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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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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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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 매칭 (6)

DUMMY

운기조식으로 졸음과 피로를 해소하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아침이었다. 몸을 씻고 밖으로 나가니 소렌이 문을 열고 방을 나서고 있었다. 소렌의 얼굴이 평소보다 약간 푸석해 보이는 게, 나처럼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왠지 동질감이 느껴지는군.

소렌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예정된 집결장소인 제 1수련장으로 가자 그곳에는 깔끔한 정복을 입은 마법사들이 여럿 있었다. 마법을 통해 매칭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간다고 하는데 무림 태생인 내게 마법이란 건 굉장히 생소한 것이라 조금 신기하게만 보였다.

잠시 후 집결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A반 전원이 수련장에 모였다. 다들 잠을 제대로 못잔 표정이었지만 개중에는 에럴드처럼 잔뜩 흥분해서 활력이 넘치는 사람도 있었다. 8시가 되자 저 멀리서 크레베스가 블로펜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자, 다들 줄을 똑바로 서. 르네, 너도 좀 도와줘.”

에럴드가 소렌보다 나은 게 있다면 저런 자세다. 능숙하게 아이들을 통솔해 줄을 세운 에럴드는 가장 앞줄에 똑바로 서서 크레베스를 바라보았다. 크레베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블로펜을 바라보았고 블로펜이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격려라도 하려는 건가?

“A반 제군들. 이번 매칭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러분들에게 매칭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그런 매칭이 될 것이다. 실제 졸업에도 첫 매칭성적은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질 생각은 마라. 이상.”

블로펜이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내고는 귀찮다는 듯 연단을 내려가 버린다.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저런 사람이 교장이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크레베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휑하니 사라져버린 블로펜 대신 앞으로 나서 설명을 덧붙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부터는 성산(聖山) 므로아에서 매칭이 이루어집니다. 성산 므로아는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의 일원이신 성녀, 호비나 님이 기거하시는 성스러운 곳입니다. 교장 선생님을 대신해 므로아에서의 매칭을 허락해주신 호비나 성녀님께 잠시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주십시오.”

크레베스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고개들 든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크레베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총 4주의 중 첫 주에는 A반이. 그리고 그 다음주에는 B반이. 이렇게 D반까지 순차적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도착하게 되면 그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날부터 매칭이 시작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에럴드에게 말해 두었으니 A반 여러분들은 에럴드의 통솔에 잘 따르기 바랍니다. 저 역시 여러분의 건투를 빌고 있겠습니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블로펜보다는 꽤 긴 크레베스의 말이 끝나고 에럴드는 마법사들이 모인 장소로 우리를 이끌고 갔다. 넓은 원형의 문양이 그려진 수련장 한구석에서 마법사들은 권태로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에럴드가 당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부르자 마법사들이 황급히 그에게 다가간다.

“에럴드 도련님. 준비는 다 끝냈습니다.”

“고맙군, 제스터. 그럼 부탁하지. 자, 모두 마법진 위에 올라가.”

당연하다는 듯 마법사들을 아랫사람 취급하고는 에럴드가 A반을 이끌고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더니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법진 옆에서는 마법사들이 연신 주문을 외우며 마법진에 그림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오, 에럴드 리더 노릇을 하니까 정말 귀족 도련님 같은데?”

평소에는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브로치 하나라도 달고 다니던 르네는 매칭에 대비한 것인지 긴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리고 장신구 하나 없는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다. 르네가 장난스레 에럴드의 옆구리를 찌르자 평소와는 달리 에럴드가 담담하게 대처한다.

“엄연한 사실이니까. 이번 매칭은 우리 가문이 후원하는 매칭이야. 그래서 크레베스 선생님이 내게 너희를 맡긴 거고. 그리고 텔레포트 준비 중에 자꾸 움직이면 수식이 복잡해지니까 장난치지 마. 저 마법사들이 우리 가문 사람이 아니었으면 화를 냈을 거라고.”

평소와는 다른 에럴드의 태도에 르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럴드를 바라보더니 곧 요조숙녀처럼 얌전해진다. 에럴드는 나한테 연달아 깨지면서 급격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르네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꽤 많이 줄었고.

그나저나 에럴드의 가문이 매칭을 후원하는 거였군. 어째서 고급인력인 마법사가 고작 하이스쿨 학생에게 왜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나 했더니 사실 마법사들이 에럴드의 가문 소속이었던 거고. 아무래도 생각보다 렌서스 가문은 상당히 대단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되지만.


