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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님의 서재입니다.

초인의 세상에서 범인이 할 수 있는 것.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ITE
작품등록일 :
2020.05.19 20:08
최근연재일 :
2020.06.30 21:27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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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90
추천수 :
485
글자수 :
343,503

작성
20.05.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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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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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조용히 살 거야!

DUMMY

나를 찾을 거라는 건 예상한 일이었지만, 설마 100억 원이라니?

인생을 한 방에 역전할 수 있는 금액이 고작 날 찾는 것에 걸려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너무 질렀나.'


너무 나갔나 싶어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라도 상황을 뒤바꾸지 않았으면 억지 판결이 이어졌을 것이다.

에개헤의 성이 뭔지 몰라도 내 상상 이상으로 이재호에게 중요한 일인 듯 했다.

미래에 어쩌다 줏어 들었던 걸 대충 아무렇게나 지껄인 것 뿐인데...

이재호 뿐만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담의 수장인 가율도 나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절대 정체를 들켜선 안 돼.'



두 사람에게 내 신원이 밝혀진다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당장 정체가 들킬 일은 없겠지? 모두 입이 무겁고...아.'


애써 마음을 추스르려던 나는 김두호의 존재가 생각났다.

차시혁 씨는 좀 불안했지만 그래도 믿을만 하고. 격왕, 최혁은 입을 열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도 초인 덕후라곤 하지만 100억, 무려 100억이다.

시혁씨 같은 엉뚱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눈이 훼까닥 돌아갈 금액이다.


'맙소사.'


새삼 내가 이번에 얼마나 앞 뒤 재지 않고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시켰는지 실감이 났다.


'반성은 나중에 하고, 일단 대응부터 해야지.'


어제 만나고 나서 바로 내일, 너무 일찍 연락하는지라 조금 껄끄러웠지만 사는 게 먼저 아니겠는가. 나는 최혁에게 연락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의 번호를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격왕의 도장엔 그 흔한 번호가 없다. 수련생들을 받으려면 필요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연락할 수단인 핸드폰 번호는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직접 도장에 찾아가자니 사람들에게 의심을 살 것 같고...


'미치겠네...어라?'


그제서야 문자가 온 것을 발견했다. 모르는 번호인데...

뭐지 싶어서 내용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혁이네. 혹시 몰라서 이번일에 연루된 사람들 전부에게 입단속을 시켜놓았으니 걱정은 말게. 두호. 그 자도 마찬가지일세.]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김두호를 콕 집어서 말하는 걸 보면 최혁도 그가 신경 쓰였던 걸까.

어쨌든 최혁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상당히 위험했으리라.

그의 섬세함에 감사하며 다시금 반성했다.

앞으로 앵간한 일이 아니면 두번 다시 무대포로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일은 출근부터 할까..."


벌써 사흘이 넘게 아무 말 없이 빠졌으니 잘렸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연락 한 통 없지?'


왜 출근 안 하냐고 연락 한 번 들어올 법 한데 잠잠했다.

잠깐 생각해보니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했다.


'혹시 사수놈이 뭔가 했나?'


시혁씨랑 같이 회사에서 빠질 때 그놈이 뒷돈 받아먹은 걸 넌지시 언급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나한테 잘 보이려고?

생각해보니 그럴 듯 했다.


'에잇, 일단 잠부터 자자. 그리고 출근이다 출근.'


한편의 꿈 같았던 격왕 사건은 잊고, 지금은 현실을 살아갈 때다.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돈이든 신뢰든 쥐뿔도 없는 무능력자니까.

그냥 무능력자 낙인이면 다행이기라도 하지 이 시기쯤에 초인부에서 나댔던 거 생각하니 앞으로가 걱정된다.

다음 날.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서 회사에 출근했다.

사흘만에 내가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 모여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했다.

살며시 다가가 무슨 화제인가 들어보았다.


"격왕에 대한 일 들으셨어요?"


우와, 핫하긴 핫하구나. 벌써 모두들 다 알고 있네.


"네 영상도 봤죠. 대단하던데요."

"영상도 영상인데, 격왕을 변호한 정체불명의 초인 있잖아요. 그 사람을 찾으면 100억원을 준다던데."

"아, 그거 듣기로는 그쪽 방면의 프로들이 팀을 형성해서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아...찾기만 해도 인생역전인데,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을리가 없죠."


아니, 댁들 옆에 있는데.

내 얘기를 하니까 뭔가 몸이 근질거린다. 솔직히 나에 대한 소문이 떠돌아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건 그렇고, 팀을 짰다라...'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1년 정도는 티내지 않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멈춰서서 듣고 있는 날 눈치챈 건지 하나 둘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리로 가자.

