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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SF

RALL
작품등록일 :
2013.02.24 12:10
최근연재일 :
2016.07.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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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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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3.


5월 16일, 오전 5시 29분.


아주 이른 시간이었다. 숙면을 취하던 로델의 함장실로 시끄러운 벨 소리가 울렸다. 긴급 상황에 울리는 경보음이었다. 로델이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통신을 열자 헤스티아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 긴급 상황 발생, 오르페우스 호 탈취, 오르페우스 호 탈취, 칼 K. 로링턴 제독과 케프카 A. 로링턴 대령의 긴급 복귀 요청.

로델은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감을 깨닫고 헤스티아에게 로링턴 일가를 깨워 상황을 알리라 명했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함장실을 나서자 동시에 연락을 받은 에일라와 페리오스가 창백한 낯으로 뛰어왔다. 서로 말을 아끼고 VIP실로 향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로링턴 일가가 망연한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무리한 출항으로 인해 공장지대 절반이 함선 열기에 녹아내렸고, 이륙흔이 오르페우스가 있었던 장소를 알려주고 있었다. 지구군이 상황을 수습중이며 외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취재진들이 몰려와 한바탕 난리인 모습이 포착되었다. 현지에 나간 기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 긴급 속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자정 붉은 복면과 모자로 무장한 이들에게 점거된 우주함선 개발단지에서 함선 오르페우스가 탈취당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지구군과 연맹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은하 해적의 테러로 규정하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칼 제독이 말을 잇지 못하고 실신하듯 쓰러지자 케프카와 율리안나가 부축했다. 케프카 역시 절망적인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로델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제독, 대령. 현장으로 가시지요. 빠르게 모셔드리겠습니다.”

“부, 부탁하네, 중장.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율리안나가 제독의 탈의를 돕는 동안 케프카도 군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에일라는 비행정 준비를 지시했다.

“페리오스. 나와 에일라는 현장으로 갈 테니, 영업에 차질 없도록 관리를 부탁드리네. 분명 소식이 전해질 터, 승객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로델과 에일라, 로링턴 일가가 준비된 비행정에 올랐다. 페리오스와 몇 당직 승무원이 걱정스럽게 마중했다. 곧 비행정이 빠르게 공기를 가르고 날아올랐다.

현장으로 이동하는 내도록 칼 제독을 찾는 연락이 쇄도했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제독을 대신하여 본의 아니게 에일라가 수행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틀어놓은 뉴스에선 막 연맹 원수가 긴급 기자 회견을 소집해 입장을 발표했다.

--- 이번 오르페우스 호 사건은 은하 해적 ‘레드 헤드’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구인 여러분, 은하의 동맹 여러분. 우리 은하 연맹은 여러분들이 안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이번 사태를 해결할 것이며……

“공론화를 미루고 미루더니 앞으로 올 파장이 걱정이군요.”

에일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기자들의 질문에 궁핍한 변명을 늘어놓는 연맹 원수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렸다. 몇 달 전, 함선 대대가 패퇴하였을 때부터 충분히 인지시키고 대비하게 했다면 불안감은 가중되었겠지만 비난만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건 그 부분이 아니야.”

로델은 팔짱을 끼고 자신에게 집중된 이목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오르페우스가 탈취된 이유도 그리 중요하지 않소. 문제는 ‘어떻게’가 되겠지.”

“어떻게, 라고 하셨소?”

“그렇소, 대령. 오르페우스 프로젝트가 시작된 건 5년 전. 연맹 회심의 프로젝트였지. 거기에 투입되었을 금액과 인력, 시간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위였네. 그만한 가치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탈취 될 정도로 소홀시 되었다는 게 뭘 의미할 것 같나?”

“그럴리가.”

로델의 말의 의중을 파악한 케프카가 넋을 잃고 고개를 저었다.

“레드 헤드단이 치밀했겠지요!”

“아니지. 연맹과 국가가 사활을 걸고 진행한 프로젝트의 보호를 ‘소홀하게 만든’ 원인이 분명 있어.”

“중장은 지금 연맹을 의심하는 겁니까?!”

케프카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로델은 더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케프카를 금색의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오히려 대령은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네.”

“무슨-“

“오르페우스가 탈취된 덕에 독이 든 성배 자체가 없어졌으니까. 아무리 제독을 뒤에 업고 있다 해도, 레드 헤드와 연맹의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대령의 존재는 명분을 세우기 위한 희생양임을 인지하란 말이오. 목숨을 버리면서 영웅이라 칭송받고 싶었소?”

케프카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함장위에 실린 배경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임 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쓴 뒷맛을 느껴야 했지만, 그만큼의 공을 쌓아 명실상부 인정을 받겠다는 각오를 했다. 최전선에서 힘껏 싸우리라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군, 로델 중장. 근거라도 있는가?”

