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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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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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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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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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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473화 경자유전

DUMMY

473화 경자유전


“다음!”


벌써 몇 번이나 외친 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은 다음이라는 말에 응하여 농민 하나가 물러났다.


그리고는 곧장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오니 그걸 본 조선인 관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 사람씩 오게!”

“저, 저희는 정 대인 댁에서 나왔습니다요.”

“난 그게 누군지 모르네.”


못마땅한 얼굴로 그리 말하긴 했지만 사정은 얼추 파악한 조선인 관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는 이미 대답을 알 거 같은 질문을 입에 담았다.


“정 대인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나?”

“예? 지, 집에 계십니다요.”


집이라고 하여도 그저 불탄 자리 치우고 그나마 멀쩡한 부분만 건사하여 사는 게 다다.


하물며 하인들은 그마저도 부족하여 나무와 천으로 얼기설기 지은 집이라 하기도 민망한 곳에서 거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집은 집이라고 이리 대답하니 조선인 관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호적은 본인이 직접 와야 하네. 아니면 그 가장이 오던가. 자네들, 가장이나 대리할 위치에 있는가? 아니면 무슨 증명이라도 있어?”


어려운 일을 하거나 귀히 대할 사람들을 만나러 보냈다면 증표 하나나 서신 하나 정도는 써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 대인은 이번 일을 그렇게 여기지 않고 그저 귀찮은 일이라고 여겼으니 지금 하인들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 없습니다.”


앞장서서 말했던 이가 그리 말하며 혹시나 하는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살폈으나 사정은 매한가지라는 사실만 알았을 따름이었다.


“허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네.”

“예에!?”


그렇게 되면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일을 고하는 즉시 경을 치게 될 것이 뻔하니 하인은 기겁하여 바닥에 엎드렸다.


“아이고, 나으리! 부디, 부디 한번만 사정을 봐주십쇼!”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네. 이건 원칙이야.”


단호하게 거절하자 이번에는 하인이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맞아 죽을 겁니다!”

“그러면 도망해서 오게. 아니면 내 내일 사람을 보내어 자네가 죽었다면 반드시 대명률에 의거하여 살인으로 죄를 받게 해주지.”

“아,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곤란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가 먹고사는 일이 하인 일이니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해결이 아니었다.


당장 이런 이야기 들고 갔다가 정 대인이 그를 의심하여 매타작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내가 해줄 말은 그것이 다니, 힘써서 쫓아내기 전에 방해하지 말고 물러가시게.”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대한 조선인 관리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종이 하나를 짚어서 내밀었다.


“글은 읽을 줄 아나?”

“조금은 압니다.”

“하긴, 몰라도 상관없기는 하지. 이거, 정 대인이라는 분께 잘 읽어보시라고 전하게.”

“예?”


읽어보라는 말에 그는 내용을 살피고자 했다.


하지만 뜨문뜨문 읽으니 그 내용을 알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지라 결국 그는 포기하고 종이를 잘 챙겼다.


“호적하지 않으면 권리가 없는 것은 같으나, 적어도 한 달은 기다릴 것이네. 호적하는 순간부터 권리기 있다고 전하시게. 다음!”



***



어쩔 수 없이 관청을 나와 돌아온 하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받아온 종이를 정 대인에게 내밀었다.


작은 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하인들을 쏘아본 정 대인은 이내에 내용을 살피더니 크게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이, 이게 진짜더냐!”

“예?”

“이 내용이 진짜인지 물었다!”


그는 이번에도 하인이 얼빠진 대답을 하면 그대로 혼을 낼 심산으로 눈을 부라렸다.


그에 하인은 재빨리 엎드리며 말을 고했다.


“저, 저는 그저 가져다가 전하라는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소인은 이름 석 자 정도나 쓰는 놈인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끄응.”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다면 이런 일을 시키지도 않았을 터이니 하인이 하는 말이 사실임을 그는 알았다.


허나 아는 것과 별개로 답답함은 어쩔 수 없는지라 정 대인은 앓는 소리와 함께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관청에서 보낸 종이를 쥐고 생각하던 그는 손짓으로 하인들을 물렸다.


“너흰 물러가고 여상이를 불러와라!”


그가 외치는 말에 하인들은 분분히 물러났다.


그리고는 한동안 정 대인은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며 서성였는데, 오래지 않아서 청지기 여상이 찾아와서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장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라!”

“무어라고 청할까요?”


돌연한 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용건을 묻는 여상에게 정 대인은 불안함을 담아서 일렀다.


