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56,433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9.03.22 11:24
조회
70
추천
0
글자
18쪽

격돌, 하스트 대 모더 (2)

DUMMY

하스트의 눈에 깃든 현묘함이 세상을 향해 고한다.


“불의 비밀.”


술법은 하스트의 등 뒤에서부터 붉은색의 얇은 막을 형성하더니, 경기장을 빠르게 감싸기 시작한다.


“뭐냐, 이게?”


모더는 황당함에 상대에게 들릴 리 없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저 술법에는 어떠한 공격성도 없다.


“이따위 술법을 그렇게 오랫동안 만들었다고?”


모더는 헛웃음을 지었다. 실망이었다. 최고로 죽이고 싶은 놈인 하스트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내였다니, 겨우 저따위 놈에게 이 술법을 펼쳤다니. 그러나 실망을 해도 안심하지는 않는다. 막이 경기장을 완벽히 뒤덮는 순간, 혹시 다른 일이 펼쳐질 수도 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막은 경기장을 완벽하게 감쌌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 하하하, 크하하하! 나를 기만하는 거냐? 아니, 어차피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다는 거겠지. 어차피 사기꾼에 낚인 약자. 하스트, 이게 네 실체였던 거겠지!”


모더는 허탈함에 분노가 가득 찼다. 이제 이 전투를 지속할 이유는 없다. 눈 앞의 하스트를 죽이고, 밖의 간부들을 도와 이 전쟁을 끝내기로 했다. 오늘 예언자가 오지 않는다면, 좋다. 그를 상대하기 위한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할 때다.


“급하구나.”


그때, 무겁게 내려앉는 음성이 모더의 귓가를 잠식한다.


“어, 어떻게?”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린다. 하스트가 크게 소리친 것도 아니다. 마치 주위에서 일렁이는 화염 따위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소리가 들린다. 착각이었다 생각할 수도 없다. 다시 하스트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주변의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따갑도록 귀를 맴도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하스트의 목소리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린다.


“저 술법은 불의 힘을 밖에서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모더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스트에게서 뿜어지는 무게감이 아까와는 전혀 다르다. 아까와 같은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로.


“누구에게?”


모더의 질문에 하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식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하스트에게로 가공할 속도로 불의 자연력이 모인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주변에 퍼진 불의 자연력을 갈무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모더는 금세 그 근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지맥에서 힘을 끌어오고 있어?”


모더가 추후에 이용하려 했던, 지맥의 힘이 불의 자연력으로 변환되어 하스트에게로 흘러간다.


“어떻게? 어떻게, 술법도 사용하지 않고 지맥을 이용하는 거냐?”


모더는 부정의 목소리로 하스트에게 외쳤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지맥에 대해 연구한 그는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여기에 술법은 설치했지만, 본인조차 앞으로 최소 몇 년은 연구해야 겨우 완성할 수 있는 지맥의 활용을, 하스트는 지금 어떠한 기반도 없이 사용하고 있는 거다. 모더는 자신의 지난 세월을 부정당했다.


“술법이라면 있다.”


그 말과 함께, 화염에 일그러졌던 풍경이 점점, 천천히 안정되어간다. 불은 타오르고 있다. 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열기가 대기를 뒤틀어 시야의 혼란을 초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뒤집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 속에서, 모더는 하스트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간신히 목격했다. 그건 모더가 만들어놓은 술법이었다.


“지금, 내 술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술법의 발동 조건에는 모더의 자연력이 필수불가결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하다못해 같은 마을 출신이라도 술법을 짜 올리는 방식이 다르기 마련이다. 인종까지 다른 하스트가 이렇게 간단하게, 이런 단시간에 술법을 해석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나마 모더가 나이트의 술법에 자신의 술법을 붙일 수 있던 것도, 둘이 오랜 시간 서로의 술법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찌어찌 흉내를 낸다고 해도, 이렇게 완벽한 발동은 불가능하다. 아니, 완벽한 정도가 아니다. 모더의 술법 그 이상이다.


모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는 하스트를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했다. 하지만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반경 10미터라는 거대한 화염의 공간을 이끌고 전진했지만, 점점 속도가 느려진다. 하스트의 힘이 커질수록,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불경함이 그를 지배한다.


‘이, 이게 무슨?!’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스트의 힘이 커지고 있다. 벌써 기존의 하스트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넘어서고 있다.


