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의 비밀

비밀을 풀다-제5화

-비밀을 풀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떠나는 사니를 보내고 아일린과 나는 방으로 올라왔다.

아일린은 흐트러진 내방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난 그녀의 예상했던 질문에 답변을 잠시 미룬 채, 발코니창 너머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밀을 풀어야지."

한참만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마르하르의 비밀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니도 가고 없었다. 큰 도움은 안되었지만 그래도 그가 있을 땐 마음이 든든했는데......

"친구분은 가셨지만 전, 비밀의 끝을 보고 싶어요. 선생님도 비밀이 풀리면 여기를 떠나시겠지요?"

그녀는 내 옆에 앉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길고 가는 손끝이 차가웠다.

잠시 후, 난 일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파피루스를 집어 들었다.

"여기 적힌 내용을 해석할 만한 사람을 찾아야 해. 안드레아 신부에겐 더 이상 부탁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는 이곳 사람이야. 파피루스를 보는 순간 이것이 도굴된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거야. 그러면 일이 걷잡을 수 없게돼."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음...... 제가 아는 분이 이집트 카이로 대학에 계세요. 대학시절 그분의 콥트어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지금은 이집트에 계시죠. 이번 일은 제가 안 나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그분이 저를 기억할지도 모르니 이번 일은 선생님이 직접 나서 보세요."

그녀의 제안에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맞아. 일단 마르하르의 비밀이 풀릴 때까지 파피루스는 내 손에 있어야 해. , 만에라도 의심받을 행동은 자칫, 사태를 그르칠 수도 있어."

하나씩 생각이 갈피를 잡아 나갔다.

"그분의 메일 주소를 알 수 있을까? 파피루스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 볼 거야. 원본을 보내줄 수는 없어. 혹시라도 중대한 내용이라면 고고학자인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 덧붙여야 해."

아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방을 나가고, 난 방문을 걸어 잠근채, 파피루스 아홉 장을 바닥에 펼쳤다. 그리고 카메라를 근접 모드로 바꾸어 하나씩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에 다운로드하여 적당한 크기의 파일로 편집했다. 어느덧 발코니창 너머로 해가지고 있었다.

난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안탈리아의 뒷골목을 걸었다. 혼자 걸으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다.

'들키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파피루스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비밀을 풀고 나면 내손에 있는 파피루스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나는 언제쯤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

벌써 안탈리아에 온 지 일주일을 넘기고 있었다. 시장기가 돌았다. 세젠느 거리의 맥도널드에서 빅맥으로 저녁을 때우는데, 아일린에게서 문자가 왔다.

"'람세스 파비오' 교수, E-mail : [email protected]"

돌아와 람세스 교수에게 메일을 썼다.

-존경하는 람세스 교수님께-

저는 Kenneth Jung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이며,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오래전 시리아를 여행할 때, 알레포의 한 골동품상에서 파피루스 묶음을 보았지요.

저는 그것에 관심이 있었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구입을 포기했고, 주인을 설득시켜 사진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다,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 사진들의 글자가 담고 있는 내용을 알고 싶어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AD100년 전후의 문서로 보이는데, 고대 콥트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여러 군데 나오는 것으로 보아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문서로 보입니다.

혹시라도 하는 바램으로 9장의 사진 파일을 첨부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해석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외람되지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사례를 잊지 않겠습니다.

Kenneth Jung.

그리고 난, 아홉 장의 파피루스 사진 파일을 첨부하여 이집트 카이로대학의 람세스 교수 앞으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Send 버튼을 누르며 무의식 적으로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난, 습관적으로 멀리 발코니창 너머의 지중해를 바라본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고, 아침식사를 가져온 아일린이 테이블 위에 쟁반을 올려놓는다.

"'돌마(Dolma)'예요. 쿠르드족의 음식이지요. 야채와 양고기를 넣어 만들어 봤어요."

"맛있겠는데!"

난 그중 하나를 집어 입에 물며,

"어젯밤 람세스 교수에게 사진을 보냈어. 적당한 핑겟거리를 덧붙였지."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이집트 사람들이 그렇듯 친절한 사람은 아니에요."

