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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을 봉인하는 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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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2.04.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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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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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도시들 : Chapter 18. 인터미션 II (2)

DUMMY

*


간만에 침대에서 달콤한 휴식과 사색을 즐기던 사내는 시그널을 받고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사생활 배려도 없군. 그는 부드러운 결의 백금발을 뒤로 넘기면서 진홍색 눈동자를 사납게 움직였다. 그냥 무시할까? 아마 그러면 더 귀찮게 하겠지. 빨리 처분하고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억지로 상체를 침대에서 일으켰다.

“무슨 일이시죠?”

사내는 텔레파시 송신자에게 생각으로 대답했다.

“신수왕, 아니 서부 섹터장. 이쪽은 대총통이다.”

의외의 상대의 접촉이었다. 그리 친하지 않은, 그러나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연. 일라이저는 차가운 눈매를 매섭게 번뜩였다.

“별도의 거래가 오간 기억은 없는데, 무슨 일이죠?”

“그저 사적인 부탁이다.”

‘오호라. 무슨 바람이지?’

사사로운 부탁이라고는 도저히 할 것 같지 않던 칼리드가?

“식민지를 관할하는 보조 관리자분께서 무슨 용무로?”

“거절해도 나야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순순히 맡아줬으면 한다.”

“부탁의 태도는 확실히 아니군요. 일단 들어나 보죠.”

일라이저가 능숙하게 받아쳤다.

“······지구에서 최근 이상한 사회적 움직임이 없었는지 조금 살펴봐 줄 수는 있겠나? 이왕이면 민간인들이 벌이는 일들 위주로 말이야. 그들 중 일부 세력이 지금 우리 담당 영역에 나비 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되어서.”

지구의 민간인이 우주에 효과를 파급시킨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언뜻 처음 듣기에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처럼 들렸다. 그나저나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의라면 설마.

“저더러 민간 사회 감시 통제를 맡아달라는 의미입니까?”

“아버지께서 그 정도는 당신들 자율에 맡긴 것으로 안다만.”

“물론 일정 부분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일라이저는 심히 불편한 내색을 하며 제 뒤통수를 매만졌다. 그는 고민했다. 하필 이 시점에 칼리드가 나서서 부탁할 정도면 가벼운 일은 아닌 듯했다. 문제는 구체적인 근거나 맥락조차 없이 내던져진 부탁의 막연함이었다.

‘저자도 지금 확증도 없이 육감만 갖고 뭔가를 탐색하려는 모양인데?’

칼리드의 행동이 일라이저의 영민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고려는 해보죠.”

“긍정적인 답변이 오길 바란다.”

그렇게 텔레파시로 오가던 신경전은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무슨 일이세요?”

곁에 누워있던 배우자가 잠결에서 깨어나더니 땀이 말라붙어 끈적하게 된 일라이저의 맨 등을 어루만졌다. 이에 그는 부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밤새 체력을 소모해서인지 둘 다 노곤한 상태였다.

“별일 아닙니다, 부인. 그냥 직장 문제라서요.”

“참, 이 시각에 부르다니 예의도 없네요.”

“이해해줘요. 식민지 쪽은 워낙 넓다 보니 시차가 엇갈리기 마련이라서요.”

그는 여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춘 후에 일어나 욕실에 들어가 찬물로 몸을 때려 잠기운을 날려 보냈다. 정교한 조각상과 같은 육체를 따라 차가운 물이 흘러내렸다. 평소 그의 신사다운 모습과는 사뭇 상반되는 느낌의 몹시 퇴폐적인 자태. 그 와중에도 사내의 머릿속은 여러 정치적 문제로 바쁘게 회전하였다.

“지구 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벌어진다?”

얼추 무언가가 들어맞는 듯한 직감이 들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일을 벌이고 있는 녀석들이 있긴 했지. 잘 진행되던 냉전의 판도를 늦게서야 이상한 방향으로 뒤흔들려고 시도하는 녀석들. 혹시나 그들과 관련된 준동일까?