‘말도 안돼!’


저런 게 가능할리 없다. 아무리 하스트가 천재라고 해도, 술법을 완벽히 다룬다고 해도, 힘을 흡수하려 노력해도, 정수의 크기가 그것을 받쳐주지 못해야 정상이다. 과한 힘은 사용자에게 파멸을 요구한다. 아무리 하스트라고 그 법칙에서 피할 수 없다.


나이트라는 전례가 있긴 하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다. 아니, 어쩌면 나이트는 이곳에서 모더 본인이 모르는 사이 피나는 수련을 반복했을 수도 있다. 그것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함이니까.


그런데 하스트는 아니다. 그는 지맥이라는 외부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모더는 느끼고 있다. 커지고 있는 것은 힘뿐만이 아니다. 마치 경지 자체가 상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스트를 감싼 화염들이, 점점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떠한 술법도 발휘하지 않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를 추종한다.


그러나 단순히 힘이 커진다고 경지가 오를리가 없다. 마치 강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힘을 회복하는 것 같은-


‘착각이야! 내가 흥분에 잠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거다!’


모더는 이를 악물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단 한 발자국, 그 한 발자국을 내미는 것조차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했다.


몸에 힘을 주고 다시 한 발자국 내민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리가 절로 숙여진다.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하스트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온몸에 퍼진다.


까득!


하지만 그것을 거부한다. 더욱 강하게 이를 악문다. 너무 강하게 악문 치악력에 치아의 아귀가 어긋난다. 어금니에 금이 가고, 송곳니가 흔들거린다. 그럼에도 이를 악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벌어진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화염으로 날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내가 최강이란 말이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가면 된다. 하스트와의 거리는 10미터가 넘지만, 상관없다. 하스트는 불의 비밀이라는 술법을 쓴 후로, 모더에 대한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하스트를 감싸고 있는 방어막은 지금도 견디기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한 발자국이면 방어막은 견디지 못하고 와해된다. 그 후에는 지금 하스트가 무슨 짓을 시도하고 있든 간에, 열기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정신이 흐트러진다면, 저 미지의 술법도 폭주하고, 하스트는 자신의 힘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안정되어 가던 시야가 비로소 명확해지고, 하스트의 얼굴도 똑똑히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의 표정을 목격했을 때와 다르게, 하스트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씁쓸함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모더는 자연스레 추측했다. 아마 누구에게 불의 힘을 숨기느냐 물었을 때부터일 거다.


모더가 그 얼굴을 보며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으려는 찰나, 하스트가 말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화염으로는 네가 최강이다. 화염술만이라면, 내가 아니라 나이트조차 널 이길 수 없었겠지.”


“이제 와서 감언 해봤자-”


“하지만-”


모더의 정확한 시선을 느낀 걸까? 하스트가 씁쓸함을 표정에서 지우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이젠 아니야.”


모더는 지맥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지맥은 더 이상 하스트에게 힘을 전해주지 않았다. 하스트는 지맥에서 힘을 끌어오는 것만이 아니라, 지맥을 안정화시키는 것까지 이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해냈다.


모더는 하스트와 눈이 마주쳤다. 높다. 그저 드높다. 하스트가 지닌 경지를 그는 예측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구름 하나 없는 창공처럼, 시작과 끝을 헤아릴 수 없다.


심장의 고동은 더 이상 날뛰는 것조차 결례라는 듯이 차분해진다. 근육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며 긴장 상태에 놓인다. 그것만이 살길이다라고.


그리고 그것을, 모더는 인정하지 않았다.


“웃기지 마라!”


이 말이 향하는 대상은 불분명하다. 그 자신인지, 하스트인지, 말하고 있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넌 지금 여기서 죽는다! 이 공간, 절대 영역에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모더는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도 알고 있다. 이 힘은 용기에서 얻어낸 것이 아니다. 무모함,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하룻강아지의 치기 어린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대로 하스트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과정은 아무 의미 없다. 결과만이 말해줄 것이다. 하스트가 불타 죽는다는 결과가, 과정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한 발자국, 하스트의 방어막이 깨진다. 두 발자국, 철조차 녹일 수 있는 열기에 하스트가 노출된다. 그리고···


“후후후후, 후하하하하!”


