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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괴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에서 능력얻는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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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19.10.01 20:45
최근연재일 :
2019.1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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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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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35화

DUMMY

수호는 제갈량을 예로 들어 자신이 생각한 스킨 방식에 대해 설명을 했다.


제갈량(181-234).


촉한의 초대 승상이자 전략가로 자는 공명孔明.

보통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의 하나로 삼국지를 다룬 게임들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지력 캐릭터로 꼽는 인물.


무엇보다도 제갈량은 삼고초려三顧草廬라든지 출사표出師表나 읍참마속泣斬馬謖과 같은 이런 저런 일화도 참 많았고, 학창의鶴氅衣, 윤건輪巾, 백우선白羽扇, 사륜거四輪車 등과 같이 떠올릴 수 있는 상징도 참 많은 인물이었다.


“일단 제갈량 컨셉이 도서관 소녀였지? 그런 것도 좋기는 한데 원래 제갈량이 유명한 일화들이 많잖아. 그러니까 예컨대 출사표 제갈량, 읍참마속 제갈량, 삼고초려 제갈량, 승상 제갈량, 적벽대전 제갈량 등등 여러 스킨을 만들어서 그걸 가챠로 돌리는 거지.”

[어...?]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스킨을 여러 개 만들자고. 일러스트 여러 개. 대신에 각 스킨마다 마법 스킬 속성을 달리하고, 능력치 좀 달리하고. 직업도 달리하고. 오키오키? 그 남자, 여자도 그렇게 스킨으로 구분하고. TS빔 맞은 거 있잖아? 괜히 일부만 TS 주는 거 말고, 스킨으로 TS 줘버리자. 남자 제갈량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냐. 어때?”


전화기 너머로 한수호는 다다닥 말을 쏟아냈다.

일단 금방 생각해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갑자기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임기응변도 수많은 준비 끝에 나오는 것.


기회는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판타지 삼국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생각을 반복했던 수호는 바로 좋은 답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수호는 판타지 삼국지가 TS빔을 맞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가챠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계속 혼자서 궁리했었다.


[어...?]


한수용은 한 번 더 멍청하게 대답했다.


“이상하네. 내가 설명을 잘 못하나? 왜 저번에 가챠 때문에 전장별로 유닛제한 두기로 했잖아.”

[어... 그, 그랬지?]

“그러니까 그걸 조금 더 세부적으로 쪼개자는 말이잖아. 일러스트 팔자는 거지.”

[어... 속성별로 다른 일러스트를 만들어내자는 말이지? 그러니까...]

“응! 마법사들은 속성별로 나누면 되잖아. 일단 불, 물, 바람, 땅이니까 최소 4개! 그리고 장수들도 속성, 아니다. 맹장, 지장, 덕장, 용장 이런 식으로 갈까? 전사, 기사보다 컨셉상 그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겠다. 아니면 무기 타입별로 가도 될 것 같고. 검, 창, 활, 도끼 막 그런... 아니다. 그래도 삼국지니까 음양오행이 좋으려나. 그래! 음양오행으로 해서 직업도 7개만 두자. 빛과 어둠도 있어야지. 사마의가 흑룡이잖아. 그럼 7개. 아닌가? 직업은 간단하게 5개로 할까?”


수호의 끝도 없는 수다를 겨우 제지시킨 후에 다시 돌아와 제갈량의 뒤를 이어 예를 든 것은 바로 무력의 상징 여포.


“알았어. 뭐 그러면 이번에는 여포로 설명해줄게. 일단 여포만 해도 적어도 적토마, 아니, 레드드레이크 탄 버전하고, 활 쏘는 버전, 방천화극 버전 일단 세 개는 나오겠네. 그렇지? 그러니까 여포도 무신 여포랑 애마부인 여포랑 신궁 여포 세 개는 나오고... 뭐 은근슬쩍 방구석 여포 같은 것도 하나 집어넣고.”

[어? 뭐? 방구석?]

