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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K의 서재입니다.

치매 노인이 마귀를 잘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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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K
작품등록일 :
2023.05.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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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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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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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사냥꾼(1)

DUMMY

24. 사냥꾼(1)






조나단 소장이 소개해준 현상금 사냥꾼은 만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일단 그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자 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파블로도 핸드폰은 들고 다녔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소장이 지도에 그려준 곳을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미로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 것과 비슷했다.


나무들의 바다, 수해(樹海)라 불리는 그랜드 포레스트는 앞을 봐도 똑같은 풍경, 뒤를 봐도 똑같은 나무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부 종착역인 '줄렛츠'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울창한 숲의 미로가 펼쳐졌다.


지도에 그려진 곳은 바로 그 수해의 한복판.

나침반이 없이는 방향도 가늠할 수 없었다.


때론 울퉁불퉁한 지형도 있었지만, 대체로 평탄해서 나무에 표식을 새긴다고 해도 지리를 외우긴 힘들 것 같았다.


광대한 나무의 사막 한가운데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길을 잃어버리면, 반드시 죽겠군.'


숲의 미아가 되어 짐승이나 마귀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GPS 장치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오지. 이곳에 소장이 소개해준 인물이 살고 있었다.


이런 미로 같은 곳에 살고 있는 걸 보면, 왠지 속세와는 연을 끊어버린 사람 같았다. 과연 살아있긴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로 같은 숲 안에는 또 다른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블로는 나무뿌리를 밟고 덤불을 헤쳐 나가며 여러 함정을 마주했다.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세한 촉감이 들었을 때, 첫 번째 함정을 마주했다.


바닥의 흙이 확 뒤집히며 그물이 솟았고, 파블로는 그물에 휘감겨 올라가 허공에 대롱대롱 떴다.

진짜 함정에 걸리는 건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무섭군. 굉장히 정교하고 튼튼한 함정이야. 마귀도 걸리기만 하면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겠어.'


튼튼한 그물은 손으로 찢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첫 번째 함정을 지나치고 나서도 여러 함정이 치솟았다.


구덩이 함정, 나무창 함정, 돌무더기 함정 등등.


마치 외부인을 싫어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일반인이라면 죽을 법한 함정들이었지만, 파블로의 생각엔 이건 일반인을 위한 함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헌터들의 접근을 막는 함정이 분명했다. 이곳에 일반인이 찾아올 리 만무하니까.


그리고 이 함정들은 경보의 역할도 하는 듯했다.

한동안 함정들을 헤집고 다니니, 이곳의 주인이 직접 나타났다.


"멈춰."


파블로는 뒤에서 느껴지는 흉기의 날카로움을 느끼고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 함정들을 준비한 당사자라는 게 느껴졌다.


"싸우러 온 게 아니오. 조나단 소장이 소개해줘서 왔소."

"조나단?"


목소리는 걸걸한 남성의 것이었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파블로로 하여금 천천히 뒤를 돌게 했다.


그때, 그를 처음 봤다.


마른 팔다리에 작은 키, 올챙이처럼 나온 배.

가죽 가면과 가죽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현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장을 아는 듯했지만, 그는 파블로의 목을 노리는 창을 내려놓지 않았다. 창 촉에는 투명한 독을 발랐는지, 빛이 불규칙적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조나단과 무슨 관계지?"

"같이 일했었소."

"일했다고? 어디서."

"벤자 마을."

"..."


정체불명의 남자는 창끝을 더 깊게 밀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조나단은 몇 년 전부터 벤자 마을에 안 살아. 너, 누구야. 어떻게 알고 왔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파블로는 담담하게 배낭에서 편지를 꺼냈다.


조나단이 직접 쓴 편지였다.


남자는 한 손으로 편지를 건네받더니, 빠르게 훑다가 망부석처럼 몸이 굳었다. 파블로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한동안 편지만 거듭 읽었다. 물론 들고 있는 창은 여전히 파블로의 목 옆에 있었다.


"이제 내 말을 믿겠소?"

"...따라오시오."


남자는 깊은 숲속 자신의 움집으로 파블로를 데려갔다.




***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리는 커다란 나무 사이에 그의 움집이 있었다.


나뭇가지와 풀줄기로 둘러싸인 그의 움집은 겉모습과 달리 생각보다 내부가 넓었다.


내부는 짚과 풀만이 아닌 원목과 벽돌로 기초를 단단하게 쌓았고, 심지어는 벽난로까지 있었다. 그 앞에는 푹신한 개인용 가죽 소파가 있었다.


벽난로 앞 바닥에는 부드러운 가죽 카펫이 깔려있었고, 벽에는 박제된 마귀의 머리와 웬 신문 기사들이 붙어 있었다.


