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재입니다.

이세계를 걷는 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김잭키
작품등록일 :
2018.04.09 11:57
최근연재일 :
2018.07.09 1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2,663
추천수 :
208
글자수 :
121,560

작성
18.04.17 19:00
조회
380
추천
7
글자
8쪽

9화

DUMMY

한동안 몸의 주인이 했던 일에 충실하며 살아가느라 잊어버렸었다. 충복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망설임 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길리안.”




······정적이 흘렀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길리안!”




다시 한 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적이 흘렀다. 고작 수초에 불과한 정적이었다. 나는 내 심장이 이토록 빨리 뛸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수초 간의 정적은 불안의 해소와 안도가 찾아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차원 너머에 있는 존재가 드디어 목소리를 들었는지 비어있는 공간에 흐릿한 영체가 서서히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영체의 상태로 길리안이 모습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폐하, 신이 늦었나이다.”




“아니다, 오랜만에 부르는구나.”




그리 말하며 쳐다본 길리안의 모습은 무언가 이상했다. 복장은 평소와 같았으나, 이전과 다르게 오늘은 투구를 눌러 쓴 채로 나타났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투구의 사이로 어깨까지 내려온 겉에 보이는 찬란한 황금빛을 뿜던 머리카락이 빛을 잃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동안 일어나지 않았던 변고에 놀란 내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본 길리안은 마치 자신의 변화를 들킨 것이 죽을 죄라도 지은 것처럼 투구에 숨어 죄책감에 찌든 눈동자를 아래로 떨구었다.




“길리안, 그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걱정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그는 힘없이 느릿느릿 움직여 바닥에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하소서. 이 불충한 신하가 폐하의 명을 지키지 못했나이다.”




답답함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두들겼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그의 모습에 답답함이 폭발해 돌발적으로 나온 행동이지만,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묻고 싶은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 재차 독촉했다.




“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보다 머리색은 왜 변했느냐?”




잠깐 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국이······분열됐습니다.”




“뭐···라고?”




한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저 멍청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분열? 내 제국이? 그럴 수는 없는데, 그 오만한 신들조차 넘보지 못하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분열이라니, 감히 누가?




오만가지의 생각이 후두부를 강타해 경직된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미칠 듯한 분노가 차오르자 사고 회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납득할 수 없다. 그대가 있는데 누가 반란을 도모한다는 말이냐?”




나는 길리안을 향해 질책을 던졌다.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당시대의 나와 비견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만, 임명된 계급만 기사일 뿐 그의 실력은 서부 대륙의 실질적인 2인자로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강자 중의 강자이며, 실권 또한 장악한 실세였다.




서슬퍼런 질책에 그는 그저 죽여달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고했다.




“폐하께서 잠에 빠지신지 2년 째 되는 날, 폐하의 부재를 틈타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자는 무리가 멸망한 칼란 왕국의 후손들과 손을 잡고 황제의 자리를 탐했나이다.”




아아, 고작 한 단어가 이리도 나를 짜증나게 만들 수 있다니, 그것들의 존재는 실로 대단하다. 망할 '칼란' 놈들, 그들이 참전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 역시 힘에 의한 통치는 한계가 있는 법인가.




칼란의 재기와 스스로의 통치 방식에 대해 자책하고 있던 중, 문득 그가 했던 말에서 의아한 부분이 떠올랐다.




“길리안, 내가 잠에 빠진지 얼마나 지났다고 했지?”




“정확하게 800일이 지났나이다.”




"800일 이라고?"




그의 대답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세계에서 눈을 뜨고 지금까지 지낸 시간은 고작해야 세달 정도였지만, 그에 반해 와이즈 대륙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정신이 멍해졌다.




“황제시여?”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정신을 차리고 일단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명령을 그에게 전달했다.




“가서 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라.”




“명 받들겠나이다.”