“에헤이, 그건 농담인데 그건 넘어가. 뭘 이상한 것만 듣고 있어. 아무튼 그러면 되겠다. TS빔 맞았다며? 그러니까 여캐들이잖아. 그럼 뭐야. 여캐들은 입힐 것 많겠네. 일단 수영복 입은 거나 교복이나... 그래. 아이돌 같은 것도 되겠다. 뭐 마법소녀도 되고. 오! 좋다. 특전대도 되고! 뭐야. 다 되네? 킥킥,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계속 신규 유닛들도 추가할 수 있고, 가챠할 때 이벤트 기간에 확률 페스티벌도 하고. 원래 그런 거 많잖아? 한정판하고 신상에 환장하는 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유저들은 한정판에 백 퍼 지갑 연다. 음 음. 그럴 걸?”


업계 문외한인 한수호는 실컷 얘기 후에 살짝 눈치를 보았다.


[허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탄식 같은 소리에 수호는 살짝 긴장하였다.


“어... 이상해? 좀 그런가? 하하... 하.”

[아니야! 잠시만! 막둥! 잠시만... 그게 어 형이 지금 갑자기 정보가 너무 많이 입력되어서... 어... 좀만 생각해보고...]


순식간에 쏟아져 나온 너무 많은 정보량에 수용이 일단 제동을 걸었다.


“아... 그래? CPU 좀 업그레이드 해.”

[......]

“아니다. 메모리 문젠가? 램이라도 바꿔 달던가...”

[......]

“여보세요? 인터넷 문제인가? 큭큭큭.”


수호의 시답잖은 농담도 받아주는 이가 없으니 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실은 수호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괜찮은지 궁금하고 초조했기에 더 이상 드립을 짜낼 수도 없었다.


‘하 씨... 이상한가?’


수호가 머리를 긁적거리는 동안 조금 정신을 차린 수용은 자신이 이해를 한 것이 맞는지 확인을 했다.


[어... 이제 좀 정리가 됐어.]

“아 그래?”

[그런데 교복? 승마복? 아니, 애마부인?!]


꼭 제복이 취향이라서 아니라... 아니, 사실은 취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보통의 남자들에게 제복은 아주 보편적인 취향이 아닐까?


“앗! 아, 아니... 그게... 그냥 그런...”


그렇지만 보편적인 취향이라도 들키면 부끄러운 법.


[아니, 그게 뭐라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형이 지금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응?”

[삼국지랑 판타지 설정인데 그런 것도 돼? 너 그런 거 개연성 없다고 싫어하지 않았어?]


제갈량에 교복을 입히고 여포에 승마복을 입힌 것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현대 문물을 일러스트에 녹여낼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개발자로서의 질문이었다.


“어...? 그거는... 그냥 처음에 플레이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설정이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러니까 되는 거지. 어차피 장비 가챠도 있고.”

[어?]

“아 또 이해가 안 돼? 자 들어봐. 어차피 그 사람이 현대 지구인이고 플레이어가 장비 가챠하는 것처럼 현대 의상이나 의복들이 떨어졌다고 하면 안 되나? 교복이나 승마복 같은 거. 마신도 나오고 플레이어도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설정인데 그런 게 소환될 수도 있는 거잖아. 강렬한 기원. 그에 응답한 용들의 소환. 안 돼? 아니, 안 되려... 나?”


도대체 안 될게 뭐가 있을까.

개연성이란 설정 간에 충돌만 없으면 되는 것.

한수용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어린 소리를 끌어내었다.


[으와아아! 대애애애애박!]


수호는 갑작스런 괴성에 귀를 떼며 질겁했다.


“악! 깜짝이야!”

[야! 막둥아! 너 인마! 진짜 천재인가 봐! 아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어? 아니, 어디에 이런 아이디어가! 와우 씨! 예뻐 죽겠네! 너 진짜 짱이야 인마!”


수용의 호들갑에 수호는 잠시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졸지에 바보 같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여보세요! 막둥! 수호야!]


‘아니, 이게 그렇게 괜찮나?’


10살 터울의 수용과는 아빠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지만, 수호는 수용의 열렬한 반응에 어쩐지 머쓱해져버렸다.


“하 참 나... 우리 형은 하여튼 호들갑이 심하다니까... 덩칫값도 못하고 말이지...”


사실 엠렉스에게는 엄청난 아이디어를 내놓은 수호는 아무렇지 않게 슬쩍 웃을 수가 있었다.