머리만 박제된 마귀는 생전에도 살기 넘치는 위험한 놈들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랜드 포레스트에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현상금 사냥꾼.

-마귀 머리를 들고 있는 헌터, 헬트.

-수해의 영웅, 헬트. 대마귀(大魔鬼)를 사냥하다.

-영웅, 헬트. 그는 어디로.

-자취를 감춘 영웅. 수해는 마해(魔海)로.


벽에 붙은 수십 개의 신문은 한 사람을 말하고 있었다.


'꽤 유명한 현상금 사냥꾼이었군.'


파블로가 기사를 둘러보고 있을 때도, 남자는 소파에 앉아 조나단의 편지를 읽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저 몇 줄 쓴 소개장일 뿐인 종이인데도 그는 자석이라도 붙은 듯 손에서 편지를 놓지 않았다.


파블로는 잠자코 빈 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마침내 편지에서 눈을 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왜 날 찾아왔소."


남자는 편지를 든 손을 축 늘어뜨리고 다른 한 손으로 탁자 위에 있는 술병을 집어 가죽 가면의 입 부분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얼굴을 찌푸릴만한 독한 술 냄새가 풍겨왔지만, 파블로는 표정 하나 없이 대답했다.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찾아왔소."

"후우, 당신 정도면 내가 아니어도 마귀를 사냥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이곳에 어떤 마귀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요."

"그것도 모르고 왔다니."


남자는 황당하다는 기색으로 술을 재차 들이켰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 나이에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돈만 밝히다간 큰코 다칠 게요. 도와주기 어렵겠군. 게다가 나는 은퇴했소."


그는 그토록 붙잡고 있던 편지를 벽난로에 밀어 넣었다. 어느새 불이 타올랐고 서늘했던 공기에 온기가 감돌았다.


"마귀 사냥은 이제 안 하오.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오."


집안에서도 가죽 가면을 벗지 않는 남자는 타닥타닥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는 편지만을 바라보았다.


파블로도 가만히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소장과 그가 무슨 사이인지 궁금했다. 보물처럼 편지를 들고 있다가, 결국 불꽃에 태우는 행위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조나단 소장과 당신은 무슨 사이요."


돌아오는 건 싸늘한 목소리였다.


"...알려줄 의무는 없소. 돌아가시오."

"야박하군."


문득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이 험지까지 편지 하나만 믿고 함정까지 물리치며 왔건만,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현상금 사냥꾼이었던지, 지금은 은퇴했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파블로는 움막집을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일부러 그의 감정을 긁을 수 있도록.


"마귀는 안 잡는다면서 사람은 잡는가. 함정을 그렇게 쳐놨으니."

"..."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던 모양이군. 소장이 이런 사람을 소개해줄 작자는 아닌 것 같았는데."


짚으로 만든 문을 열고 나갈 때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오."


파블로는 문을 잡은 채 멈춰섰다.


"당연하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당신도, 소장도."


"..."


"집 구경은 잘했소."


문을 닫고 나오면서 혹시 따라 나오나 싶었지만, 안쪽에서 들리는 기척은 없었다.


파블로는 움집을 돌아보았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가볍게 추측하기로는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사람 같은데, 현재는 은퇴하여 홀로 숲에 틀어박혀 술에 빠져 사는 모양이었다.


'본인의 선택이지.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다.'


마음의 가시가 돋아 집 주변에 함정을 치고 사는 사람이다. 본인이 직접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다가가면 찔릴 뿐이다.


유명했던 현상금 사냥꾼의 마지막 보금자리.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움집이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




파블로는 줄렛츠 마을을 거점 삼아 움직이기로 했다.


그랜드 포레스트에서 문명의 손길이 남은 마지막 마을, 줄렛츠.


그곳엔 마귀를 사냥해 현상금을 타러 온 용병들을 위한 퍼블릭 헌터 길드가 있었다.

게시판 앞에선 용병들이 북적였다.


-이야, '사마귀'를 잡았네? 어떻게 잡았지?

-최근에 현상금이 올라서 팀 세 개가 연합해서 사냥했다던데, 대충 열의 다섯은 죽었다나.

-산 놈들은 노다지겠군. 현상금은 왜 올랐대?

-의회가 동부 개척을 원해. 방해 거리가 되는 마귀들을 치우고 싶은 모양이야.

-하기야 그랜드 포레스트는 마귀만 아니면, 쓸어 담을 수 있는 자원이 많으니까.

-돈이 얼마겠냐. 조금 올려준 현상금 따윈 금방 회수하겠지.


