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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탄 님의 서재입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추리

강정탄
작품등록일 :
2023.07.08 11:38
최근연재일 :
2023.10.14 22:39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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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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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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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5. 한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DUMMY

김현우는 그의 말에 흥미를 느끼면서 물었다.


“그게 누구요?”


김현우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귀를 의심케 했다.


“닥터 김일규지요.”


김현우는 술이 확 깼다.


“누구라고요?


김현우 요원이 되물었을 때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김일규 박사예요.”


그 신문사의 여기자가 들어서며 말했다. 여기자를 본 김현우는 급히 셈을 치르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왜 이렇게 서둘러서 나가요?”


이미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근래에 이렇게 취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김현우를 따라 나왔다. 김현우는 공원의 벤치에 기대어 앉아 중얼거렸다.


옛 시인이 이런 시를 읊었지.


‘공원의 벤치

나뭇잎은 쌓이고 흙이 되고 덮여서······’


거기서 김현우는 의식을 잃고 잠이 들었다.

그가 깨어났을 땐 여기자의 방이었다.


“평소에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자주 마시나요?”


김현우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빅마더의 어감을 느꼈다. 그런데 빅마더와는 업무적인 대화지만 여기자와의 대화는 사적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어조가 더욱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 않아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실 근래에 아멜리아 요원을 만난 때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은 없었다. 여기자는 커피머신에서 함께 마실 커피를 뽑으며 말했다.


“이 방에 들어왔던 남자는 딱 두 명이에요 당신과 김일규 박사.”


김현우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요. 그러면 당신은 김일규 박사의 연인?”


그렇게 말하고 김현우는 어젯밤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녹아웃이 되도록 자신이 과음을 했다는 것 외에 달리 기억나는 게 없었다. 취한 김현우에게 이 여기자가 친절하게도 잠자리를 제공해준 것이 전부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김현우를 노려보았다. 그는 멈칫 놀라,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나 걱정했다.


“당신은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그분을 모독하지 마세요. 그분은 정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인간이었어요. 우리가 사는 욕계의 인간이 아니고 무색계에서 존재할 고귀한 인간, 아주 고귀한 인간이었어요. 당신이 어떻게 그분을······.”


의외의 상황에 김현우는 당황했다. ‘음! 내가 그런 말을 하다니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양이로군. 큰 실수를 했어.’


김현우는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사과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빠른 목소리로 김현우를 쏘아붙였다.


그녀는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로 김현우는 그녀가 불교의 삼계를 언급하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하긴 김박사는 동양의 한국인이고, 과학자이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초월한 대표적 두뇌의 인물이다. 그런 김 박사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지식을 갖추는 건 기자로서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욕계(欲界)는 관능과 감각의 세계, 색계(色界)는 관능을 초월했지만, 아직 형태에 대한 생각이 남아 있는 세계, 무색계(無色界)는 모든 형태를 초월한 순수이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김현우의 머릿속에서 온갖 자료가 떠올랐다. 그는 부처의 말씀을 생각했다.


“욕계(欲界)의 중생에는 열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지옥, 둘째는 축생, 셋째는 아귀, 넷째는 사람, 다섯째 아수륜, 여섯째 사천왕, 일곱째 도리천, 여덟째 염마천, 아홉째 도솔천, 열째 화자재천, 열한 번째 타화자재천, 열두 번째 마천이다.”


김현우는 외우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욕계의 중생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욕계의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김현우는 여기자가 김일규를 성인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사실 김현우도 김 박사를 좋아했다. 한때는 그의 우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김현우와 김일규 박사 둘 중 하나가 없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내 김현우는 냉정을 되찾았다. 시기와 질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태초에 가장 큰 죄도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되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시기심과 질투심 때문이었다. 멀리서 김일규를 우상처럼 바라보는 것과 가까이서 그의 위대함에 자신의 초라함을 느낄 때와는 그 감정이나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김현우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럴수록 자신이 추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상념에 잠긴 김현우를 바라보던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이 내게 김일규 박사님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떤 것이죠?”


김현우는 가상화면을 켰다. 그리고 질문을 시작했다.


“당신이 김일규 박사의 자살 소동에 관해 취재했잖소. 그것은 김일규 박사가 지나치게 많이 술을 마셔서 일어난 소동이라고 보도했는데, 그때 당신이 김일규 박사에게서 받았던 인상에 대해서 말해 주었으면 좋겠소.”


