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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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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최근연재일 :
2024.06.2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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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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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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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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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2

DUMMY

물론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시나리오를 나열한 건, 그도 장난이었다. 그런 종류의 시나리오들이 흥미롭다는 점은 그 자신도 인정하지만, 이건 엄연히 현실이었다. 


“저기, 이거 몰래카메라죠!? 거기 누구 없어요?! 이제 그만 해요! 합의금은 싸게 해드릴게! 아, 아니다! 지금 나오면 고소는 안 할테니까, 제발 나와주세요!”


혹시 방송국이나 인터넷 방송 크리에이터들의 지독한 장난이 아닌가 싶어서, 주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를 카메라맨에게 협박했지만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주최 측 여러분? VIP님들!? 들리세요!? 들리시면 설명이라도 해주시지 않을래요!? 게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 고려는 해볼 테니까, 최소한 상황 설명이라도 해달라고요! 그게 도리잖아요!!”


여전히 침묵이 그의 주위에 감돌았다.


“야이, 개새끼들아!! 니네 사장 불러와!!”


마지막으로 욕설을 내지르면서 그는 놈들을 불러봤지만 침엽수림의 어두운 장막 속으로 소리는 스며들 뿐이었다. 그런 속 보이는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쯧··· 만족스러운 그림이 나오기 전까지는 쥐 죽은 듯이 숨어있겠지···.”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일단 눈앞에 주어진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그는 가방을 들었다. 죽어도 쉽게 죽어 줄 수는 없었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따라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이 위치는 외워 놔야겠어. 이 관짝이 밤을 넘겨줄 은신처가 될지도 모르니···.’


방향감각을 잃지 않도록, 똑바로 걸어가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는 마침내 관짝을 떠났다.


목표는, 태양이 잘 보이는 곳이다. 그가 태양이 보이는 곳을 목표로 하는 이유는 아까 왼쪽 손목에 걸어 놓은 시계에 있다. 방금 전에 옷 주머니에서 그가 찾아낸 거였다.


‘시계를 이용하면 동서남북을 알 수 있어. 물론 한번 시계가 멈췄으니깐 단번에 정확한 방위를 알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것도 방법이 있지. 해가 질 때 맞춰서 시침을 대충 저녁 7로 맞춘다면 적어도 비슷하게는 작동할 거야.’


일단 당면한 상황에서 목표는 정해졌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그는 최대한 직진, 또 직진하면서, 하늘의 태양을 찾으러 떠났다.


“태양, 태양아. 어디로 가면 잘 보이겠니? 좀 나와라 제발.”


곧장 직진으로 한참을 걸었지만 도대체가 그놈의 태양이 어디 있는지, 침엽수림의 무성한 잎사귀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칙칙하면서도 은근히 빛나는 보라색 하늘 색을 보아하니 해가 지려면 아직 좀 먼 모양이었다.


“일단 계속 가볼까.”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관짝 근처에 있던 기분 나쁜 까마귀가 아니라 아름다운 음색을 내보이는 어떤 새가 그를 맞이하며 노래했다.


“까마귀 울음보다는 훨씬 나아.”


그는 잠시 숲 속에 울려 퍼지는 녀석의 울음을 감상하며 걸었다. 아름다운 새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몸의 긴장이 좀 풀렸다.


‘마음을 가볍게 먹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어. 부담감도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니까.’


지나친 긴장을 푸는 것도 생존에 도움이 되니, 너무 심각하기보다는 그는 조금은 즐기려고 했다. 도시를 떠나서 숲을 걸으니 건강이 좋아질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세뇌하면서 말이다.


“어?”


그 새소리와 함께 얼마나 걸었을까, 끝도 없을 것 같았단 장막의 너머에서 침엽수가 이루는 어둠의 장막 밑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침엽수림이 끝나는 지점이라는 뜻이다.


“찾, 찾았다. 태양이다!”


그는 갑작스럽게 출현한 빛을 향해서 뛰었다. 빠르게 뛰는 심장에 뜀박질의 주기를 맞췄다. 이렇게 한 걸음씩 우직하게 나아가면 출구도 언젠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면서 그는 빛으로 곧장 향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경솔하게 뛰어나가다가···.


“어어으아와아아아아악!?!? 낭떠러지!?!?”


느닷없이 끝도 없는 낭떠러지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는 급작스럽게 다리에 힘을 꽉 주고 감속했다. 관성에 의해서 달리던 방향으로 주르륵 미끄러졌고, 겨우 엉덩이만 남기고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정지했다.