세 발자국. 마침내 하스트가 스러진다. 재로 날리는 하스트의 형상을 보면서, 그는 고개를 높이 들고,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속도를 줄였다.


“그래, 이 절대 영역에 들어오면 누구라도 끝이지!”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이 술법에 대한 자신감은, 진실이었다.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가?”


“!”


모더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경악하며 다시 정면을 보았다. 하스트가 그곳에 있다. 너무나 멀쩡한 채로, 옷조차 그을리지 않은 채로, 주먹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눈앞에서 마주 보고 있다.


“이게, 어떻게?”


“난 여기 서있었을 뿐이다.”


“내가 본 게 환상이었다고? 아니야... 아니야! 하스트, 넌 어떻게 내 앞에 서 있는 거냐! 비명을 질러라! 죽으란 말이다! 내 힘에 공포를 느끼고 절망하란 말이다!”


모더는 발악했다. 이 지근거리에서 아무 이상도 없는 하스트에게 공포를 느꼈다.


“비명, 공포, 절망이라···”


하스트의 중얼거림에 모더는 갑옷을 걸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하스트는 아주 손쉽게 그 주먹을 잡고, 말을 이었다.


“애송아, 지금 누구 앞에서 그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느냐?”


하스트의 손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아주 작은 불길이다. 온도도 모더의 절대 영역보다 비교할 수조차 없이 낮다. 그러나, 모더는 그 불길을 막을 수 없었다. 하스트의 작은 불길이, 모더의 절대 영역을 거슬러, 모더의 주먹을 불태운다.


“끄아아악! 내 절대 영역이!”


“절대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쓰는 게 아니란다.”


모더는 점점 번져가는 불길을 반대편 손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오히려 반대편 손에도 불길이 번져간다.


“끄아아!!”


모더가 걸친 판금 갑옷에 불이 붙는다. 녹이는 것이 아니라, 불이 갑옷과 함께 넘실거린다.


갑옷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열기에 의한 고통은 있는데, 육체가 불타 없어지진 않는다. 그저 고통만 계속될 뿐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화염이 아니야! 속임수다! 넌 지금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거다!”


“아니, 화염이다. 자연에 있는 것과 같지 않을 뿐이지. 우린 자연력을 사용해서 자연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다. 겪어본 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압도적으로 쉬우니까. 원래 자연력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


하스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모더는 고통마저 잊은 채 넋두리하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령력··· 정령은 물질의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에 정령들은 물질의 규칙과 다른 형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차가운 불, 단단한 바람, 타오르는 물, 날아다니는 돌처럼··· 정령은 자연을 넘어선다...”


“용케도 그런 옛날 전설을 아는군. 정령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드물어서 잊혀진 전설일 텐데.”


모더는 다시 하스트에게 초점을 맞췄다


“하스트, 넌 대체 누구지?”


“그건 비밀이다.”


모더는 하스트의 말에 침묵했다. 이제는 그저 드높다고 생각한 경지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한 모더는, 눈 앞의 존재가 정말 실재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입을 감싸는 감각과 손을 태우고 있는 고통만이 이것이 현실이라고 확인시켜주고 있다.


침묵도 잠시, 하스트와의 격차를 확실하게 깨달은 모더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어라 소리치려는 찰나, 하스트는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이만한 일을 벌였을 때는 이미 각오가 되어있던 것 아니었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악한이 이제 와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 마라. 무의미하다.”


“...!!”


모더의 소리를 듣기 싫었던 하스트는 성대와 기도를 불로 태워버렸다. 불에 의해 수축하는 근육에 의해 기도가 완전히 막혀, 폐로 공기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모더는 완벽하게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단순히 소리만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산소가 차단되었으니 기절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하스트는 그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교화 따위는 없다. 반성할 필요도 없다. 정화라는 말조차 네게는 사치다. 너에게는 이 술법이 가장 어울린다.”


모더는 그 술법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 나이트가 사용했던 술법이니까.


“악은 악으로 남은 채 죽어라.”


하스트의 손에서 순식간에 커진 화염이 모더를 둘러싼다. 그와 함께 어마무시한 고온이 발생한다. 판금 갑옷이 순식간에 달구어지더니, 모더의 몸과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절대 모더의 머리에는 열기가 닿지 않는다.


모더의 고통만이, 그에게 희생당한 자들을 위한 위로라는 듯이 하스트는 모더를 최대한 살렸다. 모더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의식의 붕괴와 각성을 반복했다.


