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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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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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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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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11,841

작성
22.11.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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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글자
11쪽

1화 무정한 하늘을 탓하다

DUMMY

1화 무정한 하늘을 탓하다


“이것이, 정녕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붉은 곤룡포를 입은 왕, 이종은 눈앞에 있는 서신과 장계를 보며 도무지 믿기 힘든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주변에 많은 신료가 있음에도 대답하는 이 하나 없었으니,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화도가 함락당했다.


급히 피하느라 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남한산성에서 그나마 항전할 생각을 품은 것은 강화도에 미리 피난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나라는 망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이제는 깨어졌다.


이종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기서 내가 죽으면 왕실은, 조선은 멸망하는 것인가?’


분명 자신은 옳은 일을 했다 믿었다. 적어도 정묘년까지는, 아니 그 이후에도 그리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비정 냉혹하게도 자신을, 조선을 몰기만 하고 있었다.


저 오랑캐들에게 당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런 비루한 처지도 그렇고 전에 내린 혹한에 눈보라까지 치던 일을 떠올리니 자신이 무얼 그렇게 크게 잘못했나 싶었다.


억울했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의기 있는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늘도 세상도 자신에게 이런 대접을 하니 억울함이 사무쳤다.


‘세자도 여기에 있다.’


오기가 샘솟아 억지로라도 버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에 정말로 이곳에 남은 게 왕실의 전부라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이종은 결국 언제나 그러했듯이 결론 내리길 미루었다.


“다들 물러가시오.”



***



“답답하구나.”


신료들이 모두 물러가고 홀로 남아 서신과 장계를 보며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던 이종은 그 한마디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깥으로 나오니 그가 나오길 기다리던 내관과 시위들이 그를 향해 고개 숙였다.


“전하, 침소로 뫼시겠습니다.”

“......아니다. 조금 바람을 쐬고 싶구나.”


내관의 말에 고개를 저은 이종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현듯 높은 곳에 올라서 모든 걸 보고 싶었다.


“성문으로 가자.”

“성문은 위험합니다.”


이종의 말에 내관이 놀란 얼굴로 만류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전쟁 중이었다.


이런 와중에 성문에 올랐다가 외적들이 위협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화살을 쏘기라도 하면 목숨이 위험했다.


이종 역시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미 한차례 대군의 서신과 그가 내린 장계를 보낸 이들이다. 적어도 오늘 하루 정도는 아무런 일이 없을 터였다.


“오늘만이다. 가자.”


왕이 단호하게 말하니 내관이나 시위들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부디 별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비는 일이었다.



***



“야야, 저기 봐.”

“뭔데?”


남한산성 성문에서 창 하나 잡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던 병졸 나언상은 동료가 옷깃을 잡아끄니 치솟는 짜증을 참으며 물었다.


“임금님께서 오시는 거 같다.”

“임금?”


동료의 말에는 용케도 존경심이 담겨있었으나,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피로한 나언상에게 그런 건 없었다.


‘흥, 이번에는 가마니가 아니라 우리 창이라도 가져가실 셈이신가? 그도 아니면 활이나 조총이라도? 예예, 나라의 것이니 얼마든지 가져가시지요.’


일전에 나누어주었던 그 알량한 가마니를 좀생이처럼 도로 가져갔던 걸 기억하고 있는 나언상은 불퉁한 얼굴로 다가오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옆에 큰 칼을 찬 시위들을 보니 가슴에 품고 얼굴로 드러났던 불만이 쏘옥 들어갔다.


“다들 자리 잡아라!”


뒤늦게나마 임금이 오는 걸 알았는지 군관 나으리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얼마 전 그들과 같이 떠들고 불평한 사이였으나 다들 추위에 힘든 중에 저 혼자 편하겠다고 슬그머니 불가로 가서 자리 차지하고 졸던 걸 본지라 그다지 동정이 들진 않았다.


동정이 든다고 해도 별로 다를 건 없다. 제가 자리에 있지 않아서 생기는 변을 일개 병졸이 나서서 어떻게 구하겠는가.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제법 컸으므로, 나언상은 그것에 만족하고 임금이 얼른 가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은 운수가 트이지 않는 날이던가, 곧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믿기 힘든 소리가 들렸다,


“올라오신다는데?”

“여길? 왜?”


전에 싸울 방도가 있는가 난리 친 이들이 있다고 들은 게 떠올랐다. 혹여 정말로 저들을, 바깥에 있는 저 무도한 오랑캐 놈들을 벌할 방도가 있다면 꼭 알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에 나언상은 그 생각을 버렸다.


‘그런 게 있으면 진즉 했겠지.’


그의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듯 성문에 모습을 드러낸 임금은 그저 적당한 곳에 앉아서 탄천을 지긋지긋한 오랑캐들이 진을 친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



“많구나.”


한참 동안 멀리 보던 이종의 말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따로 대답을 바라지 않았던 듯 이종 역시 그 말을 끝으로 그저 탄천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짧은 겨울 해가 이미 지기 시작했으나 오히려 그 덕에 밥 짓는 연기가 똑똑히 보였다.


‘물자만, 물자만 있었다면.’


돌연 광주 목사 한명욱에 대한 원망이 들었다. 동시에 부질없는, 단순한 남 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에 한명욱이 주장했다고 하나 결국 그걸 받아들이고 좋다고 여긴 건 호조를 비롯한 육조 모두는 물론이고 임금인 이종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사람 마음이 어디 이성적으로 흘러가던가.