마법진의 빛이 점점 강해지며 눈을 뒤덮자 나는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져 눈가를 씰룩였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마법진의 빛이 걷히며 조금 선선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느새 아예 다른 곳에 있었다. 마치 멜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그 순간과 비슷한 기분에 나는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소렌이 내 얼굴을 슥 쳐다보더니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도군 너는 텔레포트가 처음인가?“

“아, 응.”

놀랐다기보다는 약간 기분이 가라앉은 것이지만 나는 어영부영 대답하면서 소렌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신기하긴 하군. 전생에서야 당연히 써본 적 없고 현생에서도 처음 경험하는 마법이니.


소위 어둠의 제국이라 불리는 엠펠로니아는 대륙의 서쪽을 점령하고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성스러운 산이 바로 므로아다. 하지만 산이라고 하기도 무리가 있는 게, 산 자체는 무척 높았지만 그 높은 산은 가파르기는커녕 평원처럼 평평하기만 했다. 단지 평원 한가운데에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탑 같은 것이 서 있을 뿐.

저마저도 무림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불탑처럼 조형미가 있는 게 아니라 외견상으로는 밋밋하기만 한 하얀 기둥에 불과해서 과연 저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문득 저것에 대해 질문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실없는 짓 같아서 그만두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데 괜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에럴드는 마치 매칭을 경험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우리를 이끌고 하얀 기둥 앞에 도착했다. 하얀 기둥의 하단부는 놀랍게도 거대한 신전이었다. 코끼리의 상아 같은 기둥을 파서 만든 듯 기둥과 하나가 되어있는 신전은 기둥과는 대조적으로 조형미가 넘치는 모양이었고 보기만 해도 경건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었다.


신전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에 나는 혹시 혼돈의 기운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했지만 혼돈의 기운은 배부른 게으름벵이처럼 얌전하기만 했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다. 혼돈의 기운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상황에 차라리 얌전한 편이 내게 도움이 될 터였다.

신전 앞에는 타국 하이스쿨의 학생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제부터 저들과 자웅을 겨루는 것이다. 과연 저 안에 내가 진심을 쏟을만한 강자가 있을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중히 그들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우리처럼 무기나 복식이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개중에는 마치 군대처럼 한가지로 통일된 옷을 입고 정확히 대오를 이룬 채 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다른 하이스쿨의 무리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으로 눈에 띄었다. 그들을 발견한 에럴드가 약간 긴장한 듯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며 말했다.

“라스탄트의 하이스쿨이군.”

과연 실전을 거친 이들이라 그런지 잘 정련된 기세가 은연중에 느껴지는군. 일대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집단전이라면 저들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는 느낌이 든다. 아마 대오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군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강자가 있다면 저 안에 있으리라는 비논리적인 직감이 든다.

“로베른 하이스쿨 A반 도착했습니다.”

한 노신관에게 다다간 에럴드가 격식 있는 어투로 말했고 노신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럴드에게 납작한 나무상자를 건네주었다. 에럴드는 상자 안에서 푸른 빛깔의 반지를 수십 개 꺼내서 우리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매칭기간에는 꼭 이걸 끼고 다녀야 해. 매칭을 치를 때는 빼도 좋지만 돌아다닐 때는 꼭 끼도록 해.”

“저기, 에럴드. 이게 뭔데?”

르네가 반지를 대뜸 손가락에 끼우면서 물었다. 에럴드는 저 멀리 허공을 가리킨다. 새라도 날아다니나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성산의 휘장. 성산을 외부의 위해로부터 지켜주는 신성한 장막이 성산을 감싸고 있어. 여긴 엠펠로니아와는 정 반대에 있는 곳이지만 그렇다고 안전한 곳도 아니야. 애초에 여긴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거든. 성산의 남동쪽에 있는 자카이야 사막에서는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태워버리는 열풍이 불어오거나 가끔은 사막에 사는 몬스터가 출몰하기도 하니까. 호비나 성녀님이 여기에 터를 잡기 전까지는 그랬지.”

성스러운 산 답지 않게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군. 하지만 바글바글한 하이스쿨 학생들을 보면 그다지 위험하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반지가 소유자의 위치를 알려주니까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꼭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해. 꽤 비싼 거니까 잃어버리지 마.”

“으흥, 역시 렌서스 후작가. 이 위험한 성산에서 매칭을 가능하게 하려고 꽤 돈을 들였네.”

