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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원(書香院)

취공무쌍(출간비공개)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해리海鯉
작품등록일 :
2012.09.20 12:41
최근연재일 :
2013.07.12 02:01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405,679
추천수 :
1,816
글자수 :
51,130

작성
13.05.13 12:21
조회
14,474
추천
41
글자
13쪽

제2장 실연(失戀) (2)

DUMMY

“....뭐?”

“그깟 어린 시절에 잠깐 만났었던 거. 그런 거 가지고 사랑 어쩌고저쩌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모습, 좀 흉하지 않아?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랑이.... 아니었다고...?”

“응. 아니었어. 집안끼리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으니 잠시 친하게 지냈던 거지. 네가 돈을 물 쓰듯 펑펑 잘도 써대니 여러모로 쓸모도 많았고 말이야.”

“너, 너....!”

“그리고 넌 애초부터 내 안중에도 없었어. 왜인 줄 알아?”

“........?”

스윽.

백수경이 조용히 홍규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넌 ‘단전도 없는 병신’이잖아. 난 나보다 약한 남자는 물론이고, 병신하고 혼인할 생각 죽어도 없어.”

“나쁜 년!”

욕설을 내뱉은 이는 홍규가 아니었다.

언제 깨어났는지 가화가 백수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가화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백수경이 코웃음을 쳤다.

“천한 년. 목숨이 수십 개는 되는 모양이지?”

“네가 뭔데 오라버니에게 그딴 말을 해! 네가 뭔데!”

가화가 발작하듯이 백수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홍규가 급히 말리려 했다.

그가 아는 백수경은 결코 너그러운 여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백수경이 움직였다.

퍽!

둔탁한 타격음.

가화의 신형이 달려들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튕겨 나갔다.

백수경의 단 일수(一手)가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바닥을 나뒹군 가화가 울컥 피를 토해냈다.

“가화야!”

홍규가 놀란 음색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등골을 타고 짜르르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홍규가 급히 가화의 상세를 살폈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연방 피를 게워내는 가화였다.

그러면서도 백수경을 향한 분노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수경이 너!”

홍규가 백수경을 노려봤다.

가화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다.

그에 반해 백수경은 같은 여인이라 해도 무공을 익힌 무인.

그런 그녀가 가차 없이 손을 썼으니 자칫하면 가화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분노에 찬 홍규와 가화를 보며 백수경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병신과 천한 년이라. 꽤 괜찮은 조합이네. 그렇게 둘이 붙어살아. 내 눈에 띄지 말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백수경의 말.

홍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보는 백수경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얼굴 좀 잘 생기고, 집에 돈 좀 있으니 세상이 다 네 것 같았지? 헌데, 어쩌지? 여기 강호란 곳은 말이야, 힘이 전부야. 그 알량한 돈 몇 푼도 진짜배기 무공 앞에선 기를 못 펴지. 막말로 내가, 아니 우리 가문이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사이에 홍가장은 풀뿌리조차 남지 않아. 그걸 다행으로 생각해.”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홍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홍가장과 잠룡백가는 오랜 시간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홍가장주와 잠룡백가주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지금 백수경이 한 말에 홍규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홍규가 백수경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홍규 또한 백수경의 일초조차 받아내지 못 할 터였다.

분노가 빠르게 식어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허탈함이었다.

더불어 깨달았다.

왜 백수경이 자신이 아닌 이관영을 택한 것인지.

남모르는 야망으로 가득 찬 백수경.

그녀에게는 홍가장보다 무천문이 더 어울렸다.

홍규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군. 그런 거구나. 사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거든....”

홍규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기에 대꾸라도 하듯, 백수경이 말했다.

“넌 원래 초라했어.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왈패 하나 상대 못 하는 지금의 너는 태어날 때보다 더 초라해.”

독한 말만 잔뜩 내뱉은 백수경이 신형을 돌렸다.

“초라하고 병신 같은 놈은 그냥 천한 년이나 끼고 살아. 그게 분수에 어울리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백수경이 실내를 떠났다.

홍규는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품에 있던 가화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홍규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홍규는 공허한 눈빛을 보이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조용했던 실내에 가화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쓸쓸하게 맴돌았다.



