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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크 님의 서재입니다.

사랑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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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모크
작품등록일 :
2018.10.16 20:26
최근연재일 :
2018.11.15 21:0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829
추천수 :
0
글자수 :
55,019

작성
18.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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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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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아프고 화나고 미안해(2)

DUMMY

그날 들려주지 않았던 말은 지금도

이 가슴속에서 잠들어 있네

그때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그대를 잃지 않아도 됐으련만

It’s too late

먼 옛날의 Nostalgia


-ZARD, 遠い日のNostalgia(먼 옛날의 향수)



‘밤길 조심해라’ 라는 말이 있다.

요즘도 잘 쓰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어두운 밤 혼자 걸을 땐

조심스럽고 무섭다는 뜻이겠지

예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집 앞길은 늦은 밤 여자 혼자 걷기엔

‘밤길 조심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만큼

꽤나 무서운 거리였다.


“그래서 1등 당첨금이 얼마야?”


서로의 번호를 써준 후

예나는 편의점에서 병민에게 물어본다.


“하루에 3만 원씩 100년”

“어휴”


이딴 개소리에 이젠 지쳤다

평소에 이 정도 소리는 자주 했지만

지금만큼은 진심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눈치가 없는 녀석은 아니니까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 던지는 예나

평소에도 의미 없는 소리는 자주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녀석에

쓸데없는 소리를 들어주기 힘들다

평소에도 할 말은 꼬박꼬박 하는 녀석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왜 안 하는 걸까


“누나 어디가~”


차갑게 한마디 뱉고

무표정하게 갈 길 가는 예나를 향해 물어본다.


“왜!”

“아니 그냥······.”

“갈 거야”


홱 하고 돌아서더니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저······. 누나”

“야”

“응?”

“말 붙이지 마라 짜증 나니까”


고개를 돌려 차갑게 내뱉고

다시 갈 길을 간다

병민은 예나의 눈치를 보면서

뒤를 졸졸 따라가기 시작했다.


‘밤길 조심해라’ 라는 말이 있다.

요즘도 잘 쓰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어두운 밤 혼자 걸을 땐

조심스럽고 무섭다는 뜻이겠지

예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집 앞길은 늦은 밤 여자 혼자 걷기엔

‘밤길 조심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을 만큼

꽤 무서운 거리였다.


가는 길엔 언덕이 많아 조금만 걷다 보면

웬만큼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엔 길 건너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집값이 싼 이 동네에

몰리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다양한 언어로 헉헉거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범죄자는 아니지만

늦은 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처음 듣는 외국어로 중얼거리는 상황은

여자 혼자 걷기에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일주일에 몇 번씩은

동내 구석구석에서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다 깜빡거리거나

아예 켜지지도 않는 가로등도 있어

스산한 분위기마저 연출했다.


예나도 병민이도

몇 번이나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었지만,

언제나 대답은

‘신속히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뿐이었다.


요약하면

‘늦은 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어두운 거리’


이었다.


“다 왔네”

“어”


이 전에 바래다줄 때면

둘이서 재잘재잘 떠들면서 걸어왔기에

잘 몰랐지만, 아무 말 없이 걸어오다 보니

참 길고 험한 길이었다.


“간다”

“응 누나”


인사도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매정할 정도로 돌아서 집을 향했다

왜냐면

계속 보고 있다간 눈물이 흐를 것 같으니까


“따르르르릉~”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도중,

동생 민성이 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은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일단 받았다


“왜?”

“누나~ 어디야?”

“응 지금 집 앞이야”

“아 진짜? 잘됐다! 피자 시켜먹자!!”


발끈

예나의 미간이 구겨지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야!!!!”


소리를 빽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문을 걷어차고 집에 들어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동생의 방에 들어갔다.


“응? 누나 요 앞이었네?”

“야! 김민성!”

“응? 피자는?”




예나는 동생의 안면에 가방을 집어 던지고 욕을 내뱉었다


“피자?? 넌 무슨 눈치가 그렇게 없냐!!!”

“아... 뭔 소리야!!”

“닥쳐!! 닥치라고!!!”

“왜 그래 갑자기~”

“아우 이게 진짜!”


예나는 밑도 끝도 없이 동생을 두들겨 팼다.

병민이 만큼이나 눈치가 없는 녀석이다


“누... 누나 왜 그래? 괜찮아?”

“아파...”

“응??”

“아퍼... 아프다고! 아프다고!!!”


자기가 두들겨 패더니

자기가 아프다고 한다.

동생 민성이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저... 저기 누나?”

“시끄러!”


예나는 멋쩍었는지고개를 숙이고 민성이의 가슴팍에

주먹질을 한다.

숙인 그녀의 고개 밑에는

눈물이 고이는 기분이 들었다.


“야......”

“응?”

“나 힘들어”


신음 소리만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동생에게 한마디 한 다음

두 팔을 뻗어 동생의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쾅!


“엌!”


이마를 당겨 자기 정수리에 찍어

동생에게 박치기를 날리고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곤 그걸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이걸로 사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동생이

이마를 부여잡고 드러눕는걸 확인한 후

자기 방에 들어가

눈물을 닦았다.


“바보......”


서러움이 온몸을 덮어온다

만약 내가 그리고

만약 이 녀석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에서 만났다면

그땐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띠띠 띠띠 띠띠


“하.···..”


긴 한숨을 쉬며 핸드폰 알람을 끈다.

어제 밤 병민이에게 병민이 당하고,

집에 와서는 눈치 없이 피자를 사달라는

동생에게 박치기를 먹여 준다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휴······”


한숨이 한 번 더 나온다.

