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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즐님의 서재입니다.

미연재 소설 속 작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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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즐
작품등록일 :
2021.05.12 17:00
최근연재일 :
2021.05.14 18:05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0,754
추천수 :
497
글자수 :
35,667

작성
21.05.13 21:05
조회
460
추천
22
글자
17쪽

Chapter.1 시작부터 이게 무슨 (3)

DUMMY

“더······, 덤벼······!”


라고 말했으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현대인 김무성.


살생은커녕 생고기조차 썰어본 적 없는 비폭력주의자.


그런 나에게 사람만 한 괴물을 죽이라는 것은 너무나 큰 주문이다. 아니지, 죽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저 괴물에게 단검 몇 자루만 가지고 살아남으라는 주문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라도, 지키기 위해서라도.


“크아아!!!”


카이리스는 울부짖었다. 놈의 울음에는 강한 경멸이 가득 담겨있었다. 너 따위가 나를 상대하냐 하는 눈빛이었다,


설정상 카이리스의 울음소리는 두려움에 빠지고, 온몸을 수축시키는 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여기서 두려움은 죽음과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이를 악물었다.


척-


나는 어설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세라고 해봐야 어릴 적 부모님이 보내주셨던 태권도 겨루기 자세였고, 그마저도 어설펐지만,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크크!”


카이리스는 그런 나를 비웃었다. 그러면서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물러나기만 해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아니까.


‘괜찮아. 그 돼지 같은 몸뚱아리가 아니니까.’


아까 느낀 것이 있다. 도끼를 피한 그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뀐 이 몸, 엑스트라, ‘제로’의 전투 재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다.


싸움에 싸자도 모르는 나지만 집중이건 뭐건 물체가 날아온다면 눈을 감는 게 일반인이다.


근데 이 몸은 그것을 정확하게 응시했다.


도끼는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고, 피할 때의 움직임은 자신의 것이라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릿했다.


그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생각한 그대로 움직였다.


동체시력과 반사 신경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뜻이다.


“크아!”


카이리스가 장난스럽게 짖었고,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훙--


다만 그 공격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날 뿐, 닿지는 않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피해낸 것이다.


“헙!”


‘이런 미친···!!’


각오는 했지만, 존나 무섭다.


바람을 가르는 저 소리와 베이면 즉사라는 압박감이 심장을 주물주물 한다.


“크아아!!!”


공격을 한번 피하자 카이리스는 더 이상 장난은 없다는 듯 짖으며 공격을 잇는다.


“씨불!!”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흘러나오는데 몸의 놀라운 반사 신경은 그것을 모두 피해냈다.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나는 ‘제로’라는 캐릭터의 몸에 점차 동화된다.


아까까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면, 이제는 점차 맞는 옷으로 바뀌어 가는 느낌이다.


그 동화로 인해 제로의 전투 재능이 이어졌다.


바닥만 응시하던 눈은 카이리스를 향했고, 놈을 보니 움직임과 공격이 들어왔다.


또한 그 움직임을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이쪽으로!’


몇 번 하다 보니 피하는 게 익숙해졌다.


물론 공격하는 것은 2차 적인 문제긴 했지만.


이 몸은 모든 공격을 읽고 피했으며, 그러고도 묘한 틈을 잡아냈다.


재능···, 그 단어야말로 이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나는 그 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또한 아무리 두렵더라도 눈앞에 주어진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의 머저리는 아니다.


“씨이바알!!!”


기합 대신 욕을 뱉으며 들고 있던 녹슨 쇠붙이로 카이리스의 손을 가격했다.


푹-! 이라는 내가 바랬던 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단검은 카이리스의 가죽을 찢고, 살을 파내어 뼈를 찌른다.


카이리스의 손에서는 물 흐르듯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단검은 상당히 무뎠지만, 가죽을 찢고 살가죽을 파내는 데에는 충분했다.


나는 단검을 박아 넣은 이후 단검을 비틀어 더 강한 고통을 먹여주려고 했으나 동물의 살아있는 신체를 찌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소름 끼쳤기에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나는 단검을 놓쳤다.


어차피 단검은 주머니 속에서 많이 있다.


미련 없이 단검을 버린 뒤 뒤로 물러났다.


뒤가 아쉽긴 했으나 공격은 효과적이었다.


이걸로 놈이 손을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크아아!!”


카이리스는 괴로운 듯 울음을 흘렀다. 어쩌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울음일 수도 있겠지.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아직 부족하다.’


