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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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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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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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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양육된 통치자들

DUMMY



준비되지 못한 급격한 통일은 반드시 오랜 후유증을 낳는 법.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 내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수많은 언어와 민족이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원래 집어삼킬 의향이 일도 없었던 대륙들을 운명적 시대 흐름에 떠밀려 타의로 떠맡아야 했던 극초강대국.

그들의 국가 원수 중 하나는 이렇게 푸념했다.


“우리라고 그러고 싶었겠소?”


사실 그렇지 않아도 한 세기 조금 넘는 짧은 기간에 무려 세 차례의 대전쟁을 치르느라 톡톡한 대가와 후유증을 겪어야 했던 그들이었다.

그 뒤에 보상으로써 받은 세계 또한 이들에게는 다소 무리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기어코 야욕을 채우지 않았습니까?”


혹자는 이런 논조로 날카로이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듣는 당사자로서 억울한 면도 있었다.


“글쎄올시다. 우리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평안히 잘 번성하고 있었소.”


대전쟁 이전부터도 제국은 이미 산업혁명의 주역으로서, 그리고 드넓은 북부 신대륙의 풍부함과 광활함을 등에 업은 패권국으로서 세계 제일의 탁월한 부강함을 자랑했던 국가였다.

그런 이들에게 구태여 아쉬울 게 뭐 있었겠는가.

관리할 영역의 폭발적 증가란 유익보다는 각종 사회 경제적 비용 증가와 혼란을 의미했다.


‘가장 힘센 소가 가장 짐을 많이 맡고 고생도 최고로 하는 법이다.’

어느 이름없는 지역의 격언이 제국의 처지에 꼭 걸맞는 말이었다.


그나마 유럽 대륙이야 선진화되어 있기라도 했지, 오랜 세월 유럽 열강의 노예로 부림 받았던 남부 신대륙이나 아프리카의 경우 짐덩어리였다.

밑바탕부터 문명을 재건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흡수 후 재건 비용은 고스란히 승전한 제국의 몫이 되었다.


“당장에 저 짐짝들을 독립시켜라.”

“왜 통일 비용을 무리하게 떠 안는가.”


오히려 제국 내에서는 당시 이런 여론도 과격하게 나오곤 했다.

황가로서도 내심 그러길 원했지만, 그 경우 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윤리적 기반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옛 열강의 식민지들이나 제국주의의 터전들을 방생했다가는 내전과 끝없는 혈전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이는 민생의 비참한 파산이라는 결말을 암시했다.

인류를 보존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불리한 선택을 했다.


가장 골칫거리는 3차 대전 때 흡수된 패전국이었다.

인권 실태가 바닥까지 추락한데다 군사 경쟁에 무리하여 민생이 파탄난 범 커뮤니스트 연방.

그 잔재 영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화약고였다.


“하는 수 없겠구려. 인류 멸망을 재발하기 위해서라도 양육하는 수밖에.”


헌데 흡수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더욱 큰 해결 불능의 난제는 사상적인 잔재였다.

거대 국가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은 본래 영혼과 육체 둘 다를 지녔다.

육체는 곧 경제, 산업, 영토, 인구, 기술, 법 제도 등의 정형화된 요소요.

영혼은 문화, 종교, 이념, 언어, 그리고 시민들의 사고 방식이다.


‘저 괴물을 소화한다는 게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일까?’

많은 지식인들의 마음 속에 합병 당시 이런 염려가 일었다.


전쟁을 통해서 연방이라는 인류 사상 최대의 리바이어던을 죽였다.

허나 육신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언정, 그 영혼마저 소화해낸 것은 아니었다.

리바이어던의 영혼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초월한 고차원적인 상부 영역.

그 어떤 위대한 권력자도, 현자도, 그것을 홀로 상대하기란 무리였다.


사실 이 ‘소화하지 못한 가시를 삼킨 문제’는 커뮤니스트 연방 건만으로 한정되지 않은, 제국의 고질적 숙제였다.

파시즘도, 군국주의도, 절대복종의 종교도, 커뮤니즘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담던 껍데기인 국가만 함락되었을 뿐, 그 본질과 정수는 여전히 생존했다.

장차 부활할 때를 노리며 음지로 스며들어 암약하였을 뿐이었다.


