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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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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최근연재일 :
2023.06.25 23:55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6,675
추천수 :
372
글자수 :
205,830

작성
23.05.18 19:10
조회
216
추천
10
글자
13쪽

첫 번째 콩쿨

DUMMY

정하린.

그녀가 같은 중학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 연주.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한없이 차가운 바람이 덮치듯―


【―헌아!】

“아? 네!”


갑작스러운 현묵의 목소리.

화들짝 놀란 노헌은 연신 주변을 살폈다.

큰소리를 낸 탓에 그에게 몰리는 사람들의 시선.


【이번 역에서 내려야 해.】


때마침 멈춘 지하철.

주변의 눈총을 받으며 노헌은 서둘러 하차했다.


【정신 차리고 집에 가야지.】

“네···.”


중등부 콩쿨이 끝나고 노헌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고등부의 연주를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현묵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걸로 충분히 기운 차렸잖아?】

“네!”


그의 말대로 콩쿨 견학 전까지만 해도 초조함에 쫓기고 있던 노헌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연주가 수준 미달이면 어떡하나, 지레 먹은 겁, 하지만.


‘할 수 있을 거 같아.’


비록 하린과 비교하면 처참한 실력이었지만, 목표는 그녀가 아닌 이재은을 이기는 것.


【재은이라는 친구, 기본기는 탄탄하긴 하던데, 연주가 너무 밋밋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남은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늘 그렇듯 학교가 끝나면 연습실, 즉 리나네 집에 가 온종일 피아노를 쳤다.


【네가 마치 좀비가 된 것처럼 손끝을 제외한 온몸에 힘을 빼.】

【이 부분은 레가토로! 음을 이어서 부드럽게 쳐야 해.】

【항상 말하지만, 셋잇단음표 신경 쓰고.】


실수할 때마다 곧장 들어오는 피드백.

천재 피아니스트의 밀착 강의로 노헌의 연주는 다듬고, 또 다듬고, 계속해서 다듬어졌다.


그렇게 오고야 만 콩쿨 당일.


“오늘 컨디션은 괜찮은 거 같은데요?”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콩쿨이 열리는 연주회장.

그 앞에서, 둘은 오늘 아침, 연습실에서 있었던 마지막 리허설을 떠올렸다.

꽤 괜찮았던 마지막 연주.


【그래도 마지막 부분은 강약을 좀 더 조절하는 데 신경 써야겠어.】


현묵의 피드백을 곱씹으며 노헌은 로비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은 내부.

저번 견학보단 이름있는 콩쿨인지라, 건물도, 참가자도 모든 면에서 규모가 컸다.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찾아간 중앙의 데스크.

그곳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중등부로 신청한 이노헌이라고 하는데요.”

“이노헌··· 아, 여깄습니다.”


직원이 내민 것은 종이 한 장.

그것에 쓰여있던 것은.


“엥, 260번?”


노헌의 연주 순서였다.


【하필이면 마지막 순서네.】


다른 순서도 많은데 하필이면 마지막이라니.

온몸에 부담감이 차오르던 그때.


“이노헌, 오긴 했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당연히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이재은이었다.


【노헌아, 그냥 가자.】


콩쿨 전에 괜히 기운 빼봤자,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노헌은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지금 무시하냐?”


등 뒤에서 무어라 소리치는 재은.

노헌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텅 비어있는 회장.

점심시간이어선지 다들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180번이네.】


현묵의 말에 바라본 무대 위, 전광판에 180번이 표시되어 있었다.

중등부의 시작은 200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콩쿨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러본 회장.

그러다 한 여학생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하는 그녀.


【우리 쪽으로 오는 거 같은데?】


그의 말대로 그녀는 노헌의 앞에서 발을 멈췄다.

저번 견학 때도 마주쳤던 여학생, 정하린이었다.


“왜 안 나왔어?”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입을 여는 하린.


“뭐를?”

“저번 콩쿨, 왜 안 나왔냐고.”


견학 갔던 콩쿨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참가 신청도 안 했었는데?”

“뭐?”


하린은 당황스러웠다.

콩쿨에 참가도 안 했었다니.


‘그럴 거면 그때 왜 해명 안 한 거야?’


앞에 있는 남자는 분명 저번 콩쿨 때 그녀의 참교육을 부탁받았었다.

그가 영상에서 연주했던 곡도 쇼팽의 「겨울바람」, 하린의 콩쿨 곡과 겹쳤기에 당연히 받아들일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기다렸는데···.’


