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우우아. 님의 서재입니다.

혈통빨로 아카데미 수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우우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2 18:30
최근연재일 :
2021.04.29 12:1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6,075
추천수 :
156
글자수 :
93,502

작성
21.04.13 19:10
조회
585
추천
11
글자
13쪽

협상

DUMMY

소동 이후, 나는 다시금 방에 틀어박혔다.

몸 상태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생각을 뛰어 넘어선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통제할 만했어.’


로드릭을 묵사발 내던 장면을 떠올렸다.

초월적인 속도, 물리법칙을 벗어난 듯한 힘.

분명 오러유저의 특징이거늘, 찜찜한 이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질적인, 묘한 감각에 집중하자 서늘함이 온몸을 훑었다.


“마력이라니.”


이 손에 감도는 푸른 기운을 보라.

이것은 분명 ‘마나’다.

기사는 오러를, 마법사는 마나를 연료로. 각기 다른 기관을 통하는 게 상식이니.

지금껏 세계의 법칙이라며 쥐고 있던 것들이 붕괴되는 듯했다.



“스승님을 찾아야 해.”


한스처럼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인물.

스승님은 내가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던 그날 까지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분이니.


이번에는 이쪽에서 먼저 찾아가리라.


‘내 아버지가 하이베른인 것에 안도하는 날이 올 줄이야...’


영웅의 아들인 게 원망스러웠던,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으면 했던 나날들.

결국엔 가문을 떠나 방랑할 생각까지 했거늘, 지금은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었다.

위대한 하이베른은 나약한 새끼를 내모는 사자니까.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각성하라며 산으로 내몰렸던 기억에 헛웃음이 났다.

두 번은 못할 경험이었건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뛰어들 생각이다.


똑똑-.


방문이 열리고 집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련님, 가주전에서 호출입니다.”


말을 전하는 집사에게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착실한 모습.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알렌.’


겉은 평범한 집사지만, 그는 로이츠의 책사나 다름 없다.

이 영지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며, 그 만큼 아버지와 가까운 이도 없으니.

나는 넌지시 물었다.


“예. 아버지는 좀 어떠신지요?”

“주인님께선 한결같으시지요.”


즉답으로 들리나, 그 미세한 틈을 나는 느꼈다.

이 성 안에 가주의 안부를 묻는 ‘로이츠’는 없다.

하이베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했던가?

나는 다만, 그가 당황하길 바랐고, 또 알기를 바랐다.

‘진짜’는 나라는 걸.


“그렇습니까. 바로 가겠습니다.”

“...예. 그럼.”


*


“지이크 가의 가주 레델란이 면담을 청해왔습니다.”


집사 알렌은 주인에게 정중히 고했다.

답지 않게 눈을 빛내며 옅은 미소마저 머금었다.

이번만큼은 그도 주인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주눅들긴 커녕, 맹수의 피를 깨웠구나.’


아이들은 싸우면서 성장한다지만, 가문과 혈통이 어찌 이리 작용하는가.

로이츠 뿐만 아니다.

영지 내의 모든 귀족 자제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 나이에 그런 기백이라니.

이드는 더이상 철부지가 아니다. 오히려 눈여겨 볼 만하다.

어쩌면 그 아이가 ‘적통’이 아닐까···.


“지이크라... 기억에 없군.”


주인은 심드렁했다.

그는 검에 관한 건 무엇하나 잊는 법이 없는데, 기억을 못한다.

다분히 문 밖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리라.

맞춰주는 것 또한 집사의 몫일지니.


“전대 가주가 ‘대악마전’에 이름을 올렸던 바 있습니다.”

“흠. 한낱 잡부도 공이라면 공이니.”


쾅-!


열린 문으로 붉은 머리의 거구가 나타났다.

지이크의 가주는 머리색만큼이나 상기된 얼굴이었다.


“경께서는 말씀이 조금 지나치신 게 아닌지요!”

“아직 입장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알렌의 경고가 하이베른의 작은 손짓에 멎었다.

그 손끝으로부터 올려다보니, 철면(鐵面)의 입꼬리가 말려있었다.


“들어오너라.”

“...?”


아무리 그래도 반말이라니...? 동등한 가주인데?

의아한 레델란이 뒤를 돌아보니, 제 아들보다도 어린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여태 문 밖에 서있던 이드는 그제야 걸음을 뗐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음. 그래.”


하이베른은 속으로 웃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마냥 어린 줄 알았던 녀석이 갑자기 행실이 변했다.

상황은 전해들은 바, 긴장하는 게 당연한데도 불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어려도 될 나이거늘. 오히려 당당했고,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하이베른 공! 내 아들이 귀하의 아들 때문에 정신을 놓기 직전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보는데, 웬 불청객이 요란하다.


“그런가.”

“그 무슨 반응이란 말이오! 이런 식이면 어느 귀족이 로이츠 가문에 자식을 맡기겠소?”