만약 통일 지구 제국이 원래부터 사람들의 사상을 강압과 세뇌로 변조하는 국가였더라면 어찌어찌 해결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구 제국의 모체가 된 국가의 지도자인 황실은 그러한 노선을 취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인의 자유의지와 영혼의 자유를 수호하는 일은 포기되지 못할 가치였다.

그 명예를 버리는 순간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의는 사라진다.


또한 과감한 개입을 하지 못하는 데는 실질적인 차원의 염려도 있었다.

억지로 악을 해결하려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자신도 또다른 악이 되어 있는 법.

제국은 자신들이 연방 이상의 악으로 변질될까 두려워했다.


여하튼 과거의 적성 세력과 그 사상적 뿌리를 해독하는 일은 극히 어려웠다.

특히나 반칙 없이 정석적 수단만으로 오랜 세월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당해야 했기에 더더욱 뼈저리게 힘든 과제였다.


이러한 불투명한 전망을 떠안은 채 새 시대, 곧 통일의 시대가 개막하였고 그로부터 어느 새 16년도 더 지나서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어느 덧 연륜을 축적하여 아름답고 성숙하게 무르익은 실력을 얻은 한 젊은이가 발걸음을 과감히 내던졌다.

그간 자신의 그릇보다 작은 일들을 맡으며 차분히 실력을 키워왔던 그.

인내와 연단의 시간은 충분히 채워졌고 이제 선임자의 청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잘 생각했구나. 너라면 잘 해내겠지.”

그렇게 혼돈의 밤 가운데서 희망의 새벽이 어스름하게 밝아왔다.



*


제국도 과거에는 서유럽의 다른 이웃들처럼 귀족의 나라로 불렸다.

공작, 후작, 백작, 남작, 자작.

이런 식의 오품작 작위 제도가 엄연히 실존했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의 통치 체계는 그때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공명정대하고 과학적이고 온전한 형태로 재탄생했다.

귀족제는 실효성을 잃는 것을 넘어 아예 존재 자체가 폐해졌다.


우선 통일 이후의 행정 체계에 대해 잠시 논하겠다.


시티(city).

프로빈스(province).

스테이트(state).


이것이 현 세계의 행정 섹터 구분에 쓰이는 기본 단위이다.

경우에 따라 위 세 단계들 사이사이에 중간 단위도 있으며 특별시나 특수 행정 구역 또한 존재긴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카테고리로는 위와 같이 나뉘는 게 일반이다.


시티와 프로빈스는 통합 이전 시대의 보편적 행정 단위와 유사하다.

반면 스테이트는 과거 기준 중소 국가에 해당하는 규모의 행정 구역이다.


세계가 통합된 뒤 한 마리의 가장 거대한 리바이어던의 뱃속으로 삼켜진 군소 리바이어던들은 적절한 단위로 나뉘졌고 스테이트라는 형태로 재탄생하였다.

거대 국가였던 권역은 면적과 인구에 따라 수십 개의 스테이트로,

중형 국가는 열 개 미만의 스테이트로,

그리고 소형 국가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스테이트로서 병합되었다.


그러나 기껏 이렇게 나눠놓고 잘 움직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황제의 지론은 이러하였다.

“그들에게 공정하며, 존엄성을 보존하기에 합당하며, 인간됨을 배우기에 적절한 질서를 가르쳐주고 그것으로 양육하도록 하라.”


이 목적을 이뤄내는 과정은 순탄하기만 하진 않았다.

그 방정식의 해로써 도출된 현 행정 권력 운용 체계는 대단히 복잡다단한 시스템으로 구성된 결과물이 되었다.

기본적인 틀은 강력한 중앙 통치와 자치 체계가 적절한 배율로 혼합된 방식이었는데 단순히 이것만으로 설명되긴 어려웠다.


스테이트 미만 행정 단위에서 시민들의 자치로 정치 행위가 이뤄진다.


먼저, 시티 관리자들과 통치자와 지방 의회의 의원까지는 대부분 헌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 해당 시티가 세운 규칙을 기반으로 하여 선발된다.

많은 경우에 민주적인 선거가 선발 방도로써 채택되었다.

물론 제국의 중앙 정부가 각 시티의 규율을 감시하고 감독하긴 한다.

다만, 대체로 공정성과 정당성과 윤리의 측면에서 너무 왜곡되지 않도록 질 관리를 하는 차원에서 그러하는 것이지 내정 간섭은 웬만하면 최소화하였다.


