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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124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2.05.13 12:15
조회
279
추천
3
글자
10쪽

개입(介入)

DUMMY

* * *


한동안 말없이 그 무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초아는 아미를 찌푸리며 분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저것들 뭐야? 명색이 무인이란 놈들이 일반인들을 건드려? 내 저 놈들을 그냥······!”


곧이어 초아는 무서운 기세로 팔 소매를 걷어 올리며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진서우는 그런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지금 내 신분이 최대한 알려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잊었느냐? 우선은 일이 복잡해지기 전에 이곳을 뜨도록 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몸을 돌려 마을 뒤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에 초아와 초비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쉰 후 진서우의 뒤를 따라 경신술을 전개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그들의 도주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새 마을 뒤편에서도 백의인들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마을 내의 사람들을 조금씩 포위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자리에 멈춰 선 채로 그저 조용히 앞뒤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하던 진서우.


그러다 그는 임시방편이라도 취하려는 듯 은밀한 몸놀림으로 자신의 옆에 있던 어느 건물의 벽을 타고 올라가 빠르게 지붕 위에 엎드렸다.


이에 곧바로 다른 건물 지붕 위로 몸을 날리는 초비와 달리 초아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따져 묻듯 한 차례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지만, 감히 시비의 신분으로 진서우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던 지라 이내 그녀 또한 경공을 전개하여 지붕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각자 건물의 지붕 위에 오른 후로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에는 마을 곳곳에서 들려왔던 비명소리와 무기 부딪히는 소리들이 어느 순간부턴가 한 곳으로 모여드는 듯 싶더니, 종국에는 마을 내의 모든 사람들이 진서우 일행이 있는 건물들을 중심으로 어느 좁은 영역 안에 밀집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주위를 포위한 채 넘실거리는 살기를 가득 분출해내고 있는 백의인들.


곧이어 사람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백의인들의 틈에서 혼자만 붉은 복면을 착용하고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장년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사풍이괴(沙風二怪) 은사풍(隱沙風) 선배님께서는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죠. 선배님 눈 앞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길 원하는 건 아니시겠죠?”


그 말과 동시에 그는 서릿발 같은 기세를 피어 올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붉은 복면인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할 뿐, 어느 누구도 앞에 나서서 백의인들과 마주하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붉은 복면인은 살기 어린 광망을 번뜩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죠. 이곳에 쥐새끼 하나조차 남지 않도록 모조리 쓸어버릴 수 밖에는······."


그리고는 무심하게 한 손을 들어올려 앞뒤로 까닥거리는 붉은 복면인.


이 같은 붉은 복면인의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백의인들은 또다시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포위망 내의 사람들을 압박해나갔고, 이에 몇몇 무인들이 전면으로 나서며 뒤쪽 일반인들을 보호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상대 측의 기세가 너무나도 강렬했던 나머지 결국 자신들도 모르게 연신 몸을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러던 그 때, 인파 속 어느 여인 품에 안겨 있던 대여섯살 정도의 한 꼬마아이가 백의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에 순식간에 그 아이에게로 쏠리는 백의인들의 시선.


그러던 중 어느 한 백의인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야비한 눈빛을 해 보이며 불현듯 품 속에서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내 그 꼬마아이를 향해 빠르게 날렸다.


아마도 어린 꼬마아이를 잔혹하게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찾고 있는 대상을 자극하고, 나아가 그 자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목적인 듯 보이는 백의인의 공격.


이에 사람들 앞에 서 있던 무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백의인의 공격을 쳐내려 하긴 했지만, 그들 능력으로는 이미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채로 날아가는 그 비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꼼짝없이 꼬마아이의 가슴팍에 비수가 틀어 박히려는 바로 그 찰나, 한 줄기의 기운이 대기를 가르며 날아와 백의인의 비수를 멀찍이 튕겨내었다.


그러자 공격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백의인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그 기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어느 건물 지붕 위에서 한 개의 인영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길을 가다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외모를 지닌 평범하디 평범한 인상의 한 남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상황이 부담스러운 듯 연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남자의 정체는 바로 아까 전까지 건물 지붕 위에 엎드려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던 진서우였다.