“내가 다른 귀족가에 자식을 청한 적이 있던가?”


차갑게 식은, 심드렁한 투.


“하이베른 공!”

“네가 말해 봐라.”


턱짓하는 그의 표정은 무심했으나, 이드는 알고 있었다.

저만큼 온화한 표정도 없음을.


“지이크 가의 공자가 먼저 청한 대련이었고, 제가 이겼을 뿐입니다.”

“개소리!”


노성과 함께 레델란의 붉은 머리칼이 중력을 거스르며 떠올랐다.


꾸웅-!


거의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공간을 짓눌렀다.

떠오르던 그의 머리칼이 착! 내려앉았다.


“여기는 로이츠의 중심부요. 혹, 생사결을 원하면 당장 받아드리지.”

“...”


레델란은 오물거리다 이내 턱을 짓씹었다.

저 남자는 자신이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잠시 흥분한 건 사과드리오.”

“음.”


..저 무심한 표정이 위험한 거다.

자신도 검을 내세운 가문의 주인이거늘..., 저것이 정녕 인간이란 말인가.

하이베른은 인간의 탈을 쓴 드래곤은 아닐까?


“...하나, 짚고 넘어갈 건 확실히 해야 하오.”

“두 어른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때마침이랄까, 로이츠의 공자가 입을 열었다.

제 허리께만한 아이가 구사하는 예법이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 로드릭이 저놈 반만 했으면!...’


로드릭은 그나마 검에 흥미를 갖긴 하지만, 지이크의 검맥을 잇기엔 재능이 모자르다.

그나마 골목대장 정도는 하나 싶었더니, 결국 사생아 따위에게 깨지고 말았다.


‘피는 못 속인다 이건가···’


상석에 앉은 이는 기운이 태산같고, 마주한 아이는 돌덩이가 따로 없으니.

입안에 수분이 죄 마르는 듯했다.


“...들어나 보겠소.”

“말해보라.”


두 어른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드는 한차례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곧, 식었던 지이크 가주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지이크 가의 공자가 로이츠의 시종을 다치게 했으니, 셈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허! 좋다, 네가 로드릭을 반 병신만든 건 어찌하겠느냐?”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지이크의 공자가 제게 청한 대련이었습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건 인정하나, 귀 가문의 공자께선 저보다 오래···.”

“그만, 되었다!”


제 아들보다 어린 녀석이 유리한 부분마다 사람이 아닌, 가문명을 들먹인다.

애들 싸움을 키우려던 건 맞지만, 레델란은 뭔가 말리는 기분이었다.

외견에 속아 아이취급한 자신을 탓해야 하리라.


‘부자가 쌍으로 나를 물먹이는구나! 두고보자...’


“그래서, 셈은 끝났소?”


그 말에 레델란이 고개를 돌리니, 만족스러운 아비의 모습이었다.

누구는 아들놈 때문에 속이 쓰린데!

다만, 1초를 마주할 수 없어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죽을 맛. 입이 쓰다.

곧장 의회로 달려가 정식으로 항의할 테지만, 우선 이 깡패같은 부자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게냐?”

“유모가 온전히 회복하려면 하이 포션은 필요합니다.”

“하! 하이 포션?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기는 하는 게냐? 평민이라면 3대가···.”


레델란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자식이 기막힌 소리를 해대니 부모에게 따져야 할 것 아닌가...


“...뭘봐?”

“...?”


...한데 아비라는 작자가 더했다.

외려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니.

레델란은 누가 억지로 짓누르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소··· 이만 가보겠소···.”

“살펴 가시게.”


다시금 신사다운 태도를 보이는 하이베른을 보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돌아서는데, 아이가 주워섬겼다.


“원만히 해결되어 다행입니다.”


레델란은 ‘고양(高揚)’을 촉매로 하는 지이크의 심법에 역발상으로 벽을 두드린 기분이었다.

살면서 이만큼 인내한 적이 있었던가.


“이런 씨ㅂ!... 후우우···, ”


이드는 붉은 머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이크 또한 로이츠를 좀먹던 세력 중 하나.’


지금이야 하이베른이 영웅으로 건재하지만, 조금만 틈을 보이면 칼을 꽂을 터.

자식을 끔찍이 여기는 자이니, 로드릭을 구워삶는 게 방법이리라.


“오너라. 묻고 싶은 게 있구나.”


이드는 아버지의 부름에 상념을 깼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지난 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이 순간이 바로 그 답을 위한 첫발이었다.


“하문하십시오, 아버지.”

“음.”


이드는 가벼운 진동이 가슴께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아버지의 눈에서 번뜩이는 푸른 안광을 보았다.

극에 달하는 오러의 운용으로 파생된 권능,

마안(魔眼).


하이베른은 본신의 힘만으로 이미 대적할 자가 손에 꼽거늘, 고유한 능력마저 천외천이었다.


‘알몸이 된 기분이군.’