아무리 살생에 미숙하다고 해도 상식은 있다.


고작 손 좀 찔렀다고 죽는 생물은 없다.


정확한 약점, 목이든 심장이든 몸의 주요 부위를 가격해야 했다.


놈이 다시 공격해오기 전에 서둘러 주머니 속의 단검을 꺼냈다.


의도치 않게 단검 2자루가 손에 잡혀 올라왔다.


아무래도 녹에 의하여 단검이 서로 걸린 것 같다.


떨어지지 않아 그냥 두 개를 다 꺼냈다.


‘아껴 써야 하는데.’


단검이 있어 봐야 몇 자루 있었겠는가.


소모전으로 가면 불리한 건 나다.


소중한 단검을 버릴 순 없다.


두 자루를 꺼내 때고 한 자루를 주머니로 넣으려 했다.


“크아아---!!!”


카이리스는 그 머저리 같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나는 황급히 오른손으로 단검을 쥐었다. 다른 한 단검은 반대쪽 왼손으로 잡았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정말로 우연히 손에 2자루가 잡혔고, 다급하게 왼손으로 하나를 넘겼을 뿐.


다만 항상 놀라운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작은 ‘나비효과’. 그것이 큰일을 만들어냈다.


나는 두 자루의 단검을 쥐자마자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야···?’


머리로 번개가 치는 듯한 감각.


번개를 맞아 봐서 아는데, 짜릿한 에너지가 온몸에 퍼지는 묘한 감각이 있다.


그러나 번개의 난폭한 에너지에 비해 이건 나쁘진 않은, 오히려 기분 좋다고 할 수 있는 찌릿함이 느껴졌다.


단검을 시작으로 손을 통하여 뇌리까지 전해든 묘한 감각은···. 아니, 묘한 ‘쾌락’은 그의 정신을 고양되게 만들었다.


“흡!!”


이번에 먼저 공격한 것은 카이리스가 아니었다.


무언가가 몸을 밀어주는 듯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함께 카이리스의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동작 하나하나가 자로 잰 것처럼 깔끔했다.


‘뭐···, 뭐야.’


그 동작은 움직이는 나조차도 놀랄 수준이다.


깡-!!


카이리스가 왼손을 내려치려 하자 발을 살짝 무르며 단검으로 쳐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발, 앞으로 딛으며 왼손의 단검을 카이리스의 복부에 박아넣었다.


카이리스의 복부는 단단했다. 쫙 갈라진 복근은 그 어떤 쇠보다도 단단해 보였고, 놈의 가죽 자체부터가 질겼다.


그러나 단검은 놈의 살가죽에 닿은 순간, 그런 근육과 가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볍게 쭉- 찢었다.


띠링-


목숨이 오고 가는 전투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맑은 기계음이 뜬금없이 들려왔다.


다만 시스템의 뜬금없음은 이제는 적응할 정도가 되었기에 침착히 시스템이 읽어주는 내용을 기다렸다.


그의 눈앞에 글자가 생겨남과 동시에 그것을 여성의 목소리가 읽어주었다.


[재능, 쌍단검술이 활성화됩니다.]


재능, 판타지 세상 온갖 귀족과 재능 충을 끌어모은 아카데미에서도 절반만 발현하는 그 재능이 개화했다.


극적인 전투, 경지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적과의 목숨이 오가는 전투 중 내 재능, 아니 제로의 재능이 꽃핀 것이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근접한다.


까강— 까강--!!


놈의 모든 공격을 쳐내고, 단검을 박아넣었다.


“크아아!!!”


연계에 카이리스의 상처는 하나둘 늘어난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상처만 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놈은 점점 더 포악한 소리를 질렀다.


“울어봤자···, 소용없···!!!”


그 순간, 놈의 근육이 부풀러 올랐다. 돌연 놈의 눈이 충혈된 듯 붉게 물들었다.


카이리스는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양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일명 풍차돌리기라 불리는 기술이다.


두 팔을 마구 자비로 휘적이며 적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무식한 기술.


그러나 초인적인 신체 능력의 카이리스는 허접한 기술을 위협적으로 재현했다.


‘미친···, 2패냐···!!’


놈은 아까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단 기술뿐만이 아니라 힘은 몇 단계나 강해졌고, 속도는 또 매서웠다.


‘마냥 막기만 할 수는 없다.’


포지션이 안 좋다.


계속 물러가 봐야 놈의 동굴 안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발을 내디딘다.


