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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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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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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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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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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화 돌아온 시기

DUMMY

321화 돌아온 시기


자원할 사람이 없냐고 묻는 영의정 홍서봉의 물음에 좌의정 이성구며 우의정 최명길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물론 이런다고 피할 수 없는 일임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자신 있게 나서서 일을 맡은 것과 조심스럽게 논하다가 일이 돌아오는 것은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특히나 일이 틀어지면 전자의 경우 자존심을 내세웠다는 명목하에 책임이 커지기 마련이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니 신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냥 입을 닫고 기다려서야 진전이 없으니 침묵 끝에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흠흠, 본디 세자 저하께서 맡으심이 마땅하며 그렇지 못하면 법도에서는 세손이 있다면 세손이, 그렇지 않다면 대군들 가운데서 나서시는 것이 보통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말했듯, 불가한 일이외다.”


좌의정 이성구가 꺼낸 말에 홍서봉이 단호히 거절하여 여지를 아예 잘라버렸다.


조금 아쉬운 일이기는 하나 이성구라고 이미 들은 말을 어떻게든 뒤집어 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인평대군께 나서달라고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섬이 타당한지 한번 살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서는 것이 타당한 이들이라.”

“좌상 대감이 하시는 말씀도 일리는 있군요.”


우의정 최명길이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하니 이성구는 의아하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법도가 중요하다지만 그것은 이상입니다. 우리 사대부가 유학자로서 하는 일이 그것이지 않습니까? 이상을 현실에 맞추는 일 말입니다.”


그럴듯한 말을 매끄럽게 내니 홍서봉 역시 그렇게 하여 논함이 마땅하다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이런 일에 나서는 분들은 모두 무품이시오. 그러니 그를 대신하고자 하면 기본 정1품은 되어야 될 것이며 낮아도 정2품은 되어야겠지요.”


단박에 후보들이 크게 줄어드니 이성구는 영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맞장구를 쳤다.


“영상 대감께서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니 정승들에 판서 그리고 제조들이 마땅하겠습니다.”

“제조들은 어렵겠지요. 보통 제조들의 품계가 높다고 한들 임시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불쾌하게 여길 여지가 있습니다.”


이성구가 애써 늘리려는 후보를 최명길이 나서서 줄였다.


이에 이성구는 조금 전에 반가웠음은 까맣게 잊고 최명길을 살짝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흔들릴 이였다면 최명길은 진즉에 남한산성에서 주화파로서 목소리 높이기를 그만두었을 터였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판서들도 그리 격이 있다고는 어렵습니다. 또한 판서들을 내세워서 맞고자 하면 그 업무 분장함을 내세워야 하는데, 그러면 예조판서를 내세우지 않으면 모양이 이상해집니다.”


원망하는 시선에 개의치 않고 최명길이 이은 말에 홍서봉이며 이성구 모두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조판서를 내세워야 한다.


이건 다시 말해서 김상헌을 사신 맞이하려 내보내야 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크흠, 청음 그 친구는 좀 그렇지 않소이까?”

“내 예조판서께서 학식 높고 덕이 있으며 일 잘함은 아나 이번 일에 내세우기는 좀 그렇습니다.”


김상헌이 근래에는 얌전하다고 하지만 본래 그 척화 기치를 크게 내세우던 걸 생각하면 아무리 예조 판서라도 명나라 사람 맞으러 나가도록 하는 일은 걱정이 아니들 수가 없었다.


이러한 걱정을 홍서봉과 이성구보다 먼저 하였던 최명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조판서께서 병치레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 나가지 않음이 이상하니 판서들은 모두 피함이 낫겠습니다. 허면 필연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끄응.”


결국 피하고 싶었던 화제로 돌아오니 이성구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미 청나라에 한 번 다녀온 경험으로 고려해 보면 이성구는 제가 이러한 일에 잘 맞지 않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크흠, 두 분 대감께는 송구하나······”

“이 사람이 하면 좋으나 그것은 미안하게도 할 수 없는 일이외다.”


이성구가 조심스럽게 피할 이유를 대고자 하니 그 말을 자르고 홍서봉이 말했다.


이에 이성구는 물론이고 최명길의 시선 역시 그에게 향하니 홍서봉은 막힘없이 그 이유를 댔다.


“내가 하면 참 좋겠지만 나선 사람이 잘못하면 마땅히 윗사람이 나서야 하는 법. 이 사람이 나서면 성상께 누를 끼치게 되지 않소이까.”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다.


