 것은 다 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순례길 뿐이에요. 내가 영혼을 구한 두 사람과 함께 내 영혼만 마저 구해내면 끝입니다. 그럼 승천이죠. 올라가서 천상에 계신 그 분에게 나에게 왜 이런 거지같은 운과 이동을 주었는지 여쭤볼 수 있겠군요. 그 양반이 제게 질문을 할 기회라도 준다면 말입니다.”


목을 타고 타는 듯 한 액체가 넘실넘실 들어간다.


“다만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아무리 강해져도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죠. 첫날부터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나진, 루스키, 프렌치, 서울, 영감님, 흥순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빈자리뿐이지만요.”


그들을 반추하듯 천천히 테이블을 돌아봤다. 루스키는 항상 저 자리에서 왁자지껄하게 담배 묘기를 부리면서 사람들과 난동을 피웠다. 저 자리에서 서울은 항상 지쳐 잠이 들었고 프렌치가 들어다가 놓았다.


흥순이는 항상 ‘나 오늘 집에 안가!’를 외치다가 나진이 토닥토닥 돌려보냈고 영감님은 그런 항상 술자리가 파하고 나면 침울하게 있다가 ‘대장 말 들어야지’ 하면서 자러 가곤 했다.


나진은 모든 사람들을 챙긴 다음에 천사같은 미소로 잘자라고 말 했고 나중에는 같이 침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을 안전하게 천국으로 보내는데 성공했죠. 그런데 뭐가 불만이죠?”


“상황에 불만은 없지만 오늘따라 그들이 많이 그리워서 그럽니다. 남쪽에서는 하루하루 죽음을 걱정해야 하긴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최소한 밤에 돌아오면 모두 긴장이 풀려서 미친 듯이 술도 먹고 서로 다독여줬으니까요. 하지만 지옥에 너무 오래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젠 그 긴장조차 되질 않아요. 이젠 그냥 피곤하기만 하네요. 옛날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가 잔을 다시 채우자 다시 위속으로 알콜이 더 들어간다. 보드카는 꽤 맛이 진하다.


“지옥이 도래하기 이전의 삶 말인가요?”


“지옥이 도래하기 전이 제겐 더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미쳐버리고 어머니는 가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했지만 제 손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천국 최대의 유명인사가 되고 지옥에서는 가장 두려운 필멸자가 되었음에도 그런 기분을 느낀단 말입니까?”


“그러면 뭐합니까. 말벗이라고는 천사 바텐더 밖에 없는데. 사람은 자고로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아스트리드는 왜 사가와 죽음에 그렇게 몰입하겠습니까? 그건 그녀가 화톳불에서 자신의 전설을 자랑할 동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한의 활력을 자랑하고 독이 들지 않을 재생이라고 하지만 내가 먹는 술의 양은 꽤 많았다. 루스키라고 할지라도 지금쯤이면 뻗었을 수준의 양.


“전 외롭습니다. 여자가 있고 없고의 외로움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외로운 겁니다. 이 섬에서 저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두 명이 함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나마 좀 낫긴 하죠. 둘이 없었다면 정말로 미쳐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들은 제가 악마로부터 구해낸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고마워서 일수도 있고, 대안이 없어서 일수도 있죠. 그리고 저 둘과 같이 있다 보면 나진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석될 까봐 두렵습니다.”


그는 속이라도 채우라며 먹으라는 듯 안주거리를 좀 내왔다. 샤슬릭은 보드카와 먹기엔 좋은 고기였다. 난 양을 입으로 뜯으며 물었다.


“아직 이 세상에 저 외에 남은 순례자라는 것이 있긴 합니까?”


“있긴 있죠. 이젠 만날 일 없긴 합니다마는.”


“절 위로하기 위해서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니겠죠.”


“제가 왜 그런단 말입니까?”


“사역마 출신을 제외하면 제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인간은 아닐까 고민을 해본 거죠. 이 넓은 세상에 나 외엔 사람의 아들로 남아있는 자가 없다면 그것도 무섭지 않겠습니까? 공허하고 두렵잖아요.”