‘최대한 나서지 않으려 했건만······.'


분명 일다경 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백의인들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진서우였지만, 아직 세상의 때도 묻지 않은 어린 꼬마아이까지 처참히 죽임을 당하게 되는 걸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진서우의 등장과 더불어 이 순간 초아와 초비까지 천천히 지붕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초아는 그제서야 얼굴 가득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들뜬 목소리로 진서우를 향해 말했다.


“헤헤, 공자님, 그럼 이제부터 저 몹쓸 놈들이랑 한바탕 즐겁게 놀아봐도 되는 거죠?”


초아의 말에 뒤이어 초비 또한 마치 맛있는 먹거리를 눈 앞에 둔 것 마냥 헤벌쭉 행복하게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오, 나름 한 가닥 해 보이는 놈들이 꽤나 많네! 재미있겠다!”


한편, 붉은 복면인은 이러한 진서우 일행의 등장에 양미간을 찌푸리며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알고 보니 쥐새끼들이 숨어있었군. 네놈들은 누구지?”


“누구긴 누구야! 네놈들 때문에 축제 구경을 망쳐서 기분 다 잡쳐버린, 어여쁜 누님이시다, 이 자식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날리며 백의인들을 공격해가는 초아.


그런 그녀의 손등에는 어느 새 푸른 빛깔을 내는 나비 모양의 장신구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겉으로만 보기엔 그 어떤 위험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아름다운 형상의 나비 장신구였지만, 사실 이것의 진정한 위력은 그 나머지 반쪽이라 할 수 있는 홍접(紅蝶)과 함께할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청홍쌍접수(靑紅雙蝶首).


지금으로부터 약 삼백여 년 전, 당대 최고의 장인으로 알려졌던 육광(堉鑛)이라는 자가 말년에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진 기물이 바로 이 청홍쌍접수였는데, 이 무기는 사용자의 몸에 달라붙어 내공을 흡수하는 청접(靑蝶)과 그것을 매개로 실질적인 공격을 실행하는 홍접(紅蝶)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내공을 불어넣기 전까지는 그저 단순한 장신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한번 작동을 시키고 나면 일시일명(一翅一命, 한 번의 날개짓마다 하나의 목숨을 취한다)이란 이명을 얻을 정도로 살벌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가 바로 이 청홍쌍접수인 것이었다.


그러나 청홍쌍접수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였던 건 지금으로부터 벌써 수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강호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탓에 사실상 이제는 전설로만 취급되어 오고 있는 청홍쌍접수였건만, 놀랍게도 이 순간 초아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의 손에서 이 청홍쌍접수가 다시 한번 그 날개를 펼치며 죽음의 무도(舞蹈)를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곧이어 초아가 청접이 달라붙은 손을 부드럽게 앞으로 내뻗자 그녀의 등 뒤에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던 홍접이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빠르게 주먹을 말아 쥐는 것을 기점으로 홍접은 갑자기 먹이를 노리는 새처럼 빠르게 백의인들을 향해 쇄도하며 공기 중에 파공성을 남겨갔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홍접의 공격에 백의인 중 하나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려 반격을 시도하였지만, 홍접은 백의인의 몇 치 앞에서 불현듯 경로를 꺾으며 무심히 상대의 목을 벤 후 다시 표홀하게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렇게 목에서 피를 뿜으며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는 상대를 뒤로 한 채 홍접은 어느 새 다음 상대를 향해 죽음의 날갯짓을 전개해가고 있었고, 이에 깜짝 놀란 백의인들이 서둘러 그 신형을 뒤로 물림에 따라 마을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포위망에도 점차적으로 허점이 생겨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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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충돌(衝突) 22.05.14 249 3 10쪽
» 개입(介入) 22.05.13 280 3 10쪽
2 기습(奇襲) 22.05.12 379 4 10쪽
1 잠식(蠶食) 22.05.11 645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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