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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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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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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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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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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DUMMY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이종은 제가 꿈을 꾸고 있다 여겼다.


한밤중이던 곳이 한낮이 되고, 조금 전까지 분명히 주위에 있던 내관과 시위는 물론이고 병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보였던 오랑캐들의 진지 역시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거라고는 오로지 멀리 흐르는 강과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뿐이다.


무엇인지 모를 목소리에 이어서 이렇게 일변한 풍경은 이종으로 하여금 원인 모를 두려움을 품게 했다.


“자, 그럼 갈까.”

“그대는 누구인가?”


두려움을 애써 감추며 근엄하게 물으니 말을 꺼낸 노인이 허허로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리석다, 어리석다 듣는 왕이라고 하나 방금 전에 대화한 상대로 못 알아보다니.”

“그대가 그 귀신놀음의 주인이란 말인가?”


노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니 이종은 새삼스레 그를 살폈다. 가만히 살핀 그의 복색은 참으로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가 입은 적도 있고 본적도 수없이 있는 양반네 복색이건만, 어딘지 다른 느낌이 익숙하되 익숙하지 않았다.


“개량한 녀석이지. 보일 일은 없고 보기만 하겠지만 혹시나 모를 때에 하나보다는 둘이 이상하지 않게 여겨지는 법이라 내가 크게 인심 썼네.”

“하?”


영문을 모를 소리에 이종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딱히 무어라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나야 시간이 썩어 넘칠 만큼 있지만 자네는 아니지. 자, 어서 오게.”

“당신은 대체 누구요?”

“이름? 그저 이쪽 하늘에서 신선놀음하는 자일세. 실제도 그렇고.”

“그대가 신선이다?”


믿기 힘든 말에 이종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으나 노인이 보여줄 아량은 그게 끝인 듯싶었다.


“해가 지면 돌려보내기 피곤하니 얼른 오라고.”

“어엇!?”


노인의 말에 끝나자 이종의 몸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속절없이 끌려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노인이 허공에 걸음을 내디디니 그대로 걸었다. 동시에 그 역시 어느새 허공에 발을 딛고 있었다.


“서울을 보여주지.”



***



노인, 신선이라 자칭한 이를 따라 말 그대로 서울을 둘러본 이종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가 조선의 한양이라고?”


잠시 둘러보았지만 그가 알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알기 힘들고 이상한 것들이 가득한 건 둘째 치고, 이런 번화함이 있을까 싶을 지경으로 번화한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정확히는 한양이 아니라 서울이네. 대한민국, 그다음에 들어선 나라의 수도지. 아, 한양이긴 해. 그냥 지명이 바뀐 거지. 아니지, 본디 서울이라는 용어가 그대로 굳어졌으니 바뀐 게 아니라 다른 이름이 우선되었다 하는 게 더 맞겠군.”


아마 이종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명칭에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명칭보다는 노인이 한 말 가운데 후자에 더 주목하느라 그걸 깨닫지 못했다.


그다음에 들어선 나라.


뜻하는 바가 명백했기에 이종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결국 내가 조선을 망하게 했나 보군.”

“조선이 망한 건 사실이나 그대 때문은 아니지. 그때로부터 한 이백 년이 넘게 살아남어. 한 이백하고 칠십 년 정도? 그 정도는 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지. 그리고 망했고.”

“......그 상태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설마 성지가 군을 이끌고 온 건가? 아니면 상국에서 우리를 다시 도왔는가?”


나라가 자기 대에 망하지 않았다는 말에 이종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물었으나 노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대가 항복하고 청이 그대와 그대의 나라를 살려줬지.”

“......무어라?”


예상과 전혀 다른 말에 이종은 뭐라 하기 힘든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종묘사직을 보전하기는 했으되, 그 과정이라고 할 것이 참으로 참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복했다고.”


나지막이 읊조린 이종은 힘을 잃은 듯 털썩 주저앉았다.


“왕십리 한복판에서 그러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군.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게.”

“왕십리.......허허, 허허허.”


놀랄 기운도 잃은 듯 이종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에 노인은 고개를 흔들더니 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 남은 여생을 받아도 되겠는가?”

“......!”


노인의 말에 이종은 본다면 여생을 받아 가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고, 고작 이런 걸로?”