좀 더 큰 단위인 프로빈스와 그 이하의 서브 프로빈스들은?

이 경우 행정적 관리와 정치 권력 구성 프로세스는 지방마다 다양한 식으로 이뤄진다.

보통은 여러 성분이 함께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선거에 의해 선발된 통치자와 의원,

선거 및 제국 측의 추천을 복합적으로 반영하여 세워진 자들,

그리고 제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하거나 선택하여 등극한 자들,

이들이 복합적인 체계 내에서 함께 뒤섞여 토론하며 정국을 이끌어나갔다.

다만 그 혼합의 구성 비율은 대륙마다, 지역마다 달랐고 배치 방식도 다르다.


프로빈스에 설치된 상위, 중위, 하위 의회와 행정 관리자들은 복잡다단한 견제 시스템 내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의제를 결정해나간다.

한마디로 자치적 원리와 중앙통제적 원리가 절묘하게 버무러진 장이었다.


“이건 정치 방식들을 혼합시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일종의 실험일세.”

어떤 선견자의 분석대로 프로빈스들은 이도 저도 아닌 면이 짙었다.

여러 권력 원리들을 두고 경쟁시켜 경중을 따진 뒤 혼합 비율의 밸런스를 어떻게 조절하는 게 적합할지를 분석하는, 모종의 실험장들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 권력의 실질적 운동장은 스테이트.

정작 중요한 단위인 이것들은 전혀 다른 원리로 굴러간다.

스테이트란 사실상 군사력에 가까운 치안력과 무역이라는 개념이 성립될 정도의 경제 규모를 지닌 단위였다.

그렇기에 스테이트 내부에서의 통치는 철저히 제국이 주역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민중적인 성분이 최소화되고 중앙집권성이 극대화된다 보면 된다.


스테이트를 관리하는 최고 통치자와 그 밑의 하위 통치자들 및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제국 당국에서 임명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 과정에서는 민주적인 의견 반영이 개입할 틈이 없다.

그러나 부정부패나 사사로운 입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상 편향이나 혈연지연에 입각해 이뤄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오로지 검증된 훈련에 의해 양육된 전문 통치자가 사용되었다.

즉 철인에 근접한 자들이 엄격한 평가를 거쳐 스테이트의 관료로 세워진다.


이 유사 철인급 인재들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이미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카데미아 오브 판 어써리티(Academia of Pan-Authoritiy).

약자로 A.O.P.A. 또는 AOPA.

이것은 근래 19세기 말에 들어서 오랜 전통이었던 귀족 제도를 과감히 폐기한 제국이 그 자리를 대치하고자 세웠던 교육 제도다.


AOPA는 체계적으로 지도자를 양성하는 고등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숱한 엄격한 훈련을 자랑하였고 교육 체계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었다.

현실 정치 속에서 이 제도의 유용성은 수백 번도 넘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이 요람에서 나왔다.

이는 이 시스템의 고유한 프라이드였다.


AOPA는 들어오기는 상대적으로 쉬웠기에 신분, 배경 상관 없이 재능 있는 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재정 부담 없는 기회의 문이 열려있었다.

하지만 과업을 완수하고 자격을 입증받기가 산을 옮기기보다 어렵다는 악명으로 유명한 시스템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인재의 자격에 대한 검증력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 또한 현대판 귀족제로 전락되는 것 아니겠소?”


혹자의 의심도 일리는 있었으나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이 제도는 인맥 쌓는 용도로 오용되지 못하는 장치가 겹겹 있었다.

또 현실 적용과 무관한 불필요한 낭비 식의 교육은 일절 배제되었다.

오로지 완성된 철인 통치자를 빚어낼 목적 하나를 위해 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수백 년 간 완성해내간 교육의 장이었다.

어찌나 철망처럼 촘촘하게 자격을 평가하는 지 이 교육 시스템을 견뎌내고 통과한 자들에게서는 도덕적으로나, 의지력으로나, 지혜에서나, 현실 통치에 대한 감각에서나, 사상적 건전성에서나 좀처럼 흠이 발견되지 못했다.


“저들은 귀족 의식을 가져도 될만한 자격을 소유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호평하였다.

사실 귀족이 정말로 능력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고결하여’ 귀족이라면 누가 탓을 하겠는가.