홍규는 멍한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침상에 누워있는 게 벌써 칠 일째.

그동안 홍규는 자신의 방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머리맡에는 식어버린 죽과 탕약들이 가득했다.

식음을 전폐한 것도 벌써 칠 일째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입술은 마른 나뭇가지마냥 메말라 있었다.

허나, 홍규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백수경이 했던 독설들이 가득했다.

그것이 끊임없이 홍규를 괴롭혔다.

괴로웠다.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그날 백수경이 했던 말들은 일방적인 절연(絶戀)의 통보.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무려 십 년 동안 그녀를 사랑해온 홍규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 사랑이 아니었나보지 뭐.

- 넌 ‘단전도 없는 병신’이잖아.

- 병신과 천한 년이라. 꽤 괜찮은 조합이네. 그렇게 둘이 붙어살아. 내 눈에 띄지 말고.


꾸우욱.

홍규가 두 주먹 가득 이불을 움켜쥐었다.

화가 났다.

무력한 자신에게 화가 났고, 냉정한 백수경에게 화가 났다.

멍했던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벌써 이러기를 수십 차례다.

홍규는 몰랐지만, 이것은 그에게 굉장히 좋은 현상이었다.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해온 해묵은 집착의 감정.

그것을 분노라는 매개체를 통해 조금씩 해소하고 있었다.

즉, 홍규는 지금 백수경을 잊어가는 중이었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었다.

그가 바로 홍가장의 주인이자, 홍규의 아버지인 홍현표였다.

아버지가 들어왔음에도 홍규는 움직이지 않았다.

홍현표를 그런 홍규를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못난 놈.”

홍규의 몸이 한순간 움찔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분노 어린 눈빛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잠시 홍규를 지켜보던 홍현표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방을 나서기 직전, 홍현표가 말했다.

“사내새끼가 방구석에서 분을 삭이는 것처럼 못난 게 없다. 어떤 놈에게 그리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을 박살 내건 네가 죽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 못 하면 계속 못나게 굴게 되는 거지. 적당히 하고 밖으로 나와라. 방구석에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렇게 홍현표는 밖으로 나갔다.

홍규는 슬쩍 고개를 돌려 홍현표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말은 좀 과격했지만, 아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홍규가 다시 천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었다.

백수경이 했던 말들이 재차 머릿속을 헤집었다.



삼일의 시간이 흘렀다.

홍규는 여전히 침상에 있었다.

안색은 이전보다 더욱 안 좋아졌다.

두 눈 밑으로 검은빛이 길게 내려왔다.

입술은 마르다 못해 가뭄 맞은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보기 흉했다.

하지만 홍규의 두 눈만큼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결코, 삶을 포기하고 허무에 몸을 맡긴 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끼이익.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홍현표가 아니었다.

미부(美婦).

어지간한 미녀는 고개도 들기 힘든 미색을 지닌 중년 여인.

그녀가 바로 홍가장의 안주인이자, 백수경보다 먼저 항주제일화의 칭호를 지녔었던 오연경이었다.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그릇을 든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홍규의 몰골이 보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규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그릇들이 오연경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홍규는 여전히 음식과 탕약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홍규의 지척까지 다가온 오연경이 입을 열었다.

“정말 고집 하나는 네 아버지를 그대로 빼다 박았구나.”

질책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오연경이 내뱉은 말은 감탄에 가까웠다.

홍규가 딱히 대꾸하지 않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직도 마음 정리가 잘 안 되니?”

오연경의 물음.

그녀는 그동안 홍규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홍규만큼이나 속도 상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오연경은 홍규에게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홍규가 원하지 않은 까닭에서다.

더불어 홍규가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풍류미공이라는 칭호를 얻어가면서까지 홍규는 몸부림쳤었다.

백수경을 잊기 위해서.

혹은, 다시 백수경과 이어지기 위해서.

홍규는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을 했었다.

누군가 들으면 철없다 탓할 테지만, 적어도 오연경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규야. 힘든 거 다 안다. 그래도 너는 사내대장부니까 이겨낼 수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가의 핏줄을 이었으니 분명 그리 할 수 있어. 엄마는 그렇게 믿고 있다.”

