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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살(天殺) 먹은 노인(路人)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2.05.11 13:02
최근연재일 :
2023.05.21 14: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5,125
추천수 :
44
글자수 :
148,938

작성
22.05.1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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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
추천
9
글자
10쪽

잠식(蠶食)

DUMMY

* * *


젠장,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 간다. 장차 최강의 살귀(殺鬼)가 될 운명을 지닌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다니······.


이건 전부 저기 나자빠져 있는 빌어먹을 저 세 놈의 원수들 때문이다.


방심한 사이에 이루어진 갑작스런 공격······.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고스란히 공격을 받아들였던 탓에 결국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말았다.


분명 스스로의 주제도 모른 채 자존심만 세우는 한심한 놈들이라 생각했건만, 그런 녀석들에게도 최후의 한 수가 남아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물론 복수는 아주 철저하게 행해주었다.


에헴! 이 몸이 누구시던가? 천살성(天殺星)의 기운을 받아 잉태된 혈겁지마(血怯志魔)가 아니던가? 눈에 띄는 모든 자들을 짓밟고, 덤비는 녀석들은 아예 지옥 끝까지 매장시켜버릴, 그런 잔혹한 성품을 타고난 이가 바로 본인이란 말이다.


뭐, 물론 죽은 이 녀석들 또한 천살성의 잔기(殘氣)를 조금! 아주 조금! 내려 받긴 했지만, 천살성의 본래 소유자라 할 수 있는 나에겐 상대가 될 리 없었지.


어찌 됐든, 나는 일격에 녀석들의 심장을 관통시킨 데 그치지 않고 곧바로 그 놈들의 팔 다리까지도 모조리 떼어내 버렸다. 이미 죽은 놈들 사지를 모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뭐, 굳이 따지자면 전리품 정도의 의미라고나 해두자.


어쨌든 며칠 뒤면 저 놈들의 몸은 완벽하게 소멸됨과 동시에 천고의 양분이 되어 내게 흡수되겠지.


그러나······. 문제는 지금 나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그때까지 버틸 수 없을 듯싶다는 것이다.


천하에 피바람을 몰고 오기는커녕 아직 세상의 공기조차 쐬지 못했는데 이런 개죽음이라니······. 에휴, 생각해보니 이런 망신이 또 있을까?


그나저나 저승에서 만날 전대의 천살성 선배들이 내게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냐고 물어온다면 난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한담.


"태어나지도 못한 핏덩어리 세 녀석이요."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 그랬다간 천살성의 수치니, 뭐니 하며 그들로부터 무시 섞인 핀잔을 듣고 말 것이다.


제기랄! 본디 세상살이 뜻대로 되는 것 없다고 하지만, 이건 아예 초장부터 똥통에 처박힌 꼴이잖아. 뭐 이런 엿 경우가 다 있나 몰라.


어, 잠깐? 그나저나 구석에 처박힌 저 녀석은 뭐지?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아니, 애초에 저런 녀석이 있긴 했었던가? 흐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녀석 같은데 말이지.


지금까지 활발하게 나를 견제하던 그 세 놈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었다고는 하나,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한번도 내 눈의 띄지 않았을 리는 없었을 텐데?


음, 가만 있어 보자. 자세히 보니 저 녀석, 온 몸을 잔뜩 움츠려서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지도 않는데다, 마치 보호색으로 둘러싸인 것 마냥 주변 환경에 완벽하게 녹아 들어 있기까지 하잖아.


큭큭,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몰라. 아마도 저런 녀석은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평생 그늘진 곳에서 실패자처럼 조용히 살다가 갈 것이 뻔하다.


뭐, 그래도 무사히 태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보다는 성공한 인생이라 해야 하는 걸까?


아,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열 받네. 피를 흘리며 분주히 움직인 건 나인데 정작 덕을 본 건 저 녀석이니 말이다.


이거 완전 죽 쒀서 개 준 꼴이군.


하아, 억울해서라도 저 녀석을 아예 처치해버리고 싶다. 아니면 아예 저 몸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거나······.


······음? 잠깐! 몸을 뺏는다? 오호라,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우리가 아직 완전한 형태의 몸을 갖추지 않은 지금, 내게 남아있는 모든 기력을 투자한다면 저 녀석의 몸에 내 몸을 동화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


그렇게 당분간 저 녀석의 몸을 빌려 충분한 휴식과 함께 기운을 축적한다면 얼마 되지 않아 이 내상을 완전히 회복하고 원래의 내 힘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저 녀석의 몸을 완전히 내 것으로 취한 후 당당히 저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디딜 것이다!