요약하자면 바로 이 AOPA 산하의 제국 아카데미아 기관들과 그 연계 시스템을 통해 생산된 자들이, 그리고 그 뒤에 전문가로서의 자격을 검증 받고 라이센스를 받은 이들만이, 스테이트 이상을 다스리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플라톤의 주장을 설마 기독교적 방식으로 성취해낸 건가, 제국은?”


학자들은 그 기묘한 혼합에 정체모를 외경심을 느끼고 불쾌해했다.

저들이 이뤄내지 못한 위업에 대한 시기심으로 인한 불쾌감이었다.


그렇다.

고대 철학자가 갈망했던 철인 정치.

오늘날의 제국에는 그것이 어느 정도는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됐다.

구체적인 운영 원리는 달랐고 사상적 기초는 달랐지만 말이다.


민주적 통치 원리는 어디까지나 하위 단위에서만 허락된다.

그 너머의 윗세계에서는 오로지 현대 버전 철인 정치만 허락된다.


이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갖는 이들도 간혹 있었다.

허나 대부분은 그 정당성에 순응하며 논리적으로도 납득하였다.

역사라는 실험장을 거쳐서 숱하게 입증된 쪽은 이 제도였으니까.


“우리는 늘 이론이 아닌 현실 데이터로서 증명한다.”

전전대 황제가 한 말 그대로였다.


지금의 방식은 오랜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것을 최종 완성시킨 버전.

웬만해서는 우중정치로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폭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다.

통치자들 사이에 세워진 위계질서도 워낙에 수평성과 수직성의 균형을 잘 맞췄기에 무익하고 잔인한 정쟁적 투쟁도 예방된다.

지도자의 무능으로 인한 실수나 오판의 가능성도 적다.

설혹 나온다고 해도 체계적인 의견 교류를 통해 위기가 걸러진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툴툴거리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황제가 성군인 경우에나 잘 돌아가는 제도지.”


맞는 말이다.

만일 철인 정치가들을 통제하는 최고 관리자인 황제가 이들을 잘못 이끌면 궁극적으로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이후로 이 제국의 역대 황제들은 단 한 번도 시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절대적인 차원에서도 그러했지만 상대적인 차원에서도 그러했다.


“우리 인간은 상대적이고 간사한 존재야. 보통 암군(暗君) 뒤에 보통 군주가 오면 호평을 받고, 성군 뒤에 보통의 군주가 오면 악평을 받는 법이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근대 이후 이 제국의 황제들은 전임자의 직위를 승계하고도 항상 극도의 호평을 받는 일을 벗어난 경우가 없었다.

성군이 온 뒤에 일을 맡으면 부담스러운 비교에 휘말릴 텐데, 그 불리함마저도 매번 뛰어넘었다는 뜻이다.

즉 성군 뒤에 더 뛰어난 성군이 나타나는 일이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저들은 인류사의 확률 이론을 벗어난 변이체들이야.”


멘델의 유전 법칙마저 벗어난 듯한, 주사위를 던져서 항상 6만 나오는 듯한 기괴 확률의 혈통.

귀족제가 A.O.P.A 제도로 대체되어 오품작이 폐지된 이후로도 유일하게 황가만은 대에 걸친 혈계승계(血系承繼)의 원리가 정당화된 건 이유가 있었다.

절대로 권력 남용에 의한 예외주의가 아니었다.

다 그럴만한 정당성이 있었다.



*


여하튼 제국의 주역이요 인재들은 스테이트 관리자들과 그 부관들이었다.

이들은 오늘날 세계 전역에 배치되어 괄목할 성과를 창출하였다.

단순히 그저 그런 본전만 찾는 게 아니라 저마다 나름의 성장 행보를 보이는 중이었다.

다스리는 영역 차원에서도, 개인 차원에서도.


그런데 사실 기본 행정 단위에 공식적으로 속하지는 않으나 가장 큰 단위인 스테이트보다도 더 큰 범위가 암묵적으로 정의되었다.

소위 ‘컨티넌트’라 불리는 범주였다.

이것은 국가급을 논하는 단위가 아닌, 인류를 나누는 구획이었다.


통일 이후의 세계는 암암리에 크게 여덟 구획으로 구분되었다.


구 러시아 지역과 시베리아 인근으로 구성된 북부 컨티넌트.

