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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불귀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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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3.12.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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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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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112

작성
23.12.0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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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화 방랑자이자 이방인

DUMMY

1화 방랑자이자 이방인


“아버님, 이번 잔치는 어떻게 할까요.”


가을 늦바람을 즐기며 두 눈을 감고 즐기던 반백의 노인 왕이범은 귓가에 울리는 첫째 아들 왕일양의 말에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잔치?”

“올해로 환갑이시지 않습니까. 기왕이면 주변 명사며 여러 친우분들을 초청하여 잔치하심이 좋지요.”

“허허.”


환갑잔치라는 말에 왕이범은 그저 허허로이 웃었다.


나이 먹고 이렇게 자식들이 챙겨주니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보낸 날을 갑자 한 번 채웠다고 전과 달리 크게 한다고 하니 이상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친우들이라. 그러고 보니 그치들 본 지가 제법 되었구나.’


젊은 날을 순탄하게 보내고 노년을 맞은 무림인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무림 전체에서 그가 달고 있는 별호, 인의검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이가 없으니 그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왕이범은 다른 사람들보다 겪은 부침이 심했다는 거였다.


그가 거친 고난이 얼마나 험했는지 증명하듯 정마대전 당시 함께 하였던 이들은 이제는 모두 한 문파의 장이나 어른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 홀로 강호 주유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이들은 여지없이 이름이 높아 천하 십대 고수라는 단순하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한 이들 가운데 왕이범은 문득 정마대전 이래 소문만 무성하지 얼굴은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친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잔치라. 그래, 잔치도 나쁘지 않겠어.”


존중받는 무림의 어른이며 명사이나 무공은 천하제일을 다투기에 부족하다.


그런 왕이범에게 있어서 어쩌면 이번 잔치가 마지막 자리일지도 모른다.


친한 이들과 함께할 마지막 자리 말이다.


특히나 근 이십 년, 아니 이제 꼬박 삼십 년은 제대로 얼굴 보지 못한 친우를 떠올리니 불현듯 그리움이 강해졌다.


“일양아.”

“예, 아버님.”

“잔치, 내 사재를 내어줄 터이니 한번 성대하게 열어라.”

“아유, 제가 어찌 이런 자리에 아버님 개인 가산을 쓰겠습니까. 우리 삼형제가 모아둔 것을 사용함이 마땅합니다.”


왕일양이 손사래 치며 거절하니 왕이범은 제가 자식 잘못 키우지 않았다고 즐거운 얼굴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구나. 허면 잔치는 알아서 하고, 내 사재는 달리 내어줄 터이니 저기 기명 제자들에게 일 좀 시켜보거라.”

“제자들? 삼협, 그 친구들에게 말씀이십니까?”

“그래.”


왕이범이 고개 끄덕이며 이르니 왕일양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물론 그들 역시 함께 할 것이나, 아무래도 초청하는 일은 저희 이름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 그것이 아니다. 잔치는 내 이름으로 열고 초청은 너희 이름으로 하는 게 마땅하지. 하지만 말이다.”


잠시 말을 멈춘 왕이범은 그리움을 물씬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내 이번에 꼭 보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말이다. 아무래도 그 녀석 찾으려면 한세월 걸릴 듯하니 너희보다 그 녀석들 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


말을 들은 왕일양은 아버지가 강호에서 얻은 인연 가운데 범상치 않은 것도 있음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허면 어느 분을 뜻하시는지요? 혹여 마창이나 태양희를 초청하실 생각이십니까?”


한쪽은 제자 하나 데리고 강호 주유하는 기인이요, 다른 한쪽은 거리도 멀고 사는 땅 또한 열기가 가득한 곳이니 마땅히 초청하기에는 오래 걸렸다.


이에 왕이범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오랜만에들 듣는 이름이구나. 그들도 참 반갑지만, 그래도 한번 보지 못한 이는 아니니 다른 친구에 비하면 그리움은 덜 하구나. 그리고 그쪽은 노개에게 부탁하면 연락하는 일이 손쉽단다.”


