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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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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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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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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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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25화 자만은 눈을 가린다

DUMMY

325화 자만은 눈을 가린다


조선왕 앞에서 물러난 양사창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진신갑이가 한 일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그 진행됨을 알고 있다. 허면 명나라 속사정도 알고 있는가?’


본디 협상이며 흥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쪽이 얼마나 원하고 급한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헌데 오늘 들은 이야기로 미루어 보건대 조선왕이 아는 것이 과연 청나라와 오가는 이야기에서 그칠까 싶었다.


“······임 시랑은 본디 조선인. 아직도 연결이 있다고 하면 있을 법도 하지.”


나직이 중얼거린 양사창은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과한 생각이다.”


양사창은 구태여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머릿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는 의심암귀를 털어냈다.


그러나 의심은 떨쳐도 고민은 떨어지지 않겠다고 하듯 얼굴을 바꾸어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청에 일본 그리고 유구까지. 온갖 나라라고 함이 옳겠다. 여기에 조선을 더하면 넷, 명을 더하면 다섯이라. 허허.”


이 작은 나라에 무슨 객이 이리 많은지 의아할 정도니 양사창은 쓰게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선왕이 말한 것처럼 안남과 섬라가 있다면 실로 이곳은 옛 북경과도······옛 북경?”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놀란 양사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니 생각은 점차 그 형체며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떠오른 생각은 그대로 공고하게 형상을 취하니 양사창은 방금 그가 있었던 장소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침잠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 또한 과한 생각이다. 허나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면······.”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입에서 소리내어 생각을 털어보고자 하나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한 일이니, 그래도 조금은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임경업과 달리 조선왕은 그에게 있어서 미지의 존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도적이 하나 더 늘어나는가?”


복잡함을 담아서 고민하나 직접 묻지 않으면 해소될 기미가 전혀 없으니 결국 양사창은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아니, 답을 얻지 못함을 넘어서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그는 작은 위안 하나 얻지 못했다.


허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으니 각 나라 사람들이 모였다고 연락이 오니 불편한 마음을 잠시 담아두고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



“명나라 놈이 왔다고 들었는데, 참 늦군요.”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가 먼저 자리하여 아직 오지 않은 양사창을 향해 불평을 토했다.


이는 자리에 이미 모인 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불만이기도 했다.


자리를 주최한 조선왕으로 하여 청나라 친왕은 예부슈 본인에 유구국 왕제 쇼시쓰, 그리고 전에 안면을 익힌 교신사 야규 미츠요시까지 이미 자리하였다.


그런데 명나라 사람이 가장 늦게 오니 예부슈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좋게 생각하시지요. 이렇게 함은 여전히 그들이 오만하여 콧대가 높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니, 심양에서 전한 바를 시행하여 떠보기에 오히려 좋다고 여깁니다.”


동행한 예부 승정 하다나라 만다르한이 슬쩍 말을 건네어 달래니 예부슈는 여전히 불만 어린 얼굴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풀리니 좋군요. 하지만 그것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학사가 노리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지금 심양에서 오가는 논의는 이와 반대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고 논할 것이 있으나 제가 논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예부슈가 묻는 말에 만다르한이 말을 아꼈다.


이에 예부슈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대학사가 아무리 높고 대단하며 총애를 얻고 있다고 한들 추측 한 마디나 두 마디로 무어라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하하, 그리하여 부적절하다고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만다르한이 가벼이 웃으며 그리 말하더니 사방을 살피며 소리를 살짝 낮추었다.


“저는 이곳 조선에 있고 대학사는 청에, 그것도 심장인 심양에 있습니다. 어디 그가 아는 것과 제가 아는 것이 같으며 그가 보는 것과 제가 보는 것이 같겠습니까.”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신 게 아닌지.”


멀리 있는 대학사 범문정보다야 이미 함께 한 날이 긴 데다가 일본이며 유구까지 함께 둘러본 만다르한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연스레 예부슈가 친밀감을 드러내며 말하니 만다르한은 기뻐하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전하께서 저를 그렇게 생각하심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대학사는 제가 나설 것을 보고 말을 전한 게 아니라 전하께서 나서는 것을 고려하여 전언한 것입니다.”

“내가 나설 것을 고려한다?”

“말씀드렸듯, 저는 말을 아끼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말씀드리자면 나이와 신분은 변명 삼을 수 있습니다.”