“뭐, 그렇지. 성산에서 사고가 난다는 건 수많은 왕국의 인재가 위험에 빠진다는 거니까. 신경을 쓸 수밖에. 아마 앞으로는 화합의 차원에서 매칭을 중립지역인 성산에서 치른다니 미리 약간의 투자를 한 셈이지. 나중에는 이걸 관광상품으로 만들 생각도 있으니까.”

에럴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반지나 렌서스 후작가의 재무상태나 투자 따위에는 별로 신경도 가지 않았다. 그저 나는 에럴드가 말한 자카이야 사막이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저 사막을 서역에서는 자카이야라고 부르겠지만 무림에서는 대막이라 부른다. 대막을 넘어 동쪽으로 향하면 무림이 나온다. 천의검문과 아버지와 심하령과 전생의 내가 있는 무림이.

“도군?”

소렌이 내 팔을 툭 건드린다. 어느새 A반은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A반의 뒤를 따랐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면서도 나는 전생의 기억이 가져다주는 향수에 취해 있었다.

내가 지금 열다섯이니 전생의 나도 그 즈음이라면 지금쯤 한창 폐관수련에 매진할 때일 것이다. 그리고 2년여 동안의 광기에 가까운 수련에도 조금도 무공이 성장하지 않아서 모든 걸 포기하는 계기이기도 하고. 쌉싸름한 느낌에 나는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신전 근처에 그럴싸하게 지어진 숙소에 들어가니 하이스쿨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시설이 보인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A반 남자 모두가 한 방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맞은 편 방에는 여자들이 있을 테고.

그러나 사람이 많더라도 시설만큼은 온갖 마법물품으로 도배되어 있어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이걸 에럴드의 가문에서 후원했다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겠군. 이 비용을 어떻게 회수하려는 걸까?

“남자들 모두 모여 봐. 지금부터 매칭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게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에럴드가 돌아와 모두를 불러 모은다. 에럴드가 나서는 데 나조차도 아무런 반감도 들지 않았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조금 더 뛰어난 자의 여유일까? 내가 만약 에럴드에게 뒤처지고 있었다면 저런 통솔력을 조금을 질투했을지도 모르겠다. 저것은 과거 천의검문의 소문주로서 가졌어야 할 자질이었기에.

“매칭은 원래 각국의 인재를 자랑하는 경쟁이야. 그리고 한명씩 나와서 승부를 겨루고 이기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지. 물론 세 명의 상대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한 번의 승부가 끝나면 포션을 마시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싸우게 되고.”

비무대회하고도 비슷한 방식이군. 나는 생일잔치 때 본 비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포션이란 걸로 체력을 회복한다니. 무림 출신인 나로서는 별로 탐탁치 않은 점이었다. 체력이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 A반이나 다른 하이스쿨의 우수반이나 거의 다 검을 쓰는 건 알지?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냐. 특기의 종류가 중구난방인 경우도 있어. 물론 그런 곳은 중소국가의 하이스쿨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약간의 특성만 주의한다면 쉽게 지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몇몇 곳은 달라.”

에럴드가 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칠판으로 다가가 몇몇 나라의 국명을 써내려갔다. 그리고는 하나씩 원을 그리면서 각국의 하이스쿨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벨스터 공국의 하이스쿨. 여기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한 사람, 와일드 나이트라고 불리는 알 그리드 경이 지배하는 곳이지. 하이스쿨의 방식도 와일드 나이트의 전투 방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 이를테면 체술이지.”

에럴드는 벨스터라고 적힌 곳 옆에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벨스터는 정글과 초원이 대부분인 곳이야. 또한 사나운 맹수와 몬스터가 많은 곳이야. 별로 많지 않은 곳이지. 그런 위협에 맨몸으로 맞서던 게 바로 벨스터 전사들의 기원(基源)이야. 물론 매칭에는 룰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성적은 뒤떨어지지만 맹수를 압도하는 신체능력은 탁월해. 아직 마나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보면 난적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지?”

한 소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이에 에럴드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리킨다. 동시에 좌중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다행히도 우리는 더 엄청난 녀석인 도군에게 훈련을 받았잖아. 도군이 마음먹고 내리치는 검은 벨스터 전사의 일격 못 지 않다고 봐. 아마 도군에게 많이 얻어맞은 사람일수록 유리할 걸?”

