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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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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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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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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3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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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떠돌이 소년

DUMMY




한 소년이 마을 외진 곳 구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열셋에서 열네 살 남짓한 외양.

발육이 뒤떨어져서 그렇지 실제로는 좀 더 나이든 아이였다.


짙은 갈색 피부의 흑발의 소년.

꾀죄죄한 옷차림에 며칠 이상 굶은 탓에 볼은 헬슥했다.

길거리를 꽤 오래 헤맨 것인지 씻지 못해 지저분했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짙고 깊은 한기와 사나움이 서렸다.


소년은 몸을 옮겨 정처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배회하였다.

상당히 긴 시간을 이렇게 이 마을에서 보냈다.

그는 이 지역의 공동체들을 살피도록 지령을 받은 참이었다.

홀몸이 된 이후로 줄곧 굴욕적으로 해왔던 일.

하기 싫은 일들을 강압적으로 떠 맡는 일은 익숙했다.


누추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여러 면에서 편리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그들 속으로 파고들 틈을 얻기 쉬웠다.

특히 쓸데없이 무디기만 한 ‘그 집단’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소년으로서는 왜 그들이 무딘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이 나그네를 환대하기를 힘쓰도록 배운 탓이었다.

그들은 그런 이유로 소년 같은 불한당에게 배신을 당한 일이 많았다.

소문에 둔해서인지 아니면 바보 같이 착해서인지 알 길은 없었다.


어린 꼬마에게도 양심은 있었다.

속임수로 정탐하며 빌붙다가 늑대처럼 삼키는 자신.

어리다고 해도 양심만 살아있다면 충분히 자기 환멸감을 느낄만 했다.

슬프게도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모종의 ‘세뇌’가 워낙 잘 먹혀서인지 그런 여지도 없었다.


이미 소년은 비슷한 식으로 스무 곳도 넘는 다른 지역을 첩자질한 바 있었다.

그때마다 유일하게 매번 내치지 않고 받아들인 곳은 그 무리뿐이었다.

매번 소년의 침투는 뒤따르는 화액으로 이어졌다.

속임수를 행하는 무리가 아이에게 심어진 미끼를 통해 뒤따라 쳐들어왔고 그것은 재난의 엄습으로 이어졌다.

미움이 그 행악자들을 지배하였고 포악함이 그들 손에 있었다.


‘차라리 그냥 버림받았으면.’


아이도 눈치는 있었다.

자신이 선의 베푸는 자들을 삼키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소득 없이 돌아간다면 매질이 기다리고 있기에 거부하지도 못했다.

그게 아니면 짐승들의 먹잇감이 될수도 있고, 좁은 상자에 갇혀 몇날 며칠을 빛을 보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미 혹독하고 수치스러운 체벌을 여러 차례 당한 아이의 몸에는 이미 학습 효과가 깃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를 환대했다는 이유로 위협과 손실을 겪어야 할 사람들의 고통은?

거기에 대해서는 누가 보상해준단 말인가.


물론 철 없는 아이에게는 이런 복잡한 문제는 와닿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소년을 부리는 어른들은 항상 세뇌해왔다.

‘저 무리’는 그렇게 당해도 싼 버러지들이라고.

참된 율례를 흐뜨려놓으며 질서를 거스르는 행악자들이라고.


정말일까?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면 왜 저렇게 한량없이 착하다 못해 바보 같지?


‘이대로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버리자.’


돌아가기도 싫고 나아가기도 싫다.

삶 자체에 대한 싫증이 솟구쳤다.


아이는 몸에서 기력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사흘을 굻은 결과라 당연한 이치였다.

도둑질이라도 해서 배를 채우면 살겠지.

하지만 도둑질을 하는 자마다 손목을 잘라버린 그 어른들의 훈육이 아이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공포감과 무서움 탓에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 배운 방식은 이렇듯 엄혹하고 잔인했다.

한 치의 사랑조차 없이 오로지 무섭게 억누르는 규율이요.

그들이 선이라고 정의하면 그렇게 믿어야 하는 절대적 질서였다.


“배고프고 숨 막혀.”


장시간의 탈수로 인해 아이의 눈은 시력을 잠시 잃었다.

땀으로 끈적해진 옷이 살갗에 질척이며 달라붙는 감각이 몹시도 불쾌했다.