홍서봉이 저리 말하고 나중에 발뺌할 사람이 아님은 아나 그것은 최악을 상정한 것이니 일어나지 않는 것이 상서롭다.


이러한 걸 생각하면 결국 책임지는 일이며 골머리 싸매는 일이 이성구 혹은 최명길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새삼 확실하게 깨달으니 이성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짜 싫다. 누구 나 대신 나서줄 명나라통 없나? 품계도 높으면 아주 좋은······어?’


속으로 답답함을 토로하던 중 이성구는 불현듯 머릿속에 내세우기에 적당한 사람이 떠올랐다.


물론 그 사람 홀로 내세워서야 힘드나 나서는 이가 홀로 나서서 책임을 무겁게 하는 것보다야 둘로 나누어서 듦이 마땅하고 좋았다.


가능하면 그 둘에도 자신이 들지 않으면 금상첨화니, 이성구는 재빨리 말을 꺼냈다.


“험험, 지금 생각났는데 말입니다. 본래 무품이던 분을 대신하려면 정1품에서 둘이 나서는 게 저쪽에서 험담이며 트집을 잡지 못하게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겠습니까.”

“딴에는 맞는 말이나 두 분 모두 나서서 사신 대하는 일을 맡기에는 합당하지 않소이다. 청나라며 유구국 일을 아무리 외조에서 맡는다고 하지만 우리도 응당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성구가 하는 말에 홍서봉이 곤란함을 토로했다.


이에 이성구는 골치 아픈 일이 이것만이 아님을 알고 한층 더 근심하나 좋은 생각이 하나 더 떠오르며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허면 그것도 정함이 좋겠습니다. 청나라며 유구국 일 살피는 것은 심양에 다녀오고 예조와 가까워 직책상 그 우열을 구분하기 수월한 제가 맡음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한 말이나 이것은 최명길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홍서봉은 고개를 돌려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음. 우상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명나라 사람을 제가 맡은 상관이 없으나 좌상께서 아직 이르지 않으신 남은 말을 들은 후에 판단하고 싶습니다.”

“남은 말?”


그런 게 있었나 싶은 얼굴로 되묻는 홍서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최명길은 시선을 돌려서 이성구를 바라보았다.


“좌상께서 말씀하신 것이 저와 함께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자고 하신 게 아닌 듯합니다.”

“우상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명나라에 익숙한 분을 한 분 함께 내세워 맞이함이 낫다고 여깁니다.”

“그런 사람이 있던가?”

“험한 시기에 사행을 몇 번이고 다녀온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성구가 넌지시 이르는 말에 홍서봉이며 최명길은 그가 누구를 내세우고자 함인지 깨닫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은 듯싶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만큼 대우한다는 의미로는 적당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그분은 실무가 없지 않습니까.”

“부마의 좋은 점이지.”


최명길이 찬성하니 홍서봉은 더 두고 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면 이 사안을 위해 내 주상 전하께 말을 올리고 오겠소이다.”


홍서봉은 그리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이성구는 부디 이 일이 통하여 자신이 명나라 사신 접대하는 일이며 관련된 일에 자신이 엮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러한 간절함이 통하였는지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돌아온 홍서봉이 두 사람에게 윤허가 있었음을 알렸다.


“상께서 허락하셨소. 허면 일은 그렇게 정해졌으니 준비들하시오. 연락은 내가 할 테니 두 분 대감은 그에 맞게 각각 준비하시면 될 거 같소. 혹여 불편한 것이나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도 기탄없이 알려주시오. 발 벗고 나서서 도우리이다.”



***



“어디서 뭐가 왔다고?”


한가롭게 그늘에서 오수를 청하던 사내, 금양군 박미는 사람 얼굴이 이렇게 일그러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흉악하게 변하여 물었다.


이에 평생을 섬긴 주인이라고 하나 너무나도 두려워 종은 고개를 숙이다 못해 허리를 거의 땅에 대다싶이 숙이며 대답했다.


“의, 의정부에서 대감께 연락하길,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 역할이며 이후 한양에서 접대하는 일도 맡아주셨으면 한다고 합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안 박미는 얼굴을 한층 더 흉악하게 일그러트리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돌겠네.’


의정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나 부마인 박미가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성상의 윤허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저번과 저번으로 충분히 평생 고생은 하지 않았나 싶었던 박미다.


이제 남은 일생은 편히 살며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엊그제 같건만 다시 이런 일이 돌아오다니, 박미는 진짜로 농담 하나 하지 않고 미칠 거 같았다.


“고작 2년, 2년 만에 또 그짓거리라니!”