“땅에 대한 일을 논하자고 일러라! 조선 놈들이 우리 것을 다 빼앗아 가려고 한다고 말이다!”



***



직접 관청에 행차한 이는 하나도 없었으니 늦건 빠르건 땅 좀 가지고 유지랍시고 젠체하던 이들은 모두 관청에서 하인들 편에 보낸 종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받은 이들은 하나 같이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니, 정 대인이 사람을 보내어 모이고자 하자 누구 하나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이 덕에 해가 지기 전에 사람들이 모두 모였으니, 정 대인은 모인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립의 청에 이리들 모여주셔서 감사하는 바이오.”

“정 대인, 어찌 이 일이 남의 일이겠습니까.”

“맞습니다. 모두가 당하는 일에 자신과 타인을 구별함이 있어서는 아니 되지요.”


사람들이 하는 말에 정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늘 관청에서 호적하는 일을 하려고 하인들을 보내었소이다. 그러자 거부하여 본인이 오라고 함은 물론이고 우리로서는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말들을 들었소이다.”


들은 게 아니라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지금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으니 누구 하나 그런 점에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그 내용을 자신은 이미 알고 있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고 하는 걸 강하게 드러냈다.


“그 망할 세금은 보셨습니까? 토지로만 매기는 데도 전에 비하면 족히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겁니다! 거기에 땅이 많으면 더 내라고 한다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어휴, 그거라면 차라리 낫지요. 들었습니까? 소작을 관청에서 관리하겠다고 하덥니다! 소작을 얼마나 부리며 어떤 땅을 소작 주고 있는지도 신고하라고 하더군요! 간섭도 이런 간섭이 어디에 있답니까!”

“이대로는 아니 됩니다! 당장 우리가 힘을 모아서 저들에게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우리가 아니면 이곳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가 목소리를 올리자 정립은 가만히 이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손을 올려서 제지했다.


“문제는 방법인데, 이 사람이 작게나마 생각한 것이 있소이다.”

“오, 뭡니까?”

“정 대인께서 하시는 거라면 믿을 만하지요.”


사람들이 곧장 기대를 품고 물으니 정립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소작들, 다 내쫓아 버립시다.”

“예? 사람들을 쫓아요?”

“아니, 그러면 우리 땅은 공으로 놀리는 셈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시기를 놓치면 한 해를 그냥 보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며 말하니 그 걱정은 쫓겨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 한 해 이득을 향해 있었다.


그에 정립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해야 저들이 우리 귀한 줄 알겠지요. 협력하는 척은 하되, 소작은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당장 내일은 우리가 호적을 직접 등록하고, 저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척합시다. 그리고 소작은 소작대로 내어 쫓아 직접 하겠다고 하면 그것으로 충분히 저들이 원성을 살 것입니다.”


원성을 과연 그들이라고 사지 않겠는가 싶지만 그런 일은 익숙한 유지들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해 소출이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솔직히 쌓아둔 것이 많아서 몇 년이고 들어오지 않아도 그들은 여유가 넘쳤다.


또한 하인들을 부리면 아주 놀리지는 않을 테니 나쁘지 않겠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적당히 저들이 곤란할 때 찾아가서 적당히 내밀면서 도움을 제안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것이며, 조금 더 함께하면 이전처럼 될 것이외다. 아니, 더 나아질 수도 있지.”


정립은 그렇게 말한 후에 자신감을 담아서 말을 덧붙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들은 외인이고 대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의 것을 그렇게 열심히 돌보는 이는 별로 없는 법이니 말이외다.”



***



“묵씨?”


호적 등록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별일이 없다고 여기던 농민 공씨는 묵씨가 한껏 걱정하는 얼굴로 길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부름에 묵씨는 고개를 돌려서 잠시 생각하더니 쓰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소작이 아니었던가.”

“무슨 말이야?”

“아마 오늘은 땅 가는 사람이 절반은 보이지 않을 걸세.”


연이은 말에도 영문을 알기가 어렵던 공씨는 이어진 묵씨의 말에 크게 놀랐다.


“소작하던 사람들이 죄다 쫓겨났네.”

“엥? 왜?”

“들으니 관청에서 이번에 호적하면서 소작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고 했나 봐. 유지들은 그러느니 저들은 받지 않겠다고 쫓아낸 모양이고 말이야.”

“아니, 허면 그 많은 땅을 그냥 놀린다고?”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머리를 스치고 그다음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그렇겠지. 어제는 다들 모아서 유지들에게 항의하고 온 참이네.”

“귓등으로도 안 들었겠구만.”