땡볕은 잔혹할 정도로 맹렬했고 모래바람의 칼날이 피부를 찔렀다.


“괜찮니?”


시야가 흐릿해져 모든 물체가 잔상으로만 보일 즘, 음성이 들려왔다.

부드럽고 중저음에 자상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이런, 몸은 괜찮니? 기운 내서 일어나렴.”


커다란 그림자가 햇볓을 가리며 소년 위에 그늘을 드리웠다.

반듯하고 올곧은, 천 년 이상 묵은 나무 같은 느낌의 존재였다.

그는 빠르게 아이의 몸의 건강 징후들을 오감을 동원해 살폈다.

당장에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자 그의 목소리에 안도가 깃들었다.


“배고프고 지친 모양이구나. 괜찮다면 내가 도와줘도 될까?”


아이는 시선을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눈을 고정했다.

쥐어짜낸 기력이 정신을 지탱한 것인지 서서히 눈빛이 되돌아왔다.

소년의 눈앞에 어른 남성 하나가 있었다.

그는 일부러 몸을 쭈그려 앉아 소년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차분히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기다랗고 곧게 뻗은, 든든하고 넓고 깨끗한 손이었다.


“날 따라오렴. 의심하지 않아도 돼.”


아이는 잠시 속으로 하고픈 말을 삼켰다.

‘이 아저씬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이곳 사람과는 느낌이 달랐다.

매번 만나는 사람의 외양이 어느 일정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던 소년 입장에서는 난처하고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실제로 소년을 맞아준 상대는 외국인이었다.

정확히는 ‘주권국의 본토’ 출신 사람’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그 권세의 영향권이 아닌 곳이 없었다.


‘백인?’


보통 주권국에서 온 자들 곧 백인종의 혈통이 섞인 후예인 신대륙 혹은 북서부 컨티넌트의 사람들은 소년처럼 의심스러운 부랑배는 거들떠도 안 보고 무시하곤 하는 게 관례였다.

실제로 수상한 아이에 잘못 휘말려 봉변 당한 사례가 제법 되었으니까.


그런 이유인지 아이로서는 이색적인 느낌의 외지인이 자신을 환영하는 이 상황이 낯선 경험이었다.


“이대로 쓰러져 있을 수는 없잖니?”


키 큰 아저씨의 입에서 이 지역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우리 말을 엄청 잘 하잖아?’


이미 오래 전 세계의 공용어는 하나로 온전히 통일되었다.

그리고 이곳은 그저 소외된 작은 지역.

이미 주권도 잃어버렸고 국경선의 소멸 후로는 세계라는 용광로 속에 융화되어 부속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종속된 이 땅의 말들은 사장된 토속어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서양인이 이 나라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건 이상한 일이 분명했다.


“······네.”


다만 복잡한 국제 사정 따위는 모르는 아이는 그저 배고픔과 더위에 굴했다.

딱히 수상하다는 생각을 품기에는 상대가 주는 인상이 워낙 좋았다.

또 당장의 몸의 고통을 덜자면 아저씨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이는 마지 못해 커다란 어른의 손에 붙들려 일어섰다.




*


남자는 외진 마을을 벗어나 근방의 어느 건물로 아이를 인도했다.

아이가 머물던 황폐화된 아지트와는 사뭇 다른, 현대화되고 깔끔하고 풍족해보이는 시설이었다.

아마 부유한 사람들 내지는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 혹은 관광객들을 위해 지어진 건물 같았다.


“우선 식사라도 하고 푹 쉬고 가렴.”


사내는 부엌으로 데려가 아이가 먹을 음식을 대령하게 하였다.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주변에는 식객이 아무도 없었고 오로지 섬기는 사람들만 간간이 드나들었다.


며칠을 굶었던 아이는 일단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음식의 질은 평생 먹어본 어떤 식량보다도 훌륭했다.

배가 차오르니 마비되었던 두뇌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누구지?’


그제야 자신을 별안간 여기 초대해준 아저씨의 정체가 조금 궁금해졌다.

소년은 자신이 게걸스럽게 예절도 없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며 흐뭇한 눈으로 응시하는 그 어른을 이상해하며 갸우뚱거렸다.


몇 가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첫째, 아저씨의 출신지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건 분명한데 특정한 민족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직접 손을 맞대진 못했지만, 오늘날은 워낙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이라 아이도 간간이 스크린 너머로 외국인들의 생김새를 구경한 바 있었다.