“히어로즈, 그리고 휴먼 솔져······.”

온 직감이 그쪽으로 쏠렸다.

“성운은 뭘 꾸미는 거지?”

일라이저의 짐작은 치밀하고 정밀했으나 전지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그가 친 점에 어긋남이 있었다. 어쨌건 그 오판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신의 호의였다. 윤혁 일행을 지원했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과 지역 교회 동맹, 그들로서는 참으로 감사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마터면 그들을 단번에 일망타진했을 브리타니아 수장의 눈이 좀 더 주목받을 만한 다른 쪽으로 쏠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선교팀의 계획은 좌초되지 않고 이어졌다.



*


우주선에 돌아온 윤혁은 다시금 악몽 안에서 헤맸다. 무덤 속 영웅들, 아니 인간인지 네필림인지 모호한 그것들이 꿈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무저갱에서 기어 올라오더니 윤혁의 몸을 마구 쏘았다. 전갈의 독이 몸에 스며들어 고통스러운 감각이 엄습했다. 묵시록에 묘사된 고통의 현장, 그 한가운데 들어가 서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무덤 속에서 올라온 그 괴물 인간들이 갑자기 하나로 융합되어 익숙한 형상으로 바뀌었다. 윤혁과 의도치 않게 친분을 맺었던 인간들, 아니 개조 인간들이었다.

큐오즈린, 코드네임 룩(Rook).

그리고 한즈, 코드네임 비숍(Bishop).

“자, 네 판단은 어때? 우리는 인간인가?”

“결국 형도 별반 다를 게 없네요. 당신 마음대로 잣대를 세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그 차별의식 말이에요. 실망이에요.”

이미터도 훌쩍 넘는 키의 두 거한이 몹시 사나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양옆에 눌러앉았다. 그들은 어깨 위에 팔을 걸친 채 희생양의 턱을 손가락으로 주물럭거렸다. 살짝만 악력을 더해줘도 윤혁의 두개골이 가루가 될 기세였다. 그 섬뜩한 공포감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크윽”

현실에서 눈을 번쩍 떠 보니 몸이 치료용 캡슐 안에 누여있었다. 정확히는 액상 물질 속에 무중력 모드로 둥둥 떠다니는 상태였다. 생체 반응의 회복을 확인한 캡슐 내 자율 프로그램이 액체를 빼낸 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다. 윤혁은 마지막 기억을 차분히 더듬어보았다. 괴물 돌원숭이가 자신을 타격하고 목을 조르던 장면이 선명히 재현되었다. 분명 놈이 반지를 손에 쥐자마자 불꽃이 튀며 녀석의 손이 소멸하였었지. 그 충격파 때문인지 자신도 조금은 타격을 입었던 것 같다. 다행히 치료는 잘 된 것 같지만.

위이잉.

캡슐의 개폐부가 활짝 열렸다. 다친 부위는 모두 치료되었지만 막 의식 불명의 상태에서 일어나서 그런지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액상 물질 속에 담가졌던 지라 옷도 걸치지 않은 처지였고 그 때문에 몸에 묻은 액체가 증발하면서 한기가 느껴졌다.

“괜찮아?”

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혁은 옆을 돌아보았다.

“너 이틀 만에 깨어났어.”

리온은 재빨리 친구에게 천을 덮어주면서 옷을 건넸다.

“루디아와 스테판 씨는?”

“둘 다 우주선에 안전히 돌아왔어. 스테판 씨가 우리와 함께 탑승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과정은 어찌 되었건 잘 해결됐어. 네 후원자라는 사람이 지금 그의 신변을 재확인하고 있어.”

윤혁은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그 사이 루디아도 조용히 치료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내내 걱정을 품었던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윤혁이 잘못될까 봐 염려했던 모양인지 얼굴에는 미안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윤혁은 서둘러 셔츠를 대강 걸쳤다. 곧 나노 재조립을 거친 의복이 몸 전체를 꼼꼼히 에워쌌다. 그는 붉혀진 얼굴을 살짝 돌렸다. 그녀 앞에서는 강하고 꿋꿋한 모습만 보이고 싶었건만 뜻하지 않게 연약한 면모를 보여준 것 같아 쑥스러웠다.

