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가면의 용사 2
"가면의 용사님이 검은 문을 없애주셨군요!!"
불만 가득하던 식당 주인의 얼굴에 왠지 모르게 빛이 피어난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하하... 뭐 그렇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경비병이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떠나야 했기에 황급히 날아올랐다. 글래슈도 경비병이 다가오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와다다 뛰어갔다. 그때 식당 주인이 내가 떠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면의 용사님!!!"
식당 주인의 목청이 너무 크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외침은 마을 전체에 울릴 것만 같다. 그래도 올리와 죠니가 경비병들을 잡아둔 덕분에 들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한 이유는 뭘까.
그 후로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검은 문을 제거했다. 경비병이 있는 마을보다는 몬스터 때문에 버려진 마을들이 오히려 사람들이 없어서 제거하기 쉬웠다. 몬스터나 검은 문보다는 들키지 않게 눈치를 보는 게 더 힘들었다. 교단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지만 검은 문이 갑자기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시간문제였다.
검은 문을 제거하기 위해 네스카의 리몬 타운으로 갔다. 미드나이트가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리몬 타운에는 검은 문이 하나 있고, 그곳 역시 파사 타운과 마찬가지로 검은 문으로부터 몬스터를 막아준다는 빌미로 주민들에게 막대한 양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검은 문을 닫기 위해서는 정찰이 필수였기에 우리는 리몬 타운에 있는 검은 문 주변을 둘러봤다. 검은 문은 광장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데다가 병사들이 항시 배치되어 있어 접근하기 까다로워 보였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방법을 강구하는데 올리가 말했다.
"저쪽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나요"
노랫소리가 나는 곳에 가보니 인파가 몰려있었고, 그 중심에는 음유시인이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고왔다. 물론 엘피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는 빼어난 목소리로 청중들을 매혹했다. 우리도 그 아름다운 목소리에 이끌려 잠시 길가에 서서 그녀의 노래를 감상했다. 근데 어쩐지 가사가 이상했다.
"한밤중에 몰래~ 검은 문을 닫고 떠나는~ 가면의 용사~"
가사를 듣고 움찔했다. 나와 올리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듣고 있던 죠니도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속삭였다.
"이거 에닌님 이야기 아닌가요?"
"맞는 거 같습니다."
"소문이 났나 봐요"
소문의 근원지는 안 봐도 뻔하다. 파사 타운의 그 식당 아저씨. 그 사람이 가면의 용사가 검은 문을 닫고 다닌다고 말하고 다닌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검은 문이 사라지는 기현상과 맞물려 퍼졌겠지. 순간 노래가 멈추었다. 청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대한 답례로 박수를 쳤다. 나 역시 청중 속에서 박수를 치는데 음유시인이 계속해서 바라본다. 아무래도 내가 쓰고 있는 가면 때문인 거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 같아 올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야겠죠?"
뒤로 돌아 자리를 떠나려는데 누군가 뒤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저기요?"
아까 그 음유시인이었다. 그녀의 부름에 잠깐 멈추었다. 나와 올리 그리고 죠니와 글래슈까지 모두 뻣뻣하게 굳은 채, 돌아보지 못했다.
"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아까 제 노래를 듣고 있는 걸 봤습니다. 가면을 쓰고 계시던데 혹시 가면의..."
"하하하, 그게 뭔가요? 처음 듣습니다."
모르는 척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음유시인은 뭔가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그녀가 한 걸음 성큼 다가오더니, 고개를 쭉 내밀고 나를 바라본다.
"실례지만 가면은 왜 쓰고 계신 건가요?"
"가, 가면무도회 때문에 썼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돌아서려는데 그녀가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가면무도회요? 저도 가고 싶네요. 어디서 하나요?"
"그게... 어디더라?"
더 이상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문이 막혀버렸다.
"저희가 좀 바빠서요!"
올리가 팔짱을 끼더니 억지로 나를 끌고 갔고, 죠니와 글래슈도 후다닥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는 음유시인을 따돌리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리몬 타운을 빠르게 한 바퀴 돌고, 마을 근교에 있는 교각 밑으로 몸을 숨겼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들키는 줄 알았습니다."
"에닌님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해요!"
올리가 나를 꾸짖었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에닌님도 못하는 게 있으셨구나!"
글래슈의 큰 목소리가 교각 밑으로 울렸다.
"글래슈 목소리 좀 낮춰요!"
"죄송합니다."
"근데 들키지 않고 검은 문에 갈 수는 있을까요? 보니까 너무 번화가에 있어서 접근조차 힘들던데"
죠니가 창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말했다. 그녀는 검은 문과 건물들 그리고 병사들을 그리고 있었다. 죠니의 말대로 리몬 타운에 있는 검은 문은 위치가 좋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요? 파사 타운에서 썼던 작전을 쓰면 되잖아요."
올리에게 묻자 그녀가 눈썹을 만지며 고개를 흔든다.
"경비병 숫자가 많아서 파사 타운에서 썼던 '배 아파' 작전은 쓰기 힘들 거 같아요."
"그런가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교각 위쪽에서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위를 올려다보니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하다. 음유시인이 활짝 웃으며 다시금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가면의 용사님!"
교각 위를 바라보던 우리는 동시에 이마를 탁하고 쳤다.
그녀의 이름은 바라, 네스카의 떠돌이 음유시인으로 본인 스스로 네스카의 엘피라고 소개했다.
"가면 한 번만 벗어주실 수 있을까요?"
바라가 내 가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안 됩니다."