그리고 모더의 팔다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하스트는 술법을 완전히 해방했다.


“소각.”


하스트의 손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생성된다. 불기둥은 모더를 완전히 감싸고, 그의 육체를 지워서 없애버렸다. 하스트와 세계의 불타는 비명을 듣고 싶어 했던 모더는, 본인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맹렬하게 위로 뻗어나간 불기둥은 하스트가 펼쳐낸 막과 부딪히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막 안에는 오직 화염만이 존재했다. 화염은 모든 것을 지워 없앴다. 왕국에 희생당한, 땅속 깊이 스며든 피마저. 화염은 땅속에 펼쳐진 막에 부딪히고 나서야 전진을 멈추고, 점점 사그라들었다.


화염이 완전히 사라진 경기장에는 하스트가 피폐한 기색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휴우··· 너무 무리했나?”


그곳에는 평소의 하스트가 있었다. 주저앉은 것도 잠시, 다시 지맥을 살핀 하스트는 이내 드러누워버렸다.


“너무 시간을 끌었네. 죽을 뻔했다.”


모더를 쥐었던 오른손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단순히 열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얘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나 보네. 예상보다 오래 걸리잖아? 하긴, 상대가 상대니까.”


그럼에도 하스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간부들의 수준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하스트는 간부들과 일행을 단독으로 싸우게 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직 그 정도 수준은 되지 않는다 생각했으니까.


“절대 헛된 수련이 아니었다는 거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하스트의 도움 없이도 파괴자를 억제할 수 있는 배출의 술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게 보아도 최소 몇 년은 걸릴 것이라 예상되던 경지를 예언의 아이들은 이미 올라서 있다.


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더의 말대로, 간부들, 특히 그중 몇몇은 촌장급들 중에서도 거의 최강자들이다. 아마 그들을 상대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촌장은 엘프 마을과 도깨비 마을 촌장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믿어야지.”


일행에게 말했던,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한다는 그런 목적이 아니다. 하스트는 도망자들의 마을, 그리고 드워프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죽어도 예언의 아이들을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이다. 예언의 아이들이 죽으면, 세계는 파괴자에게 멸망한다. 애초에 피해 규모가, 저울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스트는 예언의 아이들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이 길을 택했다. 최강의 파괴자가 깨어난지는 이미 시간이 꽤 흐른 상태. 이 정도도 넘어서지 못하면, 애초에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일 게 분명하다.


쉬는 것도 잠시, 주변을 요동치던 불의 자연력이 잠잠해지자 하스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미리 흐름을 설정해둬야겠어.”


하스트는 변화될 흐름에 지맥이 폭주하지 않도록 손보기 시작했다. 예언의 아이들은 분명히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령의 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2 격돌, 소토 대 묘원 (2) 19.09.02 29 0 12쪽
161 격돌, 소토 대 묘원 (1) 19.09.02 34 0 13쪽
160 격돌, 퇴기 대 거스 (2) 19.04.05 61 1 21쪽
159 격돌, 퇴기 대 거스 (1) 19.04.03 61 0 14쪽
158 격돌, 엘르 대 러프터 (4) 19.04.02 48 0 23쪽
157 격돌, 엘르 대 러프터 (3) 19.03.29 85 0 15쪽
156 격돌, 엘르 대 러프터 (2) 19.03.28 53 0 19쪽
155 격돌, 엘르 대 러프터 (1) 19.03.25 80 0 16쪽
» 격돌, 하스트 대 모더 (2) 19.03.22 71 0 18쪽
153 격돌, 하스트 대 모더 (1) 19.03.21 99 1 15쪽
152 단죄의 시작 (6) 19.03.19 91 1 15쪽
151 단죄의 시작 (5) 19.03.17 79 1 16쪽
150 단죄의 시작 (4) 19.03.14 67 1 16쪽
149 단죄의 시작 (3) 19.03.14 60 1 14쪽
148 단죄의 시작 (2) 19.03.12 63 1 15쪽
147 단죄의 시작 (1) 19.03.11 84 1 12쪽
146 악의 무리 (9) 19.03.04 61 1 13쪽
145 악의 무리 (8) 19.03.02 83 2 12쪽
144 악의 무리 (7) 19.03.01 63 1 12쪽
143 악의 무리 (6) 19.02.28 88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