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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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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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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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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진격(3)

DUMMY

4화



“···제, 제목이.”


진후는 말한다.


“바뀌어 있군요···!”

“그렇죠.”


호준은 답한다.


“뭐, 영화판에서 제목 바뀌는 건 흔한 일 아닙니까?”


호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나리오의 원안 제목 그대로, 영화관에 걸릴 때도 물론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는 진후.


소주를 한 잔 마시고, 호준의 눈치를 보다가는 끝내 말을 잇는다.


“조선 활극전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아주 잘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제목이 내용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호준은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서 말한다.


“제목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만 하면 됩니다. 특히나 영화판에서는, 간결하면 간결할수록 더 좋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라고 호준은 평소 생각을 말했지만, 사실 꼭 그래서 영화 제목을 <진격>으로 바꾼 건 아니었다.


그저 떠올랐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


<조선 활극전>대신, <진격>이라는 두 글자의 제목이 떠오른 것이었다.


호준은 이에 빨간 펜으로 원래의 제목을 그어 버리고, 해당 두 글자를 쓴 것이었다.


“거기에 조선 활극전은-.”


호준은 말한다.


“좀 올드해요. 영화 내용이 어떻든 간에, 사람들에게 구닥다리 같은 인상을 심어 줄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바꿨습니다.”

“···”


말을 잃은 임진후.


자신이 이름 붙인 제목이 올드하다니 구닥다리라느니 날 선 표현을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다음 장으로 넘겨 보시죠. 작가 님이 쓰신 이야기의 굵직한 설정 몇 개를 바꿔 봤습니다.”


진후는 대답은 하지 않고 천천히 시나리오의 첫 장을 넘겼다.


그러자 A4지의 반 정도 하는 크기의 메모지에, 호준이 거친 필체로 적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조선 시대에서 고려로. 그리고 젊은 남자 배우를 중년의 배우로. 또 비극적인 엔딩을 해피 엔딩으로.


이외에도 몇 가지 수정 사항이 있었지만, 이 세 가지가 진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각각 배경과 주인공 그리고 엔딩 등 이야기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를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호준은 자신의 글씨가 적힌 메모지를 보고 있는 진후를 보고서 입을 연다.


“어때요?”

“···”

“괜찮으십니까?”


진후는 좀처럼 답을 할 수 없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커리어.


비록 지금은 퇴물 각본가로 전락한 신세지만, 어쨌든 진후는 영화판에서 글을 쓰며 꽤 오래 밥을 해먹고 살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쓴 글이, 다짜고짜 뼈대부터 수정된 것은 정말이지 처음 본다.


“···의문이군요.”


호준의 물음에도 한동안 말없이 수정 사항을 보고 있던 진후가,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연다.


“의문입니다, 대표 님. 이렇게 기본 설정을 거의 전부 바꾸실 거면, 애초 다른 시나리오가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진후의 물음은 틀리지 않았다.


호준의 영화사가 보유하고 있던 6개의 시나리오 중.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않고, 시나리오 원안을 그대로 봤을 때 임진후의 <조선 활극전>보다 완성도가 높고 대중들이 더 좋아할 만한 시나리오가 몇 개 있기는 있었다.


“하하하.”


이러나저러나 진후의 물음에 호준은 웃는다.


그러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한다.


“다른 시나리오와 비교를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작가 님의 시나리오에서 가능성을 봤고, 그리고 그 가능성이 이처럼 수정을 거쳐야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니까요.”

“···”


진후는 당황했다.


호준의 자신감은 엄청났다.


짧지 않은 삶, 진후는 꽤나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함께 일도 해 봤지만.


호준처럼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


감독부터 배우 심지어 평론가 등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기대를 한 영화가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는 일이 흔하고.


반대로 아무런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개봉한 영화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놀라운 흥행 가도를 달리는 일도 더러 있다.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를 포함해 세상 모든 상품의 히트 여부를 결코 미리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세상 그 누구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는 아주 자명한 진리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지금, 진후가 난생 처음 만난 호준이라는 젊은 영화사 대표가.


진후의 시나리오를 두고, 가능성을 언급하며 확신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닙니다.”


호준은 말을 이었다.


“차마 그 작은 메모지에 다 쓸 수 없을 만큼 시나리오의 많은 수정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야기의 기본 전개는 물론 사소한 인물 혹은 대사까지- 전부 수정될 것입니다.”


하고서 호준은, 조금은 경직된 진후에게 다시 소주 한 잔을 따라 주었다.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작가 님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


진후의 동공이 흔들린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인가.


“따라서 계약을 하고 싶은데, 제가 제시하는 계약의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시나리오의 수정 및 보완을 무제한 허용해 주십시오. 그 점만 받아들이시면, 작가 님이 쓴 글이 다시 카메라 속 이야기로 펼쳐져 영화관에 걸리는 것은 물론, 작가 님의 이름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명예롭게 빛날 것입니다.”


엄청난 패기.


진후는 말을 잃었다.


이 순간 갖가지 상념이 들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말 따위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둘 중 하나였다.


호준의 조건을 받아들여 계약을 할 것인가.


혹은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을 하지 않을 것인가.


꿀꺽.


진후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표 님.”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대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 대표 님이 제시한 조건은 권유 사항이 아니죠? 한마디로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죠?”

“맞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강제 조항이었다.


“그에 관해 논의의 여지도 없고요?”

“그렇습니다.”


단호한 호준의 목소리.


진후가 만약 조건에 응하고 계약을 한다면.


진후는 자신이 쓴 글임에도 더 이상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정이 가해지는 것을 잠자코 지켜봐야 한다.