* * *



엠렉스의 기획팀.


“허... 세상에나...”


다음 날 수용에게서 아이디어를 전해 받은 엠렉스의 기획팀장 구형진은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걸 이렇게 풀어낸다고?’


TS빔과 가챠와 게임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었다.

그런데 한 방에 끝이 나 보였다.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어질 콘텐츠와 특색 있는 일러스트에 대한 확장 및 개방성까지 이것 하나로 해결이었다.


탁!


이것을 바둑으로 치자면 어려운 승패를 뒤집는 절묘한 ‘한 수’가 아닐까? 보통 신의 한 수라 부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뭐래도 불리한 형세를 뒤엎을 만한 기책이었다.


‘그러니까 지방대 행정학과 대학생?’


너무 궁금해서 모르는 척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답변은 부산의 국립대학생 행정학과 1학년. 물론 지방 국립 거점대이긴 하지만 서울의 3개 대학 아래로는 쳐주지 않는 조형진의 입장에서는 별 볼일 없는 학교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 무시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연이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자, 평소 자신의 학력을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구형진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와아... 자기 동생 진짜 이쪽 일 하던 사람 아니야?”


기획팀장의 충격과는 별개로 디자인 팀장 김도희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수호의 아이디어는 디자인팀에서도 아주 큰 호재. 비록 일거리는 많아지겠지만, 자신의 업무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김도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아... 아시잖아요. 흐흐.”


동생 칭찬에 수용이 헤벌쭉 웃었다.


“어머, 큭큭, 수용 씨가 왜 좋아해? 지애 씨 말이 딱 맞네. 동생 바보라더니. 쿡쿡쿡. 그래. 이거 내 생각에는 일러가 핵심일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지?”


원화가 입장에서 일이 많아져서 귀찮다기보다는 의욕이 생긴 김도희였다.


“네. 제 생각도요! 흐흐흐.”


디자인팀장의 적극 지원 아래 수호의 아이디어는 바로 위로 보고되었다. 당연히 김성구 부장도 아이디어에 탄복했다. 그리고 한수호에 대해서도 생각을 고쳤다.


“허허, 한 대리?”

“네?”

“자네 동생, 안 바쁘면 좀 와서 도와주면 안 되려나? 흠흠.”

“아... 그게 지금 동생이 학교에서 시험기간이고... 부산에서 여기까지 오라고 하기가 좀... 아... 아직 알바도 다니고 있어서요...”


말을 흐리는 이유는 자신감 부족이 아니라 여유와 스웨그였다. 한수용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흠... 그럼 주말도?”

“글쎄요. 그리고 저희도 일요일 하루 쉬는데... 동생도 얼마나 쉬고 싶겠어요.”


아니, 생각해보세요. 그냥 되겠어요? 한마디로 도도해진 차도남 한수용이었다.


“크흠, 어떻게 안 되겠나?”


사장이라고 얄짤 있을까?


“죄송합니다.”

“어허, 사람이 왜 그렇게 단정을 짓나. 아니면 지금처럼이라도 좋네. 허허허,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의견 부탁하세. 어... 아니다. 그 동생 아르바이트 뭐 하고 있나?”


급기야 아르바이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줄 테니 입대 전까지만 도와달라는 말이 나왔다.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벌써 수용이 수호에게 받아서 내놓은 좋은 아이디어만 수십 개였다.


“좋아. 그럼 구 팀장, 이거 제대로 정리해보게. 이대로 한 번 가보자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

판타지 삼국지의 개발 스토리는.

원래 고전적인 턴제 SRPG에서 시작한 판타지 삼국지는 TS빔을 거쳐서 가챠의 저주까지 받게 되었지만, 시련 끝에 강해져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후일담으로 투자사는 어땠을까?


“허어... 이거 누가 생각한 겁니까?”

“흠흠.”

“아니, 어차피 전설의 전장이나 다른 게임들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니까 물을 필요는 없겠군요. 사용자만 확보되고 일러스트만 충족된다면 충분히 수익성이 기대됩니다. 좋습니다! 저희가 단독 투자하겠습니다!”