말이 없던 칼 제독이 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케프카의 혼란을 달아나게 할 정도로 차갑고 차가운 말이었다. 칼 제독은 현역 시절에는 냉혹하고 비정한 군인으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케프카나 율리안나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대했어도 저 또한 군인입니다. 몇 가지 의문 사항은 있지만, 그간의 정황과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다다를 수 있는 결론은 많지 않지요. 오히려 제가 제독께 묻고 싶군요. 그렇지 않다고 반론하실 수 있습니까?”

“아들을 명예욕에 미쳐 꼭두각시 인형으로 팔아넘긴 비정한 애비로 몰고 싶은가?”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제독께서 누군가의 의지에 꺾였다 할지라도 비난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입 조심하게.”

칼 제독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켜졌다. 노한 나머지 약간은 쉰 목소리가 케프카와 에일라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율리안나 또한 참견치 못하고 물러나 지켜볼 뿐이었다. 거기에 응수하는 로델은 변함이 없었다. 제독의 뜨거운 분노와 로델의 날카로운 이성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만약 조종사가 목적지에 다다랐음을 알리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알 수 없을 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창문에서 내려다 본 현장은 뉴스에서 본 이상으로 참담했다. 함선이 있었을 중심부터 반경 1킬로미터는 족히 충격파의 여파를 맞아 건물이 무너지거나 땅이 음푹 패었다.


비행정이 착륙하고 기다리던 군인이 네 사람을 임시 상황 대책실 건물로 안내했다. 율리안나는 민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비행정에 남아 있어야 했다. 지구 주둔 연맹 대표와 지구군 관리자, 그리고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의 핵심 축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칼 제독이 먼저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가 겁에 질린 얼굴로 바뀌었다. 현역 시절 그대로의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독이 상석에 자리하고 짤막하게 명했다.

“보고를 듣지.”

로델도 빈자리에 앉았다. 상황의 위중함에 짓눌린 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결국 사건의 조사를 담당한 지구군 대표가 일어나 설명을 시작했다.

“전날 밤 11시부터 오늘 새벽 3시까지 조선소 내 시스템 점검이 있었기에 모든 직원들이 퇴근하여 돌아갔습니다. 공장의 최후 보안 시스템을 작동 시킨 사람은 현장 감독인 브라이언 스테리언입니다. 망막, 지문, 성문, 그리고 보안 카드키 네 가지 과정으로 문을 폐쇄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조선소 외부 출입문을 지키는 경비만 남은 채 모든 인적이 빠져 나갔습니다.”

“현장 감독과 경비는 어떻게 되었나. 왜 이 자리에 없는건가?”

“현장 감독은 이곳에서 12km 떨어진 황야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 사망 추정 시간은 전날 밤 11시 10분경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시 경비 또한 자정 무렵 수발의 총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현장 감독은 시신 발견 당시 안구와 손이 척출된 상태였으며, 지갑과 카드키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해적들이 0시 4분 53초에 개폐 잠금장치를 해제한 기록이……”

“성문은?”

칼 제독의 지적에 대표는 마른 침을 삼키고 어렵게 덧붙였다.

“개폐장치 아래에서 마이크로 칩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현장 감독의 음성 샘플과 성문 인식에 맞춰 아주 정교하게 짜깁기 된 음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조선소 자체 경비 시스템은 정당한 비밀번호와 인증으로 사전에 모두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맙소사. 죄다 뚫렸군? 다른 수법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도둑이 멀쩡히 집주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단 말인가?”

“공교롭게도, 그렇습니다.”

단 1%라도 아니길 바랐던 희망이 부질없이 무너져 내렸다. 로델은 고개를 내저었다. 칼 제독 스스로 증명한 꼴이었다. ‘내부에 레드 헤드단이 있다.’는 사실을. 칼 제독은 한숨을 삼키고 조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덧없는 가능성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유출 루트는 파악되었는가? 역추적하면 분명 관계자가 있지 않은가.”

그 물음에 지구군 관계자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지목된 용의자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함선 디자이너, 기술자, 프로그래머, 외주업자, 심지어 군인들마저. 혐의가 있는 자들 모두가. 연맹의 일부 고위 관료들도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될 일을 꼬박 꼬박 답하는 부분은 눈치가 없는 불행함을 저주해야 할 문제였다.

칼 제독은 현기증을 참으며 쓰디쓰게 당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언론에 새 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속하게.”