“허억! 허어억!! 시발! 하마터면 떨어져 뒤질 뻔했잖아!”


휘우우우우우우우웅···


낭떠러지 아래로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높이를 보아하니 떨어졌다가는 100% 확률로 추락사였다. 머리가 박살 나고 사지가 뭉개졌을 거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속도를 줄여서 망정이었지, 조금만 늦었다면 안전장치 없이 번지 점프할 뻔했다!


그대로 뛰어내렸다면 유사 이래 멍청한 죽음 역대 TOP 10위 권에 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고 낭떠러지의 끝에 서서, 주변의 웅장한 경치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예상치도 못한 수확을 거뒀다.


“오! 도시? 저거 도시 아냐!?”


그의 눈동자 속에는 누구나 ‘빌딩’이라고 대답할만한 건축물 집합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심지어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빌딩들은 충분히 높아 보였다.


“엄청 높아 보이는데···. 대도시인가?”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세계 어느 국가이든, 웬만하면 우리나라 대사관이 있을 테니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잠시 지내다가 가족들에게 비행기 푯값만 빌린 후에, 그거 타고 돌아가면 되겠지!’


그렇게 그가 그 도시 쪽에 한 눈이 팔려있는 동안, 눈 앞에 펼쳐진 풍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괴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도시에서 어떻게 연락해서 집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모든 계획을 세운 후에야, 눈앞에 펼쳐진 기가 막힌 광경을 마침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어? 이게 뭐야?”


질문, 지평선이나 수평선이 왜 생길까?


정답은 지구는 둥근 구체이기 때문이다. 3차원 구 위에 있는 관찰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에게서 멀어질 수록 지면이나 수면은 시선에 비해서 밑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의 시야 속에서는 땅과 바다가 소실하는 선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바로 그것을 우리는 지평선(地平線), 그리고 수평선(水平線)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땅이··· 하늘로, 솟구친다아?!?!”


그러나 그의 시야에는 지구의 지평선도 수평선도 없었다. 이곳의 대지와 대양은 결코 소실이나 추락하지 않는다.


그 대신 원근법에 의해서 대지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사물의 밀도가 올라가면서도, 물리 법칙에 반항하듯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시선을 얼마나 멀리해야 이 대지의 끝이 볼 수 있나, 시선을 따라 옮겼다.


“아니··· 잠깐··· 근데··· 시발···”


대지는 그에게서 멀어질 수록 양쪽 폭이 줄어들더니 마침내 그의 눈으로는 그 폭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렴했다.


줄어드는 폭에 반비례해서 대지의 높이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구쳤고, 마침내 하늘을 꿰뚫는 창이 되어 태양을 수직으로 꿰뚫었다. 


그런 그에 한 치의 자비조차 없이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서 지평선 너머에서 ‘어둠의 군세’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건 또 뭐야?”


상상에 상상을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현상의 연속에 정신이 대략 멍해질 때 즈음에, 지면에서 정확히 90도 직각으로, 그의 정수리 위에 우뚝 서 있는 태양에게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일식이 일어나는 것인가 의심했다.


“일식? 하지만 저건··· 달이 아냐···.”


그러나 지구의 일식과는 다른 점이 있었는데, 달이 태양을 가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의 한켠을 차지할 정도인 초거대 구조물이 태양을 점점 가리고 있던 것이다.


“잠깐만··· 설마 이게 저녁이 되는 거야···?”


마침내 그림자는 드넓은 대지를 집어삼켰다. 반짝이는 별들과, 삼각형의 모양을 가진 괴상한 천체가 구조물의 가려진 태양의 빛을 대신 반사하여 대지를 은은하게 비췄다.


별만큼은 가짜가 아니었는지, 아름다운 별들의 반짝임이 그의 수정체 표면에 살짝 비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광경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지구와 다를 바 없이 그럴 듯 해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점에서 현실과의 중대한 괴리를 띄고 있었다.


이 대지는, 지구의 대지가 아니다.

저 태양은, 지구의 태양이 아니다.


···새로운 현실에 눈을 떴다면, 잠깐은 도망칠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이 맞이한 그 새로운 현실에 이름을 붙여줘야만 한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현실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링···.”


외부 반지 형태 구조물은 태양을 중심을 두고 적절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을 이용, 안쪽 면에서 바깥 면 방향으로 생성되는 인공 중력 9.81m/s^2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월드···.”


