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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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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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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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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인생이여

DUMMY

1화



김호준은 성공하고 싶었다.


영화로 성공하고 싶었다.


어릴 적, 형의 손을 잡고 비디오 가게로 걸어가는 좁다란 골목길이 좋았다.


어린 나이에도, 비디오 가게 할아버지가 추천해 주는 장르 불문의 다양한 영화가 좋았다.


애들이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과 동물 영화는 물론.


배신과 사랑이 있고, 스릴과 감동이 있고, 삶과 죽음이 있는-


이해하기 힘든 어른들의 시시껄렁한 농담과 넋두리가 있는-


그 모든 영화를 좋아했다.


호준은 단순했다.


그런 호준이 성장해서 영화를 업으로 삼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예술가의 섬세함과 기업가의 수완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우선, 자신이 글을 쓰고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물론 그 세계를 카메라의 틀 안에서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이는 데 단 1%의 재능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오로지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본 영화만 천 편이 넘는다.


그리고 언제나, 계속, 보는 영화.


그런 그가 자신하는 게 있었으니, 한 영화의 장점과 단점을 완벽하게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보다는, 남이 쓴 시나리오를 읽기로 했다.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남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가 마침내 자리를 잡은 곳은 자연스레 영화 제작배급사였다.


처음엔, 인정 받았다.


별 권한이 없는 낮은 직급에도 열정과 집념으로 기회를 살려, 남들이 쓴 작은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영화로 만들어 인정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직급이 오르고 권한도 많아져.


굵직굵직한 커다란 시나리오를 맡게 될 즈음, 그는 퇴사를 했다.


자신의 회사를 만들기 위해.


그는 영화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의 유능한 직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만의 작은 영화사를 만들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기에 전력투구.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그가 작업한 영화가 다 망했다.


각본 선정 및 검토부터 잘못된 것은 물론, 투자가 지연되어 엎어지기도 하고, 감독이 각본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거나, 주연 배우가 각종 사고를 치며 영화의 개봉조차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물며 각본부터 제작, 연출, 편집 그리고 감독과 배우 스태프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져 엄청난 기대 끝에 영화관에 걸었는데도- 호준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대중들이 해당 영화를 완전히 외면하는 일도 있었다.


불가사의했다. 영화는 생각 이상으로 훨씬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호준의 커리어는 땅에 처박힌 것을 넘어 지하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으며 빚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기만 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그의 모든 것을 건 영화 <개 같은 인생이여>가 개봉한 것이다.


마지막이니 만큼, 더욱더 심혈을 기울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전부 쏟아부었다.


그렇게 대망의 결과를, 눈앞에 두게 된 시점.


"..."


자정이 넘어 날짜가 바뀐 어두운 밤.


호준은 자신의 작은 회사 사무실 한가운데 목석같이 앉아, 전화를 기다렸다.


개봉 첫날, 영화의 전국 박스 오피스 성적을 기다리는 것.


따르릉-.


드디어 사무실 전화 벨이 울리고.


"여보세요!"


호준은 즉각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응? ...뭐? 뭐라고...?"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하... 씨..."


단순히 말이 아닌, 몇 마디 어두운 욕설을 더 하고서.


호준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


원래 경직되었던 표정이, 더욱 가라앉아 참담해 보인다.


누군가가 보면 차가운 마네킹처럼 느껴질 정도.


호준은 그대로 계속 앉아 있다가.


드르륵-!


"...!"


한순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리가 휘청여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현기증이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어지러웠다.


제작비 약 50억 원의 영화.


누적 총 관객 수가 아무리 못 해도 100만 명은 되어야 손실을 보지 않는 영화였다.


박스 오피스는 첫 날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다.


보통 첫 날의 관객 수를 기준으로 대략적인 총 관객 수를 추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봉 첫 날 관객 수는 총 관객 수의 시금석(試金石)이다.


영화가 재밌다고 입소문이 나서 상영 기간이 길어지는 한편 끝까지 좋은 성적을 보이면.