"히잉"
바라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쉬워했다.
"근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겁니까?"
"제가 검은 문을 지키는 병사들 앞에서 공연을 해드릴게요."
"그걸로 되나요?"
올리가 미심쩍다는 듯이 묻자 바라가 팔짱을 끼고 턱을 들었다.
"제 노래를 듣고 시선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은 없다구요."
저 자신만만하다는 표정, 믿어도 될까?
"정말로 그들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습니까?"
"그럼요.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는 저한테 집중할 거예요."
바라는 자신에 노래에 대한 긍지가 높았다.
"알겠습니다. 한 번 해봅시다."
작전은 간단했다. 바라가 노래를 불러 경비병의 시선을 끌고, 그 틈을 타서 내가 검은 문으로 다가가 검은 문을 제거한다.
리몬 타운에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작전을 개시했다. 우려했던 대로 검은 문 주변에 광장이 있어 밤임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믿을 건 바라밖에 없었다. 바라는 검은 문 근처에 자리를 잡더니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분~ 반가워요! 네스카의 떠돌이 음유시인 바라입니다!"
바라의 눈웃음과 특유의 넉살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바라! 낮에도 공연하더니, 오늘은 밤에도 공연하는 거야?"
"오늘은 특별히 여기 계신 경비병들을 위해 하는 거니까요!!"
바라의 말에 청중들이 술렁인다. 바라는 아예 경비병들을 바라보더니 애교가 가득 담긴 눈웃음을 발사했다. 그녀의 애교에 경비병들이 하나 둘 시선을 빼앗겼다.
"그럼 노래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바라한테 눈을 떼지 말아 주세요!!"
경비병들은 이미 바라에게 홀딱 빠져 검은 문은 뒷전이었다. 아무래도 병사들도 몬스터 한 마리 정도 나오는 거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에겐 좋은 상황이었다. 올리와 죠니는 망을 보고, 나와 글래슈는 검은 문으로 다가갔다.
"리몬 타운에~ 가면의 용사가 나타나 주길~ 기도했어요~"
노래가 시작되니 곁눈질로 바라를 보던 경비병들까지 모두 일어나 그녀의 공연을 관람했다. 이렇게 쉽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니. 올리나 죠니한테 노래를 가르쳐 볼까? 아니면 글래슈? 시답잖은 상상을 하며 검은 문에 손을 가져갔다. 찌릿한 느낌과 함께 검은 문에 흐르는 마나가 내 몸으로 흡수된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 검은 문에서 헬 하운드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크르르
헬 하운드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다급한 마음에 글래슈를 바라보니, 이 녀석 바라의 노래를 감상하고 있다.
"글래슈!"
작게 글래슈를 불렀지만 바라의 노래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글래슈!"
다시 한 번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글래슈는 이미 노래에 푹 빠져있었다. 에닌님의 검이 된다던 녀석이 맞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헬 하운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검은 문에서 나오는 마나 때문에 손을 뗄 수도,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헬 하운드는 나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한다. 여차하면 소리라도 지르기 위해 숨을 들이마셨다.
"흐읍"
-슉
순간 화살 하나가 날아와 헬 하운드의 머리에 정확하게 꽂혔고, 헬 하운드는 그대로 풀썩 고꾸라졌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올리가 도와줬나 하고 올리가 있는 쪽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도와준 거지? 가까스로 검은 문을 제거하고 뒤로 나왔다.
-짝!!
멍하니 공연을 관람하는 글래슈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야!"
글래슈는 덩치에 맞지 않는 소리를 내더니 나를 돌아봤다.
"끝났습니다."
녀석의 단단한 등근육에 손바닥이 아려왔지만 이건 안 때릴 수가 없었다. 검은 문을 제거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청중 속에 스며들어 바라에게 검은 문을 제거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바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노래를 마쳤다. 청중들은 그녀의 노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순간 경비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거, 검은 문이 사라졌다!!!"
그의 외침에 바라에게 쏠려 있던 이목이 검은 문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검은 문으로 인해 장내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정말로 가면의 용사님이 왔다 가신 걸까요?!"
바라는 시키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바라, 제발. 바라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가면의 용사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좋을 게 없었는데 바라가 불을 지펴버렸다.
"가면의 용사가 진짜였어?"
"교단의 구원자가 방문하지도 않았는데 파사 타운의 검은 문이 없어졌잖아!"
"가면의 용사가 리몬 타운에도 오셨다니!!"
"그러고 보니 아까 가면을 쓴 사람들을 본 거 같은데"
눈치를 살피며 군중에서 벗어나려던 우리는 모두 움찔했다.
"저기 있다! 가면을 쓴 사람들!!"
누군가 우리를 가리켰고, 우리는 일제히 돌아봤다. 군중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가면의 용사님이예요!!!"
바라는 우리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는 맑고 높아 귀가 아플 정도였다.
-슉!
순간 화살 하나가 우리 앞에 있던 바닥에 꽂혔다. 그리고 그 화살에서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올라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갑자기 피어오른 연기에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이쪽으로!!"
순간 연기 속에서 작은 체구의 남자가 나타나 우리를 데리고 골목으로 인도했다. 미드나이트의 진이었다.
"너무 가면의 용사 티를 내시는 거 아닙니까?"
진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아까 헬 하운드도 진이 잡아주신 겁니까?"
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몬 타운에는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에닌님이 리몬 타운이 있다고 해서, 중요한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중요한 소식이요?"
"에닌님이 알고 싶어 하셨던 코나 사제의 다음 행선지를 알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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