“크아!!”


만용이다! 하는 느낌의 울음이다.


다만 내 행동은 용기이며 결코 만용이 아니다.


깡-


날아오는 놈의 왼손의 손톱을 두 개의 단검으로 교차해 무력화시킨다.


“크오오오!!!”


카이리스는 이대로 짓눌러 죽여버릴 기세로 온몸의 근육을 부풀렸다.


체중까지 실려 더욱 무거워진 놈의 손은 나를 압박했다.


“어림도 없다.”


이것까지도 예상 범위였다.


마치 가위로 손톱을 자르듯, 교차된 두 개의 단검을 움직였다.


콰직-!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카이리스의 몸이 휘청였다.


터진 건 내 단검이다.


하지만 단검은 많다.


나는 서둘러 단검을 리필했고, 놈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카이리스의 다리 사이로 몸을 굴려 뒤를 잡은 나는 벽을 차고 도약했다.


“크아아아!!! 죽어라 이 개새끼야!!”


두 자루의 단검을 역수로 돌렸다.


그리고 중력의 힘과 자신의 체중을 이용하여 카이리스의 목덜미를 찍었다.


물리 법칙으로 한층 위력을 강화한 단검은 카이리스의 쇄골을 뚫어냈다.


빠득--!!


“크아아!!”


놈은 괴로운 듯 울음을 흘리며 바둥거린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했다.


나는 단검을 뽑아낸 뒤 놈을 차고, 뒤로 튀어 올랐다.


만약 현실의 몸이었다면 여기서 멋없게 굴렀을 터지만, 제로의 몸은 달랐다.


가볍게 공중제비를 돌며 체조선수처럼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놈의 목덜미에선 선혈이 튀었다.


“이게 빗나가네.”


목표는 대동맥이나 두개골을 쪼개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리스는 그 순간을 목을 비트는 것으로 피해냈다.


“크라라···.”


그래도 아마 이것으로 놈은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투의 기세는 가져왔다.


‘한대만 더 넣으면 된다.’


쇄골이 부러졌다고 해서 죽거나 못 움직이는 몬스터는 아니다. 마무리로 다음 공격이 필요하다.


나는 단검을 다시 정수로 돌려 돌진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격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다다다-


“···?”


카이리스는 갑작스럽게 달렸다.


동굴 안쪽으로.


“도망···?”


그렇게 싸웠는데 허무하게 도망간다고?


아니지, 놈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공들여 공포를 주입하는, 본인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아는 영악한 놈이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도망간 거겠지.


아쉬운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어쩌겠나. 목표는 사는 거였으니 만족해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하아······.”


몸의 강렬한 고양감은 멈추지 않았다.


이 몸, 역시 전투에 재능이 있다.


“스읍······, 후우······.”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몸이 잘 움직인다곤 해도 호흡은 내 몫.


호흡을 조절하는 기술은 없고 일격을 위해 도약할 때부터 방금까지 참고 있었으니, 숨이 턱 막혀왔다.


“헉···, 허억···.”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뱉고, 마시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호흡했다.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졌지만, 입은 닫히지 않았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선 침으로 범벅된 입가를 누더기로 닦았다.


“후우······.”


나는 무의식적으로 꽉 쥔 단검을 바라보았다.


녹도 슬었고 별 가치는 없어 보이는 단검.


두 자루는 카이리스의 피를 잔뜩 먹어 붉게 빛났다.


‘근데 버리기엔 조금 아깝네. 기념으로 이거 두 개는 괜찮겠지···?’


이유는 있다.


녹이 슬긴 했는데 이 단검, 뼈를 뚫고도 균열 하나 없다.


분명 유물이나 아티팩트, 그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복권을 산 느낌이긴 한데···.


뭐 녹이 슬었어도 쓸만하니 챙겨두면 좋겠지.


“어···. 어떻게···?”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홀몸이 아니었다.


서둘러 소녀 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경악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싸우는 장면을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은 본 듯하다.


특히 카이리스가 도망가는 장면만큼은 소녀의 눈에 확실하게 박혔다.


승리.


희망이 피어 이겨냈음을 안 건지.


흐리멍텅했던 그녀의 눈은 맑은 생기를 되찾았다.


물기에 맑게 빛나는 것이······.


“어······?”


그녀는 내게 재빠르게 달려왔다.


와락--


그리고 내 품에 안겼다.


“흑흑···, 다행······, 이야······.”


