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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작가는 유령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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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8.31 10:20
최근연재일 :
2023.08.31 19:30
연재수 :
3 회
조회수 :
22
추천수 :
1
글자수 :
14,278

작성
23.08.31 10:24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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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살인자의 정의(1)

DUMMY

“스트레스성 과면증이십니다.”


내 나이 마흔. 겨우 이런 나이에 벌써부터 병원에 다닌다는 것이 참혹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시발, 그게 뭔데. 위험한거야?”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온다고.”


젊은 나이에 머리도 좋아서 단숨에 의대를 들어간 친구, 유혁인.


이 녀석을 믿고 이 병원에 오기는 했지만 역시 더 좋은 의사를 찾아갔어야 했나. 이런 돌팔이 같으니라고. 내가 그거 들으려고 일부로 시간내서 여기까지 온 줄 아나.


됐다 됐어, 내 쥐꼬리만도 못한 월급가지고 이런 대학 병원에 오는 것부터가 사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데?!”

“수염이나 깎아라, 이 새끼야. 일단은 약 처방해줄테니까 꼭 챙겨먹고.”


그리 늙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나이였음에도 정신과에 다닐 정도로 삶이 피폐해진 것은 다 그 반짝거리는 머리를 하고있는 편집장때문이었다.


‘너 말이야, 너! 내가 좋은 작가 좀 발굴해 오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어떻게 실적이 한 건도 없을 수가 있어! 이래서 네 놈 같은 새끼는 뽑지를 말았어야 했어!’


매일을 달달 지져지고 볶이는 신세에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는 구조였다.


어쩐지 요즘 계속 배가 쓰리더라니.


“또 그 편집장이 뭐라하디?”

“뭐라하긴, 언제나 있는 말이지 뭐. 재능 있는 신인작가 좀 발굴해오거나 다른 출판사 잘나가는 기성작가 좀 데려오거나. 뭐라도 좀 해보라고 난리지, 애초에 계약조항이 그따윈데 우리 출판사로 오고 싶어하는 작가가 있겠냐고. 너무 많은 걸 바란다니까? 욕심만 많아가지고.”

“사람은 누구나 욕심 많아. 박상현, 내가 보기에는 네가 더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 어지간한 작가는 눈에 차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이는데 뭐.”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많다. 욕심이 많다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편집장은 욕심이 좀 지나쳤다.


“그래도 그렇지, 부릴 욕심, 안 부릴 욕심이 따로 있잖냐.”


스트레스를 푸는데 최고의 약은 역시 친구놈이랑 상사욕을 하는 것이었다. 쓰라린 위장도 좀 낫고 항상 바빠서 서로 못 만나다가 오랜만에 만난 만큼 할 이야기도 많았다.


실컷 이야기를 떠들자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온김에 밥이나 먹고 가라. 요 주변에 맛있는 국밥집 있어.”

“야, 그 편집장이 또 국밥충이라서 안그래도 맨날 국밥 먹는다.”

“내가 쏘는데 안먹는다고?”

“아이고 의사양반, 내가 그러면 또 먹어줘야지.”


킥킥거리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간호사가 들어왔다.


똑똑.


“교수님. 아직 진료 보고 계셨네요? 벌써 점심시간인데.”

“아, 서간호사님. 무슨일이신가요?”

“별일은 아니구요. 이거 새로 나왔다길래 가져왔는데.”


간호사가 유혁인이에게 내미는 것은 얇은 공책이었다. 어린아이가 쓸 법한 줄노트.


“아! 우리 선생님 연재 다시 시작하셨나요? 고마워요. 잘 보고 돌려줄게요.”


성인이 쓰기에는 알맞지 않은 노트였는데도 유혁인은 기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무언가 이상하면서도 궁금증을 일으켰다.


“그건 뭐야?”

“아, 우리 병원 환자가 쓴 글이야. 어찌나 재밌던지 우리 병원 사람들은 다 돌려 보고 있지.”

“호오, 기성작가인가봐?”

“그건 아닐거야.”

“어떻게 알아? 그 환자랑 친한가봐?”

“뭐, 내 담당이긴하지······.”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공책을 펼치는 유혁인을 보니 학창 시절의 장난기가 발생했다.


곧장 유혁인이 들고 있던 공책을 뺏어서는 첫페이지를 펼치자 유혁인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야! 그거 조심해야해!”

“에이, 알지. 내가 명색에 출판사 직원인데. 조심해서 볼게.”


근데 어떤 작가가 이런 어린애가 쓸 법한 공책에 글을 쓰지?


나는 바로 눈으로 첫 줄을 훑기 시작했다.


「살인자의 정의」


제목으로 봐서는 꽤나 어두운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았다. 병원인데 살인자니 이런 피나올 것 같은 이야기를 써도 되는건가싶었지만 일단은 읽어보기로 하였다.


내용은 단순했다.


주인공은 중학생 정도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불운한 가정으로 시작될 것 같은 제목과는 정반대되는 것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이 아이가 살인자가 되는 건가?’


마저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소년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과 함께 어린 유년시절을 보내왔다.


화목한 가정, 상냥한 어머니. 자상한 아버지. 부족함없는 재력까지 모든 것이 나쁘지 않은 집안이었다.


‘좀 평범한데?’


