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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님의 서재입니다.

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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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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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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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대치(Confrontation) (5-3)

DUMMY

일정부분 현실과 벗어난 삶을 사는 볼리셔니스트조차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버건디 바로 옆에서 같이 일하는 자신도 그랬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은 이러한 의심을 계속해서 지우게 만들었고, 마침내 세계정복이 허무맹랑한 말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레모리./

/네. 포도스트로마./

/하이포크리알레스의 보좌를 부탁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악마 - 그레모리 - 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후, 자신은 일본에 있었기에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버건디는 암호전문으로 그레모리가 예전에 자신이 말했던 「기사단」의 일원인 것과, 그녀가 북한에서 ‘직접’ 남한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며칠 뒤. 그레모리는 아무런 사전 약속도 없이 포도스트로마의 앞에 나타났다. 흡사 유령 같았다.


이국적인 얼굴만 봐서는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악마」라는 것도 버건디에게 들은 것이 다였다. 게이트와 포탈의 건립계획을 세울 때 들은 것이었다. 그것이 완성되면 악마 - 솔로몬이 사역했다는 72악마 - 를 이곳으로 불러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암호전문의 끝에는 악마에 관한 몇 가지 카탈로그가 달려 있었다. 스펙만 놓고 보면 전사와 마법사의 힘을 같이 가졌다는 존재 - 쌍극자 - 조차 상대하기 버거워 보였다.


그녀는 플라타너스 탈출을 막기 위해 급히 소환되었고, 다대한 전과를 세웠다고 했다. 하지만 탈출 저지가 거의 성공한 상황에서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플라타너스는 죽였지만 그릇의 탈출은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실패의 반작용이었을까. 그레모리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이번 대치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고 그릇을 되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포도스트로마는 저 알 수 없는 표정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펄럭이는 오른팔의 소매와, 아직 회복이 덜 된 것으로 보이는 몇몇의 상처들...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동한다./


이제 어스름을 틈타 서른 명에 가까운 볼리셔니스트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짙어지는 어둠에 녹아든 인영(人影)이 바닥에 붙어가듯 이동했다. 거대한 두 개의 고속도로가 분기하는 곳임에도 차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주변 교통량이 없어지는 느낌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인적도 없었다. 쓸데없는 사고를 막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택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놈들이 만반에 준비를 한 것이 분명했다.


분기점을 넘어 울창한 구릉지대에 들어섰다. 좁은 나라임에도 산도 많고 나무도 많았다. 유럽과 미주에서 느꼈던 감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포도스트로마는 근처 가장 높은 곳을 택하여 나무 꼭대기에 올라섰다.


/....../


그러자 그의 눈에, 멀리 횡대로 넓게 포진한 적 볼리셔니스트의 모습이 들어왔다. 숲과 하늘의 경계에 열 개가 좀 넘는 사람 그림자가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저번 어둠에서 봤던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칼자루를 홀스터에 넣은 포도스트로마가 천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

“......”


누구랄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가장 높은 나무 끝을 밟고 선 채, 목소리가 들릴 거리까지 다가섰다. 한강진 국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통성명은 됐겠지./

/... 물론./

/바로 시작하면 되나?/

/그러지./


무심히 대답한 포도스트로마가 휑 하니 돌아섰을 때였다. 갑자기 나무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불쑥 나타났다. 두 사람의 놀란 표정 사이에서 드러난 정체는 바로 그레모리였다. 그녀는 당황한 포도스트로마와 한강진 국장을 느리게 돌아보며 말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레모리! 무슨 짓이지?/

/중요한 전투를 목전에 두고 개인적인 은원(恩怨)을 입에 담는 것이 불충한 줄 아오나.../


한강진 국장은 고어(古語)에 가까운 문법에 적응하지 못했다. 일부 뜻만 알아들은 그는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좀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감히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레모리. 알아들을 수 있게 얘기하도록./


포도스트로마의 짜증 섞인 대답에 그레모리의 시선이 한강진 국장을 향했다가 돌아섰다.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가며 말했다.


/듀얼을 신청하고 합니다. 「하얀 마녀」에게./

/!!!/


종잡을 수 없는 그레모리의 등장과 제안에 정신이 없는 한강진 국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거부하오. 예정에 없던 일이오./


한강진 국장은 명백한 거부 후에, 포도스트로마를 향해 불만을 드러냈다.


