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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크 님의 서재입니다.

사랑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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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크
작품등록일 :
2018.10.16 20:26
최근연재일 :
2018.11.15 21:0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827
추천수 :
0
글자수 :
55,019

작성
18.11.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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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늘바라기(3)

DUMMY

“내가 다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언가 얻고 싶으면, 먼저 그걸 얻는데 성공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게 기본이라고 본다. 아버지도 유명한 음식점 많이 찾아가서 배웠으니까”

“조언을 구한다구요?”


병민이 어린시절,

그의 아버지는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늦은 밤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오곤 하신 기억이 있다.


고학년이 될 무렵,

그 아버지께선 양복을 벗곤

간장냄새와 족발냄새 가득한 조끼를 걸치곤

집에서 돼지 앞다리를 삶으셨다.


무언가 얻고 싶은게 있다면,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르고 있었다.

왜 이걸 여기 와서 알았을까?

파랑새를 찾아 밖을 헤매다 돌아왔더니

집 앞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동화를 들은 기분이었다.


문제는, 휴식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족발집은 장사가 다시 시작됐다.

원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얼마 전 방송에 나간 덕분에

이젠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아버지랑 얘기할 수 있는게 기적일 만큼


**


“수고 많았다”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장사를 마치고 집을 향하셨다.

평소같으면 아버지도 남아서

다음날 장사를 준비하시곤 했지만,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부자간에 시간을 보내라며

먼저 일어나라 하셨고,

아버지도 딱히 반대하진 않으셨다.


마을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이맘때 장사를 정리하고 나오신 시장 동료분들을 많이 만난다.


“어라? 병민이아니니? 오랜만이네~”

“어 재하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병민이 아버지의 가게 윗층에 있는

커튼가게 사장님이다.

어머니 또래랑 비슷하고,

아버지가 장사를 시작하시고 4,5년 후부터

장사를 하신 만큼

병민이의 가족과도 꽤나 친했다.

물론 무뚝뚝한 아버지와는 어색했고,

일을 도우러 나온 병민이나

병민의 어머니와 친한거였지만,

사족으로 사장님의 아들 재하는

병민의 중학교 후배이기도 했다.


“이야~ 너 멋있어졌다~ 요즘 잘 지냈어? 왜 이렇게 잘 안 내려와?”

“뭐 그냥 공부하고 뭐 이거 저거 하다 보니까 정신이 없네요···”

“그래? 야~ 멋있어졌네~”


병민이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들이

으래 그렇듯,

호들갑스럽게 물어보시신다.


“어이구~ 장가가도 되겠네~ 어디 만나는 아가씨는 있어?”

“에이 아가씨라뇨···”


순간 머릿속에서

예나의 동그란 눈과 하얀 피부,

그리고 질끈 묶어올린 포니테일이 생각난다.

하지만, 말을 꺼내진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정도로 말을 하고 넘어가면 되지만,

말이란 게 무서워서

한번 잘못꺼내면 겉잡을 수 없이

퍼지는 바람에 곤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구~ 왜없어~? 이렇게 멋있는데?”

“그러게요.. 하하하하···.”


재하 어머니는 반가운지,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병민에게 한마디라도 더 걸어오신다.

대부분 시장 이야기라 와 닿진 않았지만

최근 재하도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쉽지 않아서

여기서 어머니 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재하가요?”

“응~ 우리 가게 일손이 부족해서 고생했는데 재하랑 같이하니까 좋지~”

“잘 된건가요......”


병민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장사를 했던 만큼

가족과 함께 일을 하는게

어떤 기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우리 재하도 어디서 좋은 아가씨좀 만나서 장가가면 참 좋을텐데~ 병민이는 언제 졸업하니?”

“아....... 저는 이번학기가 마지막이에요 재하는 금방 했네요?”

“응, 그 녀석은 3년만 다녔잖아~”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재하는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하고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를

도와주고 있다.


