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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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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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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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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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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316화 배는 나아간다

DUMMY

316화 배는 나아간다


“저깁니다.”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시로타가 손을 들어 다 낡은 절을 가리키니 의정부 검상 이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졸들에게 손짓했다.


“저곳이네. 다들 주변을 부수고 자재며 쓸만한 것들은 죄다 챙겨.”

“예, 나으리.”

“자자, 다들 움직여!”


이만영이 내린 명령에 따라 병졸들이 일제히 달려가서 절을 부수고 그 안에서 쓸만한 것들을 내어 들고 온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외부부터 부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시로타는 조심스럽게 이만영에게 물었다.


“지금 가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저기 가장 중앙에 있는 큰 상자, 그걸 쓰게.”

“예, 알겠습니다.”


시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안쪽으로 향했다.


병졸들은 그를 슬쩍 한번 보기는 하나 그뿐, 딱히 이상하게 여기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이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니, 누구 하나 그에게 신경 쓰는 기색이 없이 그저 열심히 손을 놀릴 뿐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시로타는 감사하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돌바닥을 짚어가며 홈을 찾아 손을 집어넣었다.


드르륵


“얘들아, 여보, 어머님, 아버님! 접니다, 시로타에요!”


낮으면서 분명한 목소리에 열린 지하실 통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한 사람이 햇빛으로 눈이 상하지 않게 한 손을 이마에 얹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시로타냐? 이, 이건 대체 무슨 일이냐?”


불안함에 묻는 아비를 보며 시로타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은 감정이 되어서 빠르게 말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여기서 떠날 겁니다. 어서 나오세요.”

“정말 괜찮은 거냐?”

“괜찮습니다. 이제, 이제 남은 세월은 먹고 사는 거 하나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시로타가 울먹이며 말하니 그의 아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몸을 돌려서 안쪽에 손짓하며 외쳤다.


“어서들 나와. 이놈이 도움을 불러온 모양이야.”


그가 하는 말에 안에서 하나씩 사람들이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모습을 드러내니 시로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손으로 훔치며 재촉했다.


“저기, 저 상자에 들어가서 기다리십쇼. 그러면 조선 사람들이 있는 마을 근방 항구에 내려서 배를 실어서 그걸로 나갈 겁니다.”

“오, 오래 걸릴까요?”


내자가 겁에 질려서 묻는 말에 시로타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며칠 걸리지 않아. 걱정하지 마. 여기만 빠져나가면 배에서 지내면 돼.”


시로타가 이르는 말에 그의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이며 그가 가리킨 상자를 향해 달렸다.


이윽고 상자에 모두 몸을 숨긴 그들을 보며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확인한 시로타는 조심스럽게 상자 뚜껑을 닫았다.


아주 닫지 않고 헐겁게 닫아 사방을 살필 수 있게 한 시로타는 곧장 이만영에게 달려갔다.


“준비되었습니다.”


이만영 역시 보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그 사람들이 다인가?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두고 가면 다시 오기 힘들어. 자네들, 일본인들의 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 차후 오가기 어렵네.”

“예, 다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고 확인했습니다.”

“좋아. 조금만 기다리게. 작업이 끝나는 대로 출발할 터니.”


말한 것이 무색하지 않게 절은 금세 그 형체를 잃었으니 그 잔해며 찾은 물건들은 모두 상자에 실리게 되었다.


“검상 나으리, 다 끝났습니다.”

“누구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먼저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물어본 이만영은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고 명령했다.


“허면 돌아간다.”



***



“어휴.”


가장 마음이 편한 장소, 자신의 배에 오른 바스쿠는 한숨을 내쉬며 멀리 잔잔히 흐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가면 땅을 밟고 싶어서 지긋지긋하다고 여기나 막상 땅을 밟으면 이렇게 나가고 싶으니 그도 천상 뱃사람인가 싶었다.


아니면 그만큼 땅에 올라올 때마다 엮이는 일에 질렸던가 말이다.


“선장님, 저기 사람들이 오는데요.”

“응?”


그러던 중에 근처에서 갑판 청소를 하던 선원이 말을 건네니 바스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서 사방을 살폈다.


그러자 선원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상자를 여럿 들고 오는 게 보였는데, 바스쿠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것이 무언인지 짐작하고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야.”

“네?”

“아래, 저거 들어갈 공간 있냐? 위로 쌓지 말고.”


위로 쌓지 말라니,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적재해야 하는 상선에게 있어서는 그만한 바보 같은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선원 역시 눈치가 있어서 금세 이 말뜻을 알아듣고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비워둔 곳이 있어요.”

