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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아. 님의 서재입니다.

혈통빨로 아카데미 수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우우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2 18:30
최근연재일 :
2021.04.29 12:1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073
추천수 :
156
글자수 :
93,502

작성
21.04.21 12:10
조회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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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측정기 (1)

DUMMY

“속성에 대해 배웠다고?”

“네.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기사에게도 꼭 필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드가 첫 수업에 대한 감상을 전했다.

군드렌은 시큰둥했다.


“기사와 마법사가 섞여 듣는 강의는 마물학 뿐이야.”

“대체 왜 그런 겁니까? 필요하다면 가릴 이유가 없는데.”

“기사는 기사로서, 마법사는 마법사로서 인정받으려는 거지.”

“고작 경쟁심리 때문에 분열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네요.”

“평화가 너무 오래 된 거지. 다들 나태해 진 거야···.”


자연스레 말을 주고받던 군드렌은 불현듯 묘한 기분이 되었다.


‘이 어린애랑 내가 무슨 말을···.’


대화의 상대가 다름아닌 열 살 신입생이었다는 걸 상기한 탓이다.

첫 만남부터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사제지간의 벽이 금방 허물어지고 있었다.


“변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허, 문제가 있는 건 맞지만 신입생도인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군드렌은 고개를 저었지만, 녀석의 눈빛은 진지했다.

대체 뭘 안다고 쪼그만 게 위기를 논하는 건지···.

교수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사생아라며 ‘로이츠 가’를 까내리려는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이 아이를 직접 본다면 의심따윈 사라지리라.

이 아이는 제 아비를 빼닮았으니까.


‘재밌네.’


군드렌은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근 수년간 이토록 즐거웠던 적이 있었는가.

직속 제자가 없게 된 이후로 연구에만 몰두했거늘, 이 아이는 자신이 교육자가 된 이유를 상기시킨다.

이번 아이들은, 정말 제대로 키워보고 싶어졌다.


“자, 받아라.”

“이게 뭡니까?”

“마기를 감지해낼 거다. 강도에 따라 붉은 점으로 보여줄 거야.”

“오···.”


이드는 개조된 팔찌를 이리저리 살폈다.

달라진 거라곤 점이 다섯 개 그려졌다는 건데, 이게 마기를 감지한단다.

역시, 스승님은 대단한 분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마나를 쓰는 게 안전한지 아직 몰라. 분명한 건, 네가 마나를 사용할 때마다 마기가 배어나올 거다.”

“제 몸을 감시하는 용도였군요.”



주먹을 말아 쥔 이드가 전신의 오러를 끌어올렸다.


띡- 띡-


그러자 팔찌의 점 두개가 붉게 물들었다.


“허. 두 개라니.”

“두 개면 어느정도 입니까?”

“중하급은 된다고 봐야지.”

“중하급···.”


이드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몰두했다.

군드렌이 정리한 마물의 등급에서, ‘숲의 주인’은 중하급 정도.

자신은 마물이 아니니, 이 ‘중하급’이라는 수치는 숲의 주인에게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는 건···.


“네가 흡수한 마물의 마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 얘기지.”

“아···!”


아귀가 들어맞으니 머리가 뻥 뚫리는 듯했다.

동시에 두근거렸다.

마물의 힘을 흡수하고, 이용할 수 있다면···.


“뭘 안심하고 있냐. 마기에 잠식당하면 그대로 리치 되는 거야. 아니지, 너 정도면 그냥 구울인가?”

“듀라한···.”

“미친놈.”

“큭큭.”


마주 웃음을 흘린 군드렌이 말을 이었다.


“뭐, 근처에 마물이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그럴 일이 있겠냐만.”

“감사드립니다.”

“오냐.”


군드렌이 말을 마치자, 그의 뒤에 문이 나타났다.


“이만 가자.”

“네, 스승님!”


*


“영문을 모르겠군.”


레델란 지이크는 어깨까지 오는 붉은 머리칼을 양손으로 쓸어넘겼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기껏 체면을 깎아가면서 교수진에게 로이츠의 사생아를 인식시켰거늘.

그 사생아는 엉뚱하게도 마법사를 지명했다.

그것도 인기 최하위의, ‘괴짜 마법사 군드렌 리히터’를.

이드리엘이 로이츠의 핏줄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추종자’들은 사생아에 걸맞는 선택이었다며 비웃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넘어갈 일인가···.


“어쩐다.”


놈이 기사학부의 누구를 지명하든, 그 교수를 압박할 생각이었다만.

마법학부라면 얘기가 다르다.

언제부턴가 기사와 마법사는 서로를 완전히 분리했으니.


압박이 아니라 대놓고 묵살을 내줄 수도 있다.