그녀는 생기와 호기심을 되찾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됐어요, 조금 전엔 안하무인처럼 굴더니 이제는 얼음처럼 냉정한 이성적인 인간으로 변했어요.”


빈정거리는 듯한 그녀의 말에 김현우는 톤을 높여 재촉했다.


“그만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김현우의 태도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 당신의 연극은 사계절이에요. 당신의 변화무쌍함은 기가 막히는군요. 예술이에요.”


그녀는 꿈을 꾸는 듯 횡설수설했다.


“당신과 나 둘 중 하나는 정상이 아닌 것 같군.”


김현우의 말에 여기자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 미친 사람이 누구인 것 같아요?”


“그야 물론 당신이지.”


그녀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런지도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이죠, 만일 하나라도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기면 어떨까요? 당신의 감각기관이 망가져 잘못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녀의 말을 이해하려고 곰곰이 생각하던 김현우는 그녀의 말이 전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그녀는 김현우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묘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김현우는 신뢰를 보낸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날 김일규 박사는 술을 아주 많이 마셨어요. 그리고는 코스모스 빌딩 29층에서 떨어져서는 19층 성조기 게양대에 옷자락이 걸려서 매달려 있다가 다시 떨어졌죠. 그리고 마침 아래를 지나가던 선전용 애드벌룬 차량에 떨어져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어요. 발표한 것처럼 그때 김일규 박사께선 사전에 그 일련의 과정들을 전부 계산했고, 그리고 박사님은 그 계산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자신이 확인한 것뿐이라고 말했지요. 어떤 신문에서는 박사님이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고 했지만 그건 전혀 근거 없는 소리예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험을 했던 거예요. 그만큼 미래 예측에 자신이 있었던 거예요.”


그녀의 설명이 거기에 이르자 김현우는 그녀가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방을 나섰다.


김현우는 데니 요원에게 달려가 정보실 컴퓨터의 사용을 부탁했다. 데니 요원은 그러라는 말을 했지만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김현우가 김일규 박사의 정보를 요구하자 컴퓨터는 개략적인 그의 자료를 제공했다. 생각과 달리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다. 최근 10년 전부터 박사의 행적은 외부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김현우는 박사가 무엇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김현우가 지난번 ‘조난위성 흑장미’ 사내를 통해 본 것처럼 박사는 자신을 복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한다면 웃고 말 일이겠지만 김일규 박사라면 능히 그럴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업적을 이뤄낸 사람이었다. 그는 인류문화를 총 집산시켜 놓은 초자아 컴퓨터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자연계의 섭리를 가장 잘 이해한 인간이었다. 과연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을 복제하는 일을 시작했을까? 이때 그가 깎고 있던 목각 인형이 떠올랐다. 그것은 다 완성되어 있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거기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김현우는 즉시 자료 보관실로 가서 그 목각 인형들을 조사했다. 거기에는 세밀한 지형도와 함께 시가 새겨져 있었다.


지하를 다스리는 여장군

그의 머리를 지하로 향해

모든 것의 근원인 대지가

그의 머리를 덮고

하늘을 향한 대장군

여장군 위에 설 때

여명의 빛이 비치며

내 의지가 이루어질 것이니

뜻한 대로 될지어다


전자 투시기에 올려놓자 목각 인형의 내부에서 금속성이 탐지됐다. 김현우가 찰리에게 분해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데 김일규 박사의 제작물들은 분해를 하려고 시도하면 큰 폭발을 일으키며 모두 소멸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제3국에서 김일규 박사의 기밀을 탐지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 원인이었다.


김현우는 김일규 박사가 목각 인형에 새긴 기묘한 어구들을 생각하면서 파이오니어 호텔로 돌아왔다. 가만히 드러누워 지난 모든 일을 천천히 정리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복잡해지기만 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김현우는 호흡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런데 문득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무었일까 살펴보았지만 알 수는 없었다.


“설마 김일규 박사가······.”


머리를 때리듯 번쩍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내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김일규 박사는 너무 뛰어나다.


김현우는 조난위성 흑장미에 주파수를 맞추고 유성 셋이 낙하한다고 발신했다. 몇 분 후 지난번에 만났던 그 정보원이 나타났다.


“흑장미에 유성 셋이 낙하했지요. 당신이 가진 정보는 박사가 복제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그가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었다. 김현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당신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어.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내가 바보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지!”


김현우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재빨리 피했지만, 김현우의 두 번째 주먹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장식용 도자기를 움켜쥐려 했다.


“당신의 수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바보가 아니란 뜻이지.”