분명 일하기 엿 같았던 직장에다 앉기가 신물이 났던 자리인데 위험한 일을 겪고 와서 그런가,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가 헐레벌떡 나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올려보니 나의 정겹고 엿같은 사수였다.


"어, 선배님."

"야! 김범인! 너 사흘동안..."


말하다 말고 주위를 한차례 살펴본 그가 소리치던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출장갔어도 보고는 했어야지?"

"......"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 사람이 무마해 준 거였나?

나에게 있어 나쁠 게 없는 설정이다. 말을 맞춰주자.


"죄송합니다. 일이 워낙 바빴어서요."

"그,그래. 혹시 지금 바빠? 얘기좀..."

"네. 바빠요."

"......"


잠시 벙쪘던 표정이 이내 붉으락 푸르락 해졌다. 어쭈? 아직 개긴다 이거지?


"한희 그룹."

"......!!"

"에...한번 가보고 싶네요. 사내식당이 그렇게 좋다던데."

"어, 어. 그렇지..."


응, 역시 분노조절은 중요한 거야.

초조한 게 분명해 보이는 얼굴을 한 녀석은 마지못해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네가 날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건드릴 일 없다.

앞으로도 쭉 이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때 문이 열리고 시혁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혁 씨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허둥지둥 다가왔다.


"범인 씨. 사람들 반응 봤어요?"

"반응이요?"


내 반문에 스마트폰을 꺼내든 그는 영상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보여주었다.

내용은 격왕에 대해서였다.

잠깐 살펴봤는데 하나같이 격왕에게 호의적인 반응들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노망난 늙은이 죽으라며 할말 못할말 다하던 댓글들을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군.


"이걸 저희가...!!"

"쉿!"


이 사람이 겁도 없이.

내가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을 다무는 시혁씨. 본인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겠지만, 혹시 모르니 이야기는 해 둘까.


"잠깐 저랑 얘기 좀 할까요."

"네! 얼마든지요!"



신나서 따라오는 시혁 씨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간다, 어디선가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사수야. 너에게 할애할 시간만 없다고 한 거란다.

비상계단으로 이동한 후 나는 목을 가다듬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혁 씨. 지금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는 잘 알 겁니다."

"위험한 상황이요?"


뭐지. 이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순진한 얼굴은. 40대에 가까운 중년 아저씨가 어찌 이리도 순수할 수 있는가. 짜증나게시리.


"인형사 이재호가 100억을 준다는 이야기요."

"아하. 현상금을 건 그거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네?"

"이참에 그냥 저희가 이재호를 찾아가서 그 돈을 받아낼까요? 앞으로 활동자금으로 써도 되고요."

"아니, 무슨..."

"에이~저에겐 숨기실 필요 없어요."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친 시혁 씨가 헤헤 웃었다. 평범하게 아파서 살짝 짜증이 났다.


"범인 씨. 초인이잖아요?"

"......"

"앗, 몰래 범인씨에 대해 조사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맹세컨대 초인부에 기록된 정도만 조사했지 결코 사생활에 대해선..."

"아니 아니...그건 그렇다 치고, 초인이라니요?"

"에이~또 그러신다."


이 사람, 어떻게 알아낸 거야?

아마 지금 내 얼굴은 당황 그 자체이리라.


"초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아담의 수장을 발차기 한 방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



이제서야 나는 시혁 씨가 충분히 나를 초인이라 생각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이야기 필요없이 격왕급의 발차기를 날렸는데 보통 인간이라 생각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예전에 초인 판정을 받은 적이 있기까지 했다.

내가 시혁 씨의 입장이라도 최근에 보통 인간이라고 판정이 난 게 뭔가의 오류거나 내가 모종의 이유로 일부러 힘을 감추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초인인 건 사실이지만, 시혁씨가 그렇게 여기도록 둬도 될까?

나는 마음을 침착하게 먹고 물었다.


"헌데 활동자금이란 것은 뭡니까?"

"이번처럼 억울한 일에 처한 초인들을 돕는데 필요한 자금이죠."


왜 내가 앞으로도 초인을 도울 거라는 게 전제되어 있는 거지?

순진무구한 얼굴로 내가 진심으로 그럴거라 믿고 있으니 어이가 없음을 넘어 감탄까지 나왔다.


"스스로 말하긴 뭐하지만 제 해킹능력이랑 범인 씨의 힘만 있으면 누구든 도울 수 있을 거에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신경 쓰이는 초인들의 리스트를 쫙~뽑아왔는데...!"

"시혁 씨."

"네?"

"전, 초인이 아닙니다, 그 발차기는 아티팩트의 힘이었어요."