누구나 알듯이 보수적인 투자사들은 리스크 관리의 이유로 웬만하면 분산 투자를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단독 투자?


“나중에 마케팅도 걱정하지 마시고, 일단 확실하게 만들어만 주십시오.”

“정, 정말입니까?”

“하하! 네! 정말 기대가 큽니다. 제대로만 만들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하하하!”


수호의 아이디어에 넉넉한 자본까지 결합되어 판타지 삼국지는 활짝 큰 날개를 달 수 있었다.



* * *



IT기업들과 게임회사들이 모여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구석의 빌딩 한 층에 자리 잡은 조그만 사무실들이 분주해졌다.

그 사무실들의 주인은 엠렉스.

판타지 삼국지의 개발 일정이 좀 더 구체화됨에 따라 모바일 게임 제작사 엠렉스도 점점 활기를 되찾아갔다.


게임을 업으로 만드는 사람들.


비록 게임 제작을 업으로 두고 있긴 하지만, 대개 개발자들은 참신하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이 험난한 업계에 투신한 이들이었다.

그런 꿈과 욕심이 있었다.

이제는 게임 제작보다는 접대와 술자리가 더 익숙한 백형태 사장도 코딩보다 부하 직원들에게 눈치 주는 것이 더 익숙한 김성구 부장도 처음에는 분명 그랬었다.


비록 유행과 돈벌이에 유리한 양산형 게임들을 만들고 있다지만, 개발자들이라고 좋아서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한 애니메이션의 악역 과학자의 대사처럼, 결국 아이디어가 없고,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보통은 그게 전부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현재 엠렉스에게는?


일단 아이디어가 있었다.

판타지 삼국지라는 꽤나 흥미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개발비도 투자사로부터 빵빵하게 받았다.


“자!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보자고!”


다만 개발 일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짜인 것이니만큼 시간이야 항상 모자란 법이지만, 그래도 엠렉스 직원들에게는 그것을 메울 열의가 가득했다.


‘우리도 대박 게임 하나 만들어보자!’


예정된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데 어찌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한수용] 너 땜에 야근함 수고

[한수호] ㅋㅋㅋ 형수님도?

[한수용] 그래! 이 자식이 나는 걱정 안 돼?

[한수호] 네? 제가 왜요? ㅇㅅㅇ)a

[한수용] ㅠ_ㅠ

[한수용] 매정한 자식. 형이 널 어떻게 키웠는데... ㅠ_ㅠ

[한수용] ㅡㅅㅡ

[한수호] ㅎㅎㅎ 그런데 형은 안 바빠?

[한수용] ㅎㅎㅎ 사실은 너네 형수만 바빠. 개발팀은 여유로운 편이야 ㅋㅋㅋㅋㅋ

[한수호] 응~ 다 일러야지.


게임을 만드는 건 일종의 팀플레이.


물론 1인 개발 게임도 많으니만큼 꼭 팀플레이여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게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당연히 독불장군식의 1인 개발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세상은 넓으니 다방면에 모두 뛰어난 만능 천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걸리는 시간은 또 어떻게 할까? 괜히 분업의 시대인 것이 아닌 것처럼 결국 게임을 만드는 데도 다양한 사람이 필요했다.


보통 외적인 다른 모든 걸 다 줄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세 가지.


기획, 프로그램, 아트.


쉽게 게임을 만드는 것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기획은 설계,

프로그램은 공구리,

아트는 인테리어 같은 것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전쟁터의 장수와 책사가 하는 일이 다르고, 내정을 맡은 이와 군령을 다스리는 일이 각자 다른 것처럼 엠렉스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달랐다.


현재 판타지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매력적인 일러스트였고, 때문에 아트, 엠렉스에서는 디자인 팀의 직원들이 가장 바쁠 수밖에 없었다.


“대리님, 이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어... 글쎄요?”

“동생 분에게 답장 온 거 없어요?”

“네. 그게... 지금은 걔도 바쁠 시간이라서요. 동생이 알바 자리를 갑자기 그만둘 수는 없어서요... 이번 주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니까... 아하하.”


판타지 삼국지 TS 가챠 버전’은 스킨 방식을 도입하기로 한 만큼 각 일러스트마다 차별성과 매력이 필수였다.


