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방개 님의 서재입니다.

재앙급 빌런이 F급 헌터로 돌아왔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글방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37
최근연재일 :
2022.06.23 20:1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15,483
추천수 :
347
글자수 :
235,874

작성
22.06.14 20:10
조회
239
추천
5
글자
12쪽

안티고네와 여왕벌(1)

DUMMY

블랙 피자도우의 작달만한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코인을 전송하는지 별안간 상태 창이 떴는데 어?

숫자 3 뒤에 찍힌 0의 개수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


“3천······만?”


도심의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돈!

내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였다.


표정 변화가 꽤 드라마틱했던지 무슨 일이냐며 약팔이가 넌지시 물었다.

대답 대신, 거래 완료된 상태 창을 허공에 띄웠다.

약팔이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피, 피, 피자! 이 돈 뭐야? 어디서 난 거야!”

“그건 알 필요 없고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통통하게 살찐 블랙 피자도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오류 씨하고 같이 사, 사, 살고 싶어요.”

“어?”

“저게 전 재산이라서 갈 데가 없거든요. 어, 어쩔래요? 콜?”


어이가 없어서 우물쭈물 하는데 약팔이가 먼저 대답했다.

두 손까지 번쩍 치켜들며.


“콜! 무조건 콜!”


내 팔을 꽉 부여잡고는 기도하듯 그가 말했다.


“오류 씨. 설마 거절할 건 아니지?”

“······그게.”

“거절하지 마, 부탁할게. 저 돈이면 우리 4명, 생업 걱정 없이 길드 운영에 올인 할 수 있어.”


약팔이의 의견에 블랙 피자도우도 동조했다.

자신의 조건만 들어준다면 3천만 코인을 어디에 쓰든 관여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5백만 코인을 뺀 나머지 금액은 자, 자, 자유 출금이 가능하게 하면 어떨까요?”

“자유 출금?”

“이유 불문. 아무 때나 필요하면 추, 추, 출금할 수 있게요.”


결국 그러기로 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속마음들이 휘갈긴 글씨처럼 마구 흘러들었다.


약팔이는 계속 속으로 환호를 질러댔다.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일이 술술 풀리니 기분이 꽤 좋은 모양.


의외였던 건, 겉으로는 무덤덤하니 차갑게만 있던 안티고네가 사실은 진짜 기뻐하고 있다는 점.

아빠의 약값 걱정을 덜게 되었다는 안도감, 고마움, 그런 감정들이 느껴졌다.


블랙 피자도우는 글쎄······.

그녀의 속마음을 더 자세히 들어보려고 집중하는 찰나, 약팔이가 내 집중력을 흩트리며 말을 걸었다.


“이참에 길드 사무실 하나 냅시다, 오류 씨.”

“그러세요, 어디가 좋겠습니까? 오피스텔로 할까요? 아니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단독주택은 어때? 천만 코인이면 도심 외곽에 30평짜리는 구할 거야. 방 하나는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는 뭐······. 단독주택 정도면 여기보다야 생활하기 훨씬 좋지.”

“네?”

“아무래도 옥탑방은 좁지 않겠어?”


약팔이가 멋쩍게 웃었다.


“혼자 살 것도 아니고, 응?”


헤헤, 하는 웃음소리가 그에게서 삐져나왔다.

순간, 안티고네가 속으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 씨.

― 바.


아주 선명하게.


※※※

※※※

※※※


급한 성격만큼이나 약팔이는 행동이 빨랐다.

길드 사무실 겸 아지트로 쓸 단독주택을 구하러 뛰쳐나갔다.


“다녀올게!”

“천천히 찾아도 됩니다. 급하지는 않으니까요.”

“아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약팔이가 떠난 후 안티고네는 조용히 옥탑방을 치웠다.

도와주겠다고 하였으나 성가시니 나가있으라는 식의 시선을 내비쳤다.


“그래도 되겠어?”

“필요 없으니까 쟤나 치워요.”


그녀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김없이 블랙 피자도우가 있었다.

제일 철없고 여유로운 사람답게 그녀는 쉴 자리부터 만드는 중이었다.

TV를 틀고는 꼭 제집인양 모로 누웠다.


“재미있는 게 하, 하, 하나도 없네.”


게으름을 피우는 블랙 피자도우가 거슬렸던지 안티고네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비켜.”

“치, 귀찮아.”

“죽을래?”

“조, 좀, 놔두면 안돼요? 살 쪄야 한단 말예요.”


결국 안티고네가 미는 청소기 동선을 피해 블랙 피자도우가 굴러다니는 걸로 합의를 본건가?

툭툭 치면 데굴데굴 구르는 걸 반복하는 그들이었다.


“뭐, 저 정도면 괜찮네, 생각보다.”


어찌 보면 이가 하나도 안 맞는 톱니바퀴들.

하지만 개성 강한 톱니바퀴들도 서로 묘하게 들어맞으며 돌아갈 때가 있듯, 우리가 딱 그랬다.

안티고네가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려 나간 사이,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 며칠 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 S레벨 헌터 연쇄살인사건.