“생각이 많으시군요. 걷는 것 외엔 할 것이 없으면 잡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걸 좀 더 드십쇼. 아마 잡생각을 싹 비워줄 겁니다.”


난 잔을 비웠다. 바텐더 특선은 독하고 톡 쏘며 강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이렇게 골이 빠개지도록 먹거나 다친 다음에는 나진이 걱정된 표정으로 절 돌봐줬습니다. 하지만 내일 자고 습관적으로 제 팔 위를 쓰다듬어도 그녀는 없겠죠. ‘왜 그렇게 많이 먹었어?’ 하면서 저를 다독여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비척비척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자시고 난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그날은 꿈을 꾼 것 같다. 나진이었다. 햐. 진짜 같은 꿈이네. 난 그녀를 이미 올려 보냈는데.


실제와 같은 생생한 꿈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었다.


“벌써 자기가 그리워. 위에선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입에 조용히 키스를 했다. 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온기는 너무도 따듯했다. 그 때문에 한 줄기 눈물이 피어올랐다. 꿈에서도 그녀에게 이런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너무나도 현실과도 같은 꿈이었다. 난 내 무의식이 내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었다. 무표정한 아스트리드가 와서 날 깨웠다. 내 몸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를 맡았는지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혼자서 술 먹지 마라. 없어 보인다. 술이 먹고 싶으면 내가 같이 먹어줄 수 있어. 카야파스도 잘 못 먹지만 너와 함께라면 잔을 들 거야.”


“고마워. 하지만 생각이 많아서 그냥 혼자 먹었어. 둘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휘청. 내 몸을 내가 가누기 힘든 것은 오랜만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싸움이 아니라 술 따위로 이렇게 된 것은.


아스트리드는 혀를 차더니 나를 부축해서 썰매에 던져 넣었다. 이미 썰매에는 짐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분신···. 알아서들 끌어줘.”


썰매에 분신을 부르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카야파스는 이미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 너희 주인 좀 상태가 안 좋아. 15km 밖에 있는 성소로 가되 중간에 멈춰서 보고해 줘. 어. 가능하면 22km 성소로 가고. 수고해.”


아스트리드도 썰매에 올라타고 나서 분신들은 열심히 썰매를 끌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점심을 먹을 때였다. 다섯 시에 출발했으니 일곱 시간이나 잠을 잔셈이었다. 지옥에서는 충분히 긴 시간이다.


“너 요즘 꽤 속이 상한 모양인 것 같아서. 속 좀 풀라고 일부러 따듯한 것 좀 데웠어.”


카야파스가 건네준 그릇에는 든든한 돼지고기와 강한 양념이 가득했다.


“고마워.”


그녀는 다른 것도 건넸다. 이슬이었다. 초록색 병에 담긴 이슬.


“무슨 뜻이야?”


“속이 쓰려서 먹기 힘들어? 난 널 그렇게 약하게 키운 적 없는데.”


“하. 말장난 하지 말고. 여기서 술을 먹는 것은 좀 선을 넘는 것 같지 않아?”


“난 지금부터 한잔 할 거야. 너도 마시든지 말든지 해. 어차피 오늘은 쉬는 날이잖아? 넌 지옥 최강이고.”


그녀는 술을 잘 못한다. 저거 한 병이면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리며 헤롱거릴 거다.


“오늘 따라서 왜 그래?”


“네 침울한 얼굴 보기 싫어서. 좀 긍정적인 자세로 가자고. 난 네 그런 모습이 좋으니까. 넌 날 바알의 손아귀에서 건져낸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맨날 축 늘어져서 살아있는지 산 채로 죽어 가는지 이미 죽었는지 찔러봐야 아는 것은 나도 힘든 일이라고.”


“···.”