구 서유럽, 동유럽 국가들이 존재했던 북서부 컨티넌트.

아프리카 대륙이라고 불렸던 서남부 컨티넌트.

구 동부 아시아 구역에 해당하는 동부 컨티넌트.

인도와 일부 동남아시아, 태평양과 오세아니아로 이뤄진 동남부 컨티넌트.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으로 구성된 중앙 컨티넌트.

남부 신대륙.

그리고 제국의 중심지요, 두 번째 본고장인 북부 신대륙까지.


다 통일된 마당에 이 구분선이 굳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은 대륙 간 문화권 융화가 온전히 이뤄지지 못했다.

또 제국령으로 포함된 시점이 각 대륙마다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급작스러운 흡수 통합으로 인한 후유증들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들을 의식하고 나눠놓은 선이 바로 컨티넌트 경계였었다.


물론 국가들 간의 국경선은 세 차례의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꽤 무마되었다.

민족간, 언어간 격벽도 몇 대에 걸친 혼혈화의 과정으로 많이 퇴색되었다.

이 일의 선두주자는 단연 세계를 통일한 그 제국이었다.

그러나 아직 대륙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은 다 해체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테이트 이상을 다스릴 역량이 없어. 보통의 뇌를 소유한 인간이라면 말야.”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컨티넌트 이상에 힘을 뻗쳐도 될 자는 인류사에 매우 드물게 등장한다.”

분명 스테이트의 통치자들도 전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최상위권 인재였다.

그러나 컨티넌트를 관할하는 자들은 손에 꼽히는 정상 중의 정상이었다.


현재의 제국은 인재의 축복을 인류사를 통틀어 유례 없는 수준으로 풍성히 누리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나이, 인종, 성별, 출신, 성향 등을 총망라하여 컨티넌트의 올바른 운영이 가능한 수준의 인재는 기껏해야 백 명 미만이었다.

그 중에서도 컨티넌트의 ‘성공적인 경영’과 ‘지속적인 번영 유도’를 이룩하는 일이 가능한 자는 세계의 책임자인 황제를 제외하면 황가 멤버를 포함해도 모두 합해봐야 열세 명 남짓했다.


다시 말하면 이들만이 황제의 제대로 된 오른팔이 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과거의 적국이나 옛 대적 출신, 심지어 전향한 사상범들마저 일부 포함되었다.

그 어떤 조건도 배제한 채 오로지 능력만을 기준으로 인정받은 이들 열셋은 베테랑 통치자였다.


이중에서도 유독 별종으로 구분되는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열둘은 소위 ‘마스터’라는 경외를 담은 칭호로 불리워졌다.


“노력으로는 목숨을 다해 노력해도 스테이트 지도자 수준, 아주 드물게 극대화된 재능이 받쳐주면 그 바로 윗급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마스터 급은 노력이나 재능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와 다른 종족이라 표현해도 좋아.”


외경심과 질투심에 많은 인재들이 이렇게 평가했다.


마스터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력에 경이로우리만큼 출중했다.

사회, 언어, 종교, 실용 학문, 철학 모두에 통달했으며 세상을 작동케 하는 보이는 원리들과 보이지 않는 원리들 모두에 해박하고 능통했다.

뜬구름 같은 이론가로서가 아닌, 실질적인 감각을 휘두르는 행동가로서 말이다.

아울러 그들은 각종 과학을 포함해 사회 전반의 인프라를 이루는 기초 학문들에 깊은 지식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십수년 간 몇 년 간격으로 관할 위치를 옮겨가며 황제의 책무를 보조자로서 거들었다.

그리고 여덟 분획, 곧 여덟 개의 컨터넌트들을 돌아가며 경영하였다.

항상 직위에 있었던 건 아니나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컨티넌트 전체를 맡았다.


전쟁 이후의 컨티넌트는 각종 언어권과 문화권과 민족이 혼합된 혼탕이었다.

게다가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이주가 활발히 일어나는 탓에 혼란이 점증하던 차였다.

이런 시기에 그런 거체를 다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임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미 전쟁 이전부터 무언가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완성하는 데 이골이 난 이들에게는 이마저도 불가능한 미션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둘 이상의 컨티넌르를 동시에 짊어지기란 불가능이었다.


여덟 개의 컨티넌트는 너무도 상이한 세계였다.

