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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극자의 작은 서재입니다.

천하의 몹쓸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쌍극자
작품등록일 :
2021.10.08 12:07
최근연재일 :
2023.06.07 06:00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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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47
추천수 :
262
글자수 :
31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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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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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표행을 의뢰할 대상은 바로 우리거든.

DUMMY

* * *


태명표국의 국주인 양무강(梁茂鋼)은 책상 위에 높게 쌓인 서류들을 하나씩 처리가다 불현듯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며 집무실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에 깜짝 놀라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한 하녀.


그녀의 이름은 소향(蘇香)으로서, 몇 년째 국주의 집무실 쪽을 전담하여 일해오고 있는 하녀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양무강은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큰 고함을 내지르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청소하라고 했을 텐데?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내 눈에 보이는 이 꽃가루는 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양무강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꽃가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분노를 표출했다.


아마도 하인들이 서류를 집무실로 나르는 과정에서 그 서류뭉치들 사이에 끼어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꽃가루.


그런 꽃가루가 하필이면 양무강의 바로 눈 앞에 떨어져 지금과 같은 사달이 나게 된 것이었다.


한편, 사실상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소향은 어떠한 변명도 없이 그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폭풍이 더 빨리 지나간단 사실을 그녀 나름대로의 경험을 통해 터득해온 결과였다.


그리고 잠시 후, 신경질적으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손짓으로 축객령을 내리는 양무강.


그런 그의 손짓에 따라 소향이 발소리를 죽여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아까 전까지 소향과 함꼐 복도를 청소하고 있었던 신참 하녀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선 채 소향을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괘, 괜찮으세요, 언니?"


그러자 소향은 이마에 맺혀있던 땀방울을 소매로 훔치며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렴."


이러한 소향의 말에 신참 하녀는 자신 또한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길게 심호흡을 내뱉었고, 이어서 목소리를 낮춰 소향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언니, 국주님 정말 너무하신 것 같지 않으세요? 하루에 몇 번이나 갑자기 집무실 안의 물건들을깨부수시는 건 기본이고, 정말 사소한 빌미만 있어도 우리에게 역정을 내시잖아요... 그러고 보면 언니도 참 대단하세요.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몇 년이나 참고 일하실 수 있으셨던 거예요? 휴우, 전 언니만큼 인내심이 강하지 않아서 그냥 조금만 더 참아보다가 정 안되겠으면 조만간 그냥 때려치고 나가려고요."


이 같은 신참 하녀의 말에 소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아예 건물 밖 어느 조용한 공간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복잡한 심사가 드러나는 목소리로 신참 하녀를 향해 입을 여는 소향.


"국주님께서도 원래부터 저런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셨어.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니고 계셨던 분이었지."


"엥? 정말로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참을 향해 소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그토록 인자하시던 국주님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하시게 되신 건 바로 일 년 전, 마마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야."


그러자 지금껏 소향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참 하녀가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아! 마마님이라면 혹시... 일 년 전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해 돌아가셨다는...?"


이러한 신참 하녀의 말에 소향은 비통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그 때 결국 흉수를 찾지 못한 채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 국주님은 마마님을 잃은 슬픔과 흉수에 대한 분노를 잊기 위함이신지 지금껏 일에만 매달려 살아오고 계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울화가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계신 듯, 지금처럼 매사에 예민하게 구시고 발작적으로 화를 분출하시는 거지. 하아... 아마도 국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 속에서 살고 계신 기분이실걸?"


* * *


소향이 신참 하녀에게 일련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내원 수비대 부대주 석문은 월오가 건네 준 물건을 양손으로 받친 채 양무강을 찾아와 있었다.


집무실 바로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곧바로 인기척을 내며 양무강에게 말을 걸어가는 석문.


"속하 내원수비대의 부대주 석문이 국주님을 뵙길 청하옵니다."


그러자 집무실 안으로부터 양무강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이에 석문이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약속되지 않은 방문에 짜증을 숨기지 못한 채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양무강의 모습이 석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석문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양무강에게 내밀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국주님께 이걸 전해드리고자..."


"이게 대체 무엇인가?"


뜬금없는 물건의 등장에 의아함을 드러내며 인상을 찡그리는 양무강.


그런 양무강의 물음에 석문이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답했다.