그럴 바에 차라리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가게에서 일을 도왔더라면

지금쯤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전공도 커튼과 딱히 관계가 있진

않다고 들은 것 같다.

대학을 나와도 뾰족한 수가 없는

요즘 청년들의 모습 같아서

괜히 마음 한 켠이 쓰라리다.


“병민이 아버지~ 아드님이 잘~ 커서 듬직하시겠어요~”

“듬직하긴 무슨......”


저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 반응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시다.


“우리 재하는 애가 뺀질 거려서 큰일이야~ 지난주에는 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옛날친구의 이야기를

적당히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 드리며 받아준다.

그래도 아들 이야기를

자꾸 하시는 걸 보니

자식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만으로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


“엄마 그러고 보니까”

“응?”


집에 도착한 병민은

마루에 앉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직 9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아버지는 내일도 아침 일찍

가게에 나가신다며 먼저 주무셨다


뭐, 이건 병민이가 어릴적부터

죽 이어져 오신 습관이라

특별할 건 없었지만,

불야성이라고 불리는 서울생활에

충분히 익숙해진 병민에게

10시는 잠들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 둔 게 언제야?”


빨간 사과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차분하게 깎으면서

맞은편에 앉아 TV를 보시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너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그때?”

“엉, 너 남자 담임선생님이던 때”

“아, 그럼 5학년이다.”


흰 머리에 무기력한 태도로

학생들에게 촌지를 요구하던 선생이었다.

어머니가 촌지를 주셨는지 어땠는지

병민은 잘 모르지만,

가끔 동창들을 만나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오는 기억이 있다

어지간히 안 좋은 교사였으면

어머니께서 다 기억 하시나 싶다.


“아버지 일 그만둘 땐 어떤 기분이었어?”

“어휴, 말도 마라”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옷에서

아버지의 회사 명함을 본 기억이 있다.

팩스 관련회사에서 일 하셨던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언젠가 한번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하시는 거야”

“왜?”

“팩스는 미래가 없다나 뭐라나......”


아버지는 분명 병민이 초등학교 졸업할 쯤

직장생활을 그만두셨다.

한동안은 집에서 족발을 만든다고

집안을 간장냄새로 도배하시더니,

좀 더 연구를 하시겠다며

몇 날 몇 일 동안 집을 비우곤 하셨다.

그렇다면 생활비는

전부 어머니에게 맡기셨다는 이야긴데


“아빠 퇴직금이랑 집 크기 줄여서 나온 돈을 합쳐서 아버지 가게를 냈지”


병민의 집은 초등학교 4학년때

시내에서 좀더 떨어진 집으로 이사를 갔다.

어린 마음에 학교 가는 길이 길어져서

꽤나 불평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저기서 일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 뒷바라지도 하고, 너 학원도 보내고 이랬지”


당시 어머니가 학습지 선생님부터

요구르트 아줌마나 식당일 등등 일을 하시느라

바쁘시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땐

몇날 몇일이고 안 들어오시곤 했으니

가정은 어머니가 떠 맡으신 건

당연한 처사였다.


“너도 기억나지 않냐? 니 아버지 족발 만든다고 집안 죄다 간장냄새 배게 만들었던 거?”

“그때 정말 족발은 토 나오게 먹었죠”


그 당시 아버지의 스케줄은

몇 주 동안 지방에 내려가 계시다

어느 순간이 집에 올라와


‘이번엔 새로운 재료를 써봤어!’

혹은

‘이번엔 새로운 양념을 준비해 봤어’

라고 하시며 족발을 그 자리에서 삶곤 하셨다.

병민이와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만든 족발은

다 맛있었지만, 아버지는 항상

‘이 맛이 아닌 거 같아···’ 라며

혼자 중얼거리셨다.

그렇게 몇 달을 만드시다가,

시장에 가게를 내신 이후론,

가게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몇날 몇일을 족발 연구에만 매달리셨다


“너네 아빠만큼 족발 외길인생도 없을꺼다”

“그러게···”

“엄마랑 연애할때도 족발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설마 데이트할 때 거기 가서 드셨습니까?”