“미래를 보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나? 대가는 절대 싸지 않아.”


담담히 말하는 노인의 눈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점이 외려 이종을 두렵게 했다.


자신의 삶이, 남은 생이, 목숨이 저자에게는 마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길가의 돌멩이 같이 여겨지는 거 같았다.


‘그, 그래!’


문득 머릿속에 자신이 항복한 후 나라가 더 이어졌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은 이곳에 오기 전에 아직 항복하기로 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왕인 자신이 죽으면 바뀔 터였다.


“나는, 나는 아직 항복하지 않았소!”

“아아, 역사가 바뀐다고? 뭐 그런 이야기인가? 걱정하지 말게. 그게 내 목적이거든.”

“뭐, 뭣!?”

“내 유흥 중 하나야. 그래, 혹시 이게 무슨 숫자인지 알겠나?”


덤덤하게 말한 노인은 그대로 고개를 내려서 이종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십만 번.”

“시, 십만 번? 절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하하하, 내가 부처에게? 그럴 리가 있나. 이건 자네에게 말을 걸은 횟수야. 또한 그대의 생을 지켜본 횟수이기도 하지.”


무언가 이해할 듯하면서 이해하기 싫은 말이었으나 노인은 이종의 심경 따위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십만 번, 그대를 본 숫자다. 만 번, 그대에게 물은 숫자다. 천 번, 그대가 대답한 숫자다.”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종은 귀를 막았다. 그러나 노인의 목소리는 그런 것 따위 우습다는 듯 계속해서 들려왔다.


“백 번, 그대가 모른 척하고 성벽을 내려간 숫자다. 열 번, 그대가 들려달라고 한 숫자다. 한 번, 그대가 보여달라고 한 숫자다. 알겠나?”

“무, 무얼 말이요?”

“이만한 인내를 한 내게는 이미 충분한 힘이 있다는 거지. 자네에게 계약을 강제할 힘이 말이야.”


이종이 싫건 좋건 남은 생은 이미 저당 잡힌 셈이라는 말이었다. 머리가 나쁘다 좋다를 따지면 좋은 축에 드는 이종은 금세 그 뜻을 깨닫고 하얗게 질렸다.


“음, 그래. 기왕이니 이것도 좋겠군. 자네가 한번 골라보겠나?”

“골라보라? 무엇을? 내가 죽을 방법을?”

“자네를 대신해서 남은 생 동안 그 자리에 있을 후손.”


노인의 말에 이종의 눈알이 바쁘게 굴렀다. 이 제안이 제게 득이 되고 말고를 따지는 머리 굴림이었으나 노인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누구를 골라도 그대는 여기서 끝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그대 이름을 높여줄 이를 고르는 게 좋을 거야.”

“노, 높여줄 이라니.”

“이대로면 그대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루한 왕이라는 소리 듣는다는 말이지.”

“!”


노인의 말에 이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종묘사직을 보존했다고 하나 그는 결국 오랑캐에게 항복한 왕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이에게 후대가 좋은 평가를 할 리가 없었다.


“바, 바꾸면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럴지도 모르고, 더 나빠질지도 모르지. 그러니 직접 골라보라는 걸세.”

“그, 그렇다면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을 듣고 골라보겠소.”

“음?”


여직 감정이 없었던 노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종의 제안을 전혀 생각지 못한 듯한 반응에 이것이 답이라 여긴 그는 어깨를 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손들 가운데 나를 좋게 평가하는 이에게 남은 생을 주겠소.”

“골치 아픈 조건을 거는구만. 그런 이를 찾는 게 쉽지 않을 거고, 그 과정 역시 그대에게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닌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지 않소.”

“그랬지. 후회하지나 말게. 그대는 좋은 왕이 아니었으니까.”



***



노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능양군? 그게 누굽니까?”


“이종? 그런 위인이 있었나?”


“제가 역사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모른다고 대답한 이들은 오히려 양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능양군이라? 아, 인조 말이죠? 손에 꼽을 머저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걸고 대비도 안 한 병신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에 비하면 선조는 선녀죠.”


“인조반정? 대체 반정을 일으키고 한 게 뭡니까? 중국에 항복하기? 제 새끼 죽이기?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겠네요.”