그녀의 눈이 빛나던 이유는 비단 생기를 되찾아서는 아닌 모양이다.


소녀의 눈가에 방울진 무언가가 내 옷을 적셨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야···. 정말로···.”


승리건 뭐건 그게 소녀를 울린 것도 아닌 모양이다.


단지 내가 살았기에, 다치지 않았기에 그런 모양이다.


나는 품에서 울고 있는 소녀의 머리칼을 살짝 쓸었고, 소녀는 그 손길을 받으며 울었다.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그녀는 천천히 내 품에서 벗어났다.


벗어났다고 해봐야, 살짝만 앞으로 가면 코가 닿을 거리였지만.


“이름.”


소녀가 호흡을 가다듬고 꺼낸 첫 단어는 그거였다.


“어?”


“이름 알려줘···.”


소녀는 나의 이름을 물었다.


뭐,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김무···.”


김무성, 이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이 세계에서 김무성이라는 한국식 이름은 특이하다···, 는 핑계고.


제로의 몸으로 움직이면서 느낀 바가 있다.


처음 나는 제로라는 캐릭터를 김무성이라는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거라고 여겼다.


착각이었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 온 직후 ‘김무성’이라는 사람과 ‘제로’라는 캐릭터는 성격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하나로 혼합된 것 같다.


대표적으로 제로의 호승심이 그러했고, 끈기가 그러했으며 김무성의 기억과 이미지력이 그러했다.


사도, 서사도, 심지어는 기억도 존재하지 않았던 제로에 나라는 존재가 이어진 게 아니다.


나와 엑스트라가 합쳐져, ‘제로’라는 인물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단순히 캐릭터 몸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간단히 표현할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뭐가 되겠나. 그저 자신의 창작물이자 소설?


가장 간단한 답이겠지만, 가장 멍청한 답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은 곧 저 소녀와 소녀의 고통, 카이리스라는 괴물과 그 이외에 있을 여러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니까.


심지어는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나를 부정하는 말이다.


‘나는 이 세계를 창조한 작가 김무성인가?’


스스로 물었다.


작가 김무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을 단지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창조하고 인형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세상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 ‘살아가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지구의 작가 김무성이 아니다.


나는.


이 세계의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인다.


“제로···, 제로라고 해.”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지구인 김무성으로서의 죽음을 납득하고, 새로운 삶을 인정하긴 쉽지 않다.


특히 이곳이 본인이 죽기 직전까지 쓰던 그 소설 속의 세상이라고 하면 이곳을 허구라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이 세계는 잠시 거쳐 가는 것이고, 나중에는 지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만난 사람은 소녀 한 명뿐이긴 했지만, 이곳을 단순히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현실 이상으로 현실적이었으며 이 세상은 허구라 보기엔.


“제로······, 제로······. 기억할게······.”


나는 소녀의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왜 또 울어, 울지 마.”


소녀의 눈물은 지구의 삶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띠링-


[당신의 존재가 새롭게 확립됩니다. 당신의 존재감이 더욱 짙어집니다.]


존재의 정립.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특별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에피소드가 끝난 이후 확인하세요!]


또한.


[당신의 선택으로 이 세계의 권한이 한층 상승합니다.]


[당신을 지켜보는 신이 존재감을 표합니다.]


자신을 엿 같은 상황에 보낸 개 미친 또라이이자, 관음증 환자라고 불러야 할 분의 존재까지 느낄 수 있었다.


“기억할게. 영원히···.”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제로, 제로’하고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래. 알았···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전개는 상당히 위험한데···?


보통 이런 식으로 가면 ‘제로 영원히 함께···.’ 아니다. 잡소리니 잊어라.


“너는 이름이 뭐야?”


“나는······, 엘렌이야. 근데···, 제로는 ‘엘리’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엘리는 최대한 힘있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엘리. 이제 나가자.”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주곤 다시 손을 잡았다.


이 습하고 더운, 방금 카이리스와 싸워 생긴 놈의 선혈이 낭자하는 이 더러운 동굴에서 나갈 시간이다.


“응!”


엘리의 억지로 힘을 준 듯한 웃음에는 괴로움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희망이 넘쳤다.


‘잘한 거겠지.’


이 정도면···. 그래도 ‘완벽’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라 볼 수 있다.


엘리도 절망에 빠지지 않았고, 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으니까.


우린 서로의 손을 강하게 붙들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묘하게 엘리의 볼이 상기되어있긴 했으나 27년 순혈 모솔아다 김제로는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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