이때 문이 열리면서 권총을 든 찰리가 들어섰다.


“그는 제3국의 스파이. 본 정보국 스크랩 No. 11121에 있는 자요.”


챨리는 권총을 내렸다. 그리고 사내에게 말했다.


“데니의 아내가 당신의 동생이지.”


찰리가 이미 확인이 끝났다는 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군. 짐작은 했지만, 그러나 쓰레기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야.”


‘조난 위성’은 돌연 소형 캡슐폭탄으로 유리창을 부수고 19층 파이오니어 호텔 아래로 뛰어내렸다.


유리가 깨어지고 몇 초까지 그는 공중을 나는 쾌감을 맛보았을까, 김현우는 상상해 보았다. 아마 마지막 쾌감일 것이었다. 김현우는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점프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매우 공포스러운 순간이 지나면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지상으로 내려갈수록 세상은 지저분했다. 뭐든지 가까이서 보면 추해졌다.


“찰리, 내가 김일규 박사를 대신하는 그 고철덩이를 만날 수 있겠소? 그 고철덩이가 김일규 박사를 해쳤는지 물어보고 싶소.”


김현우 요원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찰리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가 이미 물어봤지만 부인했소. 그리고 김일규 박사를 대신하는 인조인간은 고철이 별로 들어 있지 않소. 얼마나 위대한 예술품인지는 모르지만 전 미국의 아니, 전 세계의 학자들이 김일규 박사의 활동에 놀라고 있소. 목성의 농장이 완성됐고 잠재적인 우주 전쟁에 대비한 전략계획도 거의 완성하고 있다고 들었소.”


김현우는 비꼬듯이 말했다.


“그럼 그 인조인간이 수많은 김일규 박사의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군.”


김현우의 빈정거림에 찰리가 차갑게 말했다.


“그 인조인간 앞에서 그를 모독하는 말을 하지 마시오. 그는 살아있는 완전한 김일규 박사와 다를 것이 전혀 없소. 그는 자신을 복제하는 것을 거절했소. 김일규 박사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시오. 당신은 곧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전에 김일규 박사를 한 번 만나게는 해주겠소.”


김현우는 정보원 ‘조난위성 흑장미’가 뚫어 놓은 창구멍으로 말없이 다가갔다. 어쨌거나 달과 별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인들은 저 밤하늘의 보석 하나하나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기길 열렬히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위대한 생물, 교활한 생물인 인간에게 찬사를······.


TV를 켜자 달에서 발굴된 유적과 그 외의 행성에서 발굴된 유적을 논하고 있었다. 인간 외에도 지능을 가진 생물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이 미지의 것에 대비한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사회자가 역설하고는 토론을 끝마쳤다.


김현우가 텔레비전을 끄고 앉아서 사건의 전개 과정을 검토하고 있을 때 데니가 찾아왔다. 그의 표정을 보고 즉각 그의 처남 때문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김현우는 말없이 와인 한잔을 따라서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가볍게 밀치며 사양했다. 김현우는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한동안 무겁게 흐르던 침묵을 데니가 마침내 깨뜨렸다.


“내 처남이 제3국의 스파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요.”


김현우는 정면으로 데니를 보면서 말했다.


“결국에는,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런데 당신은 왜 그를 회유하지 않았소?”


데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노력을 했소. 하지만 어떤 사람이 가진 신념이나 철학은 그의 실생활에 별로 쓰임이 없지요. 그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걸 어떻게 바꾼단 말이오.”

김현우는 데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군······.”


데니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가 내 생각을 바꾸지 못했듯이 나도 그를 바꿀 수 없었소. 사실상 인간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남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일 거요. 그런 경우에는 거의 두 사람은 원수가 되기 십상이요.”


김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사실 그는 가엾은 존재였다. 김현우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우 요원! 나는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목성 개척지로 지원하려고 하오. 이 직업에도 이젠 이력이 났소. 내 아내도 목성으로 가는 것을 찬성했다오.”


목성으로 간 사람들은 좁은 거주지 환경에서 오는 구속감과 권태 때문에 정신이상 증세를 곧잘 일으켰다. 그곳에서도 의식주는 해결되겠지만, 옛날 어느 현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군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내게는 인간이 다른 어떤 것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 같은데······.”


김현우의 말을 듣던 데니가 오히려 슬픈 눈으로 김현우를 쳐다보더니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김현우는 데니의 동정 어린 눈빛을 보고 낮은 목소리로 자문하며 말했다.


