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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는 유령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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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8.31 10:20
최근연재일 :
2023.08.31 19:30
연재수 :
3 회
조회수 :
24
추천수 :
1
글자수 :
14,278

작성
23.08.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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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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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살인자의 정의(2)

DUMMY

보자마자 어떤 감동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감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율이 일었다.


어둑하면서도 깊은 소년의 감정을 풀어내는 필력에 놀랐다.


타임슬립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희망적인 일이다. 좋지 못한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주인공들은 타임슬립을 한다. 그렇기에 결론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희망찼고 강렬했다. 하지만 소년은 달랐다.


좋지 못한 과거를 바꾸지 못했다. 더 좋지 못한 과거로 바꾸고 말았다.


타임슬립이라는 세상에 갇혀 모든 것의 시간을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것이 바로 소년의, ‘살인자의 정의’였다.」


강렬하게 그의 가슴에 내려꽂히는 전율은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살인자의 의미. 살인자의 올바른 규범.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두 가지의 의미를 모두 갖는 복합적인 의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의미를 어떻게 저렇게 담아낼 수 있지?


감정이 결여되어 가는 이유도, 결여된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도 아버지로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부모에게 붙잡혀 영원을 노래하는 시간에 갇힌 소년은 계속해서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윤리에서 모호하게 어긋나버린 그의 정의는 기묘한 소름을 불러일으켰다.


‘잠깐, 그럼 아버지는 왜 미친거지? 본인이 죽이고자 죽였고, 아들을 죽이고자 했으나 주변인들이 방해를 해서 주변인들을 죽인 것이라면 결국 그는 살인을 하고도 또 살인을 한 연쇄살인범인데. 도대체 왜 미친거지? 단순히 사람을 죽였기에 미친 것이라 서술한 건가? 하지만 그 서술은 소년이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 한 것인데?’


박상현은 힘을 주어 살짝 구겨진 줄노트를 빳빳하게 한쪽 손을 폈다. 그런다고 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남의 것을 구겼기에 저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이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줄노트를 다시 펼치며 천천히 뒷부분을 읽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아아악! 왜 쓰다가 만거야!”


괜히 더 궁금해지잖아······!


좀 더 해설해주시라고요!


박상현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작가를 직접 찾아가기로 하였다.


‘이 작품은 된다······!’


자신이 독자라면 이 글을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어두우면서도 모호한 감정이 여지껏 봐왔던 소설들과는 달랐다.


외로우면서도 아프고 사랑과 증오를 합친 애증이 넘나드는 감정.


박상현은 병원 복도를 빠르게 달렸다. 한쪽 손에는 어린아이가 쓸 법한 줄노트를 들고서.


404호실로 향하였다.



***



“후하, 후하.”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박상현은 404호실에 도착해서도 문을 열지 못했다. 문을 열기는 커녕 두드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문을 열어재끼고는 계약해달라고 사정하고 싶지만 상대가 어떤 인물일지 모르니 함부로 달려들 수 없었다.


심오한 글을 쓴 사람이니 완전 꼬장꼬장한 노인네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평소에도 항상 우울모드 max를 찍은 청년이라거나. 예쁜 여자 작가님일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자신은 들어가서도 놀라선 안된다. 그저 자연스럽게 글에 무척 감동받았다는 마냥.


쓰읍, 아닌가? 오히려 강하게 나가야하나? 저희 출판사와 계약해주십시오!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박상현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인생은 노빠꾸 아니겠어? 젊은 시절에 그렇게 직진만을 외쳤으면서 뭘 고민하고 있냐. 박상현!


박상현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하십······.”

“들어오세요.”


제대로 된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얇은 미성. 박상현은 목소리가 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설마.


드르륵.


문을 열자마자 박상현은 문밖에서 했던 상상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꼬장꼬장한 노인도, 우울모드의 청년도. 예쁜 여자도 아니었다.


소년이었다.


아니다. 정확히는 아이였다.


넓은 1인실의 창가쪽에 의료용 침대를 하나두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방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의 모습에 박상현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문밖에서 들려왔던 얇은 미성의 주인공은 작은 아이였다. 초등학생정도는 되었을까, 그보다도 작은 것 같은 어린아이가 새하얀배경 속 아무런 표정도 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 계속해서 시선을 붙잡아두게 만들었다.


창문을 열어두었는지 바람에 커튼은 팔랑거렸고 아이는 창문과 침대의 사이에서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와 눈을 계속해서 마주쳤을 때 느껴진 감정에 박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그 소년이다.


소년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많이 어려보였지만 박상현은 저 아이가 바로 소년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살인자의 정의」


지금도 한쪽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떨어질랑 말랑 쥐고 있는 이 글의 주인공.


그 주인공이 현실로 나온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간성도 감정도 결여되어버리고 말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 소년.


주인공 소년보다는 훨씬 어렸지만 아이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전혀 아이를 제 나이때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툭.


