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케이원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기억 포식으로 무한성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케이원
작품등록일 :
2021.10.12 14:20
최근연재일 :
2021.12.11 20:25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45,986
추천수 :
5,262
글자수 :
398,772

작성
21.10.16 18:30
조회
6,270
추천
109
글자
13쪽

최면술사 (2)

DUMMY

“언제입니까?”

“내일.”


비서실장이 바텐더를 불러 양주 두 잔을 주문했다.


“너 레벨이 몇이지?”

“이제 47입니다.”


47레벨이면 D급 헌터 수준.


“허. 어떻게 아직도 47이야.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저, 이제 4년 차입니다.”


4년 만에 D급이면 아주 느린 건 아니지만 결코 빠르다고도 할 수 없었다.

평범한 재능.


“반장한테 주의 좀 줘야겠네.”


비서실장의 질책에 최면술사가 이제 죽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호길드는 비밀리에 자체 처리반을 운영하고 있었다.

최면술사도 처리반의 일인.


“상대는 알다시피 많아야 2레벨이야. 확실히 처리할 수 있지?”

“2레벨이면 그냥 일반인이네요. 그 정도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너무 자만하지 말고. 중요한 일이니까 잘해.”


비서실장이 탁자 위에 신분증과 캡슐 하나를 꺼내 놓았다.


“네 신분증. 남부지검 임우영 검사. 그리고 이것도 챙기고.”

“이건···?”


최면술사가 캡슐을 집어 들었다.


“대상에게 먹이면 된다.”


“특수 처리된 캡슐 안에 독이 들어있다. 12시간은 지나야 녹게 돼 있으니까 네가 빠져나올 때까지 의심받을 여지는 없어.”

“제가 힘 좀 쓰면 아예 뇌를 녹여버릴 수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 분란 일으키지 마라.”


비서실장의 호통에 최면술사가 목을 움츠렸다.


“내일 아침 10시 남부지검 정문에 수송차 오니까 늦지 말고.”


비서실장이 양주 한잔을 원샷하고 일어서자 최면술사가 일어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


“막내야, 오늘은 분뇨 처리다.”

“아, 안 해요.”


아침부터 박 노인의 말에 강현의 심사가 뒤틀렸다.


“분뇨 처리는 200원 줘. 가서 삽 받아와라.”

“안 한다니까요.”


강현의 강한 부정에도 박 노인은 흔들리지 않는다.


“너 한다고 어제 이미 등록했어. 안가면 교도관들이 쫓아올걸?”

“···저한테 왜 그러세요?”


울상을 지었지만, 다들 즐거운 분위기였다.


나중에 설명을 들으니 분뇨 처리는 원래 방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거라고.

이번에 자신들이 나갈 차례였는데, 막내가 들어와 대신 나가니 기분이 좋은듯했다.


강현이 창수를 째려보았지만, 창수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어쩔 수 없어진 강현이 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 공터엔 이미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


3명이 한 조.

호스 담당 한 명, 분뇨통 수레 담당 두 명.

삽으로 푸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알고 보니 분뇨 펌프가 따로 있어 호스만 꽂으면 된단다.


각자 구역을 할당받고 이동했다.


“어휴, 냄새.”


땅에 구멍만 파놓은 재래식 화장실.

형용할 수 없는 구수한 냄새에 강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도 막내네.’


어쩔 수 없이 강현이 호스를 화장실까지 끌고 가 변기에 쑤셔 박았다.


계속되는 반복 작업.

이제는 코가 문드러질 것 같아 강현이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제 좀 바꿔줘요. 마스크도 없는데···.”


자신에게만 힘든 일을 시키고, 자기들은 화장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꼴이 아니꼬웠다.


지독한 교도관들이 마스크도 30원을 받고 팔고 있어, 돈이 없는 강현은 마스크도 없이 작업 중이다.


“야, 넌 이거 작동시킬 줄도 모르잖아.”


뒤에 선 두 명이 킥킥댔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강현이 수레 위의 펌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


[‘의미 기억’이 ‘고점도 슬러지 이송용 호스 펌프’를 감지하여 의미적 코드로 부호화합니다.]

[코드 분석을 시작합니다.]

[‘호스 펌프’의 구성 요소 간 의미적 상호 구조를 파악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는 기계의 작동 원리.


곧이어 ‘단기 기억’에 의해 조금 전 작동한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모터가 시동되어 샤프트를 통해 임펠러 회전. 회전하는 블레이드 주변에 배출된 공기로 챔버 압력 감소. 노즐을 통해 유입된 액체가 펌프 내부로 유입. 원심력의 작용으로 출구로 이동하여 배출.」


물 흐르듯 진행되는 과정들이 순간순간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과정을 이해하는 순간 또다시 전달된 메시지.