“어제 화장실 가고 싶어서 아스트리드 눈치보면서 살금살금 나오려고 하는데 너 넋두리 하는 거 들리더라. 외롭니 뭐하니 하면서. 외로우면 말하지 그랬어. 누나들이 자는 동안 자장가도 불러주고 그네도 밀어주고 한다니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내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우리 모두 외로움에 대해서 잘 알아. 우린 2000년을 넘게 악마의 하수인으로서 살았어. 하는 일에는 회의가 가득했고 우리 주변엔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네가 나타나서 우리를 그 수렁에서 건져 줬고 우리는 영혼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 그런데 그런 네가 그런 침울한 표정 하고 있으면 우린 죄 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스트리드도 척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린 금방 천국으로 갈 거고. 너는 그때 네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나면 돼. 그때까지는 우리를 가족처럼 여기고 많이 의지해라. 우리가 너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처럼. 네가 비둘기를 잡으러 떠난 나를 보호하러 온 것처럼 말이지.”


난 이 둘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그저 내 사역마였던 둘로 생각하고 있었나? 이들도 인간이다. 나와 같은 순례를 하고 있는 순례자다.


“자. 이제 감동적인 말도 다 했으니까 이제 누나의 넓은 가슴에 안겨서 울어도 괜찮아! 우쭈쭈 해줄 준비도 되어있어.”


“··· 감동은 다 깨먹은 것 같지만 어쨌든 제안을 받아들일게.”


카야파스는 팔을 들어서 나를 꼭 안았다. 아스트리드도 합류하여 세 명은 잠시 서로를 안았다. 그들에게서는 같은 입욕제 냄새가 났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잘 해왔고. 열심히 버텼지. 이제 앞으로 3개월. 올라갈 수 있다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열심히 가면 문제는 없을 거야.”


왠지 모르게 항상 눈치 없던 카야파스와 명예와 죽음 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두사람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카야파스는 짐에 소주를 넣으려고 하다가 저 멀리 던졌다. 소주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 술 먹을 필요는 없겠지. 먹어도 들어가서 먹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상남자특)지옥에서 무쌍찍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읽으실 분들은 이제 다 읽으셨겠죠? +12 21.03.08 1,293 0 -
공지 완결 후기입니다. +34 20.02.04 1,591 0 -
120 121. 에필로그 +77 20.02.04 1,957 92 10쪽
119 120. 승천 +24 20.02.04 1,266 68 12쪽
118 119. 마지막 싸움 +19 20.02.03 1,106 56 13쪽
117 118.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12 20.02.02 1,056 55 12쪽
116 117. 깜짝 선물 +10 20.02.01 893 50 12쪽
115 116. 빈대 +11 20.01.31 857 51 12쪽
» 115. 바텐더, 잔을 채워주세요. +9 20.01.31 860 44 13쪽
113 114. 두만강 +11 20.01.30 888 48 13쪽
112 113. 845 +16 20.01.29 866 46 12쪽
111 112. 인동초 +5 20.01.29 858 43 12쪽
110 111. 펭귄방사 +10 20.01.28 850 45 11쪽
109 110. 궁지에 몰리면 쥐도. +6 20.01.27 831 42 13쪽
108 109. 비 온 뒤엔 땅이 굳는다. +7 20.01.26 864 39 12쪽
107 108. 새로운 광대 +6 20.01.25 855 44 12쪽
106 107. 펭귄(3) +8 20.01.24 882 44 12쪽
105 106. 펭귄(2) +8 20.01.23 859 40 13쪽
104 105. 펭귄 +7 20.01.22 892 46 12쪽
103 104. 앙그라마이뉴(3) +8 20.01.21 890 44 12쪽
102 103. 앙그라마이뉴(2) +7 20.01.20 863 38 12쪽
101 102. 앙그라 마이뉴 +9 20.01.19 956 46 14쪽
100 101. 잘가라 +15 20.01.18 923 54 12쪽
99 100. 혹한과 빙결의 땅 +9 20.01.17 892 49 14쪽
98 99. 보리타작 +9 20.01.16 872 40 12쪽
97 98. 미친 주둥아리 +6 20.01.15 904 39 12쪽
96 97. 그녀를 뺏겠습니다 +8 20.01.14 1,053 37 12쪽
95 96. 이이제이 +7 20.01.13 883 41 13쪽
94 95. singing in the rain +4 20.01.12 925 38 12쪽
93 93. 야 꿀벌 +7 20.01.10 934 4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