"이왕 보낸 거니 기다려 봐야겠지. 하아, 기다리는 건 지루해. 저녁때 식사나 같이할까?

특별한 아침식사를 먹었으니 보답하는 뜻에서."

"핑곗거리를 잘도 만드시는군요."

"난 아일린을 위해 항상 핑겟거리를 준비해두지."

그녀는 상큼한 미소로 동의를 대신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짓눌렸던 생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거리를 쏘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칼레카 피사 광장의 바닥분수에서 사진을 찍고, 하드리안의 석문을 지나, 그 옛날 사도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에서 처음 머물었던 팜필리아 제국의 유적들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

다시 시내로 들어섰을 때, 아일린은 어느새 내 팔짱을 낀 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아카파크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윈도 쇼핑도 했다.

난 '이태리 오로 디자인'이란 간판이 붙은 쥬얼리 상점에 들려, 은빛 십자가 펜던트 목걸이를 하나 골랐다.

전부터 나는 이태리 오로(Oro) 디자인을 좋아한다. 오로의 디자인은 투박하면서 고전적이고, 자신들이 개발한 특수합금으로 저가의 장신구들을 만든다. 메탈 알레르기가 없고, 디자인이 독특하며 가격이 저렴해, 난 전부터,세계 어디에나 있는 이 독특한 쥬얼리 상점을 좋아했다. 지금 내 가방에 달려있는 펜던트도 오래전 싱가포르 오로에서 산 것이다.

난 그 자리에서 펜던트를 그녀의 목에 걸어 주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쇼핑센터를 나와 아무 말없이 걸었다. 서로가 말을 아끼고 있었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 헤어질 때 아일린이 내 입에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향긋한 샤프론 냄새가 났다.

"십자가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예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핑곗거리를 잘도 만드는군."

"저도 당신을 위해 핑곗거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난 초대교회 시대의 유대 역사를 찾아 읽고 정리하는데 열중했다. 마르하르의 비밀을 풀려면 그시대 유대인들의 역사를 이해해야 했다. 아일린도 그녀의 일에 집중했고 가끔씩 내게 람세스 교수의 답장에 대해 묻곤 했다.

며칠 후, 람세스 교수로부터 기다리던 답장을 받았다.

"보내주신 사진은 잘 받았습니다. 메일을 받고, 바로 답장을 드리지 못한데 대해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

워낙 고대어이고 방언이 섞여있어, 해석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내용이 파악 되는대로 당신께 메일로 해석본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귀하께서 이 문서를 시리아 알레포의 골동품상에서 보셨다고 했는데, 혹시, 그 정확한 위치나 그 골동품상의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언젠가 알레포에 들르면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군요.

그럼 해석이 끝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카이로에서, 람세스-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던 답장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가 관심을 가졌고, 며칠 내로 해석본을 보낸다는데 무엇보다 희망이 솟았다. 그리고 바로 답장을 썼다.

"존경하는 람세스 교수님께.

먼저, 제가 보내드린 사진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고대 유대의 역사를 신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저명하신 교수님으로부터 답장을 받게 되어 자부심을 느낍니다.

차분히 교수님의 메일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알레포의 골동품상에 대해선, 아쉽게도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후에라도 제가 그 골동품상에 대한 기억이 나거나 알게 된다면 교수님께 먼저 메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Kenneth Jung-

그리고 또다시 지루한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난 드디어 람세스 교수로부터 기다리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파피루스의 내용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글의 의미나 정확한 뜻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연구가 필요하지만, 기다리실 것 같아 일단 표면상의 직역을 먼저 보냅니다. 귀하의 연구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제레미아의 유서-

갈릴리의 아들 제레미아는 내 친구 예수의 제자라 칭하는 여섯 사탄들에게

신의 이름으로 저주를 전하노라.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예수를 따랐느니라.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인 안드레, 세베대의 안드레와 그의 형제인 요한, 세리 마테와 빌립, 바돌로메와 도마,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데오, 시몬과 가롯 유다, 엘리사와 이세벨과 바울, 갈릴리의 형제 에스겔과 메데, 그들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예수를 따라 동방에서 온 여섯 이방인과 페르시아에서 온 돗자리 장수 헷세만, 그리고 나 제레미아와 내형제 세미논이라.