“로봇들은 모두 고장 난 상태야.”

“하기야 그 충격파를 견뎌내기란 불가능했겠지.”

“신세 많이 졌는데, 아쉬워.”

“그래도 마지막 임무는 잘 해결되었잖아.”

리온과 루디아의 대화에 윤혁이 갸우뚱거렸다.

“임무?”

“아, 카뮈네라의 각 지역에 ‘거짓 신들의 증거’를 배포하는 것 말이야. 드론들을 활용해서 맡겼어. 우리가 모으고 조사한 자료 전부를. 때마침 전쟁 통에 웬 가짜 부처가 출현해 날뛰는 바람에 신들의 민낯이 좀 더 밝히 드러났을 것 같아. 그 위에 논란의 불을 질러야지. 주께서 적절한 기회를 주셨어.”

“이 기회에 확실히 쐐기가 박혔으면 좋겠네.”

“그렇지 않아도 네 후원자가 말하던데 그 하늘도시는 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토속신 시스템을 조만간 처음부터 재편성해야 할 판이래. 그 사람, 별로 미련 갖는 눈치도 아니더라. 속을 모를 인간이야.”

리온은 진에게서 전달받은 메시지를 회상하였다.

“가짜 신 깨부수기라······. 그래도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한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일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우리에게 끝까지 남아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면 모를까.”

아무리 거짓의 늪을 들춰내도 곧 새로운 거짓이 그 자리를 메꾸기 마련인 것이 인간 사회의 슬픈 실상. 한 영혼이 미혹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란 이렇듯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윤혁은 아쉬움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젠 다 털고 일어나야지. 그는 묵은 때를 털어내는 기분으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윤혁아.”

루디아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나 이제 다 나았어. 염려하지 마.”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를 태연하게 위로하였다. 루디아는 거의 울먹이려는 것을 인내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윤혁 본인은 잠든 상태로 몰랐으나 그가 원숭이에게 입은 부상은 꽤 심각했었다. 워낙 첨단 의료기술이 발달한 터라 완벽히 건강한 몸 상태로 회복시키긴 했지만.

그때 별안간 번뜩 생각이 스쳤다.

“아, 맞다! 스테판 씨! 그는 지금 어디에 있어?”

방금 언급을 듣고도 무심코 잊고 있었다. 리온 말대로라면 이 우주선 안에 회수된 상태일 테니 혹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으려나? 설마 진에게 수색을 받는 중이라 대면이 제한될까? 그의 안위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치료 중인데 이제 곧 끝날 거야. 만나러 가자.”

“무사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네.”

옷매무새를 정리한 윤혁은 친구들과 같이 스테판이 거하는 방 쪽으로 향했다.



*


자동문이 열리자 반가운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스테판은 막 검사와 치료를 마친 모양인지 벗은 상체 위로 꽂힌 의료용 줄들을 빼내는 중이었다. 그의 날렵한 상체는 고된 인생 여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험한 세월의 자국들을 담고 있었다. 등과 가슴과 배 곳곳에 자잘한 흉터가 많이 보였다. 윤혁은 먼저 그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인 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죠.”

“그러는 당신도 나를 구하려 들지 않았소?”

정중하고 부드러운 대화가 오갔다. 짧고 굵은 해후 이후 일행은 하늘도시 속에서 스테판에게 못다 한 질문들을 죄다 쏟아냈다. 대답 들을 여유 충분하겠다, 궁금한 점은 전부 다 물어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그리고 이 우주선에는 어떻게 해서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는지 등을.

스테판도 막 구조된 지라 정신이 어수선했는지 일일이 다 대답해주지는 않고 개괄적인 이야기만 쭉 들려주었다.


(다음 회차에서 연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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