아무리 탁월한 인재라 해도 한꺼번에 둘 이상을 묶어서 통치하기란 불가능했다.

설령 전례 없는 탁월함으로 인정 받는 그 마스터들이라 할지라도.


“대륙간의 경계란 국경과는 차원이 다른 격벽이니까.”


역사 내내 소멸되기 어려운 짙은 이질성이 그 경계 사이로 존재해왔다.

이런 이질성을 극복하고 통합을 거둬내기란 현실적으로 무리인 과제였다.


사실 이는 마스터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제국 역사상 최고의 유능한 성군으로 불리는 현 황제 알폰스 1세.

그조차 최상위 통치자들과 마스터들과 아카데미아에서 양육된 철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얻었기에 지금의 세상을 가까스로 묶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런 그도 간접 통치라는 방법을 통해 세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분열의 잠재력과 불안정성이라는 폭탄을 안은 채로 다스릴 뿐이었다.


“나는 인류를 멸망하지 않도록 유지할 뿐이지 그 이상의 욕심은 없다.”

황제는 종종 이렇게 회고하곤 했다.


컨티넌트의 통치자들은 이렇듯 고충이 깊었다.

이미 오랫동안 제국령으로 자리한 덕에 안정화된 신대륙이라면 모를까?

구대륙에 속한 세계들, 특별히 그곳들 중 넷이나 교차하는 지중해 근방 중동 세계는 그 어떤 통치차도 떠안기를 꺼리는 짐덩어리였다.

두 곳 이상을 맡으라는 요구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부담이이었다.


그런데 세계 단일화가 이룩된지 16주년이 되는 바로 오늘.


“오늘부터인가? 바빠지겠네. 기대에는 부응해야지.”


북서부와 중앙 컨티넌트, 서남부 컨티넌트의 과반, 그리고 북부와 동남부 컨티넌트의 일부에 이르기까지, 무려 세 대륙 분량을 총괄하는 권역에 대해 새로운 지도자가, 그것도 단일 최고 관리자가 파견되었다.


“미리 사전 준비 작업은 완료. 연습도 충분하다. 여기서 자격을 시험 받겠군.”


그의 호쾌한 웃음 속에서는 부담에 짓눌린 자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께서?”

“본격적으로 승계 작업인가?”

“하긴,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

“실력을 충분히 쌓으시려던 의도였나?”


사람들의 마음은 여러 의미로 긴장감과 기대감 사이에서 오갔다.


‘마스터들 이상, 아니 그 합 이상의 괴물이 온다.’


문제의 그 거물의 강림은 예사롭진 않으나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그는 무수한 믿기 힘든 소문들을 남긴 전설적인 변칙 생산자였다.

또한 현 세계에서 유일하게 셋 이상의 컨티넌트를 한꺼번에 다스리고 더 나아가 번영시킬만큼의 자질을 소유한 인간이었다.

그 사람의 도래가 얼마나 큰 변화를 초래하는지 모두가 알기에 좋은 의미로든, 슬픈 의미로든 많은 이들이 떨 수밖에 없었다.


기뻐하는 이들은 깊은 행복감에 전율하였다.

“부디 밝은 미래를 닦아내기를.”


찔릴 구석이 있는 자들은 벌벌 떨었다.

“큰일이로군. 하필이면 그분이.”


평온한 삶만을 바라는 평범한 소시민들은 여러 기대를 펼쳤다.

혹자는 팬심으로, 다른 이는 정치적인 열렬한 환영으로.


그러나 불온한 마음으로 모든 질서를 뒤집기를 항상 갈망하던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극도의 신경증과 공포에 빠져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키메라를 살육하는 자.

빛의 성창.


섬뜩한 심판의 칼날과 상냥한 해방의 손길.

그 두 운명이 한 사람 안에 담긴 채 문 앞에서 노크를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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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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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인가 감시자인가 23.08.17 77 3 18쪽
6 영웅의 조수 23.08.15 89 3 15쪽
5 자안의 지배자 23.08.06 117 3 19쪽
4 떠돌이 소년 23.07.31 138 2 16쪽
» 양육된 통치자들 23.07.26 219 2 23쪽
2 주권의 목적지 23.07.20 433 3 23쪽
1 세계 제국의 후계자 +1 23.07.17 860 6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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