“그가 왜 나를 동정하였을까? 정말 의외의 일이로군”


김현우는 어떤 모욕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데니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김현우의 몸은 납덩이처럼 무겁기만 했다. 김현우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현우는 화면을 켜고 빅마더를 불러서 미 정보국 NO.11121 파일에 있는 자의 정보를 요구했다. 화면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왔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제 2함장 역임. 미정보국 우주 제1정보팀장으로 근무하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후 정서장애를 일으켜 퇴직함. 이후 불분명한 이유로 철십자단에 포섭되어 인위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임. 우주 개척자로 지구를 떠났어야 할 인물인데 어떤 이유로 인지 추방되지 않고 있음. 대 태양계 우주정보 일인자임.」


김현우는 철십자단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으나 무시하기로 했다.


태양계에만 해도 거친 해적 스타록 선장과 코브라 톡신스 등등 우주에는 기이한 인물들이 많았다. 일일이 그들에게 다 신경을 쓴다면 아마도 평생을 스크린 앞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빅마더가 관리하는 20명의 요원은 모두 주요 위험인물들이나 단체의 활동을 견제하고 방해했다.


김현우는 김일규 박사에 관해서만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인류는 22세기를 넘어서면서 지구 전체 내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우주 식민섬 계획이 시행되자 많은 우주 개척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흉악범들을 모두 우주 개척자로 내몰았다.


모든 범죄자는 지구를 떠나 열악한 환경이 기다리는 우주 식민섬으로 떠나갔다. 데니도 보안 규정을 어겨서 그 처벌로 우주 식민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로 떠나가는 데니를 보면서 김현우는 자원해서 저 암흑이 기다리는 미지의 우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우는 객실에서 우주 공간 화면을 켰다. 사방에서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 공간을 걸어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상공간의 화면은 실제의 우주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만들어졌다.


객실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김현우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지하여장군···, 천하대장군···. 김현우가 침대에 앉아 그 글귀를 생각했을 때 마침내 글귀의 의미가 풀렸다. 아주 단순히 그 시구는 순차적인 행동을 지시하고 있었다.


찰리는 김현우의 행동을 의아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김현우 요원은 지하여장군의 머리를 흙에 묻고 천하대장군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두 개의 조각품이 회전하더니 하나의 둥근 공으로 바뀌었다.


김현우는 그 공이 너무 뜨거워 황급히 손을 움츠렸다. 공에서 김일규 박사가 나타났다. 홀로그램은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듯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신가 여러분들, 친애하는 김현우 요원 그리고 찰리 요원. 그대들은 모두 빅마더가 보낸 사람들이지. 너무 놀랄 필요는 없네.


김현우 요원! 나는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아닌가! 내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0.6666초의 오차는 항상 따라다녔다네. 그 오차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쉽지가 않았네.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났지. 나는 이 오차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어. 그런데, 마치 기상 상태를 파악하고서 일기를 예보하듯이 나는 인간의 습성 몇 가지를 조사함으로써 그 인간의 미래를 계산해 낼 수 있었네.


나는 나 자신을 실험 도구로 삼았다네. 만일 내가 창조주를 대면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만들었다네. 나의 습성과 기억 그리고 나의 단점까지 모두 집어넣었지. 그리고 내 자신을 완전히 숨겼다네.


이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할 수 있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김현우. 자네는 유일한 내 동생이라네. 김현우 요원과 나는 김태환이라는 두뇌학자의 작품이지.


세포의 발생 과정에서부터 두뇌 자극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보통사람보다 두뇌 사용능력을 강화했지. 1001개의 수정란을 실험대상으로 삼았으나 인공배양에 성공한 것은 김현우와 나 둘뿐이었어.


나는 원하기만 하면 오래전 과거의 진실을 알 수 있지. 하지만 나도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야. 내가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건 0.6666초의 오차이지. 이 오차 때문에 나의 예측이 달라진다면, 나보다 위대한 어떤 존재가 바라보고 있다면, 만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가 있다면 나는 그의 꼭두각시일 뿐이야.


앞으로 10시간 이내에 나는 세계를 지배할 것이네. 10시간 후에는 내가 준비해둔 모든 계획이 시작된다네. 그러면 전쟁의 위험과 기아에서 극복될 것이네.


모든 인간의 문제점과 한계가 극복되고 내 분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되지. 모든 인간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더 이상의 불행은 없게 된다네. 대지에 위대한 축복이 있을지이니······.”