파블로는 근래 헌터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화를 엿들으며 게시판에서 수배 중인 마귀들을 체크했다.


그가 첫 번째로 사냥을 시도할 녀석은 줄렛츠 마을에서 10km 떨어진 곳에 터를 잡은 '거머리'라 불리는 소마귀.


멀기도 하거니와 소마라서 현상금이 얼마 되지 않아 사냥꾼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는지, 수배 기간만 3년이 넘었다.

허나 이제 현상금 사냥꾼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파블로에겐 도전해 볼 만했다.


"저기요, 할아버지."


가볍게 짐을 챙기고 마을을 나서려던 파블로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선 처음 보는 데. 사냥꾼이죠? 저희랑 같이 가실래요?"


말을 건 남자 뒤에도 키 큰 젊은 남자와 여성 한 명이 더 서 있었다.


"괜찮겠나? 난 나이도 있는데."

"그만큼 노련하시겠죠."


젊은 팀은 늙은 파블로에게 전혀 거리낌 없이 다가와 동행을 제안했다.


첫 사냥이었기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들은 그랜드 포레스트에 어느 정도 익숙해 보이기도 했고.

다른 꿍꿍이가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우선은 같이 다녀보고 판단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파블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가지."




.

.

.




젊은 팀은 파블로의 생각보다 뛰어났다.


30대가 넘어 보이지 않는 자들이었지만, 체력적으로 훌륭했고 주변 지형을 살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헉헉... 조금 쉬었다 갈까요, 파블로 씨?"

"그러세."


숲 지형이 험해서 숨이 차는 건 어쩔 수 없었기에 주기적으로 휴식을 취했다.


경계를 보고 있는 파블로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남자, 게릭이 다가왔다.


"후우, 정말 지치지도 않으시네요. 여기가 보통 험한 곳이 아닌데..."

"자신 있는 게 몸 밖에 없네."

"그거면 된 거죠, 사냥꾼으로선."


휴식을 취할 때마다 파블로는 게릭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 차이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온 이 청년은 어렸을 때부터 현상금 사냥꾼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의 소꿉친구인 2명도 마찬가지.


그는 어떤 사냥꾼의 자취를 밟아 나가고 싶다고 했다.


"헬트. 들어보셨죠?"

"그게 누군가?"

"전설적인 사냥꾼이에요. 용사들이 대마귀를 물리치고 생겨난 이 그랜드 포레스트에 다시 대마귀가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놈을 홀로 사냥했죠. 제 꿈이에요. 헬트 같은 사냥꾼이 되는 것."

"돈보다는 명성이다, 이 말인가."

"유명해지면 돈도 알아서 따라오겠죠."


수통을 꺼내 목을 축이던 파블로는 문득 헬트라는 이름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을 되짚었다.


'움집의 신문 기사에서 봤었군.'


신문 기사는 전부 헬트라는 사냥꾼에 관한 기사였다.


그럼 소장이 소개해준 그 남자가 헬트라는 전설적인 사냥꾼이었다는 말인가.


그가 과거에 얼마나 유명했던지 실상은 세월의 무심함에 녹이 슬어 은퇴했고, 남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긴커녕 누가 다가오지도 못하도록 두꺼운 울타리를 치고 살아가고 있었다.

박제된 마귀의 머리와 자신을 향한 예찬을 담은 신문 기사, 즉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둘러싸인 채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청년 사냥꾼, 게릭은 소망을 담은 눈을 했다.


"반드시 헬트처럼 유명한 사냥꾼이 될 거예요."


파블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청년이 원하는 것에 비하면, 그가 바라본 헬트란 사냥꾼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곁에 아무도 없이 외로이 죽어가는 삶. 아마 명성을 얻기 위해 그가 바쳐야 했던 대가일 것이다.


과연 헬트를 직접 만났어도 그와 같은 사냥꾼이 되겠다는 목표를 견지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목표가 없는 것보단 나았다.


"목표를 이루길 바라겠네. 그럼 다시 갈까."



···.



그랜드 포레스트에서 10km를 이동하는 건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마귀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항상 긴장해야 했고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계속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래도 무사히 목표한 지역까지 도달할 수는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늪지였다.

늪지 식물들이 기형적으로 자라고 있었고, 뭔가 썩어가는 답답하고 꾸덕한 냄새가 나서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선두에 가던 게릭이 손을 들었다.


-정지.


파블로는 천천히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늪에서 곰만큼 커다란 무언가가 꿈틀-거품을 내며 헤엄치고 있었다.


-'거머리'예요. 바로 공격하죠.