이는 자의식이 보통 강한 창작자에게는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순간 진후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처지를 한 번 떠올린다.


그는 수년을 아무런 작품에 참여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진후보다 데뷔가 늦은 후배 각본가들의 영화가 끊임없이 영화관에 걸릴 때, 그가 써낸 수많은 글은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해서 얼굴 보기가 괜히 미안하다.


이번 시나리오도, 메이저 영화사는 아예 받아 주지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으로 중소 영화사에 우편과 메일을 마구 보낸 게 거의 반년 전이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잊고 살았었다. 잊고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사 대표인 호준에게 연락이 와, 폐지로 전락한 줄만 알았던 그의 시나리오를 두고 계약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진후로서는 창작자의 자존심이고 뭐고 챙길 때가 아니었다.


“좋습니다.”


하고서 소주를 한 잔 들이켜는 임진후.


“좋아요, 계약하겠습니다.”

“하하-.”


이에 호준은 짧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술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잘 됐군요.”

“대표 님, 이렇게 된 마당에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를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대표 님의 이름을 넣으시려는 건가요?”


진후의 주름진 눈이 커진다.


이번에는 진후 측에서 호준의 마음속을 떠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을 빠르게 잇는다.


“그렇게 제 글을 수정해서 말입니다. 각본가의 이름에 대표 님의 성함을 공동으로 올리시려고 하는 건가요?”


각본 크레딧.


각본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공식적으로 올라가는 것.


그렇게 되면 해당 각본은 크레딧에 올라간 사람들의 공동 커리어가 되고.


그에 따른 수입도 공동으로 나눠 가지게 된다.


진후 같은 각본가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도 쉽게 생각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하하.”


한데 호준은 진후의 말을 듣고 무슨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는다.


“하하하.”


그러고는 고기를 한 점 먹고 말을 잇는다.


“작가 님, 저는 작가가 아닌 영화 제작자입니다.”

“···”

“각본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다른 사람의 이름을?”

“아니요, 각본가는 오로지 임진후 작가님, 한 분 뿐입니다.”

“아아-.”


그제야 진후는 마음을 놓는다.


영화사 대표가 각본가인 자신에게 계약을 제안하며 시나리오의 무제한 허용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진후는 한 가지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각본 크레딧에 글을 쓴 임진후와 수정에 참여한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그 이름은 영화사 대표인 김호준이 될 수 있었고, 혹은 호준이 내세우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진후는 호준의 조건에 응하고 계약을 하기로 한 이상, 여차하면 그와 같은 공동 각본 크레딧 또한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할 위치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준은 지금 진후에게 각본 크레딧은 임진후 단독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임진후.


폐지였던 시나리오가 영화관에 걸릴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진후는 시나리오를 무제한 수정할 수 있다는 조건에 마음이 상할 게 아니라, 이 제안 자체를 행운이자 엄청난 기회로 받아들여야 마땅했다.


다행히도 그는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알았기에, 결국 흔쾌히 계약을 하기로 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무제한 수정의 과정을 거쳐도, 각본 크레딧에는 원안을 쓴 임진후의 이름 석 자만 올라간다고 하니 무척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하고서 다시 자신의 브리프 케이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김호준.


또 다른 얇은 종이 뭉치를 진후에게 건넨다.


“계약합시다.”

“아-.”


계약서였다.


진후의 시나리오 계약서였다.


진후는 첫 장을 쓱 살피고 말했다.


“···여기서 바로요?”


호준은 곧장 답한다.


“그럼요.”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빠르지 않아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뭘 먹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어디선가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작가 님의 시나리오로 탄생될 작품과 극장에 같이 걸려 경쟁을 펼칠 영화를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산업이 그렇듯, 영화 산업 또한 무한 경쟁 체제다.


“음.”


진후는 계약서 묶음을 받아 들고 천천히 반문했다.


“계약서 좀- 살펴봐도 되지요?”

“그럼요.”


계약 당사자가 계약서를 검토하는 건 당연한 일.


진후는 빠르게 한 번 읽고서, 역시나 시나리오 수정이 무제한 가능하고, 그에 관해 작가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다는 특별 조건이 달려 있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한다.


즉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계약서나 마찬가지였다.


“이상 없군요.”


진후는 말한다.


“하하, 이상이 있으면 안 되지요.”


호준은 웃으며 답한다.


진후는 계약서 묶음에 꽂혀 있던 펜을 손에 들었다.


계약서를 봄으로써, 그의 마지막 걱정까지 해소되었다.


바로 이 모든 게 결국 사기는 아닐까 남몰래 아주 조금- 의심한 것이다.


계속된 실패로 희망은 거의 사라진 채, 막막하기만 했던 진후에게 어느 날 영화를 만들자며 손을 내민 김호준.


근데 그의 이력이나 그가 대표로 있는 회사나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래서 진후는, 행여 이 모든 게 사기가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같이 영화를 만들자면서 제작 비용이 부족하다느니, 작가인 진후도 조금 투자를 하면 분명 훨씬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며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상상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호준은 그런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약서에도 그런 조항은 일절 없다.


행여 추후 문제가 발생할 시 어디까지나 법적인 다툼은 문서인 계약서를 바탕으로 진행되기에, 직접 계약서를 확인한 이상 더 이상 두려워할 것도 없다.


진후는 이렇듯 약간의 걱정과 커다란 기대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드디어 펜을 들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잘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호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진후는 조금 긴장하면서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금의 서명으로, 단순히 재기를 넘어-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작품이 탄생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아가 이번 작품이 찬란한 영화 제국이 될 영화사 무진의 첫 작품으로 길이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김호준이라는 사람이 영화 제국의 위대한 황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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