김일규 박사의 목각 인형이 변형되어서 만들어진 공은 김일규 박사의 메시지를 전달하자 즉시 소멸되어버렸다. 김현우가 예상했던 대로 김일규 박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괴물 같은 김일규 박사는 죽어서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찰리, 즉시 김일규를 대신하는 인조인간을 만나야겠소. 그는 아마 10시간 후면 세계를 정복하려고 시도할 거요.”


김현우가 황급히 소리쳤으나, 찰리는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김일규 박사가 인류를 행복으로 이끈다고 약속했잖소.”


김현우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세계가 통일되어 통치하는 것이 행복하다면 진작에 그렇게 되었겠죠.


모든 것은 다르고 다른 것은 저마다의 특성을 유지한 채로 있는 것이 우주의 섭리요. 통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억지이고 모순투성이인지 모른단 말이오. 이제 김일규 박사를 누가 죽였는지 알 것 같소.”


김현우 요원의 말에 챨리가 의아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누구란 말이요, 김일규 박사를 죽인 자가······.”


김현우는 대답 대신 찰리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갑시다.”


그들은 이마의 땀을 닦는 것도 잊은 채 김일규 박사의 연구실로 뛰어 들어갔다. 김일규의 분신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당신이 김일규 박사를 살해했소!”


김현우가 인조인간에게 말했다. 박사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엉뚱한 말을 하지 말라는 몸짓을 했다.


“내가 김일규요.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떻게 당신이 나를 의심한단 말이오!”


김현우는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을 듣자 어리둥절해졌다. 이때 그의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김일규 박사가 항상 생각하던 문제는 위대한 존재의 유무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이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힘들다. 천재일수록 자신을 알기가 더욱 힘들지.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비밀을 풀려고 애썼다!”


김현우가 중얼거리자 챨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누구에 관한 얘기요?”


김현우가 말했다.


“김일규 박사!”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황한 김일규 박사뿐만 아니라 김현우 요원과 찰리도 어색하게 서 있었다.


“창조자···. 김일규 박사! 당신은 창조자를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지요.”


김현우 요원의 질문에 김일규 박사는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희미한 의식 속에서 내 모습과 비슷한 창조자를 보았소. 그가 나무를 조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칼질을 하면서 내게 속삭였소. ‘내가 너의 창조주란다. 만나서 기쁜가’ 하지만 나는 그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소. 그는 창조주였기 때문에 파괴했소. 그가 창조주라면 나는 꼭두각시일 뿐이며 그건 내게 한계를 안겨주기 때문이요.”


김현우는 김일규 박사에게 일어난 사건의 모든 내용이 이해되었다. 이 인조인간은 자신을 김일규 박사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이 김일규 박사라는 것을 사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정말 한계에 직면하게 된 것이요. 당신이 죽인 창조주에 의해서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소. 이제 당신은 발전이란 걸 기대할 수 없소. 당신은 당신이 파괴한 창조주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갖고 있소. 아주 적은 기억, 아주 적은 감성, 아주 적은 능력······.”


김현우 요원의 말을 듣던 인조인간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계라는 것은 파괴되어야만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에서 저것으로 변형될 뿐이다. 태초에 생겨난 것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나의 사고는 남는다. 이것은 특수한 형태의 물질이다. 영혼이라는 이름의······.”


말을 하다가 그 인조인간은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일규 박사의 홀로그램이 다시 나타났다.


“김현우 요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나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의도라고는 하지만 자연의 흐름이 아닌가.


모든 것이 흐르고 흘러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듯이 내일도 그러할 것이네. 오늘이 어제에서 본다면 미래이지 않은가.


나는 자네가 자랑스럽네. 왜냐하면, 가장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지. 내가 처음 이 세계를 장악하게 되었을 때 파괴하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 내느라 굉장히 애를 썼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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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인터스텔라 아스트로노머(Interstellar Astronomer)’호의 출항 23.10.14 11 0 4쪽
7 7. 아라무 무루, 차원의 문 23.10.14 3 0 14쪽
6 6. 존재의 목적을 찾아라 23.10.14 3 0 15쪽
» 5. 한계는 파괴되어야 한다. 23.10.14 4 0 25쪽
4 4. 악마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 23.10.14 4 0 17쪽
3 3. 베일속의 김일규 박사 23.10.14 3 0 12쪽
2 2. 대통령과의 면담 23.07.09 20 1 9쪽
1 1. 인공지능 빅마더의 긴급 명령 23.07.08 3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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