판타지, 이종족, 삼국지, 현대의 문물.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냐고?

판타지 삼국지에서는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또한 거기에 직업과 속성이라는 요소들을 가미하여 독특하고 매력적인 일러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었다.


보통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일단 판이 깔리고 나니 기획팀에서도 디자인팀에서도 개발팀 여기저기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물론 개중에는 한수호가 제시한 컨셉들보다 더 눈에 띄는 컨셉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처음 판을 깔아준 수호의 공에 비할 수는 없었다.

수호는 세계관의 아버지였다.

때문에 원화를 맡을 김도희 디자인 팀장으로서는 원작자인 한수호의 의견이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팀장님,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정말 교복으로 그려도 될까요?”


예컨대 (가제) 출사표 제갈량.


제갈량은 금룡의 기운을 받은 용인이라는 설정이긴 하지만, 걔 중에서 화속성을 띌 출사표 제갈량은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이 특징에 출사표 대신에 러브레트를 내밀고 있는 이미지로 잡혀버렸다.


출사표 = 러브레터.


학창의 대신 교복을 입고 윤건 대신 머리띠를 착용하였다.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유머러스하면서도 특색 있는 아이디어. 디자인팀장인 김도희가 깔깔거리며 예쁘게 그림을 그려내었다.


물론 이것도 수호가 예를 든 컨셉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응! 나는 완전 괜찮은데... 정말 특징 잘 잡았어. 다른 것들도 전부 마음에 드네. 그리고 읍참마속은 울먹거리는 얼굴이 특징? 뭐? 생선 같은 거 두고 울상인 모습으로 그려달라고 한 거 너무 귀엽지 않아? 킥킥. 그리고 나는 여포 승마복도 너무 좋은데? 그림에 이유가 있잖아. 그게 너무 좋더라.”


참고로 생선을 잡고 울먹거리는 건 한수호 본인의 경험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 한동국과 형 수용과 함께 낚시를 따라갔다가 즉석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을 보고 빼액 울었던 것이 수호의 또 하나의 흑역사. 그래서 부산 사람인데 회를 못 먹는 수호였다.

나름 흑역사치고는 아픈 기억?

그런데 그 아픈 흑역사를 이렇게 예쁘고 재미난 일러스트 아이디어로 승화시켰으니 수호는 일류이지 않을까?


지력 100 캐릭터인 제갈량의 반대쪽에는 애마소녀 여포가 승마복을 입고 있었다. 참고로 이건 수용이 애마 부인에서 한 단계 심의 조절한 것. 그렇지만 수호도 억울한 것이 애초 설계된 복장부터 노출이 가득한 건 아니었다.

승마복.

다만 중국풍이 아니라 현대 서양식의 승마복.

그리고 그 승마복을 입고 있는 여포가 업계의 전문 용어로 로리 캐릭터일 뿐이었고, 그것 역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한수호] 응? 애마부인 여포?

[한수용] 부인 말고 소녀로 해.

[한수호] 왜?

[한수용] ㅡㅅㅡ 어감이 안 좋아.

[한수호] 아 느낌 안 사는데...

[한수호] ㅋㅋㅋㅋ 알아서 해. 아무튼 드레이크를 탄다는 설정이 있잖아. 그런데 개나 소나 드레이크를 타면 좀 그러니까, 일단 드레이크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좀 가벼웠으면 좋겠어. 드레이크가 사람을 태우고는 단거리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개연성. 오키?


굳이 게임에는 반영되지 않을 뒷이야기.


[한수용] 아하, 작은 소녀 컨셉이야?

[한수호] 응응.

[한수호] 동탁은 크니까 여포가 조그만 것도 귀엽지 않아? 언밸런스하잖아. 킥킥.


명화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수호가 제시한 그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천생 그림쟁이인 김도희는 한수호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마구 생길 정도였다.


“이참에 우리 19금 가면 좋겠다. 호호호.”

“아! 팀장님!”

“프흐흐, 수용 씨는 결혼도 한 유부남이 왜 이렇게 귀엽게 굴어?”