천하에 산재한 거지란 거지는 손짓 하나로 부릴 수 있다는 천지방 방주 걸왕 노개의 이름이 가볍게 나오자 왕일양은 새삼 아버지가 가진 인맥의 대단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마창이나 태양희를 제치고 보고자 하는 이라니, 사뭇 궁금함이 들었다.


“허면 어떤 고인을 이르심이신지요. 소자는 견식이 짧아 알지 못하겠습니다.”

“견식이 짧은 게 아니라 그 친구가 들린 적이 없으니 네가 모르는 것뿐이다. 그래도 내 자신하니, 십대 고수 가운데 그 친구가 나와 가장 죽이 잘 맞았다고 본다.”


십대 고수라는 말에 왕일양은 한 번 더 감탄하며 물었다.


“그분 성함이며 별호는 어찌 되십니까?”

“한덕이다. 별호는 근래에는 진천자라고 불리지.”

“괴, 괴공이란 말씀입니까!?”


진천자.


다른 호칭으로 진천괴공 혹은 일괴라 불리는 십대 고수의 이름에 왕일양은 크게 놀랐다.


“그래. 그 친구다. 여전히 살아있음은 아나 얼굴 보지 못한지 세월 참 많이 흘렀다. 허니 이번 잔치에 반드시 그 친구 데려올 수 있게 힘 좀 써다오.”


나직하지만 간절함이 담긴 말에 왕일양은 곧 놀람을 떨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분이 다소 독특하다고 하시지만 이 무림에 그분만큼 협명 울리는 분도 따로 없지요. 아버님의 뜻, 소자가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



인적 드문 산길.


푸른 도복을 입은 멀쑥한 젊은 사내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방에서 들리는 풀 소리 듣고 하늘 흘러가는 구름을 구경하던 사내는 돌연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날 귀찮게 하는 부류는 보통 둘이더군. 사술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걸 보니 대답은 뻔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묻도록 하마.”


따분함, 혹은 지겨움이라고 할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말한 사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네놈은 어느 쪽이지?”


사내가 그에게 다가온 불청객을 향해 던진 물음에는 그저 짜증이 가득했다.


또한 사내의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는 그다지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말은 하고 볼 일이라고 하듯 대답이 돌아왔다.


“대업을 위해 그대의 목이 필요하다.”

“더 글러 먹은 부류군.”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한 흑의인이 손을 올렸다.


그러자 마치 바닥에서 솟아나듯 사람 여럿이 주변을 에워쌌다.


“적구나. 대업이라는 말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이 없어.”

“교의 독인들을 상대로 그런 여유, 과연 진천자라고 하여야겠구나. 아니면 그대의 무지가 부른 자만인가?”


흑의인이 하는 말에 사내, 진천자는 사방 둘러본 후에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고 마창을 찾아가면 한번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었지.”

“걱정하지 마라. 그는 바로 다음 표적이니 실컷 이야기할 수 있을 거다.”


비웃음이 담긴 흑의인의 말에 진천자는 돌연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다음이라.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네놈들에게 하나만 묻자.”


쿠웅


진천자가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사방 공기가 진동했다.


천하 십대 고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고 하듯 단숨에 이곳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이 자신임을 주장한 진천자는 짜증을 가득 담아서 물었다.


“혹시 말인데, 니들은 내가 만만하냐?”

“쳐라!”


흑의인의 명령에 사방에 있던 이들이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 몸에서 검은 기운을 진득하니 흘렸는데, 그 기운에 닿은 풀들은 그대로 삭아서 바스라졌다.


“독인이라. 교라고 했었지? 그거, 혹시 시마교인가?”

“우리를 기억해 주고 있다니 기쁘군! 그 대가로 고통 없는 죽음을 안겨주마!”