그저 책임 돌리기, 원망할 대상 찾기라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이종의 원망은 한명욱을 향했다.


그런 와중에 멀리 보이는 오랑캐들의 진영에서 불꽃이 움직이는 걸 본 순간 그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났다.


다행히 그 불꽃은 공격하려는 신호는 아니었던지 작은 움직임에 그치고 멀어졌다.


“하하, 하하하.”


의기로, 옳다 생각한 일로 일어났건만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은 너무나도 작고 작은 소인배로 보였다.


“전하, 바람이 찹니다.”


이만 내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내관이 넌지시 물어오자 이종은 불현듯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잠시만 혼자 있겠다. 다들 물러나라.”


근엄한, 아니 근엄한 척하는 말에 주위에 있는 자들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어서.”


조금 더 힘을 주어 말하니 내관과 시위들이 우물쭈물하며 느릿하게 물러났다.


그러나 어디에나 다른 뜻을 꼿꼿이 세우는 이가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한 사람, 물러나지 않는 이가 있었다.


마뜩잖은 얼굴로 그가 누군지 살핀 이종은 한마디 툭 내뱉었다.


“민인생 같은 작자로고.”


그 말에 물러나지 않았던 한 사람, 사관 김조경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한 들려온 말은 듣기에 따라, 말한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리 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과 이종의 낯빛을 몰래 살피건대 절대 좋은 의미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항복 직전이라고 하나,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거슬리는 사관 하나 정도 이 기회에 날려보자 마음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관 된 자로서 쉬이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법이었기에 김조경은 애써 대범한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많이 물러나라 하지 않겠네. 세 걸음만 물러나 있게.”


자신의 행동을 보는 것은 괜찮으나 말을 듣는 건 어렵게 하겠다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동시에 이 말은 이미 열 걸음도 넘게 물러나 있는 이들과 달리 더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부 허락이기도 했다.


“망극하옵니다.”


망극할 일인지는 솔직히 의문스러웠으나 눈치껏 기분을 맞추기 위해 낸 말이 이종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지 별달리 더 말하지 않았다.


그에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던 김조경은 슬그머니 세 걸음 안에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가서 섰다.


곁눈질로 그가 그런 행동을 했음을 이종 역시 알았으나 딱히 무어라 하지 않았다.


임무를 다하며 기분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이인데 굳이 여기서 더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대신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무심하시오. 이 나라 조선을 이렇게 버리시다니.”

‘나라 꼴을 이렇게 만든 건 네놈들이지, 내가 아니다.’

“응!?”


귓가에 속삭이듯 들리는 말에 이종은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이라고는 오직 세 걸음 바깥에 있는 사관뿐임을 확인한 그는 순간 환청을 들었다 여기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허, 허허, 허허허.”

‘지천명이라는 말은 틀렸구나. 하늘의 소리를 듣고도 모르다니. 아니면 몇 년이 모자라 모르는 것이냐?’

“......”


다시금 들린 말에 이종은 어찌나 놀랐던지 입을 딱 벌렸으나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귀, 귀신이 놀리는 것인가?’

‘그저 눈이 한번 향했을 뿐이지. 놀릴 생각은 없다. 그래, 이것도 연이니 알고 싶은 게 있다면 알려주마.’


누군지 모를 목소리는 따분함을 달래듯 은근하게 이종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이종은 미심쩍었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내가 살아남겠는가.


그렇게 물으려던 이종은 참으로 소인배 같은 물음이라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거기에 적당히 대답하면 그만인 말이라는 생각에 이종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에 다른 걸 입에 담았다.


“이후의 일을, 내가 후대에 받을 평가부터 조선의 끝을 알려주시오.”


평가를 들어서 의기 있었다는 말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조선의 끝이 여기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니라면 마음 편하게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물은 대답에 자칭 하늘의 목소리라는 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같잖은 귀신놀음에 어울려 허망한 물음을 던졌다 여긴 이종은 편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랑캐는 이기지 못해도 귀신은 이겼으니 그걸로 족한 날이지 않은가.


그렇게 자기 위안에 불과한 생각을 품으며 일어나려던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렸다.


‘원한다면 알려줄 수 있다. 보여줄 수도 있지. 대신 알려주면 그대가 성벽을 내려가는 순간 잊을 것이요, 본다면 그 대가로 그대의 남은 여생을 받아 가겠다.’

“!”


다시금 들려온 소리에 이종은 몸이 굳었다.


잊는 것도 그렇지만 여생이라니, 대체 들음도 봄도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상한 거래라 생각한 동시에 돌연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나는 대체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인가?’

‘바라지 않는다면 나는 가보도록 하지. 걱정하지 말게. 오늘이 지나면 나와 이야기 한 것조차 잊을 터이니.’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라는 듯 넌지시 덧붙인 말에 이종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광해의 악정에 맞서서 일어섰던 그다.


고작 이런 뭔지 모를 존재의 놀음에 놀아나 물러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여주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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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불러서 이르다 +3 22.11.01 3,988 93 12쪽
4 3화 남한산성에 오다. +7 22.11.01 4,334 98 12쪽
3 2화 대신할 자를 고르다 +11 22.11.01 4,518 109 13쪽
» 1화 무정한 하늘을 탓하다 +7 22.11.01 5,085 107 11쪽
1 서 -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의 어느 휴일 +18 22.11.01 6,208 11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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