첫 날 관객 수가 총 관객 수의 10% 이하 수치를 보인다.


반면 재미 없다고 소문이 나서 초반에만 반짝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첫 날 관객 수가 총 관객 수의 20%를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호준의 첫 날 목표는 단순했다.


10만 명이었다.


딱 10만 명이 첫 날, 그의 회사 로고를 달고 나온 영화를 보고.


해당 관객이 총 관객 수의 약 10%라고 추산하면, 손익분기점 관객 수인 100만 명을 그럭저럭 노려 볼 수 있다.


만약 무척 재밌다고 소문이 나서 첫 날 관객이 10만 명 이상인 데다, 해당 인원이 누적 관객의 5% 수준까지 내려가면.


한마디로 투자 대비 대박을 치면-


호준은 그야말로 기사회생(起死回生), 완벽한 재기가 가능해진다.


와장창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자존감 또한 살릴 수 있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이 순간, 어디 다른 곳에는 일절 가지 않고.


단순히 초조함을 넘어 거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으로.


혹은 신탁(神託)을 기다리는 고대 성직자의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것이다.


쿠궁-!


다시 한 번 휘청이는 김호준.


급기야 책상에 왼쪽 무릎이 강하게 부딪쳐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 순간 호준에게 통증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니어야 했다.


망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영화가 개같이 망했기 때문에.


10만 명을 목표로 했던 관객 수는, 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하..."


호준은 정확한 관객 수를 확인하기 전까지 일부러 관객 평을 확인하지 않았다.


한데 이 순간 곧장 핸드폰을 꺼내 <개 같은 인생이여>의 관객 평을 살펴본다.


/이 영화 본 내 인생이 개 같아짐.

/씨X, 하자 있는 물건 팔고 제 값 받고 싶나?

/여러분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보지 마세요.

/감독이고 배우고 뭐고 스태프까지 전부 다 미친 듯.


모두 호준의 가슴을 후벼파고도 남기에 충분한 악평이었지만, 그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는 평이 하나 있었다.


/님들, 이 영화 제작한 회사 모름? 만든 거 하나하나 다 주-옥 같이 개 처망하는 X소 영화사인데, 어떻게 이딴 영화만 찍어 내는지 넘모넘모 궁금함. 시간 나면 한 번 심층 조사 들어가 보겠음. (근데 그냥 영화사 사장이 개병X일 듯 ㅋㅋㅋ. 영화는 X도 모르면서 K무비가 어쩌구 저쩌구 돈 좀 되는 줄 알고 뛰어들어 온 능지 제로일 확률 3000퍼 ㅋㅋㅋ.)


호준은 울고 싶었다.


그것도 피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자괴감이 극에 달한 그는, 하지만 그 눈물마저 사치로 생각되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핸드폰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린 뒤 무작정 건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콰광-!


회사 문은 잠그지도 않고 뛰쳐나갔다.


잠글 필요가 없었다.


이제 곧 망할 회사이기 때문이다.


***


"하아- 씨, 뭣 같은 세상이여-."


소주 병을 나발로 마시는 김호준.


"크으-."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도, 벌써 세 병째 먹고 있다.


"인생은 후-."


마포대교 위.


부와앙-!


그의 곁으로 자동차들이 연이어 빠르게 지나간다.


"영화가 아니네, 절대-."


비틀거리는 김호준.


"영화가 아니고, 그냥- 개야. 개 같은 인생-."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모든 걸 다 걸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걸었기에,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된 실패에도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무리하게 영화를 진행했다.


제작비 50억 원이면 메이저 영화사 기준으로는 작은 영화지만.


호준이 만든 작은 영화사 기준으로는 큰 영화다.


그리하여 그는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어음은 물론 온갖 공수표까지 날려 자금을 끌어모았다.


계속된 실패로 인해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지 않는지- 그럼에도 돈이 모자라.


호준은 살고 있던 전세 보증금을 빼고, 개인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결국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다 걸었다.