* * *


“아, 맞다! 공자님, 혹시 그 얘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태중의 태아는 자신이 타고날 대략적인 운명에 대해 처음부터 이미 다 알고 있대요. 그리고 드디어 세상에 태어나 첫 공기를 들이쉬게 되면 그 즉시 자신의 운명에 대한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고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어느 큰 객잔 안. 그곳의 여러 환경들이 만들어내는 시끌벅적한 공기 한 편에서 누군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주위 사람들의 귓가를 자극하였다.


본디 아름다운 것은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나 찬연하게 제 빛을 발하는 법.


그만큼 그 목소리는 주변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귀를 기울일만한 맑고도 낭랑한 음색을 싣고 있었지만, 유독 평범한 인상의 한 백의(白衣) 청년만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시선을 던지기는커녕 오히려 어깨를 움츠리며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사실 이러한 청년의 반응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그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심하게 의식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단 사실이었고, 나머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그 청년의 동행인이란 사실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청년은 자신의 동행인이 낸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인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 식탁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게 되진 않을까 하는 다소 황당한 걱정을 하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와 같은 청년의 모습을 본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청년을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


“거 참, 공자님! 주변 좀 그만 의식하시라니까요! 고작 이 정도 크기의 목소리 가지고 우리에게 신경을 쓸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된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리고 설령 누가 우리를 좀 쳐다보면 어때요? 그냥 호기심에 잠시 쳐다보는 것뿐인데요, 뭐.”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이는 앙증맞은 인상의 한 청의(靑衣) 소녀.


한편, 이러한 소녀의 말에 백의 청년, 진서우(震曙竽)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아(娥兒) 네가 자각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네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달리 맑고 고와서 조금만 목청을 높여도 금방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쉽단 말이야······.”


“아휴, 참······.”


목소리가 예쁘다고 말해주니 화를 내기도 뭐하고, 또 그렇다고 진서우의 한심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자니 한숨이 새어 나와, 청의 소녀, 초아(礎娥)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진서우의 얼굴만 마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때, 그런 진서우와 청의 소녀 사이에 앉아 연신 오리고기를 뜯고 있던 거구의 적의(赤衣) 소년이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공자님! 아아(娥兒)야! 이 남은 고기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되죠? 헤헤헤.”


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식탁 위의 고기를 집어 드는 그 적의 소년의 정체는 현재 초아와 마찬가지로 진서우와 동행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이자, 사적으로는 초아의 쌍둥이 오빠이기도 한 초비(礎碑)였다.


이에 초아는 다시 한 차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자신의 오빠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으이구, 이 인간아. 그렇게 많이도 먹고도 아직까지 음식 들어갈 배가 남아있냐?”


이 같은 초아의 핀잔에도 초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해맑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헤헤, 아직 요리 몇 개는 거뜬히 더 먹을 수 있어.”


그러자 초아는 곧바로 그 앙증맞은 팔을 뻗어 초비에게서 젓가락을 빼앗아 들며 단호한 어조로 얘기했다.


“안돼, 그만 먹어. 너는 살 좀 빼야 해. 덩치만 산만해가지고 맨날 길가다가 제일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지잖아. 넌 정말 그 뱃살이 문제야, 문제.”


이와 같은 초아의 행동에 그제서야 초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하듯 입을 열었지만, 어차피 말싸움을 해 봤자 언제나 지는 쪽은 자신이란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그는 입술만 삐죽 내민 채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던 그 때, 보부상인 듯 보이는 몇몇 사내들의 들뜬 목소리가 그 주변에 있던 진서우 일행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서두른 덕에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구먼. 그나저나 오늘 밤 이윤은 확실히 챙길 수 있겠지?”


“아무렴, 이 친구야. 이 근방에서 제일 큰 규모로 열리는 축제라는데 설마 하루 공치기야 하겠어?”


“하하하, 최근 몇 주야간 하도 장사가 잘 안되었다 보니 알게 모르게 가슴 한 구석에 조바심이 있었나 보네. 더군다나 오늘 오랜만에 손에 돈 좀 쥘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설레지 뭔가?"


“허허, 이 친구 참. 자, 그러지 말고 축제 시작 전까지 우리 술이나 맘껏 들도록 하세. 이렇게 기분 낼 일도 그리 흔하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 그래. 어서 들자고.”


오랜 전쟁이 끝나고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지도 어언 오 년.


이젠 어느 정도 민생이 안정되어가고 있는 당금의 상황 속에서 최근 여러 마을들은 가끔씩 이렇게 자신들이 되찾은 평화를 자축하듯 다양한 규모의 축제들을 개최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오늘 이렇게 진서우 일행이 하룻밤 묵고 가려던 이 마을에서도 오랜만에 큰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던 것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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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입(介入) 22.05.13 280 3 10쪽
2 기습(奇襲) 22.05.12 379 4 10쪽
» 잠식(蠶食) 22.05.11 646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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