/이렇게 판을 깰 작정이었으면, 왜 대치를 왜 신청한 거지?/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다. 못 들은 걸로 해 줘./

/....../


한강진 국장이 돌아섰다. 하지만 이때였다. 돌아선 그의 앞에 정은정 과장이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낀 한강진 국장이 외쳤다.


“정 과장! 안 돼!”

“......”


그레모리의 등장에 뭔가 홀린 듯 다가온 정은정 과장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그레모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추측컨데 그녀가 듀얼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은정 과장이 한강진 국장 옆까지 왔다. 그레모리와 둘 사이에 번개 같은 눈빛이 튀어 올랐다. 왼손을 접었다 폈다 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

/북한에서의... 작전 실패를 만회하고 싶다는 거군./


정은정 과장은 찰나의 순간에 승패가 뒤집힌 그 때를 얘기했다. 물론 지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절망적인 상황을 끝끝내 반전시켰다. 「기도」 하는 지민화에게 쏟아지던, 그레모리 최후의 한 타를 흩트림으로써 의지도달공간을 가로막던 벽을 허물었던 것이었다.


이어진 공격에 그레모리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꼴사납게 날아갔다. 상어와의 싸움에서 약해진 탓도 있었지만, 정은정 과장의 공격은 그레모리 갑옷을 뚫고 타격을 주는 데에 성공했다. 정은정 과장은 그때의 손맛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때의... 패배를./

/....../


그레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를 노려보던 와중이었다. 그레모리가 입을 열었다.


/나, 칠현 기사단(七賢騎士團The Order of the Seven Sages) 3대대장 그레모리, 지금껏 그런 실패는 겪은 적이 없었다.../


포도스트로마도, 한강진 국장도 끼어들지 못할 정도의 압력이었다. 그레모리는 허리춤에서 칼자루를 꺼내 정은정 과장을 향했다. 이내 바람소리를 가르는 저주파의 소리와 함께 노란색으로 빛나는 칼날이 흘러나왔다. 흔들리는 빛이 두 사람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레모리가 말했다.


/듀얼을 신청한다. 받아주겠지?/

/「한정형태」를 사용할 건가?/

/「폭풍의 현자Storm Sage」, 티칼님에게 다 들었겠지. 「한정형태」는 지금 사용할 수 없어. 핸디캡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보다는 한결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복잡한 문법도 어려운 단어도 없이, 누구나 할 법 한 말이었다. 정은정 과장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스며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 좋아./

“정 과장!”

“괜찮습니다. 팀장님. 어차피 묶어두기로 했으니까요. 제가 시간을 벌 테니 나머지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당황한 한강진 국장이 그녀에게 손을 뻗었지만, 정은정 과장은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게다가 난감하기는 포도스트로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지로 듀얼이 성립된 지금, 그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시작 해볼까./


정은정 과장이 칼을 뽑았다. 이제 기둥처럼 올라온 두 개의 칼날이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포도스트로마와 한강진 국장은 서로의 진영으로 물러섰다. 한강진 국장이 이어셋에 대고 소리쳤다.


“전투 개시!!”


* * * *


「토성Saturn」 작전 개시 10분 뒤, 1988년 3월 24일 목요일 19시 22분.

경남 창원군 내서면, 남해고속도로와 구마고속도로가 만나는 내서JC(교차로) 인근.


「악마Devil」와 「쌍극자Dipole」의 대결이라는, 어쩌면 평생 한 번 보기 힘들 구경거리가 눈앞에서 펼쳐졌다. 「한정형태Transform」이긴 했지만, 한 쪽은 9국 볼리셔니스트들 전체를 일격에 전투불능으로 만든 악마. 그리고 다른 한 쪽은 그런 악마를 날려버린 쌍극자.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그레모리는 전의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은 상태였다. 단순히 보자면 정은정 과장 쪽이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의 접전은 팽팽했다.


