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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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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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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6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3.20 19:05
조회
444
추천
10
글자
13쪽

1장 좋은 이야기(5)

DUMMY

“말, 말하는 대로 했지 않습니까!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부, 부디,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기사님!”

“......”

“제, 제발, 제발......”


렉스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겨우 말할 수 있게 된 그는 입을 열어서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아니, 말했다는 표현보다는 빌었다고 말하는 게 훨씬 정확할 거 같았다.


뜬금없이 알지도 못하는 이를 습격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과를 받게 된 렉스는 당황해서 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더불어서 원하는 대답도 받지 못한 덕에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렉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봐요. 안 죽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인지 말 해봐요. 기사 녀석을 쫓아 온 건데 왜 당신이 있는지 들어나 봅시다.”

“히끅, 예? 그, 그럼 당신은 그 기사랑......”

“상관없으니까 말 좀 해보슈.”


어느새 울음이 터졌는지 동네 꼬마들 마냥 그렁그렁한 눈으로 렉스를 보는 이의 입에서 의문 어린 말이 나왔다. 이제야 상황이 뭔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 얼른 말 좀 해보라니까. 아, 이 단검 때문에 그런가?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 아닙니다.”


단검을 목에서 완전히 떼며 사과하는 렉스의 말에 울던 사람은 간신히 진정하며 눈물을 소매로 슥 훔쳤다. 그러더니 렉스를 잠깐 본 그 사람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저는, 어, 그게......”

“뭐, 천천히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내가 알아서 알아들을 테니 해봐요.”

“아, 알겠습니다. 그, 시작은.......”



***



“......그게 답니까?”

“그, 그게 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습격하고 당했는데 혼자 살려주고는 수도 쪽으로 뛰라고 말해졌다. 그게 다라는 말이죠?”

“그,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할 말을 뭐 그리 길게 하고 그래요?”

“미, 미안합니다.”

‘이거 당했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를 들은 렉스는 간략하게 지금 상황을 정리해서 확인한 후 가벼운 면박을 사내에게 던졌다. 그리고 동시에 렉스는 리발이 간 방향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한테 들은 말이 맞다면 이쪽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간 흔적이 신전 기사라는 건데, 이거 또 형님한테 깨지겠네. 쩝.’


단순하게 주장한 말, 다시 말해 그가 주장했던 일이 틀렸으니 다시 만나면 리발의 그것 보라는 표정과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진저리가 났다.


‘저번에 광산에 숨었던 놈들 상대로 삽질했을 때는 하루 내내 잔소리를 들었는데, 그래도 그거보다는 적겠지?’

“저, 저기, 저는 이만 가, 가도 됩니까?”

“음? 아.”


나중에 있을 불행한 일을 생각하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렉스의 귀에 사내가 말을 건넸다. 그제야 아직 그가 있다는 걸 떠올린 렉스는 눈을 돌려서 그를 보며 물었다.


“그건 상관없는데, 어디로 가시려고요?”

“그, 그게 일단은 어디로든 가야 할 거 같습니다.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척을 진 녀석들도 많아서요. 방금 전에 쏜 신호탄으로 혹여 그 녀석들이 오면......”


말끝을 흐렸지만 렉스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아군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적이 늘어나는 게 일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긴, 그 신호탄을 볼 수 있는 게 형님만은 아닐......아, 젠장.”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속어를 입에 담는 렉스의 모습에 아레타에게 위장 수단으로 이용당한 사내는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그에게는 불행 중 다행인 일은 렉스가 금세 그걸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었다는 점이었다.


“제길, 당신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얼른 가쇼. 나중에 어디서 보면 모르는 척이나 하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그 말에 사내는 슬쩍 눈치를 한번 보고는 그대로 도망이라는 표현에 어울리게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렉스는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미치겠네. 어떻게 하지?”



***



조금 전 렉스가 신호탄을 터트릴 무렵.

아레타는 먼지와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갑주를 입고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피익-


“음?”