“........”

“지금 당장은 세상이 끝난 것 같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니. 연(緣)이 아닌 거야. 네가 그토록 갈구했던 것보다 더 좋은 연을 만나기 위함인 거야.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자. 네 주변에는 수경이 그 애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이 많잖니.”

따뜻하면서도 진심 어린 말.

말속에 가득 담긴 모정(母情)이 홍규의 가슴에 파문을 만들었다.

그의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오연경은 부드럽게 웃었다.

역시 그녀의 큰아들은 착한 아이였다.

“기다릴게. 당장 다 비워내지 못해도 좋아. 이제는 조금, 아주 조금만 내일을 보며 움직여보자. 그래야 엄마도, 그리고 네 아버지도 두 다리 펴고 잠들지. 네 아버지, 벌써 열흘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계시단다.”

그 말을 끝으로 오연경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서기 직전.

“고마워요, 엄마.”

잔뜩 갈라진 아들의 목소리가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오연경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 대신 따스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힘내, 아들. 사실, 이제야 하는 얘긴데. 우리 아들처럼 멋진 사내는 수경이에게 좀 아까웠단다.”

그렇게 오연경은 그동안 숨겨온 진심 한 자락을 남기고, 홍규의 방을 나섰다.

피식.

홍규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걸렸다.

열흘 만에 짓는 웃음이었다.

스윽.

홍규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창을 가리고 있던 휘장을 걷었다.

맑았다.

눈 부신 햇살이 창을 통해 홍규에게 전해져왔다.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햇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좋았다.

홍규는 내친김에 창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먹먹했던 가슴마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뭐, 일단 이 정도로 하자. 남은 건.... 차차 정리되겠지. 첫술에 배부를 수야 있나.”

꼬르륵.

말을 내뱉기 무섭게 들려온 소리.

홍규가 가볍게 머리를 긁적였다.

“뭣 좀 먹어야 하겠네. 이러다 진짜 죽겠다.”

강한 허기를 느끼며 홍규가 고개를 돌렸다.

머리맡에 있던 탁자에 잔뜩 놓여 있는 그릇들.

그 중 하나를 집으려던 홍규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여러 그릇 중 지금도 김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방금 오연경이 가지고 들어온 것일 터.

그것을 집어가며 홍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우리 엄마 못 당하겠네.”

김이 솟아오르는 그릇에는 죽이 담겨 있었다.

그냥 죽이 아니었다.

각종 해물이 잘게 썰려 들어간 보양죽이었다.

홍규가 한술 떠서 맛을 봤다.

기가 막혔다.

너무도 맛있었다.

그래서 게 눈 감추듯 단숨에 먹어치웠다.

입천장을 다 데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적절한 포만감이 찾아오자 다시 몸을 뉘었다.

열흘 동안 먹은 것 없이 분노를 피워냈었다.

몸을 성할 리 없다.

일단은 제대로 먹고 쉬면서 몸을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강해져야지. 어떤 식으로든.”

백수경에게 다시금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홍규의 자존심 문제였다.

그간 백수경 때문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왔다.

하지만 본래 홍규는 굉장히 승부욕과 성취욕이 강한 사내였다.

그런 그가 연정을 짓밟히면서까지 모욕을 당했다.

힘이 부족해 지인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날 놓친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백수경.”

홍규의 두 눈이 투지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주말 잘 쉬셨나요?

서울은 포근하고, 햇살이 좋네요.

독자분들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월요일이라 두둑한 분량으로 시작해봅니다.

자, 이제 홍규도 슬슬 달려야죠?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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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2장 실연(失戀) (3) +12 13.05.14 14,107 43 16쪽
» 제2장 실연(失戀) (2) +9 13.05.13 14,475 41 13쪽
6 제2장 실연(失戀) (1) +10 13.05.11 14,447 44 9쪽
5 제1장 미공(美公) (3) +7 13.05.10 15,016 38 8쪽
4 제1장 미공(美公) (2) +7 13.05.09 14,711 44 8쪽
3 제1장 미공(美公) (1) +6 13.05.08 17,313 52 10쪽
2 서(序) +11 13.05.07 18,474 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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