심지어는 혼혈화가 많이 이뤄져 다양각색인 신대륙 출신의 사람들도.

그런데 그 아저씨는 이색적이어도 너무 이색적이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인종이 하나가 된 것처럼.

소년이 느끼기에는 마치 지구인이 아닌, 인간형의 아름다운 외계인 같았다.


둘째, 그 아저씨에게서는 특유의 짙은 아우라가 풍겨졌다.

생존하는 데 급급한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던 약자에게는 상대의 특색을 느끼는 육감적인 감각이 잘 발달하는 법.

그 덕에 소년은 머리로는 몰라도 본능으로는 감지했다.

저 어른이 지금껏 상대해온 어떤 인간 부류와도 다른, 비범한 인물임을.


어른들이 떠들어대는 그 경전에나 나오는 위대한 영웅?

아니면 강력한 야수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

모호한 첫인상이었다.


셋째, 그 아저씨는 눈을 떼기 힘들게끔 하는 자였다.

체격이 산처럼 듬직하기도 하고 그 반듯함이 두드러지는 몸 선이 인상적이었다.

단정한 고품질의 옷으로 몸을 두르고 있었다.

거적대기나 입고 있는 아이와는 상반되는 근사한 신사복.

과하지 않게 잘 차려진 옷들은 남자의 신체가 내뿜는 위압감을 더욱 도드라지게 빛내주었다.

과격하지도, 과장스럽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와! 엄청 세 보여.’


적어도 소년이 평생 본 모든 어른들 중에서는 제일 강인해보였다.

아마 앞으로 만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도.


‘어깨가 뭐 저렇게 넓어?’


몸 전체가 말랑한 구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보이는 사람.

동시에 지극히 부드럽고 현명해보이는 인상을 지닌 위인.

철인(鐵人)인 동시에 철인(哲人).

그가 상냥히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기운이 도니?”

“······네.”

“다행이구나. 씻을 시설도 있으니 목욕이라도 하렴. 옷도 새로 마련해줄게.”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사양하지 않아도 된단다. 어차피 당장 머무를 곳도 없잖니?”


남자는 대화의 주도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부류였다.

강압적으로 말을 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묘한 최면술을 휘두르듯 자연스레 모든 분위기를 끌어온다.

부드러운 지배자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자.

어른이라도 상대하기 버거운 부류였다.


‘쳇, 저 아저씨는 재수없어.’


그렇게 생각되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마 아이에게는 이쪽이 더욱 신경쓰이게 하는 이유였으리라.

보통이라면 이 이유는 사람에게 호감을 심어주는 요인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마음이 삭막해진 아이에게는 도리어 삐딱함만 불러 일으켰다.


넷째 주목할 점은, 남자의 지나치게 번듯하고 반짝이는 외양이었다.

귀족적이면서 우월함이 강물처럼 넘쳐나는 아름다움.

인위적으로 빚어진 것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깃든 듯한 아름다움.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하학적 균형에서 벗어난 부분이 없었다.


미학적 기준은 지역이 다르다고, 나이가 다르다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멋쟁이 아저씨. 기분 나빠.’


슬프게도 인간은 시각에 약한 생물이었고 소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낯선 어른의 짙고 멋진 풍미에 쉬이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다.

동경심을 자아내는 동시에 자신의 비천하고 처지를 부각해주는 존재였다.

여러모로 마음속 괴로움을 더해주는 대조적 풍경이었다.


“아저씨는 다른 데서 왔어요?”

“글쎄? 다른 곳이란 게 있으려나? 사실 더는 아니긴 하지.”

“돈도 많아요?”

“최소한 네가 자립할 때까지 챙겨줄 정도의 형편은 돼.”


남자는 넉살스럽게 미소지으며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받아쳤다.


“이름을 물어도 될까?”

이에 아이의 침묵이 임했고 불안이 눈빛에 깃들었다.

“불편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사내의 눈웃음 담긴 눈 꼬리가 묘하게 휘었다.

“그래, 이전 정체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의미 모를 중얼거림에 아이가 잠시 흠칫하였다.

“새로운 삶으로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거늘.”

그 순간 잠시 방 전체에 한기가 서리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이런, 불필요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구나.”