그러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울리는 신호음에 고개를 돌렸고, 이어서 터지는 연기구름을 본 아레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끼가 제법 노력했군. 저 정도까지 갔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기껏해야 한 시간 거리나 성실히 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배는 먼 거리에서 올라온 신호탄에 아레타는 큰 이득을 본 기분이 되었다. 물론 걸어서 간 거리니 대단한 이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이득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는 법이었다.


달그닥달그닥


“오호.”


그리고 좋은 일에 좋은 일을 더하듯이 아레타의 귀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굳이 미끼까지 마련하고, 길도 수도가 아닌 방향으로 바꾼 이유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좋은 일에는 나쁜 일이 붙는 법. 그러면 그 역도 가능하다, 뭐 그런 거겠지?”


지금 느껴지는 감상을 적당히 중얼거린 아레타는 다가오는 걸 기다리며 천천히 갑옷에 묻은 전투의 흔적을 지웠다.


“어? 신전 기사님이 이런 곳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다가온 것, 여행 마차를 몰던 마부는 아레타가 입은 갑옷을 알아보고는 잠시 마차를 세웠다. 그러나 그런 마부와 달리 바깥 상황을 알 도리가 없었던 승객들은 제각각 의문을 느끼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벌써 도착했습니까?”

“쉬는 시간입니까?”

“설마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에이, 또 나무라도 쓰러진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정말 운이 없는데.”


마차에는 크기에 어울리게 제법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거 같았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아레타는 상정하지 못했던 가능성을 떠올리며 당황했다.


‘자리가 남아 있을까?’

“기사님?”

“어? 신전 기사님이 아닌가?”

“그러네?”

“혹시 모르니 안에서 주무시는 분들 좀 깨워봐.”

“아, 알았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이들 역시 오래지 않아서 아레타를 발견하고는 마부가 마차를 세운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나 마부처럼 마냥 반가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심 어린 시선으로 경계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 더해서 설마 이런 시선을 받을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기에 아레타는 점점 더 곤혹스러워졌다.


‘무슨 일이 있었나?’


허나 당황은 당황이고 이곳으로 방향을 튼 이상 이미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레타는 헛기침을 하며 짐짓 태연한 신색으로 물었다.


“커험. 이 마차, 성일에 맞추어 수도로 가는 마차 맞습니까?”

“예, 임시편으로 증강된 마차입니다. 아, 수도로 가실 예정이신가 보군요. 그러면 함께 가시는 게......”


아레타의 질문에 마부는 곧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권했다. 그러나 그의 권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막으며 나서는 이가 있었다.


“잠깐.”


마부의 말을 막은 이는 마차에서 내린 이였다. 복장을 보아하니 아레타와 같은 신전 기사로 보였고, 그가 내리면서 뒤로 따라 내리는 이가 셋이 더 보였다.


“우리 말고 다른 신전 기사가 합류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수도에 가는 길에 조금 편히 갈까 해서 이곳에서 기다리던 참입니다.”


의구심 어린 신전 기사의 질문에 아레타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에 전체를 드러내지 않고 일부 사실만을 입에 담았다. 그에 신전 기사는 아레타를 가만히 노려보더니 손짓을 했다.


스릉


그의 손짓에 뒤쪽에 서 있던 기사들이 슬쩍 자리를 옮기며 검을 조금씩 뽑아 들었다. 자연스레 그 모습에 시선을 준 아레타는 그들의 검이 날이 한쪽에만 세워진 걸 깨달았다. 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이들이 누군지 알아챈 아레타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펠사 놈들의 딱딱한 대응은 한결같다니까.’


신전에 소속된 기사단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기에 각각 전문으로 여기는 분야가 달랐고, 특색 또한 달랐다.