“그러면 저것들, 전부 거기에 두고······.”


말끝을 흐린 바스쿠는 속으로 말을 고른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간식거리 좀 거기 넉넉히 두고. 그리고 배 지키라고 안에 남긴 애들 좀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선원이 부리나케 내려가기 무섭게 배 앞에 도착한 조선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니 바스쿠는 재빨리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짐작은 하나 혹시나 일이 틀어졌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바스쿠는 입이 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조선 사람들을 헤치고 삿갓을 쓴 이가 앞으로 나섰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보고 있자니 삿갓을 살짝 들어 올린 상대가 말을 건넸다.


“선장님, 접니다.”

“······어떻게 된 거야?”


바스쿠가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에게 불려 가서 이야기하고 권함을 받기는 했으나 정작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이게 좋은 일인지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는 상황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긴장했다.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만 저는 죽은 것처럼 지내야 합니다.”

“얼추 알겠다.”


바스쿠는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옆에 선 이들을 보곤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거의 직각으로 상체를 숙이는 그 모습에 조선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상자들을 내려놓고 물러나니 바스쿠는 고개를 들었다.


잠시 멀어지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선원이 다른 이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게 보인 바스쿠는 곧장 그들에게 외쳤다.


“귀한 게 왔다! 조심해서 안으로 옮겨!”



***



“참의 영감, 일 처리가 끝났습니다.”

“그래? 허면 이제 늦어도 일주일이면 유구국으로 갈 수 있겠군.”

“유구국이요?”


이만영은 지금 처음 듣는 말에 당황하며 되물으니 심기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깨닫고 웃었다.


“허허, 도착하고 정신이 없이 있다 보니 미처 이르지 않았군. 서신으로 전하기에는 조금 그런 일이라서 말이네.”

“아니, 일본에 비밀로 하고 간다는 말씀입니까?”

“저쪽 조정에는 말을 해두었네. 다만 그뿐이야.”


심기원은 대단하지 않은 일이라는 투로 말하나 이만영은 오히려 그러한 태도에서 이 일이 중하다고 여겼다.


“가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무슨 일을 하다니, 아무것도 안 해. 기실 이번에 가는 것도 일본에서 유구국 사람들이 우리 조선과 다시 관계하고 싶다고 하여 도움을 청한 것이네.”

“일본에서 도움을 청했다?”

“그렇네. 그리고 기왕지사 다시 관계를 맺는 거, 예의를 갖춤이 마땅하겠다고 여겨서 한번 직접 가보겠다고 하였네.”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하나 이만영은 그것이 아님을 알고 눈살을 찌푸렸다.


“작은 일이다, 대단치 않다고 하시나 실상 따지고 보면 국교 회복함이 아닙니까. 허면 나중에는 이곳에도 저들이 오갈 수 있건만, 어째서 제게 감추십니까?”


이만영에게 이곳에 더 있어야 할 거라는 말하여 그가 놀란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남아서 책임질 일이라 이르니 심기원은 괜히 한번 놀리는 말을 건넸다.


“허허, 이제는 자리 잡을 생각이 들었나?”

“제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모른척하고 아니길 바란다니, 이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뚱하니 대꾸하는 이만영을 보며 빙그레 웃은 심기원은 들은 말을 고대로 들려주었다.


“깊게 파고들 일이 아니야. 그저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는, 작은 일이지.”

“예?”

“참고로 이건 성상께서 내게 이르신 말이네.”


임금이 일렀다고 하니 이만영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에 심기원은 마치 얼마 전 자신과 지금의 이만영이 꼭 닮았다고 여기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알고만 있게. 저들에게 무엇을 청하지도, 무엇을 주지도 않으니 말이야.”



***



시간이 흘러 모든 준비가 끝나고 떠날 날이 이르니 심기원은 배에 올랐다.


“참의 영감, 이제 와서지만 감사합니다.”

“감사하다? 무엇을?”

“이런 일을 받아들여서 나서주신 것에 대한 감사합니다.”


에둘러 있던 일을 이르니 심기원은 피식 웃었다.


“전에도 말하였지만 나는 고작 사람 하나 구하자고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네.”

“그렇습니까?”

“당장 우리 조선이 얻은 이득이 어떻던가. 이곳에서 나무며 광물이며 마음껏 필요하다면 쓸 수 있고 보장된 내에서는 모두 우리가 세우고 허물 수 있게 되었네. 그뿐인가? 무력 쓰는 일도 권역 내에서라면 허락되었네.”