나이와 신분은 변명 삼을 수 있다.


이 말에 예부슈는 무슨 뜻인지 얼추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였다.


“과연. 하지만 그래도 작은 실마리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예부슈가 묻는 말에 만다르한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두 가지, 저들의 진심과 한계를 더듬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진심과 한계?”

“대학사는 이곳에서 어떠한 결론이며 결과를 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책망도 없을 것이라 하였으니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함이 아니라 알고자 함이 목적이겠지요.”

“아하.”


그제야 안개가 조금 가신 느낌에 예부슈는 만족스러워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사방을 보던 중 무심코 향한 곳에서 시선이 멈추니 예부슈는 거기에 있는 아이를 보고 웃었다.


“쇼시쓰는 이런 자리가 불편한 모양입니다.”


유구국 왕제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쇼시쓰가 자못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사방을 보나 그와 동행한 유구국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것을 멈추라 조언하지도, 무언가 안심이 될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그것을 만다르한은 어렵지 않게 알았으나 굳이 그 점은 논하지 않고 원론적인 말을 입에 담았다.


“이 자리에 있다고 함은 나라를 대표함이니 어찌 가벼운 마음을 품겠습니까. 또한 유구국은 전하께서도 이미 보셨듯 나라가 작으니 더할 것입니다.”

“그래, 유구국이 작기는 작았지.”


전에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 예부슈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


‘쇼시쓰와는 몇 번 얼굴을 마주하며 친밀감을 쌓았다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더 들여야 녀석을 구실로 한 번 더 유구국에 가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군.’


유구국을 떠올리면 참으로 그 지리가 마음에 드니 서역이며 천축과 같은 곳을 구경하기에 적당한 자리가 아닌가 싶었다.


물론 강상청과 같은 이들에게 물어서 있으면 좋으나 필수는 아니라는 말을 이미 들은 바가 있기는 하다.


여기에 더해 근래 가까이 지내는 불란국 상인 바스쿠의 말을 생각하면 유구국은 있으면 좋으나 없으면 곤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생각한 구상에 끼워넣으니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렇게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샘솟는 것은 지금도 여전하여 들끓으니 예부슈는 아예 이참에 심양으로 가는 길에 함께 하여 구실을 만들까 고려하기도 했다.


“승정, 저번에 한 이야기 말인데-.”

“명나라 사신 양사창 대인이십니다.”


조선말을 시작으로 여러 말로 알려주는 소개에 예부슈는 일단 하려던 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양사창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한 예부슈는 하려던 말을 바꾸어서 입을 열었다.


“승정,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것은 조선왕이겠지?”

“그러합니다.”

“허면 다음은 누군가?”


답이 정해져 있는 구태의연한 질문이나 만다르한은 그 질문은 귀찮게 여기지 않았으며 이상하거나 쓸데없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당연히 친왕 전하이십니다.”

“허면 저자가 조선왕에게 예를 취한 후에는 내게 와서 인사함이 마땅하다. 아니 그런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좋아. 저자가 얼마나 콧대가 높은지 한번 확인해 볼까.”


양사창이 자리로 들어와 조선왕에게 예를 갖추는 걸 확인한 예부슈는 가만히 그를 보면서 기다렸다.


다만 그 기다림은 인사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역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빌미를 잡으면 그것으로 심양에 전하여 저들의 진의를 의심케 하기 위함이었으니, 이는 조선에 양사창이 오기로 했다는 말을 심양에 전한 순간 돌아온 지시기도 했다.


그로 인해서 조선에서 불편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용납하겠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으니 예부슈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변발한 모습을 보건대 아마도 청나라 친왕이시겠군요. 명나라에서 온 양사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품은 기대며 각오와 달리 양사창은 조선왕에게 인사한 후에 바로 그들에게 다가와 어떠한 흠 잡을 언행을 보이지 않고 인사를 올렸다.


이에 예부슈가 저도 모르게 대답도 하지 않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미간에 주름을 잡으니 만다르한이 슬쩍 말을 건네어 달랬다.


“저들은 오늘 돌아가지 않습니다.”


만주어로 속삭이며 건네는 말에 예부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을 풀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아이신기오로 예부슈요. 보국친왕이기도 하지.”


편히 인사를 건넨 예부슈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 자리는 물론이고 앞으로 좋은 관계가 되길 기대하겠소.”