펠사 기사단은 그 가운데 가장 치안 관련 업무에 매진인 기사단이며, 동시에 가장 원리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사단이기도 했다. 통상 아레타는 펠사 기사단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게 평가하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때와 상황에 따라서 동일한 주체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인식을 가지기 마련, 지금은 펠사 기사들의 이런 꽉 막힌 반응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거 귀찮게 됐네.’

“내 이름은 가르섹 펠사요. 그쪽은?”

“......아레타요.”

“그게 다가 아닐 텐데?”


단순하게 대답하는 아레타의 말에 가르섹이라고 밝힌 기사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위협하듯 물었다. 그 모습에 아레타는 저도 모르게 귀찮은 마음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는 걸 깨닫고는 다시 말했다.


“아레타 베레스 로앙이라 합니다.”

“베레스?”

“고향마을 이름입니다.”

“아하. 어디에?”

“남부에. 더 정확한 위치는......”

“아니, 남부라는 것만 알면 되었소. 어이!”


가르섹은 더 말하려고 하는 아레타의 말을 가로막으며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그러자 아레타를 경계하는 세 신전 기사 외에 또 한 사람이 마차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가르섹 너머로 아레타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그대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질문이라도 던질 법하건만 아레타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들이 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펠사 녀석들만큼 이렇게 철저한 이들도 드물지.’


얼마나 지났을까, 안으로 들어갔던 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번에는 아예 마차에서 내려서 아레타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르섹 옆에 서더니 귀엣말로 뭐라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러자 가르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레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접근한 가르섹은 한쪽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아레타는 곧 허리춤에 매어둔 철봉을 끌러서 그의 손에 올렸다. 그러자 가르섹은 받아든 철봉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뭔가를 발견하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맞군. 환영하네, 형제.”


가르섹의 말에 이제까지 경계하던 이들 모두 경계를 풀고 한 발짝씩 물러났다. 일종의 의심을 풀었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에 맞추듯 가르섹은 들고 있던 철봉을 아레타에게 도로 건네주었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철봉을 받으며 아레타는 가르섹이 인사를 돌려주었다. 그에 가르섹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작은 경계심은 부디 용서해주길 바라네. 이 시기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종종 나와서 어쩔 수 없었네.”

“물론입니다. 펠사 형제님들의 규율을 향한 사랑을 존중하지 않는 이는 없습니다.”

“이해해주니 고맙군.”


아레타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르섹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는 다른 이들을 보며 말했다.


“곧 다시 출발합니다! 신도분들은 들어가 계시고, 형제들은 우리 로앙 형제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게.”


가르섹의 말에 어느새 마차에서 내려 구경하고 있던 몇몇 신도가 다시 마차로 들어갔다. 그리고 경계 태세를 취하던 신전 기사들도 경계심을 거두고 아레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던진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아레타는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수도까지는 이제 좀 편히 가겠군.’


벌써 두 번에 걸친 불청객으로 인해 내심 불안함을 느끼고 있던 아레타는 저도 모르게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그 모습을 가르섹이 보았던 모양이었다.


“잠시만 기다리게.”

“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


우뚝

가르섹의 질문에 아레타는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돌아보았다. 가르섹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레타는 천천히 입을 열어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의 한숨, 아무래도 이유가 있어 보여서 말이네. 거기에 인명록을 확인한 녀석이 말하길, 아직 돌아다닐 시기가 아니라고 하는 거 같던데?”

“......”


가르섹의 지적에 아레타는 꾹 입을 다물고 고심했다. 그가 맡은 일을 비밀로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물건을 노리는 자들과 마주쳤으니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펠사 기사단까지 그럴 거 같지는 않으나, 이미 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판별하기 힘든 마당에 이들이라고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었다.


“아레타 형제?”


고심하는 아레타의 귀에 가르섹의 말이 들려왔다. 대답을 촉구하는 부름이었지만 음색에 강압적인 것은 섞여 있지 않았다. 마치 말하기 곤란하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나, 아레타는 이 목소리에 담긴 것을 믿고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물건을 옮기는 중인데, 파리들이 조금 붙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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