핸드폰을 들어 카톡을 켠다

민망함이 쏟아져 머리를 긁적였다.

어젯밤 친구들한테 한 하소연이

너무 민망했다.

친구들이 하나 둘 잠이 들자,

혼자서 괜히 마음이 착잡해

웹서핑을 시작했다.


처음엔 네이버에


‘남자가 로또 사로 가자고 하는 이유’


라고 검색했고, 당연히 아무것도 안 나왔다.

왜 로또를 사러 가자고 했을까?

이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설마 이 녀석이 만약 나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친한 누나동생으로만 지내고 싶다면?

내가 지금 돈도 없고 집도 힘들다고


“누나 집 힘들지? 그러니까 로또나 사~”


라고 나를 약 올린 걸까?

원래도 나 약을 올리는 거 좋아하잖아?


그럴 녀석이 아니라는 정도는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예나의 마음은

그걸 반박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네이버 검색창에는


‘나쁜 자식 손병민’

‘로또 사자는 말은 고백이 될 수 있을까?’

‘남자가 평소보다 멋을 부리고 오는 이유’


따위에 의미 없는 문장들을 검색해 봤다.

뭔가가 나올 리가 없지만,

이런 거라도 안 하면 도저히 마음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분노, 민망, 당황, 걱정, 오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지나간 후에는

나름대로 답이 나왔다


‘나는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다.’

‘그 녀석도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다.’


사랑엔 자격도, 조건도 필요 없다

하지만

학생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라는 정글에 나온 두 남녀는

단지


‘서로가 좋아서’


라는 이유만으로 시작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차라리


‘고백하고 나면 친구도 안 될 거 같아서’


따위에 진부한 이유였다면

이렇게 비참하지도 무력하지도 않았겠지


"그러고 보니 몇 시야 지금?”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시계를 봤다.

7시

이르다면 이르고, 늦다면 늦은 시간이다.

우선 빨리 씻고, 동생 민성이에게

뭐라도 먹이고 학교에 보내야겠다.

어머니가 입원하신 이후,

한동안 동생과 예나 둘만 살고 있고,

수능이 50일 앞으로 다가온 만큼

조금은 챙겨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어머니가 부탁한 것도 있었고.


“야 김민성~ 일어나 어서!!”


학교에서 집까지 가까워서인지,

동생 민성이는 8시쯤부터

대충 준비하고 학교까지 뛰어가곤 했다.

교복만 입으면 외출준비가 끝나는

남자 고등학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누나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계란후라이를 굽고 토스트를

먹이려는 예나에게

교복을 입고 나갈 준비를 마친 동생이

어제 밤에 있던 일을 물어봤다.



“무슨 일?”

“아니 어제 밤에”


동생의 이마엔 볼록하게 혹이 나 있었다.

하긴, 평소처럼 피자 사달라고 졸랐다가

봉변을 당했으니 궁금할 만도 하다.


“밤늦게까지 전화하는 것 같던데...”


식탁에 앉아 토스트에 잼을 바르며

예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무슨 일 있었어? 얘기하면 들어는 줄게”

“하......”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일을 나가셔서

집을 자주 비우시기도 했고,

나이도 8살이나 어리다 보니

예나는 동생을 자주 돌보아주곤 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엄마처럼

깨우고 밥도 먹이고 있었으니까.


“민성아...”

“왜?”


어제 밤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엄청나게 두들겨 맞아 이마에 혹까지 난 애가

누나를 걱정하는걸 보니 왠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말은 어제 들었던 말이었다.

심지어, 화나게 했던


“지난주에 9월 모의고사...”

“누나 나 먼저 갈게~”


성적 이야기를 하자 놀라 도망치는 민성

지난주에 혼자 풀이 죽어있어 혹시 했는데

성적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곧 있으면 수능인데 저 녀석 어떡하지?


‘띵동’


핸드폰 알람 소리를 듣는다.

내가 지금 남 걱정을 할 때는 아니다

문자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일성컴패니 인사과입니다.

지원자가 많아 김예나씨와

함께 일하지 못한 아쉬움을

문자로 대신 전해 드립니다.


100글자도 되지 않는 간단한 문자

하지만, 예나를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떨어진 회사가 여기가 처음은 아닌 만큼

익숙해 질 만도 한데 아픔만큼은 솔직하다.


“망한 회사 직원은 역시 안 써주는 건가......”


혼자 중얼거린다.

전에 있던 회사가 어려워 졌을 때

같이 일하던 선배들이 저 얘기를 해주며,

퇴사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일하는 순간은 꽤 즐거웠고,

무엇보다 동료들을 뒤로 하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고 싶진 않았다.

억울한 건 아니지만,

그 시절로 인해 생긴 금전적 고통이나

막혀버린 진로를 생각 해 보면,

눈물이 핑 돌만큼 서럽다


“나이는 먹을 게 못 되는 거 같다......”


혼자 중얼거린다.

신입으로 다시 시작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어중간한 학점과 자격증, 어학점수

신입으로 시작하긴 부담스러운 나이까지

나이야 경력으로 어떻게 한다고 쳐도

구직활동에 필요한 비용

그리고 구직활동에 따라 소모되는

생활비까지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걷고 싶은 거리를 걷고

함께 먹고 싶은걸 먹으러 가고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상상을 할

자격이 나에게 있나 돌이켜 본다


사랑에 자격이 어디 있겠냐만

왠지 나에겐 사치스러워서

혼자 남은 집에서 먹는 빵이

눈물에 젖은 기분이 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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