“저 역시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



‘같잖군.’


예부슈가 이후로도 몇 마디 말로 양사창을 흔들어 보려고 하니 그 시도는 때때로 불쾌함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때로 자부심을 건드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두 양사창이 보기에 남경이든 북경이든 조정 신료들이 하는 언행에 비하면 우습기 그지없었다.


또한 그 정점에 있는 자와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니 양사창은 가벼이 모든 말을 받아넘긴 후에 걸음을 옮겨 제자리에 앉았다.


당장 북경에서 사람 보낸 일을 생각하여 청나라 사람들에게는 예를 취하여 인사를 건네고 대화도 주고받았다.


허나 조선왕의 권유에 따르는 것은 여기까지니, 양사창은 일본은 물론이고 유구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 먼저 인사하러 갈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일본을 대표하여 자리한 것은 들으니 그보다 급이 낮은 인사요, 유구국은 그 나라 크기가 작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유구국과는 오가는 것이 없으며 일본에 이르러서는 오가는 것이 있기는 하나 조선과 한 다리 걸쳐 주고받으니 겉으로 보기에 두 나라는 명나라와 중요히 논할 일이 없었다.


‘그저 구색에 불과하지. 그리고 이 자리에 왔으니 이제 조선왕은 이야기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자리하여 오가는 이야기며 사람들의 반응으로 양사창은 이것이 그저 시간벌기며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나마 말하는 것은 예부슈에 한하며 일본에서 왔다는 이는 데면데면하게 수동적으로 굴고 유구국에서 왔다는 왕제에 이르러는 아예 두려운 듯 자꾸 시선을 피한다.


이러한 이들을 통해 대화한다고 한들 천하에 무슨 도움이며 말이 있을까 싶으니 양사창은 점점 생각을 굳혔다.


‘그늘이라. 그늘을 쓰는 것으로 사람들끼리 싸우면 가장 큰 피해는 그 나무가 입는 법이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최명길이 입에 담았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양사창은 제 판단에 확신을 더했다.


‘관여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조선의 뜻이라면 그것으로 좋다. 허면 마지막에는 명나라가 승자가 될 것이며, 다시 옛 질서가 돌아올 것이니.’


안밖으로 걱정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명나라 사람 대다수가 그러하듯 양사창 역시 끝내는 명나라가 다시 설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자리를 파한 후 다시금 조선왕과 대면한 자리에서 질문 하나 들은 순간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바란 대로 천하 사람들과 말하여 보았으니 이제 명과 조선의 일을 논하고자 합니다.”

“그 전에 하나만 묻겠소. 유구국이 왕제를 심양에 보내고자 하는데, 그대는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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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19 19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40 18 14쪽
371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32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27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24 18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20 17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46 17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37 18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53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55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47 18 12쪽
362 361화 버림돌 +1 23.10.01 241 18 13쪽
361 360화 지펴진 불길 +3 23.09.30 262 18 13쪽
360 359화 끌려가는 심리 +3 23.09.29 260 17 15쪽
359 358화 지식과 체감 +3 23.09.28 257 16 15쪽
358 357화 말은 언제나 쉽다 +1 23.09.27 269 21 14쪽
357 356화 북경 공방전 23.09.26 281 19 13쪽
356 355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2 23.09.25 301 19 12쪽
355 354화 때로는 알기에 괴롭다 +3 23.09.24 272 17 16쪽
354 353화 이리와 호랑이 +1 23.09.23 266 15 12쪽
353 352화 우물 안 개구리 +1 23.09.22 276 20 12쪽
352 351화 부족한 현실 +2 23.09.21 277 18 12쪽
351 350화 까마귀가 난다고 하니 +2 23.09.20 270 18 13쪽
350 349화 혀는 칼보다 위험하다 23.09.19 279 17 13쪽
349 348화 맡겨진 선택 +3 23.09.18 294 20 13쪽
348 347화 천하를 갈망하는 자들 +2 23.09.17 288 20 12쪽
347 346화 전쟁의 도리 +1 23.09.16 285 20 12쪽
346 345화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 +4 23.09.15 312 22 12쪽
345 344화 훗날을 그리는 사람들 +1 23.09.14 287 20 12쪽
344 343화 이어받을 사람 +3 23.09.13 29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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