다른 교수였다면 말이다···.


‘왜 하필 그 자를?’


...인기순위 최하위 교수를 건드리는 건, 다 큰 어른이 어린애를 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원로원의 지적을 받은 상황에, 또 한번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쪽이 감수할 부분도 작지 않으니.


‘설마···!’


레델란은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설마하니, 그 어린애가 보복을 예견했을 리가 있겠는가.

하이베른이 경고했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금전적 지원도 끊어버릴 정도로 자식을 내모는 자이니···.


다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차, 차라리 잘 돼써요. 아버지.”

“... 아들아. 대체 뭐가 잘 됐다는 것이냐.”


앉아있던 로드릭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듬성듬성 빠진 이로 발음이 새어 나가니, 최대한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놈이 없으면, 신입생 중에는 제가 수석이지 않게씀까.”

“수석? 무슨 근거로?”


레델란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제 아비 속도 모르고 저리 한심한 소리를 해댄다.

빠진 이는 다시 나겠지만, 뼛속 깊이 새긴 공포를 극복할 수 있을런지···.


“공용 연무장에 ‘측정기’가 있는 건 아시죠? 목인을 상대로 수련하는 마도구요.”

“알고 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최근 도입된 수련용 마도구가 호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보고 받았다.

기록과 함께 이름을 남길 수 있어, 생도들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장점이라던 조교의 말을 떠올렸다.


“신입생 중에서는 제가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슴다, 아버지.”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하나, 자만하지 말거라. 명문가 출신이 아니더라도 재능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걱정 마세요, 아버지. 요즘은 정말 제대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제 검을 버티는 녀석이 없어서 대련은 못하지만요.”

“...믿으마. 지금처럼만 하거라.”

“넵! 아버지!”


떵떵거리는 아들을 보니 속이 들끓었지만, 레델란은 한번 더 삭였다.

철 없이 키운 자신을 탓할 일인지. 차라리 완전히 꺾여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리라.


‘그래..., 차라리 놈이 눈에 띄지 않는 게 낫겠지. 로드릭이 극복할 때까지는.’


이드리엘···. 제 아비를 닮았으니 오러를 타고났을 터.

그런 녀석이 마법학부에 묶여있으면, 졸업은 커녕, 커리큘럼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낙제할 것이다.

고립시키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기사학부의 다른 교수들이 추후에라도 다시 지명하는 걸 막는다.

오래 신경쓸 필요도 없다.

첫 시험만 치르고 나면, 학부를 옮길 수 없으니까.


“아들아.”

“네, 아버지.”

“...걱정 말거라. 이 애비가 있잖느냐.”

“물론이죠, 이만 가보게씀다!”


벅찬 표정으로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레델란은 지긋이 바라보았다.

로드릭이 못보는 사이, 그 표정은 분노로 물들어갔다.

화를 절제하는 듯, 그의 붉은 머리칼이 서서히 부양했다.

탁상이며, 벽에 장식된 검과 방패가 진동했다.


‘하이베른···. 빌어먹을 로이츠···!’


저 작고 어린 녀석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준 건방진 사생아와, 그 아비를 떠올리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놈을 쫓아내고 나면···, 다음은 로이츠 가문이다.’


레델란은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


‘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사학부 공용 연무장.

중앙에 설치된 널찍한 단상에는 투박하게 생긴 목인(木人)이 늘어서 있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수십기가 넘는데,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기감을 돋우면 단상 아래 몇 기가 더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몰래 오는 게 귀찮긴 해도, 수련엔 이만한 게 없지.’


기사학부의 연무장은 대체로 보안설비가 없다.

이곳에서 하는 일이라곤 쇠질로 몸을 혹사시키거나 검을 휘두르는 일 뿐이니까.

번거롭게 문을 걸어 잠궈봐야 불편하기만 하니, 개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무런 방해 없이 나는 ‘측정기’ 앞에 섰다.


“허, 이리도 멋진 공간이라니.”

“숙소 연무장도 나쁘지 않지만, 이만한 곳도 없지.”

“공감하네. 기사학부를 택하지 않은 게 조금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군.”

“아직 안늦었어. 받아줄 교수님을 찾아 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몸은 후회를 모른다니까?”


나는 슬쩍 웃으며 측정기를 살폈다.

이곳저곳 긁히고 깨진 돌장식에 잘 정리된 장비들까지.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추억이군.’


여느 대련장과 다르지 않은, 약간 높은 단상일 뿐인 이것을 측정기라 부르는 이유는 이 돌장식 때문이었다.


[ 1. R.S. / 4

2. A.T. / 3

3. H.W. / 3

.

.

.

]


“여기 새겨진 건 이름 같은데?”

“맞아. 저 목인들을 상대하면서 점수가 측정되지.”