사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새로운 캐릭터의 컨셉과 특징을 잡는 것이었다.

뭐든 안 그렇겠냐마는.

예컨대 일본의 만화에서 미소녀들이 머리 색깔이 크레파스마냥 색색깔이고 인종도 글로벌한 이유가 뭘까? 화려한 복장과 색색깔의 머리 스타일을 지우고 극단적으로 묘사된 체형까지 걷어내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까 한 끗 차이.

결국 따지고 보면 비슷비슷한 미형美形의 캐릭터들을 구분 짓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실력이자 가장 어려움이었다.


때문에 김도희는 수호가 내놓은 판타지 삼국지의 아이디어들에 감탄했던 것이었다.


수호의 아이디어로 인해서 단순히 컨셉 하나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종족이라는 설정으로 쉬운 특징을 잡을 수 있었다. 또 교복이나 승마복과 같이 쉽고 확실한 컨셉을 잡을 수도 있고. 여러모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일러스트를 접할 유저들에게도 수호의 아이디어는 참으로 매력적인 설정이자 좋은 아이디어였다.


“야호! 그러면 이번 주말에는 자기 동생이랑 만날 수 있는 거 맞지?”


그렇게 수호는 엠렉스 사장 이하 직원들의 성화에 결국 알바를 그만두고 주말마다 원작자 특강(?)을 하기로 했다.


“어허허, 네. 걱정하지 마세요.”

“후후, 자기 동생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지애가 자기 도련님 귀엽다고 난리였거든.”

“네? 지애... 가요?”

“큭큭큭, 왜? 동생 질투하는 거야?”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수용은 다른 의미로 질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아내가 귀엽다고 한 동생 수호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 수호를 귀엽다고 표현한 아내를 질투하는...


“응?”

“아, 아니에요. 아하하.”


김도희는 한수용과 유지애를 엮어준 존재.

한수용에게 최승호 개발팀장이 친한 선배이자 프로그래머로서는 스승과 같은 존재라면 유지애에게는 김도희가 그런 존재였다.


“그럼 우리 부장님한테 말해가지고 토요일 점심에는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자기랑 자기 동생이랑 나랑 지애랑. 어때?”

“하하, 저야 좋죠.”

“잘 됐다. 우리 법인 카드로 소고기나 먹어볼까? 요번에 개발비 빵빵하다던데. 큭큭.”


이렇게 되어 김도희가 수호와 만나서 판타지 삼국지의 주요 장수들이 탄생하게 될 예정이었다.


“아~ 빨리 한 대리 동생 만나보고 싶다.”


판타지 삼국지 세상을 처음 떠올린 원작자 한수호.

엠렉스의 여성 캐릭터 장인 김도희.

촉의 제갈량과 조운이 합을 맞추었듯이, 한수호의 머리와 김도희의 손이 합쳐져 불닭갈비 마니아 양수도 세상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판타지 삼국지 세상에서 수호를 만나기 위해 넘어왔던 양수에게는 그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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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19.11.23 41 1 23쪽
55 55화 19.11.22 36 1 22쪽
54 54화 +4 19.11.20 44 1 21쪽
53 53화 19.11.19 39 1 19쪽
52 52화 19.11.18 42 1 21쪽
51 51화 19.11.16 42 1 22쪽
50 50화 19.11.15 47 1 21쪽
49 49화 +2 19.11.14 51 1 18쪽
48 48화 19.11.13 50 1 24쪽
47 47화 19.11.12 50 1 26쪽
46 46화 19.11.11 52 1 22쪽
45 45화 19.11.09 55 1 22쪽
44 44화 19.11.08 56 1 21쪽
43 43화 19.11.07 58 1 22쪽
42 42화 +2 19.11.06 61 1 21쪽
41 41화 +4 19.11.05 64 1 22쪽
40 40화 19.11.04 57 2 24쪽
39 39화 19.11.02 58 2 24쪽
38 38화 19.11.01 62 1 23쪽
37 37화 19.10.31 57 1 24쪽
36 36화 +2 19.10.30 61 1 22쪽
» 35화 19.10.29 65 1 22쪽
34 34화 19.10.28 61 0 23쪽
33 33화 19.10.26 72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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