아이의 묘한 분위기에 잡아먹혀 눈을 떼지 못하던 박상현은 자신의 손에서 줄노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서야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


“저······.”


창피한 일이었다. 본래의 목적도 잃고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하였다. 박상현은 떨어진 줄노트를 줍고는 병실의 문을 닫았다.


“보호자는 어디계시니?”


아마도 이 아이가 작가는 아닐 것이다. 이 아이를 모티브로 그 글을 쓴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마 이 아이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정말이라면 아마도 이 아이의 보호자가 그 글을 쓴 작가일 가능성이 컸다.


아이에게 웃음을 보이며 최대한 상냥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아이의 보호자가 돌아온다면 아이에게 좋은 인상을 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신뢰를 가질 테니까.


분위기가 묘한 아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어린데 좋게 웃어주면 금방 넘어올 것이다.


“음료수라도 사줄까? 뭐 마시고 싶은 것 있니?”


유혁인이 보았더라면 전형적인 납치범의 수법이라고 이야기했겠지만 박상현은 당장에 유혁인보다 미래의 투자가치를 위해서라도 아이에게 좋게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박상현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는 경계심을 품었다. 아까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야 어린아이 같아졌으나 그게 경계심으로 인한 것이라면 좀 곤란했다.


“아니, 형은 이상한 사람아니야.”


줄노트를 들지 않은 손으로 휘저으며 자신은 무해한 사람이라고 밝혔지만 아이는 쉽사리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박상현을 바라보다가 박상현의 왼손에 들린 자신의 줄노트를 발견했다.


“그걸 왜 당신이 들고 있어요?”


날카롭게 나온 말투에 박상현은 멈칫했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아이는 박상현의 손에 있던 줄노트를 뺏어들었다.


“이건 간호사쌤한테 준 거예요. 왜 당신이 들고 있어요? 훔친 거예요?”

“훔쳤다니······! 그런 거······.”


그런 거 맞았다. 따지고 보면 유혁인의 손에 있던 것을 빼앗아 들고는 이리로 달려온 것이니 어찌보면 훔쳤다고 할 수 있었다.


기다려도 박상현에게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자 아이는 더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박상현에게서 뒷걸음쳤다.


“자, 잠깐! 그런 거 아니야! 형은 그저 그 글이 너무 재밌어서······! 그래! 형은 그 글을 출판하고 싶어서 온 출판사 직원이야!”

“아저씨가요?”

“아저······! 후, 그래······아저씨가 출판사 직원이란다······.”

“하지만 그 글은 출판 안 할 건데요.”

“뭐?! 아니 그 글을 도대체 왜?! 아니지. 아가,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라 그 글을 쓰신 작가님과 이 아저씨가 의논을 할 일이란다. 그러니 그 글을 쓰신 작가님, 그러니까 보호자분은 언제 돌아오시니······?”


아이는 박상현의 물음에 잠깐 뚤어져라 보다가 이내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쓰레기통을 열어 줄노트를 버렸다.


“아아악!”


박상현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달려와서는 줄노트를 꺼내들었다. 쓰레기통 안에는 과일껍질부터 여러가지가 버려져있었는데 줄노트를 바로 꺼내들었음에도 과일의 수분기가 조금 묻어나왔다.


“이게 무슨······! 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원고인지 알아?!”

“원고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휘갈긴 평범한 이야기니까.”

“그니까 그걸 네가 어떻게 판단······!”

“내가 판단하지 누가 판단해요?”


줄노트를 옷소매로 문지르며 닦던 박상현은 아이의 마지막 말에 이상함을 느끼고는 아이쪽을 돌아봤다. 아이는 글을 버리고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박상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의아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라, 그거 맨 뒷면 하단에 작가이름을 적어뒀는데 안 봤나보네요?”


맨 뒷면?


박상현은 작가의 이름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보통은 작가의 이름은 맨 앞에 보기 쉽게 적혀 있는 편이었다. 이것은 자필로 적은 글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목 아래에 작가명을 쓴다는 것쯤은 기본 상식이었다. 박상현은 반심반의로 아이의 말대로 맨 뒷면 하단을 보았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글씨가 쓰여있었다. 어떤 사람의 이름이.


“지찬희······?”


처음보는 이름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내가 이 이름을 어디서 봤더라?


“지찬희라고 합니다. 일곱 살이고, 뭐 보다시피 여기에 갇혀있는 신세죠.”


박상현은 아이의 말에 떠올렸다. 스쳐지나가듯 본 것이었기에 제대로 외우고 있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보았다. 404호실 병실 문 옆에 걸려있던 이름이었다.


“살인자의 정의. 그거, 내가 쓴 글이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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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살인자의 정의(3) 23.08.31 5 0 10쪽
» 살인자의 정의(2) 23.08.31 6 0 10쪽
1 살인자의 정의(1) 23.08.31 1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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