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쌍봉낙타3 님의 서재입니다.

후작가의 악마사냥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3.11 18:36
최근연재일 :
2024.04.19 19:30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34,830
추천수 :
1,557
글자수 :
201,134

작성
24.03.20 19:30
조회
1,289
추천
52
글자
12쪽

지름길.

DUMMY

힘자랑은 유치하지만 즐거운 짓이다.


쿠웅!


주먹을 내질러 나무둥치를 가격했다.

그 충격에 의해 세차게 몸을 떠는 나뭇가지. 털려 나온 낙엽들이 나풀거리며 지상을 향해 추락한다.


리온은 칼자루를 쥐며 허공에 나부끼는 낙엽들을 훑어봤다. 별자리를 그리듯, 저 잎사귀들을 이어놓는 하나의 직선을 상상하며.

하지만 별과 달리 나뭇잎들은 계속해서 위치가 변화한다. 그로 인해 매 순간 일그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하는 직선.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 곧 이상적인 순간이 올 테니···


······지금 같은.


쐐애액-!


반쯤 무의식적으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둘린 검끝. 그리고 할 일을 마친 검이 신속하게 칼집 속으로 돌아간다.


리온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에 등 떠밀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들. 그것들 전부가 예외 없이 반토막 나 있었다.


‘나쁘지 않군.’


몸이 가볍다. 언젠가부터 머릿속의 움직임을 그럭저럭 괜찮게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없잖아 있었으니···


‘······마나 하트가 너무 부실해.’


그간의 단련으로 몸뚱이는 어느 정도 키워놨지만, 마나 하트라는 내실이 한참 부족했다.


사실 이것도 레베카가 영약들을 구해온 덕분에 많이 양호해진 편이다. 그러나 마나 블레이드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기엔 마나 하트의 출력이 부족한 상황.


‘이걸 쓸 때가 된 건가.’


리온은 조심스레 짐가방에 든 물건을 꺼냈다.


붉은 백조.

이 영약을 복용하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죽어라 굴렀다. 허접한 몸뚱이로는 영약의 기운을 온전하게 흡수할 수 없으므로.


지금도 상급 영약을 취하기엔 조금 이른 시기였다. 특히 붉은 백조의 경우에는 더더욱. 상급 영약 중에서 유독 흡수하기 까다롭기로 악명이 자자한 약초였으니.


그렇지만 여기서 더 미룰 수는 없었다.

곧 10월이다. 겨울이 오면 붉은 백조의 꽃잎이 시들어버릴 테고, 그리되면 영약의 효과가 뚝 떨어진다.


‘경험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붉은 백조는 전생에 여러 번 먹어봤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다잡으며 주머니칼을 집어 들었다.


곁에 있던 레베카가 의아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갑자기 칼은 왜 꺼내시는 건가요?”

“필요한 부분만 도려내려고.”


노을초를 복용할 때는 꽃잎부터 잔뿌리 하나까지 전부 씹어 먹었지만, 붉은 백조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부레옥잠처럼 물 위를 떠다니는 부유식물답게, 붉은 백조의 잎과 줄기 사이에는 공기주머니가 자리했다. 이 공기주머니처럼 보이는 건 동그랗게 부푼 잎자루.

붉은 백조는 자연의 정기를 농축하여 잎자루 속에 저장한다. 선홍빛 기름을 연상케 하는 액체. 이것만이 영약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리온은 붉은 백조의 잎자루를 하나씩 칼로 도려내었다. 이윽고 그릇 위에 잎자루 다섯 개가 가지런히 놓였다.


“이렇게 보니 커다란 청포도 알맹이 같네요. 맛은 어떠려나···”

“한번 먹어볼래?”


그 제안에 레베카는 잠시 혹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제가 이걸 홀라당 먹어버리면, 그간 고생해서 영약을 구해온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절대 안 먹어요.”


한 걸음 물러서서 거리를 벌리는 레베카. 눈치껏 사양하는 게 아니라는 듯 단호한 태도였다. 설득의 여지가 없어 보였기에 두 번 제안하진 않았다.


“호위를 부탁할게.”

“두 눈 부릅뜨고 있을게요!”


연공법으로 영약의 기운을 흡수할 때면 내 몸뚱이가 무방비한 상태가 된다. 여느 때처럼 레베카에게 주변 감시를 맡긴 후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자, 시작해볼까.


리온은 앉은 자리에서 잎자루 다섯 알맹이를 연달아 씹어 삼켰다. 다소 위험한 짓이었지만 감수해야 한다.


여러 번의 작은 너울보다는 한 번의 거대한 파도가 극적인 여파를 일으키는 법. 이 영약의 힘으로 그릇을 송두리째 갈아엎을 것이다.