저 마안과 마주하는 것만으로 상대는 기량을 꿰뚫리는데, 기제가 육감(六感)따위는 아니란 거다.


“심장에 새겼는가.”

“예.”


재능이 개화했음을 확인한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훌륭하다.”


그 표정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저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던가.


‘왜 마나에 대해선 말씀이 없으시지?’


마안이라고 모든 걸 보여주진 않는 걸까.

애초에 틀을 벗어났으니, 인식하지 못하는가.


‘정신차리자. 중요한 건 아직이야.’


이드는 곧 잡념을 떨쳤다.

아버지의 환심을 산 건 분명 큰 성과다.

하나, 여기서 만족해선 안된다.


“아버지.”

“말하라.”


하이베른은 아들의 결연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퍽 귀여운 모습이었으나, 이어진 말은 조금 놀라웠다.


“로이츠를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뭐라? 크하하! 네 아비가 이리 건재하거늘. 저들은 그저 좀벌레에 불과하다.”

“속에 독을 품은 벌레들입니다. 황소도 벌에 쏘이면 앓을 것입니다.”

“허어, 내가 여태 너를 몰라봤구나. 이리 기쁨을 주니, 나도 상을 내려야겠지. 혹, 원하는 게 있느냐?”


이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애써 감췄다.


‘신중해야돼. 이런 기회가 다신 없을지도 모르니.’


“지금은 떠오르는 게 없으니, 다음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하라. 허면, 너도 이 아비의 청을 들어주겠느냐?”

“기쁘게 듣겠습니다.”

“나는 네가 ‘아카데미’에 갔으면 하는구나.”

“...물론입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이드는 이번엔 표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저 말을 직접 듣게 될 줄이야.


‘신중하길 정말 다행이군. 그럼 다음은···.’


이에, 하이베른의 표정이 한층 더 환해졌다.


“녀석, 오히려 바라던 것이렷다? 원을 하나 벌었구나.”


마안의 권능인지, 아비의 통찰인지 속을 들키고 말았다.

하나, 숨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으니 겸양떨 이유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의지 또한 꿰뚫어 봐 주시길.


“하면, 이제 청을 드리겠습니다.”

“말해보거라.”

“아카데미에 들어갈 지원금을 차단해 주십시오.”

“온전히 제 힘으로 서겠다?”


아카데미에서 귀족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든다.

명예와 힘을 좇는 영웅은, 경영에 대해선 문외한이니.

이드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하고자 했다.


“예. 다만, 금액의 일부만이라도 제가 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평소였다면 들을 가치조차 없거늘.”


입을 닫은 모습에, 그도 덩달아 숨죽였다.

하나, 표정으로 보건대, 기대할 만했다.


“청을 들어준다 하셨습니다.”

“...좋다. 알렌에게 일러둘 테니, 그와 상의하거라.”


‘됐다!’


하이베른은 덧붙이지 않았다.

한번 믿으면, 의심하지 않는 심지.

그 강직함이 후에 로이츠를 무너뜨릴 거라곤, 스스로 약해질 거라곤 상상조차 못할 터.


“감사드립니다.”

“하나, 의문이구나. 지원이 없으면 온전히 성과를 낼 수 없을 터.”

“저는 가문을 등에 업지 않습니다. 다만 앞장 서려는 것입니다.”

“...허.”


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묘한 표정이었으나, 걱정스럽진 않았다.


‘이번엔, 인정해 주실 겁니까··· 아버지.’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미룰 필요도 없었다.


“하여, 내일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아카데미에 닿는 것조차 지원이렷다? 이해했다. 하나, 혼자 보낼 수는 없느니. 조치해줄 터이니 그리 알거라.”

“감사드립니다.”


하이베른은 뒤돌아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정녕 열살배기 아이가 맞는가.

암만해도 건장한 청년의 기백이니, 지금은 그저 기특할 따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혈통빨로 아카데미 수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협동전 (4) 21.04.29 164 7 12쪽
16 협동전 (3) 21.04.28 164 7 13쪽
15 협동전 (2) +1 21.04.27 196 6 12쪽
14 협동전 (1) 21.04.25 240 7 12쪽
13 오류 21.04.24 248 5 12쪽
12 태동 21.04.23 254 7 12쪽
11 측정기 (2) 21.04.22 258 10 12쪽
10 측정기 (1) 21.04.21 304 8 13쪽
9 속성 21.04.20 285 10 12쪽
8 괴짜 마법사 +1 21.04.18 311 7 12쪽
7 지명식 (2) +1 21.04.17 351 10 12쪽
6 지명식 (1) 21.04.16 391 10 12쪽
5 숲의 주인 (2) 21.04.15 396 10 12쪽
4 숲의 주인 (1) +1 21.04.14 489 12 12쪽
» 협상 21.04.13 586 11 13쪽
2 다짐 +1 21.04.12 644 12 11쪽
1 회귀 21.04.12 795 1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