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우아. 님의 서재입니다.

혈통빨로 아카데미 수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우우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2 18:30
최근연재일 :
2021.04.29 12:1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074
추천수 :
156
글자수 :
93,502

작성
21.04.12 19:10
조회
794
추천
17
글자
13쪽

회귀

DUMMY

“대체 무슨 짓거릴 하고 다녔기에 내 피를 물려받고도 낙제한단 말이냐.”


싸늘한 음성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적어도···. 위로정돈 해주실 줄 알았는데.’


나의 아버지.

몰락한 로이츠 가문의 가주이자 잊혀진 전쟁영웅 하이베른의 표정엔 노기를 넘어서 비아냥이 어렸다.


“크흠, 로이츠 경. 조금 진정하시지요.”


꼬부랑 수염이 인상적인 류튼 가의 가주는 하이베른 앞에서도 여유로웠다.


“이드 군이 무재능··· 그러니까, 기사 작위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류튼 가는 로이츠 가문과의 연을 이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맹약’은 이드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기사가 되면···.”

“듣자하니 막내 아드님께서 아직 어린 나이에도 재능이 출중하다지요? 류튼 가에서 반트 군을 후원하면 어떻겠습니까?”

“음, 그럼 이드는···?”


류튼 가는 로이츠 가와 다르게 돈이 많다.

돈이 많은 자는 명예를 원하고, 고귀했던 자는 이름만 남은 명예를 파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 이젠 팔려가는 신세라니.’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깊이 공감했고,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시대를 풍미했던 검사 로이츠 하이베른의 피를 이어받고도 나는 아무런 재능도 발현하지 못했다.


“비록 이드 군이 재능이 없다곤 하나 본신의 능력은 출중하니, 본가에 보내주시면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저 말을 어찌 들으셨는지, 아버지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혼약을 맺었던 장남이 봉급제 기사로 전락하는데도 말이다.


‘내 약혼녀였던 사람이 어린 동생과 혼인하는 걸 모시며 살게 되는 건가?’


파혼의 이유는 납득했다.

류튼 가와 혼약을 맺은 건, 로이츠 가의 이드가 아니라 로이츠 가의 ‘기사’ 이드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미쳤군.’


창피함, 미안함, 분노.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지만, 역시 가장 큰 건 억울함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부던히 노력해왔으니까.

혈통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떠나겠습니다.”

“뭣!”


나의 선언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쓴웃음···, 비웃음. 그리고 분노.


“아버지도 한때 방랑기사셨잖습니까. 저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놈!”


쨍그렁-!


내 머리로 날아든 은접시가 요란하게 박살났다.

도금이었던 것이다.

몰락한 귀족이란 건 이리도 부끄럽고, 처량했다.

주르륵 흘러내린 피가 뺨을 타고 흘렀다.


“이드 군이라면 앨리를 잘 보필할 거라 여겼는데, 이렇게 아쉬울 데가.”


수염쟁이가 뻔뻔하게 입을 놀린다.

지금껏 내뱉은 미친 소리를 주워 담는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상석에 앉은 존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리라.


“류튼 경의 말이 맞다! 네깟놈이 어디 가서 기사 소리라도 들을 성 싶으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대체 나더러 뭘 어쩌라는!....”


나는 순간적으로 뒷말을 씹어 삼켰다.


로이츠 부인에게 안겨 눈물을 글썽이는 어린아이.

반트는 그저 몇 년 만에 보는 형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제 이름을 들먹이며 고함을 치니 두려울 밖에.


“...실례하겠습니다. 피가 앞을 가려서.”

“네놈이 정녕!”


아버지는 뭔갈 집어드는 듯했지만, 뭐가 또 날아오지는 않았다.


*


“도련님···.”


어릴 적 내 종자이기도 했던 한스는 차갑게 검을 휘두르는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후! 됐어, 물이나 갈아 줘.”


나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이마에 땀과 핏자국을 찍어내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오랜만에 한수 가르쳐 주던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더 이상 가르쳐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도련님.”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야. 재능이 없어서 더는 배울 수 없다니.”


뭐가 그리 죄송한지 고개를 푹 숙인 한스에게 차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순간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에 매몰돼버렸기에.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받아.”


한스는 주저했지만 굳은 내 표정을 보고는 이내 받아들었다.


“정말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왜, 같이 가주려고?”


다른 검을 집어들며 넌지시 뱉었건만.


“예.”


즉답은 예상 못했기에 잠시 멍해져버렸다가 이내 훗. 하고 웃어버렸다.


“부탁할게.”

“...그럼 갑니다!”


경쾌한 도약과 함께 내리긋는 검은 마치 허공에 생체기를 내는 듯했다.