이내 뱃속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붉은 백조의 열기는 노을초보다 훨씬 강렬했다. 살아있는 불꽃이 몸 곳곳에 뿌리를 뻗어가는 듯한 느낌. 그 뿌리의 생장 방향을 심장 쪽으로 향하게끔 뒤틀었다.


밀려드는 열기에 의해 달아오르는 심장.

흔히 영약과 마나 하트의 관계를 대장간에 비유하곤 한다. 영약이 불꽃을 피워내는 석탄이라면, 마나 하트는 제련되는 강철.


‘그리고 망치질은 나의 역할이지.’


열기를 이용해 마나 하트를 강화한다. 더욱 단단하고 커다란 그릇이 되도록.


쿵, 쿵, 쿵.


호응하듯 거칠게 박동하는 심장. 열기가 소용돌이치며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생동하는 영약의 기운이 마나 하트를 점차 진보된 것으로 가공해간다.


그 성장통은 생각 이상으로 매서웠다.


찌릿!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통증.

벌써부터 반동이 오기 시작한 건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마나 하트로 흘러가던 열기가 성난 당나귀처럼 날뛰어댔다.


그 몸부림으로 인해 리온의 몸 상태는 더욱 극한까지 내몰린다.


주륵-


진득한 코피가 쉼 없이 흘러내렸다. 좋지 않은 신호.


‘······제기랄, 역시 전부 흡수하는 건 무리인가?’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왔다. 영약의 기운 중 3할 정도는 포기해야 할 듯하다. 미치도록 아까운 짓이지만 어쩔 수 없지.


그리 마음먹고선 통제권을 놓으려던 찰나···


툭.


뒤에 있던 레베카가 리온의 등에 손을 짚었고. 날뛰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힘들어 보이셔서 끼어들었는데··· 괜한 참견이었던 걸까요?”


그리 질문하며 눈치를 살피는 레베카.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리온은 대답 대신 엄지손가락을 슬쩍 치켜세웠다.


흐름 제어.

타인의 마나 연공에 개입하여 도움을 주는 기예. 매우 익히기 까다로운 기술인데, 평소 연습해볼 기회가 많았는지 레베카의 솜씨는 매우 능숙했다.


‘이거면 가능하다.’


레베카의 보조 하에 나머지 기운을 마저 갈무리한다. 안정적인 흐름. 이전과 같은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다.


허나 이 순조로움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몸이라는 건 위험을 느꼈을 때 최고 성능을 발휘하는 법. 영약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긴 했지만, 안전장치가 마련된 순간부터 마나 하트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렸다간 몸이 망가질 가능성이 커. 그러니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자칫 무리하여 몸이 상하면 지난번처럼 기나긴 요양 생활을 하게 될 터. 손실 없이 영약의 기운을 흡수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할 듯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영약의 기운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흡수했다. 리온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좋아··· 이 정도면 괜찮겠어.’


미궁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문제는, 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느냐다.


미궁은 대륙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마경. 그런 곳에 가고 싶다는 말을 레베카가 좋게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으므로.


“성취는 축하드리지만, 요즘 너무 무리하셨어요. 당분간은 단련을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리 말한 레베카가 돗자리 위에 정갈히 음식을 차려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얘기를 꺼내기 더욱 막막해졌다. 곤란한 상황. 아무리 생각해도 저 깐깐한 하녀를 설득할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걸 어쩐다···’


한참 고민하던 리온이 슬쩍 곁눈질하여 레베카의 눈치를 봤다.


“안 돼요!”


눈이 마주친 레베카가 대뜸 소리쳤다.


“······거, 아직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어요.”


입을 열기도 전에 봉쇄당했다.

단호하게 화두를 쳐낸 레베카는 식사 준비를 이어갔다. 모닥불 위에서 바글바글 끓는 스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주변에 물씬 퍼져갔다.


리온은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응시했다.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하는 건 매번 어려운 일. 고민이 깊어진다. 자연스레 침묵 또한 길어졌다.


이 묘한 분위기가 심적인 변화를 일으킨 걸까.


“······아까 제게 하시려던 말이 뭔가요?”


국자로 스튜를 젓고 있던 레베카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슬그머니 리온의 눈치를 보는 레베카. 아무래도 방금 전 자신의 언행이 너무 야박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지금이라면 내 말에 귀 기울여 들어줄지도···


“조만간 미궁에 가고 싶은데.”

“절대 안 돼요!!”


······역시, 이렇게 되는 건가.



* * *



레베카의 태도는 몹시 강건했다.


“볼드윈 후작님께서 도련님을 적잖게 신경 쓰는 거 알고 계시죠?”


독에 당해 사경을 헤맨 전례가 있어서인지, 볼드윈 후작은 종종 리온의 신변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베카를 통하여 리온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보고받을 뿐만 아니라, 잊을만하다 싶을 때면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얼굴을 확인하곤 했으니까.


볼드윈 후작이 원하는 건 나의 안전.