길리안의 영체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거리에서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공을 보고 떠든다느니, 멀쩡한 청년이 미쳤다느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런, 생각해보니 저들의 눈에는 길리안이 보이지 않으니까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미친 사람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높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고 곧장 저택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쉴 새 없이 달린 끝에, 도심을 넘어서 숲의 길에 올라서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몇 분 전만해도 머리를 울리고, 전신이 떨릴 정도로 침통했던 기분과 달리 집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평안하게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편안한 기분에 위화감이 들었다. 지금 느끼는 이것은 황제의 감정인가, 이상위의 감정인가. 그보다 지금의 나는 대체 어느 쪽에 서있는 것인가.




사라지지 않는 의문을 머리에 담은 채로 걷다보니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사는 내가 오는 것을 기다렸는지 정중한 인사를 보냈다. 어째서 일까, 몇 달간의 생활로 느낀 것은 그는 우리에게 단순히 고용인을 넘어서 가족과 같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돈으로 인한 계약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충심, 마치 길리안을 연상시키는 남자였다.




집사와 인사를 건네받는 소리를 듣고 안쪽의 방에 있던 노파가 손에 책을 든 상태로 나를 맞이했다.




“아, 상위 왔구나.”




늘 한결같은 미소로 맡이 해주는 그녀는 내 기억이 온전치 않음을 알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한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던 노파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니?”




“아니에요, 그냥 최근에 생각이 조금 많아져서······들어가서 쉴게요.”




생각을 접고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가던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상위야.”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거라.”




“예,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제는 익숙해진 책상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화면이 켜지자, 담당자에게 넘긴 원고지를 대신해 컴퓨터 문서로 적어둔 파일을 열어 내 손으로 직접 쓴 ‘바라스 제국사’를 읽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황제의 이야기가 아닌,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문장으로 적어 넣은 내용을 읽으며 길리안과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정확하게 800일, 2년이라고 했었지······.”




중얼거리며 문서에 찾을 내용을 입력하자, 컴퓨터는 순식간에 기억과 동일한 문장이 있는 페이지로 안내했다.




『황제가 잠든 지 2년이 지나고, 바라스 제국은 두 개의 파로 나뉘어 대립을 시작했다.』




그의 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우연의 일치 일수도 있지만,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했다. 전원을 끄고 원고지를 펼쳐 펜을 들었다.




오늘 있었던 길리안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한 가지, 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는 일을 감행하기 위해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원고지를 펼쳤다.




‘만에 하나, 이 망할 소설이 와이즈 대륙에서 현실로 일어난다면······이것을 잘만 이용한다면 돌아갈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62 에스티
    작성일
    18.04.22 01:08
    No. 1

    쓰는대로 이루어진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글넘기
    작성일
    18.07.23 21:20
    No. 2

    주인공이 글을 쓰면, 내용들이 실제로 자기네 땅에서 현실로 벌어질수있다는 추리를 분명히 하고 있었음에도 설마 아닐거야라는 추측만으로 너무 무서운 내용들을 썼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글넘기
    작성일
    18.07.23 21:23
    No. 3

    저는 처음 쓸때부터 만약 주인공 자신이 쓴글대로 이루어진다면 귀환을 위한 내용을 쓰려는 작정으루하고 그렇게 시작한줄 알았는데... 일이 벌어지고야 나서 그런 생각을 하는걸보니 애초에 그렇게 생각지도 않았네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를 걷는 황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19화 18.05.02 243 4 7쪽
18 18화 18.05.01 199 6 7쪽
17 17화 18.04.30 244 7 7쪽
16 16화 18.04.27 249 4 7쪽
15 15화 18.04.26 264 6 7쪽
14 14화 18.04.25 270 5 7쪽
13 13화 18.04.24 289 4 7쪽
12 12화 18.04.23 313 7 7쪽
11 11화 +2 18.04.19 388 6 8쪽
10 10화 18.04.18 374 5 8쪽
» 9화 +3 18.04.17 381 7 8쪽
8 8화 18.04.16 398 7 7쪽
7 7화 +1 18.04.13 417 6 7쪽
6 6화 +1 18.04.12 480 8 7쪽
5 5화 18.04.11 493 7 7쪽
4 4화 18.04.10 603 6 8쪽
3 3화 18.04.09 634 7 7쪽
2 2화 18.04.09 758 11 7쪽
1 1화 +2 18.04.09 1,098 1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