그 하이베른이 천출(賤出)을 가문의 교관으로 임명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챙!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가볍게 받아내었다.


‘7할... 아니, 5할 정도인가?’


한스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전력으로 와라!”


나는 외치며 횡으로 그었다.

로이츠의 검술은 방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쾌검식.

대놓고 옆구리가 드러났고, 한스는 곧바로 틈을 파고 들어왔다.

역날이라서인지 빨리 끝내고 싶어서인지 직전과는 다른 속도의 검이 날아들었다.


“...!”

“이제 제대로 할 마음이 드나?”


내가 순간적인 탄력으로 옆구리에 검날을 쥐어버리자, 한스는 두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몇 합을 나눴을까.

나는 점점 압도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검로를 보는 눈. 위험을 읽어내는 감각.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본능.

정녕 재능이라 할만한 요소들을 갖고 있음에도 나는 인정받지 못한다.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 ‘재능’의 유무. 그 간극은 결코 메울 수 없으니까.

오러가 없는 기사는 그저 칼잡이에 불과하니까···.


“흐읍!”


조금씩 무너진 자세가 한스의 목에 치명적인 틈을 만들어 냈다.

소리를 낸 건, 결착이라는 의미.


“자...잠깐!”


한스가 다급히 외쳤지만, 나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 없다.

...아니, 죽일 수 없다.


콰르릉-!


휘둘러진 역날검이 굉음과 함께 시퍼런 기파를 내뿜었다.

절박한 상황이 되어서야 한스는 오러를 발현했다.

나는 저 한 수를 보기 위해 그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뚝-뚝-


애써 닦아냈던 이마에서 다시금 피가 흘렀다.

쥐고 있던 검은 저만치 날아가 버린지 오래.


“어째서!”

“...혹시 모르잖아. 목숨이라도 걸면 재능이 발현될지.”

“도련님....”


우울한 표정을 짓던 한스가 더없이 진지한 투로 말을 이었다.


“....도련님은 제가 처음 모시게 됐을 때부터 아주 총명하셨습니다. 책 뿐 아니라 종놈들의 지혜까지 탐하셨으니까요.”

“...”

“그 뿐입니까? 주인님께서 도련님께 검을 허락하시고 고작 한 달 만에, 몇 년을 수련한 제 검술은 완전히 파훼됐습니다. 술식으로는 한 번도 도련님을 이길 수 없었죠.”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 꼴을 봐라.”


오러가 없는 검술은 그저 휘두름이고, 마나가 없는 마법은 그저 중얼거림이니···.

신은 내게 둘 중 무엇 하나, 허락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느 한쪽이라도 물려 받았더라면···!’


“아니요. 도련님의 재능이 너무 강해서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전 알아요. 신이 있다면 이드님을 못 알아볼 리 없으니까요.”

“그것도 오늘까지였어. 마지막으로 목숨까지 걸어 봤는데도 안되잖아.”

“...하지만!”

“너도 알잖아. 세상 모두가 알지.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재능은 열리지 않는다.... 마법사는 마나를, 검사는 오러를 사용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지....”


뭔가 오물거리는 한스를 뒤로한 채 검을 주우러 가는데, 시야가 반쯤 검게 물들었다.


“.....ㄷ련님!”


‘...빌어먹을.’


연료통이 빈 보일러를 때듯, 있지도 않은 오러를 끌어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탈력감에 저항해봤지만, 나는 속수무책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이대로 죽는 게 차라리 나을까?

모르겠다.... 한스가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


그렇게 긴장을 풀었고,


“내 방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바랜 기억 그대로의 방에서 눈을 떴다.


‘이 무슨...?’


기절 전보다 몸이 가벼운데다 이마를 쓸어보니 흉터조차 없었다.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한스가 다가오는데, 어째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지?”

“두세시간 쯤 됐습니다.”

“얼굴은 왜 그 모양이야?”

“진지한 도련님을 상대했는데, 이정도면 다행이죠, 하하.”


얼굴은 웃는데 어째서 이리 어색할까.


똑-똑-


때마침 류튼의 가주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대뜸 내게 다가와 더없이 선한 얼굴로 말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군요. 마침 제게 하이포션이 있어서 천만 다행입니다.”


나는 전말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남의 영지에서 행패를...!’


한스에게 휘둘렀을 저 손모가지를 당장에 잘라버리고 싶었으나, 나는 그저 이를 악물었다.

자괴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젠장···, 빌어먹을!’


모든 사람들이 나 또한 하이베른의 피를 이어 재능을 개화하고 위대한 검사가 되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나는 그 기대만큼 가문의 수치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귀한 물건을 내어주어 고맙습니다.”

“평민이라면 3대가 누릴 정도의 가치이긴 하나, 이드 군의 건강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낮에 있었던 이야기는...”