“반정은 무슨, 광해군이 자리에 있는 게 나았을 겁니다. 아니면 연산군이 더 나을지도 모르죠.”


인조라는 시호를 들었을 때는 혹시나 했으나, 이어진 말에 자신에 대한 평가는 실로 억장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한복을 입은 그들을 보며 신기해하며 다가오는 것도 잠시였다.


능양군이나 이종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에 나온 대답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 가운데 최고로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 것은 바로 광해나 연산이 그보다 더 나았다는 말이었다.


아니, 연산은 솔직히 어찌 되든 좋았다. 그러나 그가 들고일어난 원인을 생각하면 광해보다 못하다는 말은 모욕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조선사에서 가장 제대로 못 한 등신 같은 왕이라고 하면 얼추 맞지 않나요?”


“진짜 뭘 하고 싶었던 건지, 그냥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인가? 나라 망한 고종보다 못하잖아요.”


“전에 연기하는 사람이 찌질하게 잘하더라고요. 시야가 좁은 연기가 일품이었죠.”


좋은 평가는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온갖 비평과 욕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 하하.”


처연한 얼굴로 축 늘어진 이종은 더는 무어라 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그것 보라는 듯 노인이 말을 건넸다.


“말했지 않나.”

“내가, 내가 이리도 박하게 평가받는다고? 심지어 망하게 한 후손보다 더?”


도무지 믿기 힘든 현실에 이종은 넋이 나간 얼굴로 노인을 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좋소! 날 아주 조금이라도 좋게 평가해주는 후손과 바꾸어주시오!”


그 간절함이 마음을 움직였음인가, 노인은 살짝 안쓰러운 얼굴로 그를 보며 방법을 제시했다.


“같은 성씨가 아닌 이로 범위를 늘리겠나? 그러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좋소!”


이렇게 된 거, 오기로라도 좋은 평가를 듣고 싶었다. 이제 집념이나 다름없는 생각에 노인은 지그시 그를 보더니 두 눈을 감았다.


이윽고 무언갈 찾은 듯 다시 눈을 뜬 그는 이종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나마 괜찮게 평한 이가 한 명 있군.”



***



“청년, 잠시 실례하겠네.”


노인의 말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청년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길이라면 저는 이곳 사람이 아니니 점원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 그게 아니네. 방금 자네가 올린 글을 봤거든. 재밌더라고.”

“남의 일을 들여다보다니, 예의가 없으십니다.”

“미안하게 생각하네. 사과로 이건 어떤가? 내가 한턱 쏘지.”

“괜찮습니다.”


노인의 말에 청년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노트북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옮겨서 떠나지 못했다.


누군가 그를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그대가 이종을 그나마 좋게 말한 이요?”

“이종? 아, 인조요?”


이종의 말에 청년은 그제야 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붙들은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방금 인터넷으로 한바탕 논쟁을 벌인 탓인가, 청년은 제 욕구를 채우듯 빠르게 말을 꺼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적어도 저는 그자가 최악의 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종이 더 심하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지 청년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간절한 이종의 시선에 차마 바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마지못해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인조는 왕이 아니었다면 훌륭한 신하든 가장이든 당수든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왕이 아니라면 어쩌면 위인이라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죠. 반정을 주도적으로 일으킨 그 지도력과 실행력은 분명 훌륭합니다. 당시 왕이 선조에게 망가진 광해가 아니었다면 그는 대원군과 같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포숙아라던가.”


대원군이라는 자는 누구인지 모르나 포숙아는 알았던 이종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잠시 바라보던 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에게 말했다.


“이 청년과 바꿔주시오.”

“그러지.”

“저기요?”


이해 못 할 두 사람의 말에 청년이 당황한 얼굴로 그들을 불렀다. 그에 노인은 빙긋 웃으며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걱정하지 말게. 한 10분이 10년 같은 알바 좀 한다고 생각해. 대가는 그래, 재운으로 해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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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3,988 93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334 98 12쪽
»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518 109 13쪽
2 1화 무정한 하늘을 탓하다 +7 22.11.01 5,084 107 11쪽
1 서 -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의 어느 휴일 +18 22.11.01 6,208 11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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