무리들 중 여섯이 예수를 모함하여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였고 막달라에서 온 그들의 어머니,마리아를 벌거벗겨 길바닥에 던졌느니라. 나 제레미아가 울부짖는 어머니를 일으켜 바다를 건너 이방인의 땅으로 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도다.

어머니가 죽음에, 이제 고향에 그분의 몸을 묻고 다시 이 땅에 와 사람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전했도다.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어머니와 나를 불러 말하되,

“무리 중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을 쌓으려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믿음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사탄의 뜻이니라.

내가 그들을 일깨우려 했으나 그들은 이제 나를 외면하고 모함하니,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이며, 다시 나의 여인과 나머지 무리들을 죽이려 할 것이다.

내 친구 제레미아에게 이르노니,

내가 죽거든, 너는 여인을 데리고 북쪽 이교도의 땅으로 가라.

그곳에서 그녀를 어머니로 따르며, 이방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돼,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을 세우지 말라.

내가 죽은 후 무리 중 여섯이 사탄의 혀로 사람들을 속일 것이니,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며, 그들이 권세를 얻어 아버지의 이름으로

궁전을 지을 것이니라.

그들은 궁전 안에서 대대 손손 부귀를 누리고, 가난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그곳에 모여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알지 못하는 음성으로 짐승처럼 울부짖을 것이다.

다시 말하노니 주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지 말라.

교회는 너희의 기도하는 마음속이니, 너희가 모여 주를 찬미하는,

집이나 길거리나 나무 그늘 밑이로다.

사탄의 교회가 온 땅을 덮으니, 그 수가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니라.

눈있는 자는 그 궁전에 새겨진 인장을 볼것이라,

그것은 사탄의 표식이니라.

사탄의 교회가 메기나에서 열두 지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니,

모든 땅이 피로 물들며, 피가 모여 바다가 되니라.

메기나의 하늘문을 열고 내가 다시 올 것이니,

죽은 자 가운데 영혼이 깨끗한 자를 다시 살리고,

사탄을 멸하며, 이 땅의 모든 교회를 허물어 주의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이라.

산 자들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주를 찬양하니 그곳이 곧 주의 집이니라. “

이제, 나 갈릴리의 아들 제레미아는 나의 제자 마르하르에게 이르노니,

예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라.

내가 죽은 후 삼 년이 되는 해에 나의 유골을 꺼내어 나의 고향 갈릴리에 묻어라.

그리고 예수를 못 박은 자가 너를 찾아와 나의 무덤을 묻거든 말하지 말 것이며,

그들이 너를 협박할 것이니 이 비밀을 말하지 말라. 비밀은 여인안에 있을것이니.

세상이 그들이 세우는 교회로 인해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뉠 것이니 너는 가진 자 편에

서서 사탄의 혀로 없는 자들에게 말하지 말라.

그들을 벌하는 건 주께서 하실 일이니, 너는 없는 자들에게 주의 말씀만을 전하라. “

-갈릴리의 아들 제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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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내용이 지금까지 해석된 전부입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문서입니다.

얼마 전 이집트에서도 그 시대의 문서가 파피루스 형태로 발견되었지요. 고고학 적으론

큰 의미가 있었지만 종교계에선 철저히 배척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해석이 귀하의 연구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겠습니다.

*추신*

이제 제가 귀하의 요청에 답변을 드렸으니, 귀하께서도 답변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귀하께서는 사진의 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출처도 알레포가 아닐 것이라 짐작됩니다.

혹여 그 문서가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되었다면 마땅히 그 문서는 터키 정부에 귀속되어야 하지요.

빠른 시일 내에 귀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카이로에서 람세스-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던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놀라움과 함께, 무언가 불길함이 느껴졌다.

(계속)

[ulk]

들켰네 ㅎㅎㅎ 변명이 좀 티가 났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