어머니는 말해서 뭣하냐는 표정으로 병민이를 쳐다보았다.


“진짜구나”

“그럼······”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가게를 차려도 한동안은 손님이 없었어, 그래서 같이 전단지도 돌리고 했던 건 기억 나지?”

“응”


그맘때 병민이는 철이 좀 들어서인지,

아버지와 함께 전단지를 돌리곤 했다.

아버지는 괜찮다며 들어가라 하셨지만

병민이는 돕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때 같이 돌아다니면서

시장 상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 성격에 어떻게 그렇게 자주 돌리셨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말이다······ 근데말이다 병민아”

“왜요?”

“너가 같이 돌리자고 안 했으면 니 아버지는 끝까지 못 돌리셨을 거야”


평소 무뚝뚝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을 못 거시는

병민의 아버지인 만큼

전단지 돌리는 건 꽤나 고역이셨을 거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매일 병민과 함께 시내로, 시장 여기저기

수백장의 전단지를 다 돌릴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끝나면 같이 붕어빵을 먹으면서

가게로 돌아와

아버지는 저녁장사를 준비하시고

병민은 학원을 가거나

집에 가서 숙제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힘들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이었다


“너랑 같이 있으니까 얼굴에 철판깔고 하셨지, 아니었으면 했겠니?”

“그런가?”


아리송한 표정의 병민,

어머니는 아련한 옛날 이야기를 추억하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어가셨다.


“너네 아버지가 회사 그만두기 석달 전에 나보고 그러더라”

“뭐라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장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셨다.


“언젠가 한번 출장 갔다가 돌아오시더니 나보고 그러는 거야, 회사 사정도 어렵고 보아 하니 오래 갈만한 회사도 아니라며······”


아까도 말했듯이

병민의 아버지는 팩스와 관련된 일을 했다.

당시 아버지의 회사가 가정용 팩스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다.

문제는 당시 인터넷이 조금씩 보급되었기에

아버지는 팩시밀리에 한계를 보곤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을 예상하셨다.


“너 나이도 드는데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까, 조금 더 안정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면서 나한테 ‘꼭 성공할 테니까 1년만 나를 믿어줘’ 라고 말하던데 안 들어줄 수가 없더라고”

“아버지가 그런말을?”

“대단하시지 않냐? 너네 아버지?”

“그러게요......”


아버지의 각오가 얼마나 대단한지

병민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음식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본 사람이니까.


“아버지가 회사 그만두시고 바로 IMF터지면서 회사들 줄줄히 망하고 장난도 아니었지, 그때 그렇게 안 하셨으면 지금쯤 어찌됐겠니?”

“아마 비슷하게 정리해고 당하시고......”


주변에 IMF를 기점으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힘들게 지내는 친구들이 많은 병민에게,

조금은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였다.


“그때 아버지 도와서 나도 이거 저거 하고 나니까, 지금처럼 니 아버지 당당하게 성공해도 난 큰소리 치고 사는 거 아니겠냐”

“엄마가 아버지한테 큰소리 잘 치긴 하지”


어려운 시간을 함께 힘이 되어준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항상 정성을 다 했다.


“그래도 그땐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다 좋은 추억이 된 거 같다 싶네?”

“추억이라......”


두 분이 함께 장사 하시면서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신 걸

봤던 기억이 난다.


“만약 느 아버지가 처음부터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다면, 지금처럼 좋은 아빠였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그러십니까...?”


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한 돈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길

그리고

어쨋튼 충분한 돈을 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소리 일수도 있지만

병민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모든걸 갖추고 시작하는 사랑은 없다

찾으려 하면 찾을수록 더 목마를 뿐이다.

시작하면서 갖춰가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인 말은 병민에게

깊게 와 닿진 못했다.

왜냐면 나는


아직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취준생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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