“그러니 이건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볼드윈 후작님께서 허락해주시지 않는 한, 도련님이 미궁으로 가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


레베카는 타이르는 듯한 어투로 거절을 표했다. 이치에 맞는 의견이었기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리온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레베카만 설득하면 될 거라 봤는데··· 후작의 승인까지 받아야 할 일이었나.’


예상보다 귀찮고 번거로운 문제였다.

온실 속 화초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줄곧 인지하고 있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발목이 붙들릴 줄이야.


‘······무슨 수로 오리온 후작을 설득하지?’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고민.

리온 힐스베르그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은 이후 적잖은 시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볼드윈 후작이 어떤 인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이는 대화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볼드윈 후작은 얼핏 보기에도 과묵한 사내였고. 나 또한 공적인 자리에서는 입을 자주 열지 않는 성격이었으니.


더군다나 볼드윈 후작은 혈연상 나의 부친이다. 낯선 사내를 아버지라 칭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팔자에 없던 짓을 하게 생겼군.’


리온은 애써 한숨을 참으며 스튜를 떠먹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은 그 감정을 알아차리기 마련.


곁에 있던 레베카는 의아함을 느꼈다. 리온이 이렇게까지 뭔가에 집착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므로.


“미궁에 그리 집착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얼핏 듣기론 아주 위험하고 을씨년스러운 장소라고 하던데.”

“부정은 못 하겠네··· 하지만 나름대로 근사한 곳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고.”

“뭘 얻을 수 있는데요?”

“딱 잡아 표현하기 어려워.”

“왜죠?”


리온이 씩 웃으며 답했다.


“미궁에는 너무 많은 게 있으니까. 돈, 명예, 힘···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형태의 가치와 그것들을 움켜쥘 기회.”


레베카가 설핏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허울 좋은 이야기처럼 들려서 의심되는데요. 전 인생에 지름길이 없다는 말을 믿어요.”

“현명한 마음가짐이야.”


어디 가서 사기당할 일은 없을 듯하다.


“지름길처럼 보이는 곳에는 그만한 위험이 도사리기 마련이니까.”


미궁 속에는 온갖 악의들이 숨겨져 있다.

함정과 괴물, 출구 없는 미로, 믿었던 동료의 배신··· 이러한 덫에 발을 잘못 내디뎠다간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준비를 게을리해선 안 되지.”


중요한 건 위험을 극복할 수 있을 역량.

이 대목에서 뭔가를 눈치챘는지, 레베카는 새삼스레 놀란 눈으로 리온을 응시했다.


“왜 그렇게 단련을 열심히 하시나 했더니··· 줄곧 미궁에 들어갈 준비를 해오셨던 거예요?”

“얼추 그렇지.”

“상황이 난감해졌군요. 으음, 이러면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려나···”


고심하던 레베카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후작가의 악마사냥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4 24.04.22 106 0 -
35 신의 그림자. +1 24.04.19 289 23 14쪽
34 의도. 24.04.18 342 25 13쪽
33 교활한 늑대. +1 24.04.17 344 29 13쪽
32 그늘이 더 짙은 곳. (3) +1 24.04.16 397 26 12쪽
31 그늘이 더 짙은 곳. (2) 24.04.15 422 26 14쪽
30 그늘이 더 짙은 곳. (1) +1 24.04.13 476 30 12쪽
29 검과 마법. +1 24.04.12 483 31 13쪽
28 계승. +1 24.04.11 519 32 11쪽
27 마법사? 24.04.10 541 31 14쪽
26 광전사. +1 24.04.09 600 32 15쪽
25 사냥꾼. +1 24.04.08 672 31 12쪽
24 호접지몽. 24.04.06 682 42 14쪽
23 올드비. (2) 24.04.05 676 37 14쪽
22 올드비. (1) 24.04.04 699 38 14쪽
21 싹 트는 것. (2) +1 24.04.03 723 42 13쪽
20 싹 트는 것. (1) +1 24.04.02 746 44 12쪽
19 마녀의 눈동자. 24.04.01 825 43 12쪽
18 앉은뱅이 체스터. (2) +1 24.03.29 838 42 15쪽
17 앉은뱅이 체스터. (1) 24.03.28 857 43 14쪽
16 접선. 24.03.27 926 43 14쪽
15 부모와 자식. 24.03.26 968 44 14쪽
14 선물. 24.03.25 982 50 14쪽
13 미궁 탐색. (2) +1 24.03.23 1,037 55 13쪽
12 미궁 탐색. (1) +1 24.03.22 1,080 50 14쪽
11 카립디스의 탐식. +2 24.03.21 1,219 50 14쪽
» 지름길. +1 24.03.20 1,290 52 12쪽
9 미궁 속의 나그네쥐. +2 24.03.19 1,347 59 11쪽
8 도서관의 악동. +1 24.03.18 1,381 59 11쪽
7 그림자세계. +2 24.03.17 1,496 6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