“관청 눈치를 보는 건지 매질은 안 하더라고.”


못마땅한 얼굴로 이른 묵씨는 몸을 일으켜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나?”

“다들 함께 가서 말하기로 해서 보러 가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른 쪽에도 청원을 해야지.”


이 말을 끝으로 묵씨는 바삐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공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잘해보게.”


묵씨가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이 어디서 모여서 누구에게 청할지 어림짐작한 공씨는 그렇게 말하며 밭으로 걸음을 계속 옮겼다.


작은 기원이 통하였는지 그날 관청에서는 이 일을 크게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으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재밌는 수작을 부렸군그래.”


의정부 주부 정연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마음이 제대로 상했는데, 하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저들이 부리는 욕심에 대한 것이니, 이는 제 욕심을 차리기 위해 저들이 수를 쓴다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조선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면 적잖이 골머리를 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조선 땅이 아니라 산둥 땅이었다.


여러모로 얽힌 인맥이며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걸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땅이었으니, 정연은 조정에서 말한 것들 가운데 하나를 아주 기쁘게 시행할 생각이었다.


“경자유전. 땅은 직접 일굴 사람에게 필요하니, 역으로 말하자면 일구지 않는 땅은 필요 없다는 소리지.”


조정에서 누가 먼저 이 말을 꺼내었는지는 모르나 참으로 마음에 드는 말이라고 여긴 정연은 바깥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있는가?”

“소관이 있습니다.”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훈련도감 초관 이계영의 것임을 안 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초관, 들어오시오.”

“예.”


정연의 말에 따라서 이계영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정연은 오늘 괸리들이 올린 보고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호적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거 같소. 하여 새로 공표하고자 하니, 슬슬 실태를 확인하여야 하지 않겠소?”


실태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말에 이계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견물생심이라고 하는데 사방에 널린 땅들을 보며 어찌 그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까.”

“벌이 아니라 계도함이 먼저임을 생각하고 움직이시오.”


원론적인 말을 입에 담은 정연은 곧 의심심장하게 덧붙였다.


“물론 본보기가 필요하다면 하나나 둘은 어쩔 수 없겠지. 그저 여생 사는 데 지장만 없게 하시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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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508화 부모의 마음 +3 24.02.29 173 16 12쪽
508 507화 파멸이 기다린다고 하여도 +5 24.02.28 186 16 15쪽
507 506화 정사와 부사 +4 24.02.27 182 18 14쪽
506 505화 또 다른 자신 +1 24.02.26 180 14 12쪽
505 504화 천하의 사지(四肢) +3 24.02.25 185 19 15쪽
504 503화 맞는 않는 자리 +2 24.02.24 176 16 12쪽
503 502화 시왕 +2 24.02.23 182 13 14쪽
502 501화 불변 +4 24.02.22 178 17 13쪽
501 500화 살아있는 말 +4 24.02.21 183 22 13쪽
500 499화 삼국분봉 +7 24.02.20 202 15 12쪽
499 498화 귀국한담 +3 24.02.19 185 16 13쪽
498 497화 서방견문 +6 24.02.18 193 16 13쪽
497 496화 유종의 미 +1 24.02.17 190 15 13쪽
496 495화 불빛이 하나라면 아무리 작아도 중요하다 +2 24.02.16 194 15 12쪽
495 494화 포기할 수 없는 일 +2 24.02.15 207 14 12쪽
494 493화 여기에 조선이 있다 +4 24.02.14 229 17 15쪽
493 492화 경험 +3 24.02.13 190 13 13쪽
492 491화 충과 효는 일방향이 아니다 +4 24.02.12 207 15 15쪽
491 490화 예외는 없다 +2 24.02.11 200 14 14쪽
490 489화 고래의 움직임 +1 24.02.10 202 13 12쪽
489 488화 대신할 사람 +2 24.02.09 199 13 14쪽
488 487화 적임자 +3 24.02.08 206 13 13쪽
487 486화 바다를 향하여 +3 24.02.07 198 15 13쪽
486 485화 경쟁자 +4 24.02.06 196 14 12쪽
485 484화 정화의 꿈 +2 24.02.05 190 19 14쪽
484 483화 풍요로운 땅 24.02.04 206 14 14쪽
483 482화 산둥 아문 +1 24.02.03 209 17 12쪽
482 481화 일은 살아있는 한 이어진다 +5 24.02.02 213 14 13쪽
481 480화 잡탕군 +5 24.02.01 212 17 14쪽
480 479화 때로는 서로 간절하다 +2 24.01.31 194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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