[두 번째 해금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절차 기억(잠금) 해금 조건]

1. 반복을 통해 각인된 일련의 순서에 대한 기억 습득

2. 비인지적 작동 절차 자동화 및 제어 기억 습득

3. ?


얼떨결에 두 번째 조건까지 충족.


‘어떻게 된 거지?’


원래 접촉하면 ‘단기 기억’이 발동해야 한다.

그런데 작동 방법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물건을 만진 순간 ‘의미 기억’이 먼저 발동했다.


‘의미 기억은 위험이 닥쳤을 때 자동으로 발동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의지로도 발동하는 건가 보네.’


‘운이 좋아.’


강현은 운이 좋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낙후된 이곳에서 여기 따라오지 않았다면 기계를 보기란 요원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전기모터가 아니라 카브레타 방식이죠? 그냥 예초기 작동하듯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강현이 분뇨 펌프에 다가가 공기조절 레버를 위로 올리고, 연료 코크를 열었다. 그리곤, 시동 손잡이를 두세 번 힘껏 잡아당겼다.


“부우우우···웅.”


엔진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엔진 돌아가요, 형님들. 호스 들고 빨리 뛰세요.”


벙찐 표정의 두 사람이 멍하니 쳐다보다, 강현의 재촉에 소태 씹은 얼굴로 호스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


오전 작업을 끝내고 간단히 점심을 하며 공터에 앉아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교도관이 불렀다.


“수감번호 36-190. 강현 재소자 맞지? 면회 왔다.”

“네? 여기 면회도 돼요?”


‘레비타 교도소는 면회가 불가능한 거로 유명한데?’


의아해하는 강현.


“사건 담당 검사는 한번은 된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따라오도록.”


교도관을 따라 처음 내려왔던 계단을 이번에는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진짜 등산하는 기분이네.’


내려올 때도 길다고 느꼈지만,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통 땀에 젖었다.


“교도관님, 잠깐만···.”


강현이 헉헉거리며 교도관을 불러세웠다.

무릎을 짚고 한참을 숨을 골랐다.


‘교도관도 각성잔가? 어떻게 숨도 하나 안 차지?’


벽에 기대어 강현을 기다려주는 교도관의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간신히 처음 입소한 날 왔었던 강당에 도착. 교도관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동했다.


또다시 나타난 계단.

다행히 이번에는 정상적인 높이였다.


“저기로 들어가면 면담실이다. 밖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 들어가도록.”


교도관이 강현을 면담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에 들어가자 자리에 앉아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저 얼굴은···?’


강현의 뇌리에 남아있는 얼굴.

지난번 사건 현장에서 거울을 사이코메트리 했을 때 보았던 세 명 중 한 명이다.


‘최면술사!’


바로 최태성 길드장 옆에 서 있던 최면술사였다.

강현이 자리에 앉으며 당황한 가슴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어떻게 벗어나지?’


이대로 있으면 그대로 최면술사의 최면에 당할 터.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미 기억? 단기 기억?’


이런 스킬들로는 최면을 막을 수 없다.


“남부지검 임우영 검사입니다. 앉으시죠.”

“강현입니다.”


최대한 최면술사의 동작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강현이 계속 방법을 찾았다.


‘기억의 도서관!’


마지막 남은 방법은 기억의 도서관뿐.

강현이 도서관에 보관된 모든 기억 정보를 해방했다.


기억들이 순식간에 마구잡이로 머릿속을 헤집는다.

뒤죽박죽된 영상과 시끄러운 소음, 뒤엉킨 냄새들.


강현은 각성 이후 느끼지 못했던 불쾌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머리가 욱신거렸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여기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들어오는데 눈을 가리더라고요.”


최면술사가 대화를 시도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벽에 장식도 없고. 썰렁하네요.”


일상적인 대화에도 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 먹을 게 별로 없죠? 빈손으로 오면 실례라 초콜릿 좀 가져왔어요.”


최면술사가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제법 고급스러운 상자.

이십여 개의 초콜릿이 다채로운 모양을 뽐내고 있다.


'왜 이렇게 끌리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아, 다 드리는 건 아녜요. 세 개만 골라보세요.”


무심코 초콜릿에 손을 가져가던 강현이 최면술사가 손가락 세 개를 내밀자 잠시 멈칫했다.


“늦으시네요. 이제 두 개만 골라보세요.”


최면술사가 초콜릿 하나를 빼서 자기 입에 넣었다.


‘뭐야, 놀리나?’


먹을 거로 놀림을 당한 것 같아 불쾌해졌지만, 교도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기회라 얼른 초콜릿 하나를 주워들려 했다.


“저 같으면 여기 이걸 고르겠네요. 안에 술이 들었거든요.”


최면술사가 웃음 띤 얼굴로 다른 것을 권했다.

강현이 가져가던 손을 또 멈췄다.