얻은 것들을 줄줄이 이른 심기원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적들을 징치하고 남들을 살짝 배려하여서 얻은 것치고는 작지 않지. 덕분에 조선에 돌아가면 성상께 자랑스레 이 일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내게도 이득이야.”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이만영이 고개를 끄덕이니 심기원은 몸을 돌렸다.


“나는 오히려 자네가 부럽고 대단하다고 여기네. 그렇게 생각하여 얻을 거 궁리하지 않고 나서지 않았나. 사대부다워.”


자신은 아직 멀었다는 말을 삼킨 심기원은 그대로 배에 올랐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것에 심기원은 고개를 돌려서 외쳤다.


“아, 그래. 부탁한 서신은 내 확실히 제물포에 전해주겠네! 걱정하지 말게, 무슨 고민인지는 몰라도 좋은 답을 얻을 것이야!”

“하하,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기대해도 좋을 걸세! 거기에는 지금 신독 선생께서도 계시거든!”

“······예? 예에!?”


심기원이 남긴 말에 이만영은 바로 알아듣지 못하였다가 뒤늦게 들은 것을 알며 기겁하며 외쳤다.


그러나 이미 무어라 말하거나 더 듣기에는 늦었으니, 심기원은 배에 올라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 아니 그건, 그러니까······.”


자신의 글을 조선 사대부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이가 본다고 하니 이만영은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떠올랐으니 그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쓴 서신에 무언가 유학적으로 이상한 내용이나 벗어난 것이 있지 않는가 고민이 드나 복잡해진 머리는 스스로 쓴 내용도 잘 기억하기 어려워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내에 이런들 어떠며 저런들 어떤가 하는 생각으로 이만영은 입을 꾹 다물고 손을 흔드니 머지않아 이곳에 당도했던 배들은 천천히 바다를 미끄러져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만영의 눈에 멀어지던 배들 가운데 하나의 끄트머리에서 몇몇 사람이 삿갓이나 천으로 머리를 가리고 그를 향해 크게 절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배가 어떤 배인지, 누가 저렇게 자신에게 절을 올리는지 어렵지 않게 안 이만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잘들 가시오!”


이만영의 주어를 뺀 작별 인사와 함께 배들은 순탄하게 나아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다시 한번 땅을 접하게 되었다.


조선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며 중국도 아닌 땅, 유구국의 땅을 말이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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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372화 저열한 보신 +2 23.10.12 220 19 13쪽
372 371화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3 23.10.11 241 18 14쪽
371 370화 근거 없는 희망 +1 23.10.10 232 17 12쪽
370 369화 엇갈린 운명 +1 23.10.09 228 19 15쪽
369 368화 기로 +2 23.10.08 225 18 12쪽
368 367화 함정 +1 23.10.07 221 17 14쪽
367 366화 승리로 이어질 패배 +2 23.10.06 246 17 14쪽
366 365화 선점 23.10.05 237 18 12쪽
365 364화 가야 할 곳은 +1 23.10.04 253 16 14쪽
364 363화 맞아떨어진 이해 +1 23.10.03 255 16 16쪽
363 362화 살기 위한 궁리 +2 23.10.02 247 18 12쪽
362 361화 버림돌 +1 23.10.01 241 18 13쪽
361 360화 지펴진 불길 +3 23.09.30 262 18 13쪽
360 359화 끌려가는 심리 +3 23.09.29 260 17 15쪽
359 358화 지식과 체감 +3 23.09.28 257 16 15쪽
358 357화 말은 언제나 쉽다 +1 23.09.27 269 21 14쪽
357 356화 북경 공방전 23.09.26 281 19 13쪽
356 355화 다시 오지 않을 지금 +2 23.09.25 301 19 12쪽
355 354화 때로는 알기에 괴롭다 +3 23.09.24 272 17 16쪽
354 353화 이리와 호랑이 +1 23.09.23 266 15 12쪽
353 352화 우물 안 개구리 +1 23.09.22 276 20 12쪽
352 351화 부족한 현실 +2 23.09.21 277 18 12쪽
351 350화 까마귀가 난다고 하니 +2 23.09.20 270 18 13쪽
350 349화 혀는 칼보다 위험하다 23.09.19 279 17 13쪽
349 348화 맡겨진 선택 +3 23.09.18 294 20 13쪽
348 347화 천하를 갈망하는 자들 +2 23.09.17 288 20 12쪽
347 346화 전쟁의 도리 +1 23.09.16 285 20 12쪽
346 345화 세상에서 가장 큰 전쟁 +4 23.09.15 312 22 12쪽
345 344화 훗날을 그리는 사람들 +1 23.09.14 287 20 12쪽
344 343화 이어받을 사람 +3 23.09.13 29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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