“순위를 매긴단 말인가?”

“그래.”


나는 끄덕이며, 녀석에게 검을 던졌다.

검을 낚아챈 아드리안은 웃으며 검을 뽑아 자세를 취했다.


“이몸의 실력을 똑똑히 봐두라고!”


선언하는 그를 일별하며, 나는 버튼을 눌렀다.


끼릭- 끼릭-


축 늘어져 있던 목각인형이 잠에서 깨듯 뒤틀렸다.

이내 엉성한 기사처럼 자세를 잡았다.

목인1호는 작은 통나무 모양의 주먹을 휘두르려는 듯했다.


“무기가 없는 이는 상대하지 않는다만!”


스겅-!


아드리안은 소리친 것과 달리 목인1호를 사선으로 깔끔하게 베어냈다.

목인1호의 움켜쥔 나무주먹은 그대로 바닥을 때렸다.

아드리안은 납검하며 내게 말했다.


“너무 쉽군. 한 다섯기가 동시에 덤벼들도록 해주겠는가?”

“하나부터 제대로 상대하지 그래?”

“...!?”


흠칫 놀란 그가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목인1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아드리안의 머리가 있었을 자리였다.


“방심하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내 가벼운 조언에 그제야 납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새겨진 점수를 목인의 숫자라고 짐작했으리라.

일견 타당한 분석이었다.

신입생 패널에는 그 숫자가 한자리를 넘지 않으니까.


“어느 틈에 검을 쥔 거지?”


아드리안이 눈앞에 선 물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분명 두동강 났을 목인이, 멀쩡히 일어섰다.

심지어는 통나무 주먹에 돋은 목검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의 분석은 반만 맞았다.

숫자의 의미는 ‘단계(Phase)’.

일정 단계가 넘어가면 목인의 수가 늘어나긴 하지만, 그건 검을 든 목인을 제압한 뒤다.

아드리안에게 잘못이 있다면 난이도를 너무 낮게 잡고 있었음이었다.


“이거 재밌군!”


검 든 목인 1호를 제압하자, 목인 2호가 추가됐다.

이번엔 둘 다 검을 들었다.

아드리안은 제법 버티는 듯 했지만, 곧 수세에 몰렸다.

그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다인전은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


“크아악-!”


목인 2호에게 등을 후드려 맞은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비명에 목인들은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몸을 늘어뜨렸다.


나는 비석을 보며 말했다.


“오, 그래도 상위권인데?”


[ 1. R.S. / 4

2. / 3

3. A.T. / 3

.

.

.

]


석판의 위에서 두번째 칸이 비워졌다.

아드리안이 2위라는 뜻이었다.


‘얘도 충분히 대단한 녀석인데···.’


1위 자리에 새겨진 [R.S.]는 로드릭 지이크의 이니셜.

스승님의 테스트를 통과한 아드리안도 협공을 견디지 못했는데.

놈은 이 시점에 검 든 목인 둘을 제압하고 다음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저 타고난 걸로 1위라···.’


지금이야 또래 사이에서 대장놀음을 하겠지만, 놈의 성장은 얼마 가지 못한다.

천성이 게으른 녀석이니까.

로이츠 가문에서도 기사들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시간만 때우던 놈이다.

그런 놈인데···!


“... 분하군. 이 흠집들이 왜 생겼는 지 알겠어.”


내려온 아드리안이 돌장식을 보며 읊조렸다.

그 말에 내 고개도 절로 끄덕여졌다.

그의 기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기사는 자존심이 강하다.

아카데미에서조차 프라이드는 하나의 덕목으로 가르친다.

그러니 애꿎은 돌에 화풀이를 한 것이다.

긍지높은 기사를 자처하는 이가 제 수준을 쉽게 납득하지 못해서.


“이제 내 차롄가?”


제법 충격을 받은 듯 멍해진 아드리안을 보며, 나는 괜시리 팔을 돌렸다.

평소 온갖 고상한 척은 다 하는 녀석이니 금방 이겨내리라.

아마도 얼마 안가 벌떡 일어나며 ‘이몸은 좌절할 줄을 모른다!’고 소리치지 않을까.


“버튼 좀 눌러줘.”


...그러니 이제, 목인에게 집중할 차례다.

사실 너보다 내가 더 들떠있었거든.


나는 차분히 오러를 끌어올리며, 아무 감정 없을 목인 1호에게 죽일 듯 검을 겨눴다.

역시, 목인에다 누군가를 투영할 때 몰입이 잘 된다.


삑-


버튼이 울리고, 나는 곧장 발목을 튕기며 달려들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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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명식 (2) +1 21.04.17 35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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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숲의 주인 (1) +1 21.04.14 489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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