농담 반 진담 반인 에럴드의 말에 경직될 뻔한 분위기가 약간 풀어진다. 꽤 많은 연구를 해온 모양이군. 점점 에럴드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다음으로는 자카이야의 하이스쿨. 여긴 사실 하이스쿨이란 게 없어. 각 부족에서 엄선한 사람들이 온 거지. 사막 출신다운 이국적인 외모에 물감 하나 들이지 않은 하얀 천을 두르고 있으니 척 보면 알 수 있을거 야. 이들 역시 전부 체술의 달인들이긴 하지만 본래 주 무기는 기형병기야. 활대처럼 휜 칼이나 짐승의 발톱을 닯은 건틀릿을 끼고 미친 듯이 싸우지. 그래서 매년 대련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고 해.”

에럴드는 자카이야 옆에 불(火)이라는 글자를 적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카이야 사람 중 몇몇은 이상한 능력을 가진 경우가 있대. 어차피 날붙이나 이런 능력은 매칭에서는 쓸 수 없지만 이번 기회에 알아두면 좋겠지.”

칠판에 써내려간 마지막 국명을 바라보며 에럴드는 마른침을 삼킨다. 에럴드의 설명이 갑자기 끊기자 모두가 에럴드를 주목한다. 에럴드는 한번 숨을 고르고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곳은 라스탄트의 하이스쿨이야. 로베른에 폰테일 공작님이 있다면 라스탄트에는 백은의 창, 러스티 볼마르그 공작이 있지. 그리고 소렌과 마찬가지로 볼마르그 공작의 아들들도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어.”

에럴드가 분필을 움켜쥐고는 갑자기 이를 바득바득 간다. 분필이 부러져 나가며 약간의 가루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다. 그 작은 소리마저 선명히 들릴 정도로 분위기는 정말로 무거웠고 또한 조용했다.

“볼마르그 가문의 장남. 칼덴 볼마르그는 우리보다 선배야.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매칭이지. 난 직접 싸워보기도 했어. 그 사람은……. 정말 엄청나. 마상창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면서 날 농락했었지. 그때 칼덴 선배는.....”

에럴드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은 정도의 고요가 찾아든다. 나는 칼덴 볼마르그의 마상창을 상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알 것 같다. 에럴드가 저렇게 난색을 표할 정도의 상대라면 그는 소렌 못지 않은 천재일 것이다.

“흠! 미안. 조금 이야기가 샜네. 라스탄트는 기본적으로 검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볼마르그의 영향으로 창을 쓰는 사람도 많아. 그리고 미들스쿨의 졸업요건이 다수의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전에 능하고 군기가 잡혀 있지. 한마디로 그냥 군대 같은 놈들이야. 물론 매칭은 개인전이라 집단전에 능하다는 건 큰 장점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점이 되는 것도 아냐. 몬스터의 습격으로 무리가 흩어지더라도 살아남는 게 중요한 만큼 개인의 기량도 뛰어나거든.”

에럴드는 각 국가에 따른 대처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는 방 안의 시계를 힐끗 쳐다본다. 그리고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식사시간에 늦겠네. 개별 전략은 나중에 말해줄 테니 일단 나가자. 음, 그런데 렌서스 가문이 가장 돈을 많이 들인 부분이 바로 식당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너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모두 충족할 자신이 있으니까 놀랄 준비나 하라고. 자, 나가자!”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에럴드의 뒤를 따라 모두들 우수수 방을 나간다. 에럴드의 한 마디에 A반의 모두가 일희일비하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려다 문득 칠판을 바라보았다. 가장 아래에는, 에럴드가 힘을 주어 글씨를 썼는지 약간 거친 느낌의 필체로 쓰인 이름이 있었다.

“칼덴 볼마르그.”

칼덴이라는 이름과 내 상상 속의 무위가 뒤섞이며 나는 이번 일주일이 정말 만만치 않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절망어린 푸념 대신 알 수 없는 희열마저 느껴진다.

나는 아직 멀었다. 넘어설 산은 무척 높았고 가파르기 짝이 없는 산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수련하고 연마하여 그 산을 넘어 보이겠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천하제일의 둔재가 아닌, 또 다른 나로. 나는 그날을 기대하며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이상 비축분 끝.


이제부턴 연재가 좀 늦어집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자주 올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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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천하제일의 둔재 (3) +6 13.01.31 9,552 133 17쪽
2 1. 천하제일의 둔재 (2) +4 13.01.31 11,362 14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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