영상에서도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었기에 하린은 콩쿨 내내 그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휴식시간이 지나도 그는 끝끝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등부가 끝난 후, 어째서 나오지 않았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연주회장에서도, 로비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다.

애초에 노헌은 중등부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향했기에 그럴 수밖에.


“그럼 참가도 안 했는데 그땐 왜 왔던 거야?”


그녀에게 있어서 콩쿨이란 오직 참가할 때만 오는 장소였다.

전공생에게 콩쿨이 참가가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하린에게 노헌의 답변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냥, 견학이었는데?”

“·····견학? 그걸 왜 하는 건데?”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몇 번이든 왔었을 터인데, 굳이 시간 아깝게 견학을 왜 한단 말인가? 하린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그야··· 콩쿨에 처음 나오니까?”

“처··· 음이라고?”


그가 대답한 순간, 하린은 마치 앵무새가 된 것처럼 그의 말을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영상 속 그의 연주는 끝끝내 단련된 결정체였다.

그런 연주를 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을 터.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라고?’


처음에 든 감정은 놀라움, 그리고 끝은 실망감이었다.


“너, 바보야? 그 실력으로 여태 콩쿨에 안 나왔다고?”


만약 진작부터 콩쿨에 참가했다면 분명 상을 휩쓸었을 실력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영상 속 연주로만 본다면 현재 그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실력을 썩히다니, 게다가 콩쿨에서 상을 타면 예술고나 대학교에 진학할 때 도움이 된다고.”


너무나 안타까워 이야기하자, 한 마디, 툭 내뱉는 그.


“나, 전공 안 할 건데?”


하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던 눈앞의 남자.

그 실력으로 전공을 왜 안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럴 거면 이 콩쿨은 왜 나왔냐고 묻고 싶었다.


“지금부터 다시 콩쿨 재개하겠습니다. 181번부터 199번까지는 지금 대기실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그러나 야속하게 연주회장을 울리는 안내 방송.

하린은 입을 꾹 닫고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눈빛을 하는 그.

그녀는 홧김에 그의 옆자리에 앉아버렸다.



♪♪♪



‘얘, 대체 뭐지?’


갑자기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정하린.

그녀가 처음 다가왔을 때는, 저번의 오해를 풀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와서, 왜 뭐라고 하는 거야.’


왜 저번 콩쿨 안 나왔냐, 참가도 안 했는데 콩쿨은 왜 온 거냐, 견학 같은 건 왜 하냐, 콩쿨은 또 왜 처음 나온 거냐.


쉴 시간도 없이 들어오는 추궁에 마치 자신이 뭔가 잘못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전공 안 한다고 말한 건데···.’


더 이상 신경 써주지 않았으면 해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헌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의 옆에 눌러 앉아버린 하린.

참으로 답답한 심경이었다.


그 상태로 재개된 콩쿨.

전광판이 181번으로 바뀌자마자 고학년으로 보이는 초등학생이 무대 위에 들어섰다.

자신감 넘치게 피아노에 앉는 남학생은 곧장 연주를 시작했다.


청명하게 울리는 빠른 박자의 곡.


【슈베르트 「즉흥곡 2번」.】


역시나 모르는 곡이 없는 현묵이었다.


땡―


그렇게 연주를 하던 중 울리는 종소리.

피아노에서 손을 뗀 남학생은 그대로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조금만 있으면 나도···.’


무대 위에 서 있을 자신을 상상하자 노헌의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큰 대회에 나가보는 것도, 그리고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래, 실수하면 뭐 아쉽게 된 거지. 편하게 가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점점 중등부에 가까워지는 무대를 보고 있었는데.


‘뭐지?’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홱 돌리니 마주친 두 눈.

옆자리의 정하린이었다.


‘보통 몰래 엿보다가 들키면 눈을 피하지 않나?’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노헌과 정확하게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부담스러운 나머지 오히려 노헌이 눈을 피하자―


땡―


초등부의 마지막 연주를 뜻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중등부 200번부터 220번은 10분 후까지 대기실에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곧바로 울리는 안내 방송과 함께 순식간에 떠들썩해진 연주회장.

그 순간, 옆자리에 앉아있던 하린이 벌떡 일어났다.


“너 이름이 뭐야?”

“어, 나? 이노헌.”


뜬금없이 물어보는 이름.


‘그나저나, 내 이름도 모르고 계속 물어봤던 거야?’