―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그 사건을 김정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저 뉴스가 블랙 피자도우의 흥미를 끌었다.


“와, S레벨을 둘이나 죽이다니. 엄청난 실력자겠다, 그쵸? 오류 씨?”

“어? 어. 그렇겠지.”

“근데 이상하네?”

“뭐가?”

“S레벨을 주, 주, 죽일 정도면 최소한 동급 레벨의 헌터라는 뜻이잖아요. 하, 하, 한국에 S레벨 헌터가 100명 쯤 있으니까 전수검사 하면 범인이 바로 나올 텐데?”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이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제, 제 생각에는요. 범인은요, S레벨 헌터가 아니에요.”

“······왜?”

“저런 겨, 겨, 경우에는 제일 먼저 S레벨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요. 바로 들킬 범행을 저지를 사람은 없어요. 저건요, 숨어있는 실력자가 있는 거예요. 이를테면.”

“이를테면?”


블랙 피자도우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오류 씨, 같은 남자?”


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름 정연한 논리 끝에 저 한 끗의 비약이라니.

뭐지?


― 김정수 기자입니다.

― 저는 현재 여왕벌이 이끄는 벌통 길드 앞에 나와 있습니다.

― 이번 사건의 조사담당자로 알려진 여왕벌은 S레벨 헌터 우라질과 함께······.


하릴없이 뒤통수나 긁는 내게,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돌아온 안티고네가 말을 걸었다.


“오류 씨.”

“응?”

“잠시 나갔다 와도 될까요? 저녁 먹기 전에는 올게요.”

“그야 알아서 하면 되지. 근데 어디 가려고?”

“······별일 아녜요.”


별일 아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알아챘다.

별일이 있구나, 하고.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눈빛이며 기운이 특히 그랬다.


“안티고네.”

“네?”

“여왕벌한테 가려고? 길드 탈퇴하러.”

“······금방 끝내고 올게요.”


저 말은 거짓말이었다.

대형 길드일수록 가입보다 탈퇴가 더 어렵다는 건 상식 중의 상식.

여왕벌이 이끄는 벌통 길드 정도라면, 모르긴 해도 팔 한쪽 정도는 걸어야 할 터.


“같이 가줄까?”

“됐어요, 내 일이에요.”


여전히 성가시다는 투로 차갑게 말하는 그녀였다.


※※※

※※※

※※※


여왕벌.

S레벨 한국 순위 11위에 오른 히로인.


그녀가 이끄는 벌통 길드의 사옥은 건물 외양부터 아주 특이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벌통을 반으로 잘라 뒤집어둔 모양을 형상화했는데 여자 가슴과 흡사했다.

예술적 건축 마법의 대가인 블랙 빌딩의 최신 작품이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나름 명소였다.


아무튼.

사옥의 중앙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여왕벌은 S레벨 헌터 살인사건 때문에 불철주야······, 농땡이 중이었다.


“귀찮아, 증말. 이딴 걸 왜 나한테 맡기는 거야.”


벽면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과 천정까지 특수거울로 된 집무실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투덜댔다.


“어머머,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가 다 상했잖아.”


약속대로라면 S레벨 헌터 우라질과 만나 사건 현장 조사를 해야 했으나 꼼짝도 하기 싫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필이면 우라질이야.”


우락부락하기나 하지 멋대가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를 떠올리자 페로몬 수치가 뚝, 떨어졌다.

재미도 없고 해서 템튜브를 뒤적였다.

실시간 인기 순위 1위에 오른 잣밥의 영상 <F레벨이 F레벨 했다고?>가 눈길을 끌었다.


“이거나 볼까?”


집무실 중앙에 동영상을 띄우자 다소 흥분한 템튜버 잣밥이 나타났다.


― 잣밥들 어서 오고!

― 구인류에게 최고의 욕은 ‘퍽큐’였습니다.

― 대 숙명의 시대, 현인류에게 최고의 욕은 뭘까요? 네, 그렇습니다. ‘하, 씨바, 에프!’입니다.

― 대 숙명의 시대를 대표하는 속담이 뭡니까? “F레벨이 F레벨 했다.”입니다.

― ‘F레벨’은 이 시대 최고의 욕이자 속어이며 모욕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하지만 이 영상을 보는 순간부터 ‘F레벨’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 이 잣밥이 장담합니다. 오늘부터 ‘F레벨’의 의미는 국어사전에 새롭게 등재될 것입니다.


평소의 잣밥답지 않게 지루한 오프닝.


“왜 저래? 재미없게.”


툴툴 대던 여왕벌의 눈빛이 홱, 달라진 건 그 다음부터였다.


“절망의 늪?”


저게 떴어?

K―숙명의 탑 1층에서?


“어머머, 왜 몰랐지?”


약 3년 전.

미국 소유의 숙명의 탑 1층에서 절망의 늪 퀘스트가 최초로 떴을 때, 여왕벌도 그곳에 있었다.

지옥 같던 그 퀘스트를 유일하게 클리어한 후 2년 만에 B레벨에서 S레벨로 급성장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성장속도였고, 그 유명세로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온 그녀였다.


“나 같은 스타가 또 탄생하겠네?”