그 귀족적인 외양의 미남자는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아이는 잠시 도둑 제발 저리듯 움츠러들었으나 기우였다.

아저씨는 지저분하게 엉킨 머릿카락을 살살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이내 묘한 편안감이 아이의 심리적 무장을 해제하였다.

그 느낌에 오히려 자존심이 더 상하였다.


“우리 아직 통성명을 하기에는 불편한 사이인가 보네.”


남자는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길거리의 부랑배 소년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뭐, 차차 지내다보면 괜찮아지겠지. 아저씨는 내일 모레 올라가야 해. 그 동안은 잠시 여유가 있거든. 휴일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너랑 같이 있어 줄게.”


나랑 같이 더 머물겠다고? 왜지?

설마 나쁜 짓 하려던 걸 들켰나? 어떡하지?

아이의 작은 머릿속에서 온갖 궁금증이 회전하였다.


“난 너무 각박하게 살아왔거든. 그래서 하루이틀 정도만 잠시 숨을 돌리려고.”

사내가 스스로를 자조하듯 대답하였다.


“네가 내 잠깐의 휴식을 더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련?”


아이는 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해 갸우뚱거렸다.


“내게는 여러 가지 취미가 있어. 직접 몸으로 뛰며 봉사하는 일도 그중 하나지. 아주 큰 효율은 없어도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거든. 특히 너같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큰 낙 중 하나란다.”


이에 소년은 궁금증을 드러내었다.

“저 말고도 다른 아이를 돌본다고요?”

“많지. 이 지역 말고도 최소 천 군데도 넘는 곳에 내 소중한 꼬마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어.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 전체에 그들이 흩어져 있지. 내가 그들의 후원자란다.”


모르긴 해도 대단한 부자인 건 맞는 듯했다.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까지 삶과 꿈과 미래를 지탱해주지. 한 줄기의 연약한 새싹이 자라나 꽃으로 개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의 소소한 기쁨이지.”


남자는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 몇의 사진을 보여주며 몇 분간 자랑을 늘여놨다.

그가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자랑한다기보다는 그저 아이들 자체의 특색과 소질과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모두 하마터면 위태로움 가운데 던져질 뻔 했던 생명들이지.”


고아, 전쟁 난민, 빈민 지역 출생, 그 외에도 온갖 사연의 연약한 인생들.

사내에게는 그런 이들을 발굴하여 조건 없이 보살펴주고 후원해주는 일이 인생의 가장 즐거운 취미인 듯하였다.

아마 간접적으로 후원하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가 족히 백 배는 넘어갈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네가 허락한다면 너와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데 말이지?”


청년은 너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건 채 소년의 의사를 물었다.


“이대로 잠깐의 짧은 만남으로 헤어지긴 아쉽잖니.”


바로 그 순간 아주 잠시 아이의 감각이 촉을 세웠다.

길거리에서 살아남는 와중에 개안된 생존 본능 같은 것이었다.


“처음 본 사람은 따라가는 거 아니랬어요.”


양심의 칼날이 아이의 심장을 예리하게 후벼팠다.

도둑은 도둑을 의심하게 된다.

아이는 자신의 양심을 투사하여 사내에게 감각적 의심을 쏟아내었다.


저런 어른은 믿을 수 없다.

더욱이 소년처럼 위험한 길거리 아이를 초대하는 외국인이라고?


‘뭔가 이상해. 저 아저씨, 딱 봐도 바보가 아닌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괜히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잘 알지.”


사내에게서 흘러나온 부드러운 말씨는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적어도 너 자신보다는 너를 더 잘 알아.”


그 위화감에 아이는 사고가 마비되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니 날 염려해줄 필요는 없어.”


구릿빛 피부와 적갈색, 고동색, 밀색이 절묘히 섞인 듯한 고운 머리카락.

그리고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선명한 빛깔의 보라색 동공이었다.


‘보랏빛 눈?’


어디선가 들었던 경고가 떠올랐다.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동화 속 진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또한 소년은 사내의 그 눈동자에서 이유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사악함이나 낯섦이나 음침함 따위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었다.

마치 도둑이 경찰관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이런 느낌일까?

고귀하고 자신감 넘치고 순결함의 결정체인 그 눈.

그 눈의 이채가 아이로 하여금 옴싹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결박으로 다가왔다.


“난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을 외면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거든.”


도망가야 할 타이밍을 놓친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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