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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sy의 소설들

용사는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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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시
작품등록일 :
2023.04.23 17:01
최근연재일 :
2024.05.0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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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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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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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들은 결코 (5)

DUMMY

4. 그들은 결코 (5)



카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폰의 발톱이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갑자기 사라진 목표물에 그리폰이 당황하며 다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옆에서 날아든 카일의 검이 날개를 찢었다.


균형을 잃고 땅에 고꾸라진 그리폰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부리가 벌어졌고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 너머에서 카일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튀어.”


그리폰의 머리가 뒤흔들렸고 잠시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일이 그리폰의 몸 위에 올라탔다. 날아든 검이 그리폰의 뒷목에 박혔다.


그리폰이 몸부림쳤고 카일이 튕겨 나갔다. 날아간 기세 그대로 몸을 굴리며 카일이 다시 일어나자, 비틀거리는 그리폰이 증오스러운 눈으로 카일을 쏘아보고 있었다.


다시 카일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돌연 사라진 카일의 모습에 당황해 그리폰이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 카일은 그 좌우로 움직이는 그리폰의 머리 아래에 있었다.


검이 번득였고 그리폰의 머리가 목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카일이 몸을 그리폰에게서 빼냈다.


머리를 잃은 몸이 조금씩 허물어지더니 이윽고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리폰이 완전히 무너져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카일은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세 마리가 다인 것 같아.”


옆으로 다가온 린이 조용히 말했다. 한차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카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신시아가 어디 있는지 살폈더니, 그녀는 상인들 쪽에 있었다. 그 근처에 쓰러져 있는 호위병과, 그의 몸통 상처에 손을 갖다 댄 한 명의 남자가 눈에 띄었다. 붉은 고수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남자였는데, 후드가 달린 검정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가 호위병에게 손을 대고 무어라 소근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뿐이라면 신기할 일은 아니었겠지만, 카일은 상처에 댄 손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뭐지?”


눈썹을 오므리고 보고 있으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몸에 창을 맞고 내장까지 상했을 호위병이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멀쩡하게 움직인 것이었다. 고수머리 남자는 그뿐 아니라 옆구리를 찔렸던 다른 호위병에게로도 다가갔고, 곧 그 호위병도 가뿐하게 일어났다.


“설마.”


중얼거린 카일이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이미 마지막 부상자에게로 접근해 그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가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남자의 손이 빛났고,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호위병의 상처가 아물어 깨끗하게 나았다. 다시 일어난 호위병이 수차례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당신은...”


카일이 말을 걸려 하자 남자가 카일을 돌아보았다. 그는 깊은 눈매에 차분한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그 눈은 언뜻 아침의 숲처럼 차분해 보였으나 한편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어두워 보이기도 했다. 그가 먼저 미소 지었다. 친근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부족하나마 은총을 받아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치유의 성자, 블레이크 마치 씨.. 맞나요?”

“저는 성자가 아니고 제 이름도 중요하지 않지만, 그게 저를 부르는 이름인 것은 맞습니다.”

“아, 전 카일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블레이크 씨. 이렇게 만나뵐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요.”

“네,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카일 씨. 그런데 지금 여쭤야 할 것 같은데, 쓰러뜨리신 도적들을 치유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도적들을 치유하신다고요?”


카일이 반문했다. 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 저는 제 눈에 닿은 사람들을 살리고 싶습니다만, 저희를 죽이려 하던 사람들을 쓰러뜨리신 것은 여러분이니 결정할 권리는 여러분에게 있겠지요.”

“......음.”


카일은 뒤를 돌아보았다. 린과 신시아가 그를 보고 있었다. 카일에게 맡기겠다는 표정이었다. 카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꼭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멀쩡하게 풀어주기도 좀.”

“묶어놓고 상처만 낫게 해서 잡아가면 어떨까.”


신시아의 제안이었다. 카일은 살짝 웃었다.


“나쁘지 않네. 저 인원수를 잡아가는 게 문제긴 하지만.”

“무기랑 가진 거 다 뺏고, 다시 보면 그땐 죽인다는 정도로 봐주는 건 어떨까.”


태연한 얼굴로 말한 사람은 린이었다. 카일이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그거 좀 땡기네.”


카일이 블레이크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죠?”

“어떻게 하시든 괜찮습니다.”


그는 빙긋 웃었다.



그리하여 카일와 모두는 도적들을 도적질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도적들의 무기를 뺏는 중에 언뜻 그리폰에 대해 떠보았으나, 아무래도 도적들은 그리폰의 등장을 우연의 일치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리폰을 불러내다니, 우리가 그런 걸 할 수 있으면 왜 도적질이나 하고 있겠어?”


도적 하나는 그렇게 말했다.


“뭔 이상한 소리야? 아니, 괴물한테서 구해준 건 고맙지만.”


다른 도적 하나는 그렇게도 말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요즘 마수의 출현이 잦아진 모양이더군요. 도적들이 늘어난 것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치명상을 입은 도적부터 먼저 치유하고 난 블레이크가 다가와 말했다. 카일은 그를 돌아보았고, 그의 표정으로부터 그가 지금 말한 것보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카일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크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 도적들을 마주 치유하기 위해 걸어갔다.


“흠.”


카일은 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린이 도적 하나를 추궁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리프트슈어가 바로 근처인데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그게 신경 쓰여야 할 이유라도 있냐?”


도적이 오히려 어이없다는 투로 반문했고, 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도적을 마저 결박했다.


몸을 일으켜 걸어가는 린에게로 다가간 카일이 물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

“여긴 리프트슈어까지 반나절 거리거든.”