한 5년 정도 마음 편히 쉬었다면 그래도 억울함이 좀 덜하련만, 전의 일까지 합하여도 5년은 턱도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박미는 등골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가만, 내가 부사가 갔던 게 언제더라?”

“사, 사년 전 가을 즈음입니다.”


중얼거림에 종이 무서워하면서도 용기를 내어 대답하니 박미는 불길한 생각에 다시 물었다.


“사 년, 사 년 전 가을이라고? 확실하냐?”

“예, 그때도 제가 준비하였으니 확실합니다.”


확실하다는 말이 보통은 기분 좋게 들려야 하건만 기이하게도 이번은 신경을 건드리며 불길함을 부채질했다.


“허면 정사로 간 것은? 그것도 기억하느냐?”

“예, 예. 제가 기억하는 것이 맞다면 재작년 가을 즈음입니다.”


사 년 전 가을에 재작년 가을.


다시 말해 이년에 한번 가을마다 외교 일을 했다는 말에 박미는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지금은 가을이 아니나 전해 들은 말을 생각하면 명나라에서 오는 사람은 아마도 날이 선선해질 무렵에 도착할 터였다.


기이하게도 맞아떨어지는 일들을 떠올리며 생각하니 박미는 이 일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서, 설마하니 이러다가 내후년 가을에도?”


입은 온갖 복과 재앙의 근원이라, 박미는 스스로 내뱉은 말이 대단히 불길함을 깨닫고 급히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예?”

“흠흠, 아무것도 아니다.”


뒤늦게 고개를 들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 종을 향해 손을 내저은 박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안 되지. 암, 그럴 수야 없지!’


나랏일에 어지간하면 나설 일이 없는 부마로서 출세욕이며 공명심을 불태우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박미 역시 한때는 그런 생각으로 기웃거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박미는 이런 식으로 그런 것들을 채울 정도로 담이 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느니 차라리 시문이나 쓰고 서체 정돈하는 일에 매진하여 이름 남기는 것이 그에게는 더 적성에 맞았다.


“어서 채비하거라!”

“의정부에서 온 사람은 익일 다시 뫼시러 오겠다고 하였습니다만······.”

“의정부에 가려는 것이 아니니 서둘러 준비해라!”

“예? 아, 예!”


한순간 의문을 품었으나 종은 명대로 박미가 바깥으로 나설 채비를 하기 위해 곧장 뛰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박미는 빈손으로 감이 마땅치 않다고 여기며 재빨리 방으로 가서 간소하나마 예물로 쓰기 위해 그간 모아둔 귀한 서책 몇몇을 꺼내왔다.


“구실 정도는 되겠구나.”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책들을 챙긴 박미에게 종이 돌아와서 채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나으리, 준비가 끝났습니다.”

“허면 바로 가자.”

“어디로 뫼실까요?”


신을 신고 내려서며 박미는 종이 묻는 말에 진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궁으로 갈 것이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 비르지니님, 바얀티무르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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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20 19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40 18 14쪽
371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32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28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25 18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20 17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46 17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37 18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53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55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47 18 12쪽
362 361화 버림돌 +1 23.10.01 241 18 13쪽
361 360화 지펴진 불길 +3 23.09.30 262 18 13쪽
360 359화 끌려가는 심리 +3 23.09.29 260 17 15쪽
359 358화 지식과 체감 +3 23.09.28 257 16 15쪽
358 357화 말은 언제나 쉽다 +1 23.09.27 269 21 14쪽
357 356화 북경 공방전 23.09.26 281 19 13쪽
356 355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2 23.09.25 301 19 12쪽
355 354화 때로는 알기에 괴롭다 +3 23.09.24 272 17 16쪽
354 353화 이리와 호랑이 +1 23.09.23 266 15 12쪽
353 352화 우물 안 개구리 +1 23.09.22 276 20 12쪽
352 351화 부족한 현실 +2 23.09.21 277 18 12쪽
351 350화 까마귀가 난다고 하니 +2 23.09.20 270 18 13쪽
350 349화 혀는 칼보다 위험하다 23.09.19 279 17 13쪽
349 348화 맡겨진 선택 +3 23.09.18 294 20 13쪽
348 347화 천하를 갈망하는 자들 +2 23.09.17 288 20 12쪽
347 346화 전쟁의 도리 +1 23.09.16 285 20 12쪽
346 345화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 +4 23.09.15 312 22 12쪽
345 344화 훗날을 그리는 사람들 +1 23.09.14 287 20 12쪽
344 343화 이어받을 사람 +3 23.09.13 29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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