그리고 그 둘을 중심으로 9국 볼리셔니스트 6명, 지수, 그리고 실루엣 2명 총 9명과, 하이포크리알레스와 마룬을 중심으로 한 검은색 나무 볼리셔니스트 26명이 전투를 시작했다. 「대치」의 룰에 따라 양 측 지휘관은 일정 거리 후방으로 물러난 상태.


전력비만 보면 거의 1:3에 가까웠다. 그러나 몇 번의 실전과 사선을 넘나든 9국의 경험치는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머릿수 차이에 아랑곳 않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9국 볼리셔니스트들의 기세에, 검은색 나무는 생각만큼 수적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선두에 선 지수, 좌우익을 맡은 실루엣의 J와 N은 또 다른 변수였다. 지수는 하이포크리알레스와 마룬을 포함한 네 명의 적을 상대했고, J와 N은 빠르게 움직이며 상대 진영의 허점을 노리고 있었다.


/하이포크리알레스라고 했나... 다시 보니 반가운데./


지수가 피 칠갑의 어둠 속에서 본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이포크리알레스 역시 지수를 알아보고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지수의 칼에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다.


/역시 살아있었군./

/빚을 지고 죽을 수야 없지./


곧 쌍극자의 강렬한 방어 앞에 마법사의 칼날이 쏟아졌다. 지수는 방어를 굳힌 채 교묘히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는 상대의 중진이 좌우익과 분리되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모루’라는 중대한 역할은 오직 지수만이 맡을 수 있었다.


“......”


거리를 둔 후방. 한강진 국장은 높은 나무 위에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전 자체는 간단했다. ‘모루’가 적의 중진을 끌어당겨 버티는 동안, ‘망치’가 좌익 혹은 우익의 허점을 노려 몰아치듯 쓸어버린다는 개념이었다. 이 ‘망치와 모루’ 작전은 고래(古來)부터 내려온 유명하면서 진부한 전술이었지만, 보통 다대다(多對多) 볼리셔니스트 전투에서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작가의말

12월 중순까지는 계속 바쁠 거 같습니다.ㅜㅜ

매번 죄송하다는 말씀만 드리는 것 같아서 더더욱 죄송스럽네요.

최근에는 아침 출근 전에 조금씩 쓰고 있는데, 시간의 모자람을 절절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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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9화 : 대치(Confrontation) (5-6) 21.12.19 24 0 11쪽
196 9화 : 대치(Confrontation) (5-5) 21.12.13 25 0 12쪽
195 9화 : 대치(Confrontation) (5-4) 21.12.05 24 0 12쪽
» 9화 : 대치(Confrontation) (5-3) 21.11.27 29 0 11쪽
193 9화 : 대치(Confrontation) (5-1~2) 21.11.14 30 0 23쪽
192 9화 : 대치(Confrontation) (4-4) 21.10.31 29 0 19쪽
191 9화 : 대치(Confrontation) (4-3) 21.10.24 27 0 12쪽
190 9화 : 대치(Confrontation) (4-2) 21.10.17 28 0 11쪽
189 9화 : 대치(Confrontation) (4-1) 21.10.11 30 0 11쪽
188 9화 : 대치(Confrontation) (3-3) 21.10.09 25 0 14쪽
187 9화 : 대치(Confrontation) (3-2) 21.10.03 25 0 13쪽
186 9화 : 대치(Confrontation) (3-1) 21.09.26 28 1 15쪽
185 9화 : 대치(Confrontation) (2-5) 21.09.25 27 1 14쪽
184 9화 : 대치(Confrontation) (2-4) 21.09.22 32 1 12쪽
183 9화 : 대치(Confrontation) (2-3) 21.09.12 32 0 12쪽
182 9화 : 대치(Confrontation) (2-2) 21.09.12 27 0 12쪽
181 9화 : 대치(Confrontation) (2-1) 21.09.05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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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9화 : 대치(Confrontation) (1-2) 21.08.29 30 0 13쪽
178 9화 : 대치(Confrontation) (1-1) 21.07.18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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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8화 : 구원(Salvation) (4-4) 21.07.04 35 0 13쪽
174 8화 : 구원(Salvation) (4-3) 21.07.03 33 0 13쪽
173 8화 : 구원(Salvation) (4-2) 21.06.27 29 0 12쪽
172 8화 : 구원(Salvation) (4-1) 21.06.27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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