누굴까?


“기왕이면 역시 남자가 좋겠지?”


기대 이상이었다.

영상을 시청하는 내내 와, 하는 감탄사를 수십 번 연발했고 그 바람에 턱이 아플 지경이었다.

저게 F레벨이라고?


“그럴 리가.”


여왕벌이 놀란 건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영상 속 F레벨의 수준은 솔직히 B레벨 상위에서 A레벨 하위에 걸친 정도.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는 많다.

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판단력의 정확성과 결단의 단호함이 심상치 않았다.


“저 표정 좀 봐.”


여유로워.


“죽을 지도 모르는데 웃어?”


저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다니.


“······와, 꼴려.”


결투의 장에서 F레벨이 보여준 엔딩은 미학, 그 자체였다.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예술작품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그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이.


“갖고 싶어.”


사람을 끌어당기는 저 흡인력.


“내 수벌로 삼아도 되겠어.”


영상 속 F레벨을 보면 볼수록 여왕벌의 고유한 업무이자 역할인 산란본능이 확, 살아났다.

착착 접힌 살이 부드러이 풀렸다.

더운 땀구멍이 화들짝 열렸고, 옥봉침 특유의 향긋한 페로몬이 저 아래서 샘물처럼 배어나왔다.


“저것 봐.”


저렇게 커다란 침은 처음 봐.


“세상에.”


F레벨 김오류한테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벌통길드 소속의 안티고네가 저기 있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데려올까?

어쩔까?

턱을 괴고는 정신없이 그와의 상상 속으로 빨려드는 차였는데, 집무실 문이 열렸다.


쾅!


사건 현장에 있어야 할 우라질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런 우라질! 어이, 여왕벌! 뭐하냐? 어!”

“어머, 우라질 씨. 웬일이래? 연락도 없이?”


다급히 손끝을 옷에 닦으며 여왕벌이 배시시 일어났다.


“우리가 그런 사이였어?”

“우라질! 뭔 개소리야? 오늘 사건 현장에 가기로 한 것 잊었어?”

“아, 깜빡했네?”

“깜빡?”


우라질이 응접용 테이블을 후려치자 여왕벌은 새침한 표정을 내보였다.


“아이참, 지랄은 그만 떨어.”

“뭐라? 지, 지, 지랄? 그게 할 소리야!”

“지랄이 뭐 어때서? X랄도 있으면서 그게 그렇게 거슬려?”

“······하.”


저것하고는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는다며 우라질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 그에게 여왕벌은 자리에 앉으라, 손짓했다.


“근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내 벌통은 금남의 영역인데? 가드들이 안 막았어? 아니면 혹시 너······.”


여왕벌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우라질 주변의 허공에서 수백 개의 독가시가 돋아났다.


“우리 애들 죽였니?”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앙급 빌런이 F급 헌터로 돌아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1부 완결/제우스 영입(4) 22.06.23 247 4 12쪽
44 제우스 영입(3) 22.06.22 238 3 12쪽
43 제우스 영입(2) 22.06.21 238 3 12쪽
42 제우스 영입(1) 22.06.20 236 3 12쪽
41 안티고네와 여왕벌(6) 22.06.19 239 3 12쪽
40 안티고네와 여왕벌(5) 22.06.18 239 6 11쪽
39 안티고네와 여왕벌(4) 22.06.17 239 5 12쪽
38 안티고네와 여왕벌(3) 22.06.16 265 5 11쪽
37 안티고네와 여왕벌(2) 22.06.15 244 5 12쪽
» 안티고네와 여왕벌(1) 22.06.14 240 5 12쪽
35 블랙 피자도우의 비밀(3) 22.06.13 241 5 13쪽
34 블랙 피자도우의 비밀(2) 22.06.12 242 5 12쪽
33 블랙 피자도우의 비밀(1) 22.06.11 243 5 11쪽
32 두 번째 F레벨, 유금오(3) 22.06.10 243 5 12쪽
31 두 번째 F레벨, 유금오(2) 22.06.09 245 6 12쪽
30 두 번째 F레벨, 유금오(1) 22.06.08 249 5 12쪽
29 리더의 품격(3) 22.06.07 244 4 12쪽
28 리더의 품격(2) 22.06.06 246 6 12쪽
27 리더의 품격(1) 22.06.05 247 4 12쪽
26 왕의 징표(5) 22.06.04 249 5 12쪽
25 왕의 징표(4) 22.06.03 246 6 10쪽
24 왕의 징표(3) 22.06.02 253 7 11쪽
23 왕의 징표(2) 22.06.01 267 6 12쪽
22 왕의 징표(1) 22.05.31 256 7 11쪽
21 저게 F레벨이라고?(4) +1 22.05.30 263 9 10쪽
20 저게 F레벨이라고?(3) 22.05.29 279 6 12쪽
19 저게 F레벨이라고(2) 22.05.28 264 6 11쪽
18 저게 F레벨이라고(1) 22.05.27 268 6 12쪽
17 트릭 깨기(2) 22.05.26 288 8 12쪽
16 트릭 깨기(1) 22.05.25 291 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