또한 내부 반지 형태 구조물은 외부 구조물과 태양의 사이에서 적절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뚫려있는 구멍을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밤과 낮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우주 거주용 초구조체. 그 개념의 창시자가 이름 붙이기를···.


링 월드(Ring World).

그가 살아가야 할, 새로운 세계의 개념이었다.


* * *


심사숙고 끝에 그는 여기가 가상현실임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링 월드? 하하! 지랄하지마.”


링 월드라는 것은, 유명 SF소설가 래리 니븐이 상상해낸 우주 거주구의 상상도 중 하나다. 이론 상으로는 태양 에너지를 거의 한계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다이슨 스피어보다는 현실성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다이슨 스피어보다는 쉽다는 거지, 그마저도 인간에게는 신의 영역과 다를 바 없었다. 링 월드의 건설 난이도에 비하면, 화성 진출이나 테라포밍은 현실성이 마구마구 넘치는 수준이었다.


“링 월드에 비하면 까짓거 화성 쯤이야···.”


링 월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건축 재료보다 압축 강도나 인장 강도가 수만 배는 뛰어나야만 했고, 그런 것들은 신화에나 나올 법한 기적의 물질이었다.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미스릴, 오리하르콘, 아다만다이트 같은 기적의 금속이나 소재가 발명되지 않는 이상 시도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런 소재가 실존하다 쳐주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그런 굉장한 소재들은 그 희소성만큼 가격 그램 당 가격이 빌딩 한 채는 뚝딱 해먹을 거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만약 그 문제까지 해결한다 쳐도, 마지막 건설 단계도 만만치 않다.


지구의 태양 공전 궤도의 반지름인 1AU = 149,597,870,700m 정도를 커버할 수 있는 건설 자재를 뚝딱 생산해내서 그걸 하나하나 우주선으로 옮겨서 조립하고··· 


딱 봐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우스갯소리로 목성을 해체해도 1m 두께의 링 월드도 만들 수 없다고 했었나? 지금의 나는 지금 움막도 제대로 못 짓는다고.’


지금의 그로서는 멀쩡한 은신처 만들기도 힘에 벅찼다. 간단한 통나무 집 하나 짓는 것도 그에게는 첨단 건축 공학의 범주일 지언데, 더구나 링 월드라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링 월드 같은 초 구조체는 머리를 박박 쥐어짜 내서 즙으로 만들어도 인류에게는 불가능 하다는 게 그가 확신에 차서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뇌에 직접 투영하는 VR이라면 눈앞의 현상도 다 납득 할 수 있어. 전부 다 정교한 3D 그래픽과 콜라이더, 진짜 같은 물리 엔진으로 구성된 게임 월드니까.’


따라서 소거법에 의하여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가상 현실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가 진짜 가상 현실이라면,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몇 개 있잖아?’


이곳이 한없이 현실에 가까운 가상 현실이라면 반드시 존재하는 요소가 있었다.


바로 관리자, 어드미니스트레이터, 혹은 관리 시스템의 존재였다. 


그를 이 VR 세상에 붙잡아두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역으로 그를 이 VR 세상에서 로그아웃 시켜줄 수 있는 명령어가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오른손을 선서하듯이 들어서, 어디선가 자신의 명령을 대기하고 있을 관리 프로그램을 향해 당당히 선언했다.


“로그아웃!”


···아무 반응도 없었다.


‘···혹시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서 3번 반복해야 발동하는 설정인가? 그렇지, 한창 게임을 열심히 하다가 실수로 말한 로그아웃 때문에 끊겨버리면 기분 나쁘니까!’


그는 다시 오른손을 전보다 더 높게 들었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로그아웃!”


역시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면 이건 어떠냐? 상태창!”


혹시 몰라서 상태창을 불러봤다. 상태창은 게임이라면 응당 있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 VR 월드의 개발자나 생성자가 제대로 된 메타버스 감수성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존재해야만 했다.


“상태창! 상태창! 상태창!”


정말 아무 반응도 없었다.


“메뉴! 메뉴! 메뉴!”


“까악! 까악!”


상태창 대신 나무 위에서 등신짓을 지켜보던 까마귀 튀어나와서 까악까악 그를 비웃었다. 그는 허공에 주먹질로 까마귀를 쫓아냈다.


“하 씨바, 개쪽팔리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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