노헌은 홧김에 입을 열었다.


“너는 이름이 뭔데?”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물어보지 않는다면 뭔가 지는 기분이었다.


“정하린.”


자신의 이름을 말하곤 갑자기 등을 돌리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녀.


“갑자기 어디가?”

“나 219번이야.”


그 말을 끝으로 하린은 연주회장 밖으로 사라졌다.


“220번 누군진 몰라도 되게 불쌍하네요.”

【그러게.】


하린의 뒤 순서가 될 220번을 안타까워해 주며 휴식시간을 보내던 도중이었다.


“너, 정하린이랑 아는 사인가?”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아! 깜짝이야!”


처음 보는 또래의 남학생이 하린이 방금까지 있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왁스를 바른 건지, 이마를 훤히 깐 포마드에 동그란 금테 안경.

마치 부잣집 도련님을 보는 듯했다.


“누구?”

“나를 모른다고?”


누군지 묻자,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는 남자.


“내 이름은 김준서, 똑똑히 기억해두라고.”


거만하게 손가락질하는 준서의 모습에 노헌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김준서가 누군데···.’


하지만, 더 물어본다면 피곤해질 것이 뻔했기에 말을 아꼈다.


“그래서 너 정하린이랑 무슨 사이지?”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데.”

“흠, 그래? 그럼 됐다.”


노헌의 대답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는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만, 계속 여기 앉아있겠다고?’


하린 같은 경우는 계속 쳐다봐서 부담스러웠지만, 지금 옆에 있는 준서는 그냥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겉모습, 성격, 말투, 행동까지 전부.


‘특히 저 이상한 헤어스타일은 뭔데.’


마치 엄마가 무대에 나가는 아들 머리를 손질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써 그런 준서를 무시하며 노헌은 지금 막 시작된 무대를 바라보았다.


쇼팽의 「흑건」.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고, 광장에서 이재은이 쳤었던 유명한 곡이었다.


“음, 별론데?”


그런데 연주 도중, 갑자기 작게 중얼거리는 준서.

처음엔 그저 잘난 척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말을 긍정하듯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울리는 종소리.

그다음 연주, 다다음 연주에서도 준서는.


“좋은데?”

“별론데?”


이 두 가지 중 꼭 하나를 꺼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말처럼 좋은데? 라고 한 연주는 종소리가 거의 연주 끝날 때쯤에야 났고, 별론데? 라고 한 연주는 맨 처음 「흑건」처럼 금방 끝이 났다.


【듣는 귀가 좀 있는 친구네.】


현묵은 그런 준서가 마음에 든 듯했다.


“별론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끝나고 만 218번의 연주.

전광판에 219번이 표기되는 순간.


정하린이 등장했다.


잠깐이지만 술렁이는 연주회장.

그러나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고요 속에서 시작된 하린의 연주.

곡은 저번 콩쿨과 동일한 쇼팽의 「겨울바람」이었다.


시작은 마치 폭풍의 전조.

긴장감 속에 잔잔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한순간이었을 뿐.


갑작스러운 전개와 함께 거센 바람이 회장 안을 뒤덮었다.

한없이 차갑고 강렬한 바람.

이 공간에 모든 사람이 얼어붙은 것처럼 무대를 쳐다봤다.


폭풍 뒤에는 더 강력한 폭풍이 기다렸고, 마지막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는 그때.

「겨울바람」은 회장 안의 모든 것을 휩쓸어가 버렸다.


오직 남은 것은 침묵.

하린이 무대 뒤로 사라진 후에야 노헌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곡이 끝날 때까지 종이 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여운을 곱씹으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중.


‘그나저나 220번 누굴까?’


하고 바라보자, 전광판의 표시되는 220번과 함께 무대 위로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

그녀는 바로.


“이재은?”


노헌의 내기 상대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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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콩쿨 +2 23.05.18 217 10 13쪽
8 천예중, 정하린 +2 23.05.17 216 12 11쪽
7 콩쿨 견학 +3 23.05.16 220 9 13쪽
6 뒷걸음질 +1 23.05.15 228 12 12쪽
5 천예고등학교 +1 23.05.14 235 10 12쪽
4 88명의 친구 +2 23.05.13 258 11 12쪽
3 시작의 아라베스크 +1 23.05.12 318 13 12쪽
2 피아니스트와 중학생 +1 23.05.11 396 10 12쪽
1 하늘에서 떨어진 피아니스트 +2 23.05.10 687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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