* * * * *


보고가 끝난 후 정식으로 상황 수습을 위해 로링턴 일가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모두 USA 지구 정부함을 타고 이동했다. 현역 군인이 아닌 로델과 에일라는 최종 선에서 제외되어 남겨졌다. 군인 신분이지만 군인이 아니기에 무기한 대기를 명받은 것이다. 로델은 에일라를 대동하여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로델을 알아보고 취재진들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는 보고는 없으니, 지상에서 바로 워프를 한 셈이겠군.”

“그렇겠지요. 최신식이라 했지만 레드 헤드단에 엄청난 솜씨를 지닌 시공워프 능력자가 있었나 봅니다. 자세한건 돌아가서 나벨과 상의해 보겠지만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단 말인가?”

“제가 알고 있는 한 에서는요. 코어가 되는 시공석이 두개라도 되지 않는 이상, 몇 시간 밖에 안 되는 단시간에 외우주로 나가는 워프는 아무리 엄청난 능력자라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베스타도 시공워프 부분에서는 최첨단을 달리지만, 아무리 줄여도 사흘은 준비해야 해요. 시공석의 에너지를 워프가 가능할 정도로 끌어올리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나벨이 들으면 기가 차 할 겁니다.”

추적 시스템에 의하면 이미 오르페우스는 토너 성단을 벗어났다고 전해졌다. 그 마저도 끝까지 추적이 불가능했다. 내부에서 장치가 끊긴 것이다. 아주 고위 기술자만 알 원격 시스템 위치까지 파악하고 제거할 정도면 애초에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에 레드 헤드단이 얼마나 깊게 연루되어 있었을지 짐작케 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이면이 숨겨져 있는 것 같군. 오르페우스라는 함선에.”

“그 워프 기술은 베스타에 탑재하면 좋겠습니다. 이동 시간이 엄청 줄어들 거예요.”

“거 원인을 알아내면 어디 도입해 보자고.”

누군가가 들으면 상황을 전혀 중하게 생각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며 두 사람이 베스타 비행정에 올라탔다. 멀어져가는 현장을 내려다보며 에일라가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까요.”

“연맹이 미치지 않고서야 ‘실은 해적이랑 손잡고 은하 연맹을 갈라먹고 있었는데, 그놈들이 배신 때렸습니다!’, 하고 밝히진 않겠지.”

“당조짐을 한다고 해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요. 의혹이 불거져 나오면 끝없이 타오를 겁니다. 그럼 독이 든 성배는 이교도가 훔쳐갔으니, 우리는 이제 뭘 하면 되죠?”

로델은 양 손을 깍지 껴 뒷머리에 대고 비행정 천장을 노려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베스타에 도착할 쯤에야 뜬금없이 대답한다.

“신의 계시를 받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잔 다르크가 되면 되나?”

“누가 신이고 누가 성녀죠? 함장님이 성녀라고 답하진 말아주시길. 아니, 그보다 잔 다르크라면 결말이 화형이잖아요.”

“그럼 프로메테우스는 어떤가.”

“그건 천벌이잖습니까…… 나중에 구출될테니 잔 다르크보단 낫겠군요.”

로델이 만족하며 손바닥을 짝, 크게 마주쳤다.

“그럼 간을 쪼일 준비를 해야겠군.”

“머잖아 독수리가 찾아오겠군요.”

비행장에 내려 베스타로 돌아오는 길 저편에서 황금 독수리 마크를 단 비행정이 베스타 쪽으로 접근했다. 연맹의 마크였다. 로델은 어깨를 으쓱하고 에일라의 등을 팡팡 쳤다.

“우리 부함장의 예지 능력이 좀 대단하군?”

“이래 뵈도 드리머의 후손입니다.”

농담을 농담으로 응수했다. 연맹 비행정에서 내린 군인은 곧장 로델과 에일라에게 다가와 경례했다. 오르페우스 호 사건을 뒤늦게 접한 승무원들이 웅성대며 몰려나와 상황을 지켜보았다. 공론화가 된 이상 베스타에도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었다. 로델은 그 자리에서 말하라 재촉했다.

“로델 F. 쥬어 중장께 은하 연맹의 정식 명령을 하달합니다.”

“말하게.”

“이 시각 이후 중장의 임시 복귀와 함께 대 레드 헤드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바입니다. 정확한 인선은 추후 하달될 것이며 중장 임의로 편성도 가능합니다. 부사령관으로 베이른 크래솔 소장이 따릅니다. 모든 전력 지시와 대응을 총사령관에게 일임하며 연맹은 원칙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을 통보 드리는 바입니다.”

건넨 명령서에는 연맹 스테이션에서 제의를 수락하며 걸었던 몇 가지 제한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각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찬찬히 읽어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확실히 명받았소. 로링턴 대령과 제독의 처우는 어떻게 되었나?”