기세 좋게 흑의인이 말하는 걸 들은 진천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징글징글하군. 삼십 년, 그 정도면 그렇게 밟아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징글징글해.”


화르륵!


“이, 이건!?”

“응? 아, 그렇군. 삼십 년 전에는 미완성이었지. 그리고 내공도 좀 부족했었지. 그래서 교주와 태상 장로라는 놈에게만 보여주었지.”

“네, 네놈의 진정한 특기는 빙공일터! 헌데 어찌 열양공이 이리도 강하다는 말이냐!”


열양공이 강력하다는 말은 사실이니 진천자가 뿜어낸 열기에 사방에서 달려들던 독인들은 그 독기와 함께 통채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홀로 사방에 열기를 전하는 진천자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니 흑의인은 두려움에 질렸다.


“죽을 놈에게는 비밀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비밀한 것 이르는 일에 제법 까다로운 면이 있어서 알려주기 좀 그래.”

피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나는 순간 흑의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동시에 어깨에 화끈한 느낌이 나니 시선 돌려 어깨를 살핀 흑의인은 크게 놀랐다.


“지, 지법?”

“건양지라는 거다. 위력과 속도가 아주 일품이지.”


차분히 설명하여 준 진천자는 한 걸음, 흑의인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이글거리는 열기가 확 느껴지니 흑의인은 재빨리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독인이 준비한 전부라면 네놈 수준도 뻔하겠군. 적통도 아닐 거 같고.”


적통이 아니라는 말에 흑의인은 한순간 분노에 사로잡혀서 두 눈을 치켜떴다.


그러나 그는 분노할 것이 아니라 당장에 물러날 궁리를 해야 했으니, 이는 다음 순간 바로 눈앞에 나타난 진천자의 모습이 증명해 주었다.


“으, 으아아악!!!”


열양공을 두른 상태로 흑의인의 머리를 잡은 진천자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흑의인을 달구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왜 너같은 놈은 사라지지가 않을까. 도전자는 솔직히 어찌 되든 좋아. 날 넘을 수 있는 후배가 있다면 그걸로 또 다른 끝, 완벽한 무림 경력 마무리라고 할 수 있지.”

“사, 살려, 살려줘!”

“살려주면 다시 오겠지.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아니, 그전에 내가 살려주면 정말 살 수는 있냐?”


무미건조하게 묻는 진천자의 물음에 흑의인은 고통 속에서도 깨달았다.


그가 살아날 방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걸 말이다.


있다면 오직 하나, 눈앞에 있는 진천자를 묻어야 했다.


“이익!”


그렇게 생각하니 허망함과 함께 분노가 솟은 그는 바로 진기를 운용하여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함께 가-.”


콰앙!


말을 마치기도 전에 흑의인은 그대로 폭사하여 살점을 사방으로 퍼트렸는데, 그 살점에도 독이 있는지 나무나 풀에 닿는 순간 생기를 앗아갔다.


그러나 정작 그 폭발 중심에 있던 진천자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니, 사방에 흩어진 육편을 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혈폭술? 이래서야 초혼술도 사용하기 어렵겠군. 하, 너희 같은 것들이 세상에 많아서 나는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진천자는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았다.


“2부가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못다 한 일을 남겼기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알려주는 건가? 하, 어느 쪽이든 좋다. 이제 천하 사술이며 법술 찾아다니기도 힘들던 참이다. 전에 미처 알기 전에 잃어버린 것들이라면 조금은 새로울 수도 있겠지.”


이제는 들을 사람이 없어진 장소에서 답답함을 담아서 말을 낸 진천자는 시선을 하늘에서 떼고 걸음을 옮겼다.


하늘 하나는 예전이고 지금이고 변함이 없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진천자 한덕.


삼십 년 전 혜성처럼 무림에 나타나 온갖 음모와 궤계 그리고 강적을 이겨내고 십대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


시마교를 상대로 싸운 정마대전의 영웅.


그리고 아직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방랑자이며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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