“늦었어요. 이제 마지막 하나만 고를 수 있습니다.”


‘제기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강현이 급한 마음에 술이 들었다는 초콜릿을 집어 들고 그대로 입에 넣었다.


스르륵 녹아내리는 초콜릿.


‘아···, 달콤하다.’


강현의 입안에 향기로운 초콜릿 향이 가득 찼다.

살짝 깨물자 시원한 액체가 흘러나온다.

위스키인가?


‘거짓말한 건 아닌가 보네.’


그에게 자그마한 신뢰를 보내는 순간.

강현의 눈빛이 초점을 잃었다.


*


최면술사의 눈에 강현이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게 빤히 보였다.


‘그런다고 안 걸려드는 게 아니지.’


속으로 킥킥 웃으며 최면술사가 초콜릿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경계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한순간만 경계를 풀면 그만이다.


계속 마력을 운영하며 스킬을 유지하고 있던 최면술사는 강현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는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최면술사가 강현의 기억 속에 첫발을 내디뎠다.


“멋진데.”


새하얀 공간에 도서관처럼 회랑이 보이고 빙 둘러선 책장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라 있었다.

다만,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강현 씨. 얼마 전 의자에 묶인 채 모텔 방에서 죽은 남자 기억나시죠? 그때를 떠올려 보시겠어요?”


최면술사의 정중한 말에 심상의 공간이 확 바뀌었다.


어두운 공간.

최면술사 주변을 수많은 거울이 둘러쌌다.

거울마다 강현이 일생동안 겪은 일들이 투영되고 있었다.


아이를 달래는 부모의 모습.

빙빙 돌아가는 모빌.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빨간 피가 흐르는 무릎.

책상 위의 볼펜.

심각한 얼굴로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부모님.

집안을 때려 부수고 있는 고블린들.

날카로운 발톱.

피에 젖은 시체들.


“뭐야, 이게?”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최면술사는 지금 일어나는 현상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시 상황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온갖 상관도 없는 장면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최면술사가 위치를 바꾸려 걸음을 옮겨봤지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거울의 미로.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강현 씨! 당시 현장만 떠올려봐요.”


급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 들어와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라고 해도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희미한 잔상만 보일 뿐.

그런 모호함 속에서 최면술사는 강제력을 동원해 뇌를 과부하 시켜 원하는 장면을 얻곤 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사람이 어떻게 평생을 사진처럼 기억한단 말인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최면술사는 도리어 자신이 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최면술사의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

잠깐 강현의 정신이 돌아왔다.


*


강현이 정신을 차리려 혀를 힘껏 깨물었다.

강현의 눈에 멍한 얼굴의 최면술사가 보였다.


‘너도 한번 느껴봐라!’


23년 동안 자신이 매일 겪었던 고통을.

그 혼란스러움을.


말을 잘 듣지 않는 손을 움직여 가까스로 최면술사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와 함께 ‘의미 기억’이 발동되었다.


[‘의미 기억’이 ‘암시에 의한 기억 유도 및 변형술’을 감지하여 의미적 코드로 부호화합니다.]

[코드 분석을 시작합니다.]

[‘기억 유도 및 변형술’의 구성 요소 간 의미적 상호 구조를 파악하였습니다.]


곧이어 ‘단기 기억’이 최면술사가 스킬을 사용할 때의 의식 상태 및 마나 패턴 변화 과정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보내왔다.


그 순간 또다시 들리는 시스템 메시지.


[절차 기억의 해금 조건을 모두 충족하였습니다.]


[절차 기억(잠금) 해금 조건]

1. 반복을 통해 각인된 일련의 순서에 대한 기억 습득

2. 비인지적 작동 절차 자동화 및 제어 기억 습득

3. 마나의 처리 프로세스 및 패턴에 대한 기억 습득


[‘절차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절차 기억이 실행되었다.

최면술사의 손을 통해 계속 마나가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절차 기억’이 감지된 마나의 운용 패턴을 분석합니다.]

[10%, 20%, ···, 90%, 100%]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기억 조작’이 습득 가능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혼자 기억 포식으로 무한성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무공 (2) +3 21.10.19 6,003 103 15쪽
9 무공 (1) +3 21.10.18 6,367 106 14쪽
8 최면술사 (3) +5 21.10.17 6,196 103 13쪽
» 최면술사 (2) +8 21.10.16 6,271 109 13쪽
6 최면술사 (1) +6 21.10.15 6,599 102 13쪽
5 입소식 (2) +3 21.10.14 6,805 113 13쪽
4 입소식 (1) +4 21.10.13 7,141 113 13쪽
3 사이코메트리 (3) +9 21.10.12 7,277 115 13쪽
2 사이코메트리 (2) +5 21.10.12 7,774 117 14쪽
1 사이코메트리 (1) +7 21.10.12 10,482 11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