"이 물건을 건넨 고인께서 말씀하시길, 국주님께 이걸 전해드리면 자연히 국주님이 당신을 찾게 될 거라 하셨습니다."


"...!"


양무강은 절차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은 석문에게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평소 일처리에 빈틈이 없었던 석문을 굳이 이렇게까지 행동하게 만든 위인이 누구인지 호기심이 들어 별다른 질책의 말을 늘어놓진 않았다.


그렇게 결국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석문에게로 다가가 물건을 넘겨 받는 양무강.


곧이어 그는 집무실 한 켠에 자리 잡은 널찍한 탁자 위에다 물건을 올려놓고는 천천히 천을 벗겨내며 그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을 드러내는 한 자루의 푸른 도.


그 도에는 여의주를 문 채 비상하는 용의 모습이 선명하게 양각되어 있었고, 도올(刀兀, 도파와 도신의 이음새) 한 뼘 위로는 각각 용(龍)과 천(天)이라는 단어까지 적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의 모습을 본 양무강은 그 즉시 너무나도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휘청이며 몇 발짝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윽고 양무강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얼빠진 듯한 목소리.


"이건... 승룡청명도? 용천방의 삼룡신기(三龍神器) 중 하나가 왜 이곳에...?"


과거 용천방의 초대 방주였던 강룡월하(强龍月河) 태찬휘(太璨徽)가 자신을 비롯한 다섯 의형제의 무기들을 녹여 만들었다는 세 가지 신물(神物), 삼룡신기(三龍神器).


그 중 승룡청명도는 태찬휘의 사제이자 용천방 최초의 대장로 직을 역임했던 유룡패도(柔龍霸刀) 마량(麻良)이 맡아 사용했었던 절세의 보도로서, 그 당시 희대의 대마두로 불리던 혈사음마(血沙陰魔) 모적령(謀積呤)이 이 승룡청명도에 의해 금강지체(金剛之體)가 깨져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곤 하는 매우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대부분의 용천방 제자들이 도법보다는 검법에 매진하게 됨으로써 승룡청명도는 사용하는 이 하나 없이 그저 방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보물전에 고이 모셔지게 되었고, 그나마 십여 년 전 유룡패도의 재림이라고까지 불리며 만인의 기대를 받던 옥룡도걸 주호성이 이 승룡청명도를 하사받아 사용하게 되면서 승룡청명도는 또 다시 강호에 그 빛을 드리우는가 싶었지만, 이내 패악혈사로 인해 주호성이 척살됨으로써 지금은 아예 그 모습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돼버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승룡청명도가 태명표국의 본단 내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었으니, 지금처럼 양무강이 놀람을 금치 못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양무강은 고개를 돌려 석문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석 부대주, 어서 가서 이 도의 주인을 본 주 앞에 모시고 오게나."


그리고는 또 다시 시선을 돌리며 승룡청명도를 내려다보는 양무강.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승룡청명도의 모습은 마치 새로운 풍운을 알리러 지옥에서 그를 찾아 온 사자(使者)와도 같아 보였다.


* * *


태명표국 본단의 접객전(接客殿).


그곳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귀빈실 안에 오인(五人)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초췌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은 바로 이 태명표국의 국주인 양무강이었고, 서로 사제 관계로 보이는 일노일소일녀의 세 명은 이 귀빈실의 실질적 손님이라 할 수 있는 월오 일행이었다.


마지막으로, 양무강의 뒤쪽에 시립한 채 혹시나 월오 일행에게서 수상한 점은 없는지 연신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장년인은 바로 내원 수호대의 부대주 석문이었다.


본래 양무강은 월오 일행과의 이번 만남을 홀로 진행할 생각이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행동이니 반드시 수호대원들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석문의 완고한 고집 때문에 오랜 논쟁 끝에 겨우 타협점을 찾아 지금처럼 석문이 대표로 양무강을 호위하여 귀빈실로 입장한 것이었다.


한편 이 순간 석문은, 마주보고 앉은 월오 일행과 양무강 사이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승룡청명도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 전 국주님의 집무실에서 저걸 처음 봤을 땐 너무 놀라 사실상 실감조차 나지 않았건만, 이제 자세히 보니 정말 승룡청명도가 확실하구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국주인 양무강 또한 천천히 입술을 떼며 월오를 향해 먼저 말을 건넸다.


"이 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 분이십니까?"


그러자 월오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양무강의 물음에 답했다.