호준은 이번 영화 <개 같은 인생이여>에 그의 인생을 통째로 걸었다.


한데 망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하."


계속 비틀거리며 다리를 걷는 호준.


왜 이곳에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평소 잘 마시지도 않는 소주를 그것도 깡으로 먹다가.


무작정 이곳 마포대교에 오른 것이다.


한데 공교롭게도-


마포대교가 서울 주요 한강 다리 중 투신자살률 1위를 기록한 장소라는 걸 호준은 알았던 걸까?


그는 의식적으로 죽기 위해 마포대교에 오른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호준은 그저 회사와 가까운 다리라서, 그리고 술을 먹고 취하다 보니 어쩌다가 마포대교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적지 않은 자살이, 그렇게 실행되는 건 아닐까?


정말 어쩌다 보니-


너무나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 술에 취해서, 다리를 걷고 있어서, 다리 아래로 한강이 보여서.


이래서, 저래서, 그래서, 어쩌다가 모든 게 우연찮게 맞아떨어져서.


죽기로 한 게 아닐까?


지금, 호준은 그랬다.


"..."


호준은 다리 난간에 몸을 밀착하고 서서, 달빛을 받은 한강을 내려다보며 소주를 홀짝이고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저 아래로 내려가면, 두둥실- 달빛을 따라 저 아래로 첨벙 내려가면.


이 모든 절망감이 단숨에 사라질 것만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나아가 그 확신은 치명적이면서도 음침한 달콤함을 그에게 안겨 주어.


호준은 이 순간, 몸을 던지고 말겠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아아-."


탄식을 내뱉는 호준.


마침내 한 손으로는 소주병을 쥐고 한 손으로는 난간을 짚은 채 천천히 한 발을 위로 올린다.


슈우웅-.


휘이익!


위태위태하다.


빠아아앙-!


밤바람이 불고, 그의 뒤로는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친다.


"...어?"


그러다가 호준은 난간을 잘못 짚어 순간 몸이 흔들려-.


퐁당-.


들고 있던 소주병을 놓쳐 다리 아래로, 한강으로 떨어트리고 만다.


소주병은 아주 잠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조용히 가라앉으며 완벽히 사라진다.


"..."


거기엔 뭣도 없었다. 호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새까만 강물 속으로, 심연의 바닥으로 가라앉아 더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사물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음."


이 순간 호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도 가라앉은 소주병처럼, 정말 뭣도 아닌 듯 인생에서 사라질 수는 없다고.


의식적으로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다시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뒤늦게, 어떤 깨달음에 이르기 시작했다.


두 팔 두 다리 멀쩡한데, 내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정신이 온전한데, 내가 주저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호준은 생의 밑바닥을 이제 막 경험한 참이고, 그렇다면 이제 밑바닥에서 위로 향할 일만 남았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그는 갑작스레 마음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


혼잣말을 하는 김호준.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하고서 몸을 돌리는데, 왠지 무작정 뛰고 싶어진다.


"인생 이 개 같은 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한 번 가 보는 거야."


그러고서 실제로 뛰기 시작하는 김호준.


만취한 몸에 비틀거리는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뛰기는 뛴다.


"김호준 너, 이 새끼."


그는 계속 혼잣말을 하며 달린다.


"그래, 이대로 가는 거야-."


하다가는 결국 한순간 비틀거리는 것을 넘어 몸이 땅으로 기울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달리고 있던 몸이 가속도로 인해 마치 튕겨 나가지듯 쓰러진 끝에.


타닷-!


그의 몸은 더이상 인도가 아닌 차도 위에 있었다.


"아야야-."


땅에 몸이 쓸려, 상처가 생김 김호준.


"아프네."


애써 숨을 고르며 바짓단을 들어올리고 상처를 확인하려고 하는데.


부와아아앙-!


"...음?"


쓰러져 있는 그의 앞으로, 눈부신 헤드라이트가 비친다.


트럭이었다. 그것도 25톤 덤프 트럭이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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