아티팩트.

어떤 힘을 기록한 물건이다.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으며 몬스터를 잡았을 때 낮은 확률로 나오기도 했다.

회귀를 하기 전, 초인이 날뛰고 인류가 멸하느니 마니하는 막바지 때에도 매우 귀한 물건이었는데 십 수년 전의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는 초 귀중품. 그나마도 등급이 있어서 강력한 아티팩트를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이리라.


솔직히 내가 격왕급의 공격력을 가진 아티팩트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요 허접한 변명이었지만, 순진한 시혁 씨는 그 말을 믿은 듯 했다. 표정이 경악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묻지 말아주십시오. 정말 우연히 구한 거라..."

"그, 그랬습니까."


좋아, 이걸로 팀을 짜자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은 사양이다.

헌데 딱히 실망한 표정 같아 보이진 않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뿐인가?


"시혁씨. 그러니 부탁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저희를 찾는 이들이 많을건데, 그들이 저희에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펼치는 겁니다. 물론 무조건 해 달라는 건 아니고 할 수 없으시다면..."

"걱정마세요! 반드시 해내 보이겠습니다!"



음, 그럴 것 까진 없는데.

묘하게 의욕을 내는 시혁 씨에게 일이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순간, 나의 방침이 결정되었다.

초인이고 뭐고 몇 년간은 나를 숨기면서 보통 사람처럼 지내자고.

적어도 이재호나 아담의 수장이 토끼탈의 남자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을 때까지는 말이다.


초인의 세계가 되는 것을 뒤바꾸려고 했지만 그것도 내 몸이 성할 때에나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솔직히 격왕을 구했으면 앞으로는 일사천리일 거 아냐?'


초인의 세계가 되기 시작한 가장 큰 계기가 격왕 모함 사건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막아냈으니 초인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세계가 오는 것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한 유예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주제 넘게 세계를 바꾼다니 뭐니. 그딴 건 됐고 내 앞가림이나 잘하자.'



이때의 나는 짐작도 못했다.

설마 시혁 씨의 말대로 팀을, 아니, 그 이상의 조직을 꾸리게 될 줄이야...








그날 하루, 초인에 대한 화제가 떠오르지 않도록 일에 온 신경과 집중을 쏟은 나는 퇴근길에 올랐다.

띠링.

이 시간대에 문자라. 친구 놈인가.

별 것 아닐 거라 생각하며 문자를 본 나는 잠시 후 크으 신음했다.


문자는 초인부의 공무원이다.

저번 일로 처리할 게 있으니 며칠 내로 초인부에 출두하라는 문자였다.

솔직히 거기엔 옛 지인들은 물론 진상짓을 피운 사람들까지 있어서 죽어도 가기 싫었다.



'에이. 조용히 살기로 결심했으니 순순히 응하자.'



가서 무슨 일이 있어도 네네 하고 순응하리라 결심하고 걷는 내 곁으로 여고생 무리가 지나쳐갔다.

향수를 뿌렸는지 향긋한 향기가 코를 찔렀...아니, 변태 같잖아. 맡고 싶어서 맡은 것도 아니다.

그래도 향수 냄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 건 어쩔 수 없었다.

잠깐 흘끗 쳐다보고 그대로 지나치려는 찰나.


"......!"


나는 우뚝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여고생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보았기에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홍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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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의 세상에서 범인이 할 수 있는 것.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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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홍의 마녀 (5) 20.06.01 218 10 16쪽
17 홍의 마녀 (4) +4 20.05.31 221 12 13쪽
16 홍의 마녀 (3) 20.05.30 225 11 13쪽
15 홍의 마녀 (2) 20.05.29 227 11 13쪽
14 홍의 마녀 (1) 20.05.28 248 15 16쪽
13 초인부 +2 20.05.27 248 12 13쪽
» 조용히 살 거야! +2 20.05.26 268 15 13쪽
11 현상금? +2 20.05.25 281 19 12쪽
10 격왕 구하기 (8) 20.05.24 289 14 13쪽
9 격왕 구하기 (7) 20.05.23 285 15 13쪽
8 격왕 구하기 (6) +2 20.05.22 280 11 31쪽
7 격왕 구하기 (5) 20.05.21 281 12 18쪽
6 격왕 구하기 (4) +3 20.05.20 292 12 13쪽
5 격왕 구하기 (3) +8 20.05.19 308 16 14쪽
4 격왕 구하기 (2) +2 20.05.19 324 16 12쪽
3 격왕 구하기 (1) 20.05.19 361 14 11쪽
2 회귀 +4 20.05.19 447 17 12쪽
1 이런 힘이 있었어?? +4 20.05.19 628 25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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