린이 대답했다. 그녀의 시선이 숲 너머 저편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리프트슈어는 무술가의 마을이고. 무술가가 많다는 정도가 아니야. 무술가가 아닌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인 곳이지.”

“과연.”


카일이 린의 시선을 좇았다. 다만 카일의 눈에는 숲이 보일 뿐이었다. 카일이 고개를 기울였다.


“도적들이 활개 칠 만한 곳은 아니란 말이겠네. 그런데 블레이크 씨 말로는 요즘 이 근처에 마수의 출현이 많아진 모양이라더라.”

“......”


린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말했다.


“마수의 숲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여긴 마수는커녕 맹수도 없던 곳인데.”

“리프트슈어에 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이면 도착할 테니까.”

“그래. ...그러네.”


린의 눈이 차분했다.



“어찌해야 하나 난감했는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다시 감사드립니다.”


죽지 않은 도적들을 맨몸으로 쫓아보내고 나서 모두와 블레이크는 다시 정식으로 인사했다. 상인이나 호위병들과는 제법 떨어져서, 약간 큰 소리를 내도 말소리를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고 난 뒤였다.


리키는 나른한 듯 몸을 옆으로 구부리고 카일의 다리에 몸을 대고 엎드려 있었다. 카일이 가만히 리키의 등을 쓰다듬었다.


블레이크가 빙긋 웃었다.


“옛 친구를 찾아가는 중이었지요. 리프트슈어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저희도 리프트슈어로 가는 중이었죠. ...블레이크 씨가 리프트슈어에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카일이 말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블레이크 씨가 리프트슈어로 가고 있는 중이었으면... 뭐,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다행이지만요.”

“제가 리프트슈어에요? 흠... 아, 그렇군요.”


블레이크는 생각에 잠기더니 곧 알았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한 달 전까지 닙트리쉬 마을에 있었습니다. 소문이 잘못 전해진 모양이군요.”

“닙트리쉬.”


신시아가 중얼거렸다. 카일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알아?”

“이름만. 완전 반대편이야. 서너 주는 걸릴 곳이고.”


신시아가 답했다. 카일이 어이없는 얼굴로 웃었다.


“그 할머니 완전 잘못 가르쳐준 거였네. 아니 뭐 어찌 잘 만났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그것도 신의 인도하심이겠지요.”


블레이크가 기분 좋게 웃었다. 카일이 그를 돌아보았다.


“어째 외람된 말씀이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블레이크 씨...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신성력이라고들 말하는 건 들었는데, 블레이크 씨가 사람들 치유하던 그거... 마법 아닌가요?”


블레이크는 가만히 카일의 말을 듣고 있더니 눈웃음과 함께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댔다.


“그렇게 말하면 저들은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블레이크가 윙크했다. 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저 사람들은 자기들을 구해줬는데도 카일과 신시아를 경계하고 있지요.”


카일 등이 상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은 단지 블레이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도적들을 보내고 정리하는 사이에 신시아는 상인들이 그들을 일컬어 마녀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역시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블레이크는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단지 편견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고치기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치유를 받아들여 준다면, 저는 사람들을 좀 더 구할 기회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치유의 성자라 불리는 이는 덧붙여 말했다.


“마법이란 말 자체도 그냥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면, 신께서 주신 신성력이라 생각해도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능력도, 말이죠.”

“현실적으로, 우리 능력을 저 사람들이 신성력이라고 여겨줄 것 같진 않지만요.”


카일이 대답했고 블레이크는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그건 확실히 현실적인 문제죠. 그런 점에서, 거리껴질 것을 알면서도 마법으로 저희를 구하신 것은 진심으로 훌륭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도적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뿐이에요. 어떻게 여겨지느냐 하는 건 나중 일이고요.”


카일은 담담하게 답했다. 린과 신시아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굳이 카일의 말에 반박하진 않았다. 블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십니다. 칭찬을 원하신 게 아니시라는 점이 더욱 그렇군요.”

“음.”


카일이 볼을 긁적였다.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블레이크가 미소 지었다.


“그래서... 저를 만나고 싶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뭔가 제가 필요한 일이 있으십니까?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아, 그래요.”


카일은 왕국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과, 그들이 용사를 찾아다닌다는 것을 블레이크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블레이크 씨 같은 분이 도와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은데요.”

“전쟁... 그렇군요.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다니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블레이크는 신중하게 답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지금 확답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군요. 지금 저는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라면 모르겠습니다만...”

“블레이크 씨의 옛 친구가 리프트슈어 근처에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린이었다. 블레이크가 그녀를 돌아보자 린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당초 여기까지 온 건 블레이크 씨를 찾아서가 맞지만, 이제는 저도 리프트슈어에 찾아가 볼 이유가 생겼거든요. 저희와 헤어져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시라면, 리프트슈어까지 같이 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과연, 그렇군요.”


블레이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인도하심일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리프트슈어까지 함께하도록 하죠.”

“환영이에요.”


린이 생긋 웃었다.


작가의말

이를테면 게임에서, 성직자가 ‘치유마법’을 쓴다는 게 좀 희한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만, 블레이크 마치 씨의 경우에는 실제로 ‘치유마법’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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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들은 결코 (5) 24.02.18 1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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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3. 웨인스틴 (5) 23.12.03 14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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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 그리고 한 마리 (8) 23.09.10 24 2 12쪽
17 2. 그리고 한 마리 (7) 23.09.03 2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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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 그리고 한 마리 (5) 23.08.13 20 2 12쪽
14 2. 그리고 한 마리 (4) 23.08.06 2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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