튼튼한 장갑만 끼고 온 파블로와 달리 세 젊은 사냥꾼들은 현대 화기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셋은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고 파블로는 혹시 모를 근접전을 위해 대기했다.


-사격.


수류탄을 먼저 던지고 신호가 떨어지자, 총구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쾅...! 타다다다다당! 키에에에엑!


강렬한 기습에 거머리는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전신에 구멍이 뚫려 악취 나는 피를 콸콸 흘렸다.

축 늘어진 거머리를 보고 세 사람은 사격을 멈추었다.


게릭은 이마를 훔쳤다.


"후우, 생각보다 쉬웠네. 3년이나 토벌을 못 했다더니."

-별놈 아니었어. 지렁이 같은 거라 안 잡은 거뿐이지.

-네, 아랫도리처럼?

-무시하지 마. 난 언제나 단단해.


세 사람이 긴장을 풀고 서로 농담하는 데도 파블로는 집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른 마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예상은 안타깝게 적중했다.


나무 위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쭉 내려와 여자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헉...!"

"메리!"


두 사람이 총알을 쏟아부어서 거머리 마귀를 잡았지만, 여성은 이미 머리가 떨어져 나가 목에서 피를 콸콸 흘리며 쓰러졌다.


기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땅이 쫙 갈라지며 또 다른 거머리가 나와 키 큰 남자의 한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삼켰다.


-젠장...! 으아아아아아악!


키 큰 남자는 온몸이 으스러지며 땅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게릭은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거머리들을 향해 총알을 쏟아부었고, 파블로도 주먹으로 거머리의 몸통을 타격했다.


"제기랄, 한 마리가 아니었어요...!"


게릭은 염동력자였는지, 손을 뻗어 거머리의 움직임을 멈추고 총알을 박아넣었다.


곰만 한 크기의 거머리도 총알이 박히니 죽었지만, 문제는 숫자가 쉬이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파블로도 거머리들을 상대하느라 그를 도울 틈이 없었다.


그때, 쉬이익-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푸부부북...!


허공에서 날아온 조잡한 창들이 거머리의 몸을 하나씩 꿰뚫었다. 몸을 꿈틀거리던 거머리들은 관통당한 것도 아닌데,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나무 위를 타고 다니며 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는 남자가 보였다.

가죽 팬티 바람에 여전히 쓰고 있는 가죽 가면.


파블로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게릭도 그를 알아보았는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헬트?! 진짜 헬트인가?!"


남자는 나무 사이를 오가며 족제비처럼 날렵하게 마귀들을 사냥했다.


청년 사냥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늪에서 튀어나온 물장군 같은 놈에게 허리가 잘렸다.

하반신이 물려가고 상반신만 남은 게릭은 입을 벌린 채로 유언을 남겼다.


"헤, 헬트..."


파블로는 상반신도 물어가려는 놈의 아가리를 붙잡아 늪 밖으로 끌어내 대가리를 주먹으로 찍었다.


"잠깐 빌리겠네."


죽은 친구들의 소총을 든 파블로는 재빠르게 탄알집을 교체하고 거머리들을 하나씩, 확실하게 사살했다.


항마군 때의 감각이 남아 있어서 몇 번 쏘기만 해도 금방 익숙해졌다.


치이이익...

총구에서 김이 나도록 쏴 갈기고 난 후에야 거머리들이 정리되었다. 가볍게 수를 세기만 해도 스무 마리는 우습게 넘어갔다.


나무 위에서 내려온 가죽 가면 남자는 거머리들에게 박힌 창을 회수했다.


파블로는 소총을 두고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정말 전설의 사냥꾼, 헬트요?"

"그게 중요하오?"


남자는 죽은 자들의 시체를 질질 끌고 가서 한데 모아 무덤도, 묘비도 없이 내버려 두었다.

그리곤 한동안 시체들을 보다가 홀로 중얼거렸다.


"사냥꾼은 사냥당할 대비도 해야 하는 법."


곧장 다른 곳으로 갈 법도 하건만, 가죽 가면 남자는 어두워지자 늪지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 듯 나뭇가지들을 주워와 모닥불을 피웠다.


파블로도 어두운 밤에 움직이고 싶진 않았기에 그의 곁에 머물렀다.


···.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려앉은 늪지에 모닥불의 주홍빛만이 밤과 경계선을 긋고 있었다.


배낭에서 꺼낸 육포를 우물거리던 파블로는 문득 고개를 돌려 가죽 가면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도 파블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헬트냐고 물었소이까."

"그랬소만."

"나는 헬트가 아니오."


가죽 가면에서 드러난 눈에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내 친형님의 이름이 헬트였소. 마귀를 잡다가 돌아가셨지."


작가의말

노스텔스 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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