소년의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어머니가 죽은 후부터였다. 어머니가 죽은 후로는 슬픔에 빠져살게 되었다. 사인(死因)은 교통사고에 의한 두부손상 및 날카로운 흉기로 인한 다량 출혈.


소년의 어머니를 죽인 것은 동네의 좁은 골목길에서의 일이었다. 칼로 인해 가슴을 찔리고 그 후에 지나간 뺑소니가 확인사살을 하듯 피를 흘리는 어머니를 치고 갔다. CCTV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아 차량을 확인하기도 어려웠고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었기에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가 찔린 후 뺑소니차가 바로 알아치리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면 살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적어도 차로 치고 바로 내렸더라면.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는 소년의 삶은 망가졌다. 미칠 대로 미쳐버린 아버지. 그리고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죽어만 나가는 소년의 주위사람들.


소년의 선생님, 친구, 자주 인사하는 경비아저씨.


모두가 죽어나가며 소년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제는 어쩌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차례가 아닌가 생각하며 소년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때 소년이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발생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살인자였다.」


소년의 아버지가 소년의 주위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라는 것이 경찰조사로 밝혀지게 된다. 소년의 선생님, 친구, 자주 인사하는 경비아저씨. 모두 소년의 아버지가 죽였다고 한다.


소년은 절망스러웠다. 믿었던 아버지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소년은 마지막까지 믿었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으리라고.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소년은 경찰이 된다. 징역을 오래 산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경찰이 되는 동안에도 감옥에 있었다.


소년은 괴로워하면서도 사건을 조사했고 조사하면 할 수록 아버지가 범인임이 확실해져만 갔다.


소년은 마지막 희망마저도 잃고 이제는 정말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 소년을 버리지 않은 것인지 그에게 특별한 능력을 쥐어주었다.


타임슬립(time slip).


미래로는 불가능하지만 과거로는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


소년은 기뻐했다. 아버지를 막는다면. 아니 처음부터 어머니가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아버지는 변할 것이다.


어릴 적 소년이 아는 그 자상한 아버지로.


소년은 끊임없이 타임슬립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도 막을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 누구의 죽음도 막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점차 아버지가 미워져갔다. 어째서 그들을 죽인 것인지. 어째서 그런 것인지.


소년은 울부짖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방법을 찾아내었다.


소년이 사랑하는 그 누구도 죽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그래, 아버지를 죽이자. 소년은 그렇게 마음 먹었다.」


끊임없는 타임슬립으로 소년은 피폐해져만 갔고 인간성도, 감정도 결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처음의 목표만은 잊지 않은 것인지 소년은 칼을 쥐었다. 살인자라 불리는 아버지를 미워했으면서도 사랑했기에 아버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소년은 칼을 쥐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배를 찔러넣었다.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그 누구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소년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했었다는 것을. 실수도, 어머니가 죽어서 미쳤기 때문도 아니었다.


「소년의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는 그의 아버지였다.」


소년의 어머니를 차로 친 것도, 소년을 죽이고자 했지만 소년의 주변인물들의 방해로부터 죽일 수 없어 주변인부터 죽인 것도.


모두, 그의 아버지의 짓이었다.


아니, 살인자의 짓이었다.


「소년은 비릿한 맛을 삼키며 비에 씼겨져 내려가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소년은 살인자를 죽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라는 모든 시절, 살인자를 아버지로 둔 소년에게 비판은 끊이지를 않았다. 자라서는 지 애비랑 똑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고. 소년은 자신은 그럴리가 없다며 그 이야기들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서야 깨닫고 말았다. 그는 그 살인자의 피를 이어 받은 살인자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것이 바로 소년의, ‘살인자의 정의’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질척거리면서 낮은 울림이 몸을 휘감았다.


타임슬립은 어찌보면 너무 자주 나오는 이야기였으며 흔한 소재였다. 하지만 이 글은 타임슬립이 주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년의 낮고도 엄숙한 분위기. 청량과는 거리가 멀면서도 어리숙하지만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개연성, 분위기, 스토리의 전개. 모든 것이 대중을 압도할 만했다.


「살인자의 정의」


제목을 다시 한 번 훑고는 마음 먹었다.


“야.”

“왜, 뭐.”


박상현은 줄노트를 들며 부들부들 떨었다. 단순히 손만이 아니라 온몸, 눈까지도 떨리고 있었다.


유혁인은 아무 말이 없는 박상현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새끼는 다른 것도 다 안 좋지만 말 하다가 마는 성격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거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밥을 먹으러 나가도 될 것 같았다. 유혁인도 새로 나온 글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지금 보기 시작한다면 점심시간은 다 지날 것 같았기에 밥 먼저 먹고 돌아와서 짬짬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겉옷을 챙기고 박상현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박상현이 유혁인을 다시 불러세웠다.


“야.”

“아, 왜······넌 좀 말하다가 마는 버릇 좀 고쳐야 한다니까. 진짜.”

“이거 쓴 작가님 누구야? 아니, 어디 사셔? 내가 지금 당장 좀 뵙고싶은데.”

“404호실을 쓰기는 하는······야! 박상현! 너 어디가!”


밥 먹기로 한 것도 잊고는 열중해서 글을 읽더니 나가는 것도 지 맘대로였다.


기왕 가는 거 턱에 짤막하게 자란 수염이라도 깎고 갈 것이지.


“근데 괜찮으려나. 그 글을 쓴 작가는.”


일곱 살인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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