내가 마치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선 오늘 류튼으로 함께하시어 회포를 더 풀고 싶었습니다만, 몸이 성치 않으시니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가 사라지고, 나는 쓰게 웃는 한스를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한스....”

“도련님, 류튼 가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언제는 같이 가겠다더니?”

“주인님이 날로 약해지십니다. 이드님마저 류튼으로 가시면 로이츠 가문은 완전히 지배당하고 말 겁니다.”


불경죄는 즉결처형이니, 한스는 오늘 두 번이나 목숨을 걸고 있었다.

한번은 내게 오러를 개방하였음이고, 한번은 지금의 발언으로.

그만큼 한스는 나를 신뢰하고, 가문에 충성한 것이다.


“고마워, 한스.”


더 할 말이 있을까.

무능한 주군이.


‘한심하네.’


손 쓸 도리 없이 당해버렸다.

영악하고 탐욕스러운 류튼 가주는 분명 이 상황도 계산했으리라.


천출임에도 로이츠의 교관이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진 한스와 로이츠의 피를 이었음에도 재능이 없는 나.

그에겐 둘 다 탐나는 먹잇감이며, 무엇을 취해도 만족스러울 테니.


*


창밖을 보니 꽉 찬 달이 유난히 커보였다.

손에 쥔 팬던트가 달빛을 받아 은은한 빛을 머금었다.


아무도 모르는 어머니의 유품.

다듬어진 청금석은 그 안에 우주를 담은 듯했다.


‘어머니.... 저는 반드시 돌아와 가문을 되찾을 겁니다.’


내가 오랜 기억 속 어머니를 끄집어낸 것은 분명한 결심에도 ‘로이츠’로서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있음이었다.


두근-!


“...?”


돌연 손바닥으로 뜨거운 기운이 엄습했다.

목걸이에서 빛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유품을 내던질 수 없었고, 혈관이 화끈거리는 걸 끙끙대며 견뎠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 이드리엘 폰 마테로이츠. ]


‘뭣?...’


검을 단련하는 자들은 ‘오러 유저’가 되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했다.

흔히 ‘심장에 새긴다’고 표현하는 감각이 이런 것일 줄이야.

인두로 지지는 고통이라기엔 너무나 따스하고, 충만했다.

나는 떠오르는 ‘무언가’를 손에 쥐지 못했음에도 내 것이라 확신했다.


“....이드리엘 폰 마테로이츠.”


무심코 읊조렸을 때,

두근-!

순간 몸이 휘청일 정도로 골통이 울렸다.

두근두근두근-


‘대체 뭐냐고!’


두 무릎이 바닥을 때렸다.

이러다 진정으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끄...으윽....”


나는 그저 뻐끔거리며 문고리를 말아쥐었다.

----!


속에선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세상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으로 변해갔다.


문고리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이 주욱 늘어지며, 창밖에선 달이 땅으로 파고들고 해가 떠올랐다.

내 팔은 점점 짧아져, 이윽고 똑바로 서있음에도 코가 손잡이에 닿을 듯했다.


‘내가...작아졌...어?’


주위를 둘러보니, 세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새 것 같은 공간이었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힘이 넘쳐..?’


뭔가 일어났음은 분명한데, 짐작을 해본들 의미가 없어 보였다.


‘세상에 시간을 돌리는 마법따위, 있을리가...’


고개를 털며 문을 여는데, 웬 사내가 때탄 얼굴을 들이밀었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처음이란 건 뭐든 기억에 남는 법.

나는 보자마자 이 남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미친!’


동시에 믿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이 상황을 파악하고 말았다.


“...한스?”


이 남자는 분명 내게 첫 인상으로 남아있는 한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혈통빨로 아카데미 수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협동전 (4) 21.04.29 164 7 12쪽
16 협동전 (3) 21.04.28 164 7 13쪽
15 협동전 (2) +1 21.04.27 196 6 12쪽
14 협동전 (1) 21.04.25 240 7 12쪽
13 오류 21.04.24 248 5 12쪽
12 태동 21.04.23 254 7 12쪽
11 측정기 (2) 21.04.22 258 10 12쪽
10 측정기 (1) 21.04.21 304 8 13쪽
9 속성 21.04.20 285 10 12쪽
8 괴짜 마법사 +1 21.04.18 311 7 12쪽
7 지명식 (2) +1 21.04.17 351 10 12쪽
6 지명식 (1) 21.04.16 391 10 12쪽
5 숲의 주인 (2) 21.04.15 396 10 12쪽
4 숲의 주인 (1) +1 21.04.14 489 12 12쪽
3 협상 21.04.13 585 11 13쪽
2 다짐 +1 21.04.12 644 12 11쪽
» 회귀 21.04.12 795 1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