"글쎄? 이 도의 임시 주인이라고 하면 당신의 질문에 충분한 답변이 될 수 있을까나?"


"임시 주인? 하지만 이 도에는 엄연히 용천방이라는 주인이 따로 있는데, 어찌 이것이 노인장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후후, 세상 모든 일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사(秘事) 또한 존재하는 법인데, 어찌 국주 그대가 아는 지식들만이 진정한 참이라고 자신하실 수 있겠소? 노부가 이 도의 임시 주인이 된 것 또한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니, 이 이상 너무 파고들어 궁금해하진 마시오."


이 같은 월오의 말에 양무강은 일시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움찔거렸지만, 이내 다시 반론할 말을 찾은 듯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노인장께서 이 승룡청명도에 대한 표행을 의뢰하시고 싶으시다면, 그에 얽힌 어느 정도의 내막은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본 표국은 일반적인 삼류 표국들과는 달리 그 내력이 확실하게 보증된 물건만을 의뢰품으로 받아들이니깐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정체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제 터질지조차 알 수 없는 미지의 위험요소를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양무강의 말에도 월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입가에 머금으며 그저 여유로운 모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열린 월오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몇 마디.


"그러면 더더욱 이 도에 대해선 말할 필요가 없겠군."


"... 네?"


무슨 의중인지 모르겠다는 듯 양미간을 찌푸리며 되묻는 양무강 앞에서 월오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부가 태명표국에 표행을 의뢰하고 싶은 대상은 이 승룡청명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거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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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계관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드립니다~! (표지 by Jira 작가님) 21.10.23 517 0 -
55 회아(誨兒)의 생각이 무엇이냐? 23.06.07 42 0 12쪽
54 폐문삼절곡(廢門三絶谷)을 익힐 것이다. 23.06.06 42 0 14쪽
53 그 자와 손을 잡지 않는 편이 좋을 게다. 23.06.04 47 0 12쪽
52 두 번째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23.05.08 104 0 12쪽
51 계속 저자세로 나가기엔 자존심이 상하지. 23.05.06 120 0 11쪽
50 산적들 사이에 몸을 의탁했었나 보군. 23.05.02 138 0 12쪽
49 당신의 부인을 내 손으로 죽였소. 23.04.30 142 0 12쪽
» 표행을 의뢰할 대상은 바로 우리거든. 23.04.28 138 0 12쪽
47 이 물건을 국주께 전달해주시오. 23.04.26 155 0 11쪽
46 대장로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출 것이다. 23.04.24 158 0 13쪽
45 제자의 오명(汚名)을 벗겨내고자 한다. 23.04.21 168 0 12쪽
44 내 여기서 너에게 묻겠다. 23.04.20 186 0 12쪽
43 광필 사질에게 변고가 생긴 듯 하구나. 23.04.19 189 0 14쪽
42 저 서찰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23.04.18 182 0 13쪽
41 자신이 없었다면 의뢰를 받아들였겠느냐? 22.02.12 279 1 11쪽
40 기꺼이 당신을 용서해보고자 합니다. 22.02.07 291 2 11쪽
39 이 못난 목숨으로나마 넋을 위로해야겠지. 22.02.06 294 2 12쪽
38 진력을 다해... 너를... 그리고 이 사문을... 22.01.18 323 2 12쪽
37 목숨에 대한 이 빚은 내세에 갚도록 하마. 22.01.10 329 2 11쪽
36 전 당신께 여쭐 자격과 의무가 있습니다. 22.01.06 332 2 13쪽
35 분명 네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22.01.04 332 3 13쪽
34 손님들이 찾아와 주셨구먼. 22.01.03 335 2 11쪽
33 고고한 달처럼 상대의 위에 우뚝 서거라. 22.01.02 347 1 12쪽
32 그저 얻어맞는 것 외에 별 수 있겠어? 22.01.01 352 2 12쪽
31 누구의 제자가 더 강한지 겨뤄봅시다! 21.11.03 484 2 12쪽
30 서 문주, 오래간만이야! 21.11.02 503 4 13쪽
29 한 사람의 손에서 어찌 놀아났는지를...! 21.11.01 525 5 14쪽
28 그 녀석만큼은 절대로 놓칠 수 없다. 21.10.29 536 4 13쪽
27 피로써 빚을 돌려받게 될 거에요. 21.10.28 558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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