“케프카 A. 로링턴 대령은 베이른 크래솔 소장의 함선으로 임시 배속됩니다. 함 내 직급은 소장 관할입니다. 또한 칼 K. 로링턴 제독은 이번 일의 책임을 물어, 스스로 제독 위를 사임하시기로 결정, 연맹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함선에 오르실 계획이십니다.”

“알겠네. 가보게.”

“확실히 전해드렸습니다!”

연맹 군인을 떠나보내고 로델은 고급스러운 홀로그램 패널에 띄워진 명령서를 에일라에게 던졌다. 로델이 베스타에 오르자 승무원들이 몰려와 어떻게 된 것이냐며 사정을 물어왔다. 로델은 웅성거리는 승무원들에게 손짓해 장 내를 정숙 시키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 대로, 오늘 부로 은하 해적 레드 헤드단과 은하의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일 은하 연맹군 대표가 되었네. 정확한 사항은 우리 편 좀 짜보고 알리겠으니, 제군들은 앞으로 남은 이틀 동안의 영업에 매진하도록. 이번 일로 영업 소홀로 고객들의 항의가 들어오면 담당 승무원들의 연봉에 철퇴를 가할 테니 정신 바짝 차리게. 자. 모두 제 자리로 해산!”

직원들이 하나 둘 원래의 자리로 향하지만 불안감을 씻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로델도 이번만큼은 착잡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각오는 했지만 사슬을 벗어 넘기기가 힘들었다. 베스타를 주력으로 삼겠다는 제안 또한 원래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함선 주력 담당자들을 소집시키고, 오늘 오후 여섯시까지 전 승무원에게 상황 브리핑을 하게. 민간인 직원들은 하선을 장려하도록. 최대한 위험은 피하겠지만, 만일의 사태에는 그들의 안전 또한 보장할 수 없으니까. 군인 출신들은 싫어도 명령이 내려올 테니 빠져나가려면 알아서 핑계를 대라고 하게.”

“부사령관이 베이른 소장이라 영 마음에 걸리는군요.”

“독수리가 언제 하루만 쪼아 먹던가? 헤라클레스가 구해주기 전까지는 계속 쪼여야 하네. 정확히 세 시간 뒤에 시작하지. 자네도 이른 아침부터 바빴을 테니 좀 쉬도록 하게. 나도 눈 좀 붙여야겠어. 은하에 빅뱅이 일어나서 곧 죽을 상황 아니면 깨우지 말게.”

마지막 말은 로델 나름대로의 고충 토로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어도 중압감을 버티기가 힘들었다. 은하의 사람들이, 연맹이, 베스타의 직원들이 로델에게 거는 기대가 고스란히 짐이 되었다.

“빅뱅이 일어나 곧 죽을 상황이라면 차라리 깨우지 않겠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광경은 저 혼자만 보도록 하지요. 푹 쉬세요.”

언제나처럼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에일라의 답변을 미소로 받고 함장실로 돌아갔다. 소파에 드러누워 담배를 물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홍수처럼 밀어닥쳤다. 차근차근 정리해 머릿속의 서랍에 분류별로 정리하다보니 문득 생각 더미 사이에서 언젠가의 일이 떠올랐다.

--- 자네는 자네를 막아주고 전면적으로 따라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언젠가 자신이 만든 불꽃에 온 몸을 불사르고 재조차도 남지 않을 걸세.

칼 제독의 취임식이었다. 로델도 그 때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수여받았다. 피로연에서 칼 제독의 충고였다.

--- 아직 제대로 된 마누라를 만나지 못했나 봅니다. 왜 부부의 연은 하늘이 내려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로델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농으로 답했다.

--- 만나고 나선 어쩔 텐가. 자네의 성정이 바뀌는 일은 없을 거야. 설령 군인이 아니라 지상에서 허드렛일을 해도 자네는 불꽃처럼 타오를 테지. 그건 자네의 생명줄이나 그 이상을 쥐고 흔들 테지.

--- 마치 제가 살아가는 의미 자체가 불꽃이라는 의미로 들립니다만.

--- 그래. 나는 그런 자네가 걱정되는군.

제독의 걱정 어린 말에 어떻게 답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담배를 비벼 끄고 일어나 연맹 인선 리스트와 워프 루트 지도를 펼치고 머리를 굴렸다. 손 놓고 쉴 틈은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백했다.

--- 그럼 불사조가 되어 날아오를 일만 남았군요. 다 타버리면 다음 날 태양이 떠오를 때 다시 솟구칠 테니까요.

못 당하겠다고 혀를 내두르던 칼 제독을 향해 로델은 환하게 웃었다. 그랬다. 지금은 웃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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